정말 잘 싸웠다. 그래서 더 아쉽다. ‘한국 여자농구가 스페인을 상대로 또 이런 경기를 펼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좋은 경기를 펼쳤다.

비록 스페인의 전력이 이전보다 하락세라고는 하지만, 이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불과 지난해 열린 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우리가 46-83으로 무릎 꿇은 팀이며, 여전히 FIBA 세계랭킹 3위를 지키고 있는 팀이다. 약 1년 반 만에 다시 만난 세계적인 강팀을 상대로 우리 대표팀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26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농구 A조 예선 첫 경기에서 스페인에게 69-73으로 패했다.

경기 초반, 연속 실점을 했지만 빠르게 점수를 따라잡았고 매 쿼터 접전을 펼쳤다. 패인을 지적하고 싶지 않을 만큼,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은 선수는 강이슬이었다. 36분 45초를 뛰며 26점 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득점 자체보다도 움직임이었다. 쉼 없이 뛰어다니며 찬스를 만들었고, 상대의 백도어를 열심히 공략했다. 본인의 장점인 3점슛은 2개를 성공했고, 오히려 3점슛 외의 다른 방법으로 득점을 많이 만들었다.

대등한 흐름이 스페인 쪽으로 넘어갈 것 같던 상황마다 강이슬이 어려운 슛을 득점으로 연결하며, 꾸준히 팽팽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대표팀에서 미리 강이슬의 득점 루트를 다양하게 가져가는 작전을 준비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준비에 결과로 화답한 강이슬은 이전보다 확실히 성장을 했다는 느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박지수는 체력적인 부담을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쉽지 않다. 상대 빅맨과 치열하게 몸싸움을 펼쳐야 하고, 우리 대표팀은 190cm가 넘는 스페인의 장신 선수들에 적절히 대응할 카드가 박지수 외에는 마땅치 않다. 같은 1분이어도 박지수에게 생기는 부담이 훨씬 크다. 게다가 스페인은 아스토 은두어가 외곽으로 박지수를 끌어내며, 더욱 체력적인 부담을 안겨줬다.

전주원 감독은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에도 박지수의 체력이 충분치 않음을 걱정했다. WNBA에 충분한 출전시간을 받지 못하면서 정상적인 체력을 유지하지 못한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경기, 박지수의 기록은 33분 31초를 뛰며 17점 10리바운드 4어시스트 3블록슛이다.

세계 최정상급의 유럽팀을 상대로 이 정도 경쟁력을 보여주는 빅맨이 우리나라 대표팀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박지수가 이 정도 활용도가 있다는 것을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의 빌 레임비어 감독도 꼭 다시 확인했으면 좋겠다.

다만, 이날 경기 막판, 교체 아웃되던 상황에서 박지수가 무릎 쪽에 통증을 호소한 것은 걱정이 된다.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박혜진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35분 10초 동안 14점 5어시스트, 3점슛도 2개를 성공했다.

국제대회에서는 WKBL만큼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에 마음고생도 심했는데, 이제는 국내용-국제용으로 구분해서 지적을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공격에서는 조금 더 욕심을 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굳이 아쉬웠던 장면을 꼽자면 3점슛이다.

대표팀은 5개의 3점슛을 성공했다. 상대인 스페인보다는 훨씬 나은 기록이지만, 국제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킬 때는 ‘외곽 폭발’이라는 요소가 늘 함께 했다는 점에서, 이 경기의 3점슛은 아쉬움이 있었다.

특히 외곽이 상대에게 봉쇄된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공략으로 오픈 찬스를 만들었음에도 그 기회를 몇 차례 놓쳤다는 것이, 그리고 ‘그 슛 1-2개만 들어갔어도 정말 스페인이라는 대어를 잡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에 더욱 아쉽다.

매 쿼터 초반, 강하게 압박을 펼친 스페인이었는데, 잘 대처를 하다가 4쿼터 초반에 흐름을 내주고 말았다. 10점차 이상 벌어지며 경기가 넘어가는 것 같았지만, 추격에 성공했고 턱밑까지 쫓았다. ‘1분만, 아니 30초만 더 남았다면’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아쉬운 결말이었다.

가장 큰 패인은 결국 높이다. 박지수가 분전했지만, 리바운드 싸움에서 18개(30-48)를 졌다. 스페인의 공격리바운드는 무려 24개였다. 44점 24리바운드를 합작한 은두어와 라우라 길의 위력은 결국 리바운드와 세컨 찬스에서 비롯됐다.

하이까지 올라가서 자기 공격을 가져가는 은두어(28점)에 대한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전력 면에서 확실한 열세인 팀이 상대의 공격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은두어에게 줄 것은 주고, 나머지를 막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것 같다. 효과적인 방법이고 충분히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알바 토레스를 단 2점으로 묶은 것, 스페인의 3점슛을 2개(2/12, 16.7%)로 막은 것을 보면 우리 대표팀이 스페인을 상대로 많은 준비를 하고 나왔다는 느낌이다.

다만 은두어를 비롯한 스페인 빅맨들의 슛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그것까지 막았다면 좋았겠지만, 모든 걸 다 기대하는 것은 사실 욕심이다.

13년 만에 나선 올림픽 무대에서 첫 경기를 너무나 잘 싸워준 우리 대표팀이다. 아쉽게 1패를 안았지만, 아직 남은 경기들이 있다. 각 팀마다 우리가 대처하는 방법은 조금씩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리바운드 싸움에서 열세의 폭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숙제다.

그리고 다음 경기부터는 강이슬에 대한 상대의 견제가 강해질 것이다. 스페인을 상대로 26점을 올린 슈터에게 수비가 강하게 붙을 경우, 우리 대표팀이 어떤 방법으로 새로운 득점루트를 마련할지 기대가 된다.

사진 = FIB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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