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8년 전까지만 해도 이름을 읽기도 힘들었던 ‘알파벳 보이’ 야니스 아데토쿤보는 어느새 NBA를 지배하는 괴물로 성장했다. MIP를 수상했고 올스타가 됐으며 2연속 정규시즌 MVP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한 뼘 성장할 때마다 문턱도 그만큼 높아졌다. 요컨대 지난 3년은 아데토쿤보에게 플레이오프 트라우마 극복기이자 고집스러운 프랜차이즈 우승 도전기였다고 해도 될 것이다.

2021 파이널 MVP, 야니스 아데토쿤보에 대해 다시 이야기할 때가 왔다.

 

파이널 역사를 새로 쓴 그리스 괴물

올해 파이널에서 야니스 아데토쿤보의 대활약을 예상한 이는 얼마나 될까? 거의 없었을 것이라 자신한다. 아데토쿤보의 몸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데토쿤보는 6월 30일 애틀랜타와의 동부 결승 시리즈 도중 왼쪽 무릎이 뒤로 크게 꺾이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인대, 반월판 등에 심각한 손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고, 시즌아웃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밀워키의 우승 도전이 또 좌절됐다고 이미 단정짓는 이도 적지 않았다.

ESPN 패널 17인 중 밀워키의 우승을 예상한 이는 단 4명에 불과했다. 파이널 MVP 예상에서 야니스 아데토쿤보를 꼽은 이는 1명이었다. 파이널 전의 분위기가 밀워키와 아데토쿤보 쪽에 얼마나 비관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행히 정밀 검사 결과 아데토쿤보는 무릎에 큰 손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뼈도, 인대도, 연골도 모두 깨끗했다. 기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1차전부터 정상 복귀는 쉽지 않아 보였다. 워낙 위험한 부상을 당했고, 무릎에 구조적인 손상이 없더라도 통증이 남아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닉스 선즈 아레나(파이널 도중 피닉스의 홈 구장명은 풋프린트 센터로 바뀌었다. 네이밍 스폰서를 마침내 찾은 덕분이다. 새로운 이름은 5차전부터 적용됐다.)에서 열린 1차전을 앞두고 아데토쿤보는 정상적으로 몸을 풀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NBA 역사에 손꼽을 경이로운 부상 복귀가 아니었을까 싶다.

1차전부터 35분 동안 20점 17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무릎 상태, 경기 감각이 100%는 아닌 것 같았지만, 정상에 가까워보였던 것도 사실. 그리고 아데토쿤보는 2차전에서 42점 12리바운드 4어시스트, 3차전에서 41점 13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피닉스 골밑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간 약점으로 꼽히던 포스트업 공격 옵션을 노골적으로 활용, 제이 크라우더와 디안드레 에이튼이 지키는 피닉스 인사이드를 손쉽게 무너뜨렸다.

4차전부터 피닉스의 더블 팀에 집중 견제를 당한 아데토쿤보는 공격 진로를 바꾼다. 3점슛 라인 정면에서 특유의 기동성과 방향 전환 능력을 극대화하는 돌파 공격을 감행한 것. 포스트업 공격이 아닌 2대2 공격에서 핸들러 역할을 수행하며 돌파 공격를 시도하는 아데토쿤보에게 더블 팀을 갈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데토쿤보가 큰 보폭으로 성큼 성큼 페인트존으로 치고 들어가면 피닉스의 수비 진영은 큰 균열이 발생했고, 아데토쿤보는 이를 놓치지 않고 킥아웃 패스로 연결했다.

5차전의 활약도 경이로웠다.

이날 아데토쿤보는 23개의 야투를 던져 14개를 성공했다. 이날 밀워키는 1쿼터 후반 피닉스에 주도권을 내주며 크게 뒤졌지만, 이후 아데토쿤보를 앞세워 추격에 성공하며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4쿼터 막판 1점 차까지 쫓기던 상황에서 아데토쿤보는 즈루 할러데이의 앨리웁 패스를 받아 승부에 쐐기를 박는 투 핸드 덩크를 터트리며 게임을 종결지었다.

단언컨대, 아데토쿤보의 5차전 막판 앨리웁 덩크는 NBA 파이널 역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이 경기 후 ESPN은 ‘NBA 플레이오프 역대 최고의 앨리웁 덩크 TOP 5’라는 작은 코너를 통해 아데토쿤보의 앨리웁 덩크와 과거의 앨리웁 명장면을 재조명하기도 했다.

6차전은 아데토쿤보가 밀워키의 우승과 자신의 파이널 MVP 수상에 방점을 찍는 경기였다. 이날 아데토쿤보의 모습은 ‘2020년대 샤킬 오닐’의 재림과도 같았다. 엄청난 수비 에너지로 5개의 블록슛을 해냈고 골밑에서는 포스트업, 돌파를 활용해 마음 먹은 대로 득점을 쌓았다. 이날 25개의 야투를 던져 16개를 성공한 아데토쿤보의 공격은 체감상 ‘던지면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77-77 동점으로 맞이한 4쿼터에 특히 득점을 몰아치며 피닉스 수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6차전을 통해 아데토쿤보는 NBA 파이널 역사상 최초로 한 경기에서 50점 10리바운드 5블록슛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또한 이번 파이널 6경기에서 아데토쿤보는 평균 35.2점 13.2리바운드 5.0어시스트 1.2스틸 1.8블록슛 야투율 61.8%를 기록했는데, 이로써 그는 NBA 파이널에서 평균 30점 10리바운드 5어시스트 야투율 60% 이상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파이널 1차전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무릎을 크게 다친 선수의 활약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데토쿤보, 현대농구의 샤킬 오닐로

샤킬 오닐은 NBA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존재다. 사실 커리어 전체만 놓고 보면 오닐보다 위대한 선수들은 꽤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리그를 집어삼킨 임팩트만큼은 오닐에 비견되는 선수는 역사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다.

순수 높이보다는 스피드, 슈팅력이 경기의 중심이 된 최근의 농구 트렌드를 따라가다 보면, 골밑을 힘으로 밀고 들어가 가볍게 덩크를 꽂으며 2점을 적립하던 샤킬 오닐의 파괴적인 페인트존 농구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오닐은 전성기 시절 스스로를 ‘MDE(Most Dominant Ever, 역사상 가장 지배적인 선수)’라고 칭했는데, 이후 NBA 빅맨 계보에서 오닐의 그 존재감을 따라갈 선수는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플레이오프에서 아데토쿤보가 보여준 활약을 통해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특히 파이널에서 아데토쿤보는 새로운 시대의 샤킬 오닐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페인트존 파괴력을 보여줬다. 볼을 받으면 그냥 2점이었고 골밑은 온전히 그의 차지였다.

올해 플레이오프에서 큰 조명을 받았던 피닉스의 디안드레 에이튼은 파이널 시리즈 내내 아데토쿤보의 골밑 존재감에 압도당했다. 크리스 폴의 환상적인 패스를 받아도 아데토쿤보의 림 프로텍팅에 득점에 실패하거나, 수비에서 아데토쿤보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막지 못해 손쉽게 2점을 주는 상황이 많았다. 에이튼의 탓이라고 하기엔 뭐하다. 2대2 수비를 하다가 앨리웁 덩크를 블록슛하는 괴물을, 플레이오프를 처음 경험하는 젊은 선수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 그만큼 아데토쿤보의 경기력이 엄청났다고 보는 게 맞다.

아데토쿤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샤킬 오닐이 됐다. 엄청난 체격을 활용해 포스트업으로 골밑을 산산조각내던 오닐과 달리, 아데토쿤보는 2대2 핸들러 공격, 포스트업에 이은 페이더웨이와 훅슛을 섞어가며 골밑을 흔들었다. 드라이브 앤 킥아웃 패스로 슈터들의 찬스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오닐의 그것과는 분명히 색깔이 다른 농구였다.

때문에 올해 플레이오프에서 아데토쿤보가 보여준 농구는 2000년대와 2020년대의 NBA가 얼마나 다른 농구를 하고 있고, 그 속에서 빅맨의 역할과 스타일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교보재가 될 수 있지 않나 싶다. 2002년 파이널에서 뉴저지 네츠(현 브루클린 네츠) 소속으로 오닐을 직접 상대했던 캐년 마틴은 이번 파이널을 지켜보며 “아데토쿤보는 2021년 버전의 샤킬 오닐”이라는 평가를 남기도 했다.

 

참을 수 없는 자유투의 무거움

이번 플레이오프를 통해 유독 큰 조명을 받았던 이슈가 하나 있다. 바로 아데토쿤보의 자유투 루틴이다.

NBA는 자유투와 관련한 시간 규정을 하나 두고 있다. 그 규정의 내용인 즉슨, 자유투를 던지는 선수는 심판에게 볼을 받은 후 10초 안에 슛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바이얼레이션이 선언된다.

그런데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아데토쿤보가 이 문제에 연루(?)됐다. 아데토쿤보가 자유투 하나를 던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되는 것이다. 심판에게서 공을 받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볼을 받은 후에도 10초 이상이 소요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상대 팀 팬들은 아데토쿤보가 자유투 라인에서 볼을 받으면 노골적으로 숫자를 세며 그를 압박했고, 이는 파이널이 끝날 때까지 큰 화제를 모았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하나 있었다. 아데토쿤보와 2라운드에서 맞대결을 펼친 브루클린 네츠는 홈 구장 바클레이스 센터에서 열린 1차전에서 아예 전광판을 활용해 노골적으로 아데토쿤보를 괴롭혔다. 아데토쿤보가 자유투를 던질 때 전광판의 화면에 숫자를 카운드하는 자막을 띄웠고, 이를 홈 팬들이 함께 세며 아데토쿤보를 압박했다.

이에 NBA 사무국은 브루클린 구단에 “NBA는 팀들이 상대 팀 선수에 대한 조롱을 선동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전광판을 통해 노골적으로 아데토쿤보를 조롱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이후 브루클린은 전광판을 통한 아데토쿤보 압박을 중단했다. 그만큼 아데토쿤보의 자유투는 엄청난 화제거리였다.

사실 아데토쿤보에게 이런 압박이 통했던 이유는 그의 자유투가 불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두 시즌 동안 아데토쿤보의 정규시즌 자유투 성공률은 70%가 되지 않았고, 플레이오프에서는 그 수치가 더 내려갔다. 아데토쿤보는 2020년 플레이오프에서 58.0%의 형편없는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했으며, 올해 역시 결국 58.7%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놀라운 것은 그나마 파이널에서는 그 수치를 상당히 끌어올렸다는 것.

아데토쿤보는 시리즈 분위기를 바꾼 3차전에서 17개의 자유투를 던져 13개를 성공했고, 시리즈 마지막 경기였던 6차전에서는 19개를 던져 무려 17개를 성공했다.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파울을 얻어내면 자유투로 손쉽게 득점을 쌓곤 했다. 이번 파이널에서 아데토쿤보가 자유투로만 10점 이상을 넣은 경기가 3경기나 됐다. ESPN의 간판 캐스터 마이크 브린은 3차전에서 아데토쿤보가 자유투를 높은 확률로 성공시키자 “아데토쿤보를 ‘야니스 스테픈 아데토쿤보’로 불러야 할 것 같다”는 익살스러운 농담을 던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실 그간 NBA 플레이오프에서 자유투 때문에 이슈가 된 선수는 아데토쿤보 외에도 수없이 많았다. 앞서 아데토쿤보와 비교했던 샤킬 오닐은 늘 자유투가 약한 선수였으며, 필라델피아의 벤 시몬스는 자유투 때문에 올해 플레이오프를 망치고 이제는 트레이드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아데토쿤보는 이번 파이널을 통해 자신의 자유투 능력이 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그리스 괴물’이 더욱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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