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코리안드림을 안고 KBL 무대를 밟았던 김효범은 당시 센세이셔널한 선수였다. 한국인치고 보통인 체격에 키도 크지 않았지만 덩크가 가능할 정도로 높은 탄력을 지녔고 남다른 쇼맨십도 가지고 있어 남녀 팬에게 인기가 높았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뒤로 한 김효범은 은퇴 후에는 미국 NBA 산하 G리그 구단에서 2년간 코치까지 역임하는 등 색다른 이력으로 자신만의 농구 인생을 열어젖혔다. 

이런 그가 올해부터 삼성 썬더스의 코치로 선임되며 한국에서 새롭게 지도자의 길에 서게 됐다. G리그에서 NBA 진입을 꿈꾸는 외국인선수들을 육성하던 그는 이제 KBL의 젊은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키워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띠게 됐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21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유망주 캠프로 지도자의 첫 발을 떼다

김효범은 현대모비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후 SK와 KCC를 거쳐 다시금 현대모비스로 돌아와 은퇴를 했다. 사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현대모비스에서 선수 생활을 더 할 수도 있었다. 계약 기간도 남아 있었고 몸 상태나 체력적으로도 전성기까지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운동을 할 수 있는 몸이었다. 

하지만 은퇴 후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전부터 해왔다.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공부를 더하고 지도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연봉이 그렇게 낮지 않았고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퇴를 결정한 것은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2016-2017시즌이 끝나고 유재학 감독에게 은퇴 의사를 밝힌 그는 2017년 6월에 은퇴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현역에서 물러났다. 은퇴 후 그는 뱅가드 대학에 복학해 남은 학기를 채우고 졸업을 하려고 했다. 

이때 우연찮게 지도자로서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2017년 6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나이키와 함께 하는 제4회 아시아 태평양 팀 캠프’에 참가할 한국 선수단의 인솔자가 된 것이다. 

당시 김효범이 이끌던 한국 선수단에는 이현중(데이비슨대), 여준석(용산고), 이두원(고려대), 차민석(삼성), 김형준(한양대), 김도은(고려대), 김재원(경희대), 서문세찬(한양대), 박민채(경희대) 등 현재 프로와 대학, 고교 무대에서 활약중인 한국농구의 유망주들이었다. 

“원래는 KBL 감독님들 중 한 분이 오시기로 했는데 불참하면서 대체로 가게 됐다. 그리고 현지에서 NBA 코치인 찰스 클래스크(덴버 너게츠)가 오기로 했는데 일정상 조금 늦게 왔다. 그래서 그동안 선수들이 방치될까봐 나름 개인적으로 강의를 준비해서 야간에 체육관을 빌려 기본적인 틀을 잡아주며 연습을 시켰다.”

당시 중국, 인도, 뉴질랜드, 호주가 참가한 대회에서 한국은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또 호주와 결승에선 접전 승부를 펼치기도 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뉴질랜드와 호주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만 가득했다. 중국과 인도는 보이지도 않았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도 강한 뉴질랜드, 호주를 꺾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이들도 잘 따라줬다. 오후 운동이 끝나면 야간에 쉬어야 하는데 ‘재밌는 훈련이 있는데 한 번 해볼래?’라고 물으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참가했다. 시간이 적은 만큼 코트만 빌려서 요점만 알려줬다.”

“그랬더니 중국과 인도와의 경기는 모두 가비지 게임으로 승리했다. 뉴질랜드도 박살냈고 남은 건 호주뿐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겁을 먹기는 했다. 자기들이 호주를 어떻게 이기냐고 하더라.(웃음) 내가 알려준 것만 하면 이길 수 있다고 계속 이야기했다. 비록 패했지만 (이)현중이랑 (여)준석이는 같은 포지션의 호주 선수를 아예 끝장냈다. 재밌는 경기였다.”

이때의 짧은 경험을 뒤로 하고 김효범은 8월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모교인 뱅가드 대학교에서 남은 반 학기 수업을 들으며 농구부의 코치를 맡기도 했다. 사실 말이 코치지 정식코치가 아닌 거의 자원봉사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본인 말에 따르면 자신과 같은 코치가 5~6명 정도는 더 있었고 시합 때는 주로 서 있거나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다. 비록 정식 코치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벤치를 보고 팀에 대해 알아가면서 서서히 본격적으로 지도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아내의 도움으로 이뤄낸 G리그 코치행

김효범은 KCC 시절 지금의 아내인 이혜원 씨와 결혼에 골인했다. 기업은행에 다니면서 인정받던 아내는 그때도 그렇지만 특히 미국에서 그의 절대적인 지지자 겸 서포터로 활약했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그의 G리그 코치행도 아내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미국행을 결정한 김효범은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둘 것을 권했다. 그때는 호기롭게 말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김효범 본인도 어이없는 일이라고 웃는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다. 내가 뭐라고. 하지만 아내가 워낙 현명한 사람이다. 미국행에 대해 이야기한 뒤에 농구도 잘 모르는 사람이 NBA 코치의 초봉부터 여러 가지 정보를 파악했더라. 그러면서 나름의 재무제표를 짜서 어떤 식으로 생활할지에 대한 플랜도 세웠다. 미국에 갈 때는 사직이 아닌 휴직을 하면서 나를 배려하면서 따라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김효범은 대학 졸업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일자리를 알아봤다. 중국에서 인연을 맺은 찰스 클래스크 코치에게 G리그 코치가 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중국에서 선수들을 가르치는 방식과 준비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던 찰스 코치가 추천을 해줬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산하의 G리그 그랜드 래피즈 드라이브 코치로 갈 수 있었다. 

“2차 면접 때는 G리그 코치를 너무 하고 싶어서 어떤 부분에서 크루거 감독님을 보좌할지에 대한 자료를 10개 정도 만들어서 간 것 같다. 사실 이때 아내가 자료를 다 만들어줬다. NBA는 자료 준비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있어 돈을 내고 만드는데 나는 아내가 다 해줬다. 감독님이 내 자료를 보더니 ‘이걸 어디서 만들었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다 했다고 하니 나를 미친 놈처럼 보면서도 좋게 보셨다. 다 아내 덕분이다.“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8개월 정도 지나 구단에서 디트로이트로 오라고 하더라. 당시 제프 밴 건디 감독은 물론 75명 정도의 스태프가 모두 그만두는 과정에서 새로 온 감독이 나를 좋게 본 것이다. 소식을 듣자마자 카페에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쳤다. 10일 안에 어바인을 떠나 디트로이트로 가야 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었지만 아내가 전부 준비해줘서 간신히 모든 짐을 옮길 수 있었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G-리그 코치로 선임된 김효범은 큰 꿈을 품고 디트로이트로 떠났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인생은 실전이었고 코치로서의 첫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선수 육성 코치로 갔지만 실상 하는 일은 매니저와 다름이 없었다. 선수들이 마약을 갖고 있는지 또는 총을 소지하고 있는지 등을 챙기고 확인하는 게 필수 업무였다. 

기술 육성이나 스킬 트레이닝을 할 때 선수들이 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점도 그에게는 애로사항이었다. 경기나 훈련에서 좋은 플레이를 한 선수에게 칭찬을 해도 무시하는 표정으로 슥 보고 벤치에 앉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한 마디로 '네가 뭔데, 나한테 조언을 하냐. 그냥 가만 있어라'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훈련이 끝나고 혼자 화장실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아내는 지금도 이 사실을 모른다. 그래도 감독님은 계속 선수들에게 푸시하고 동기부여를 하라고 하셨다.” 

무산된 NBA 코치, 그리고 한국 복귀 

힘든 가운데서도 1년을 버틴 그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랜드 래피즈의 사령탑이 도니 틴들 감독으로 바뀌면서 많은 변화가 찾아온 것. 도니 틴들 감독은 김효범과 최고의 궁합을 자랑했다. 김효범은 모비스 시절 배웠던 수비 전술을 분석해 자료로 만들었고 이에 감탄한 틴들 감독은 그를 수비 전담 코치로 배정했다. 김효범은 위태로웠던 첫 시즌 이후 분명 달라졌고 강하게 선수들을 조련하기 시작했다. 틴들 감독 역시 그를 신뢰했고 그렇게 그랜드 래피즈를 최고의 수비팀으로 성장시켰다. 

“G리그 역사상 한 시즌 최소 실점 기록이 99.7점이다. 우리의 목표는 100점 이하로 떨어뜨리는 것이었지만 잘 흘러만 간다면 기록을 깰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가능한 상황까지 왔었다. 99.8점까지 줄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가비지 게임에서 방심하다가 실점률이 높아진 적이 많아 아쉬웠지만 나름 수비에 대해선 자신감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였다.” 

김효범이 주입한 수비 전술은 그랜드 래피즈를 넘어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에 디트로이트는 도니 틴들 감독을 수비 전담 코치, 김효범을 육성코치로 올릴 예정이었다. 

“꿈이 이뤄지는 것 같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을 정도였다. 사실 육성코치가 되면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 어시스턴트 코치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전력분석부터 선수 육성 등 내가 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는 분야였기 때문에 기대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디트로이트 팀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아 성사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해 G리그 역시 버블 형태로 진행됐으나 그랜드 래피즈는 옵트아웃을 결정했다. 그 결과 1년간 팀 활동이 없어졌고 김효범 역시 직장을 잃게 됐다. 

그 사이 아이도 태어난 김효범은 아내와 의논 끝에 한국행을 결정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안전 문제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다. 귀국 후 아내는 복직을 했고 육아에 전념하던 김효범은 틈틈이 모비스 시절 동기인 이승현의 농구 교실을 찾아 어린 선수들을 봐줬고 오리온으로 이적한 이대성과 데이비슨대에 진학한 이현중 등을 봐주면서 인지도를 쌓아갔다. 

인비테이셔널 캠프라는 이름으로 프로와 아마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이 입소문이 나면서 삼성으로부터도 연락을 받았다. 중국의 유망주 캠프에 데려간 적이 있는 차민석의 훈련을 시켜달라는 것이 이상민 감독의 생각이었다. 

“지난해 12월에 삼성에서 연락이 왔다. 차민석을 중국에 데려간 경험이 있어서인지 훈련을 시켜달라고 했다. 그래서 민석이만 시키는 줄 알았는데 다른 2군 선수들과 외국선수인 케네디 믹스까지 봐달라고 했다. 계약한 내용과 다른데다 개별 훈련과 팀 훈련은 달라서 난감하긴 했는데 그래도 오케이를 하고 3주 정도 단기 육성 코치로 일을 했다.” 

스스로 뭘 해야할지를 아는 선수가 됐으면

차민석에 대한 훈련이 잘됐다고 판단한 삼성은 지난 시즌 종료 후 김효범에게 정식으로 코치직 제안을 했다. 선수 육성 코치로 젊은 선수들로 재편된 삼성 선수단의 훈련을 맡아달라는 뜻이었다. 

“감사한 제의였지만 사실 고민을 좀 했다. 시즌 종료 후에 유재학 감독님, 위성우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3월에는 애틀랜타 호크스의 네이트 맥밀란 감독대행이 NBA 선수 육성코치로 면접을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다만 지금은 플레이오프 중이니 끝나고 보자고 했다.” 

“이런 오퍼들이 있어서 고민을 좀 하긴 했지만 결국 삼성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현대모비스와 우리은행, 그리고 애틀랜타 구단에는 연락을 다 드렸다. 오기 전에도 팀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 들어와서보니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김효범 코치는 공식적으로 6월 1일부터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삼성이 비시즌 단체 훈련을 시작한 게 6월 7일. <루키 더 바스켓>이 인터뷰를 찾은 날은 6월 11일. 훈련이 시작된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훈련 시작 주인데 비시즌이 너무 길어서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열정이 너무 좋은데 선수들이 오버 페이스에 걸리지 않게끔 하려고 한다.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하니까. 확실히 요즘 선수들은 많이 프로페셔널해서 몸이 좋다.” 

“이상민 감독님이 선수 육성에 대한 계획, 그리고 외국선수에 대해서도 계획을 짜달라고 하셨다. 그 부분을 생각하고 있다. 이전과 비교해 시스템 적으로 크게 바뀐 건 없다.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그건 비공개로 하려고 한다. 다만 지난 시즌 성적과 기록을 토대로 올 시즌 목표치를 정한 게 있는데 그것을 제가 싹 다 상위권으로 바꿔놨다.” 

“외부에서 삼성이 선수층이 얇다는 말이 있는 건 알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실점과 실책을 최대한 줄이는 것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 선수들에게서 패배 의식은 느껴지지 않는다. 패기도 있고 잘 가르치고 안 다치고 플레이하게끔 하면 될 것 같다. 다만 문제는 외국선수들을 어떻게 잘 움직이게 하느냐인데. 이것 역시 G리그에서도 해왔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선수들이 어떤 스타일에 맞추기보다는 자기가 뭘 해야할 지를 알고 하면 좋겠다. 미국은 선수들이 마치 전문가 마냥 의견을 개진하고 훈련에 임한다. 우리 선수들도 코칭스태프의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네네’만 하는 게 아니라 뭘 할지, 뭘 해야할 지를 알고 하면 좋을 것 같다. 또 그렇게 하게끔 해주고 싶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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