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덴버 너게츠의 니콜라 요키치가 생애 첫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요키치의 MVP 수상은 여러 면에서 특별하다. 최초의 2라운더, 최초의 너게츠, 최초의 세르비안, 그리고 21년 만의 센터라는 수식어까지. 2020-2021 NBA 정규시즌 MVP 니콜라 요키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비포 시즌: 왜 요키치는 유력한 MVP 후보가 아니었을까
시즌 개막이 다가오면 모든 언론이 새 시즌에 대한 예상을 내놓는다. 양대 컨퍼런스의 우승 팀은 물론 개인상 부문 수상자들까지.
2020-2021시즌 개막을 앞두고 사람들이 꼽은 강력한 MVP 후보는 니콜라 요키치가 아니었다.
ESPN에서는 루카 돈치치, 르브론 제임스, 앤써니 데이비스, 스테픈 커리의 MVP 수상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특히 돈치치는 가장 많은 지지를 받으며 생애 첫 MVP 수상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야니스 아데토쿤보의 MVP 3연패를 언급한 이도 적지 않았다.
SI.com에서도 루카 돈치치, 야니스 아데토쿤보, 조엘 엠비드 등이 거론됐다. 심지어 케빈 듀란트도 이야기가 나오는데 니콜라 요키치의 MVP 수상을 이야기하는 이는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일단 MVP는 정규시즌 성적이 어느 정도는 따라줘야 하는 상이다.
2016-2017시즌의 러셀 웨스트브룩 같은 케이스도 물론 있다. 당시 웨스트브룩이 속한 오클라호마시티의 정규시즌 성적은 서부 6위였다. 하지만 웨스트브룩의 개인 기록과 임팩트가 워낙 압도적이었다.
당시 웨스트브룩은 평균 31.6점 10.7리바운드 10.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오스카 로버트슨 이후 역사상 두 번째로 시즌 평균 트리플-더블을 달성한 선수가 됐다. 당시 오클라호마시티가 케빈 듀란트의 이적으로 전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점이 오히려 미디어의 시선을 끈 점도 있었다. 이 시즌 오클라호마시티의 승수는 50승이 되지 않았다.(47승) 정규시즌 소속 팀 승수가 50승이 되지 않는 팀의 선수가 MVP를 수상한 것은 웨스트브룩 이전까지만 해도 1982년의 모제스 말론이 가장 최근의 사례였다. 그만큼 웨스트브룩의 사례는 독특했다.
덴버 너게츠는 2019-2020시즌에 서부지구 결승 무대까지 밟은 강팀이었다. 하지만 오프시즌의 무브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제라미 그랜트, 토리 크레이그, 메이슨 플럼리가 모두 팀을 떠나면서 강점이었던 프런트코트진의 뎁스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 그 자리를 메울 선수는 마이클 포터 주니어였는데, 포터 역시 버블에서 막 잠재력을 폭발시킨 터라 한 시즌을 통째로 안정적으로 치를 수 있을지 의문이 남아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승후보 0순위로 꼽히던 레이커스의 르브론 제임스, 앤써니 데이비스나 서부 상위 시드를 차지할 것으로 보였던 댈러스의 루카 돈치치의 이름을 많이 거론했다. 케빈 듀란트의 MVP 수상 가능성이 언급된 것도 브루클린의 시즌 성적이 좋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 니콜라 요키치는 MVP 후보로서는 약점이 있는 선수였다. 소속 팀 덴버의 성적에 대한 기대치가 이전만큼 높지 않았다. 여기에 요키치에 대해서 “보여줄 만큼 이미 보여줬다”는 시선이 있는 것도 꽤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요키치의 2019-2020시즌 평균 성적은 19.9점 9.7리바운드 7.0어시스트. 요키치는 조엘 엠비드와 더불어 리그를 대표하는 센터였지만 MVP를 받기엔 폭발력이 부족해보였다. 평균 20점을 기록하지 못하는 선수가 MVP를 탄 사례는 NBA 역사를 통틀어 봐도 많지 않다. 가장 최근 사례가 2005년과 2006년의 스티브 내쉬인데, 당시 내쉬의 피닉스는 공격 농구로 리그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내쉬에게는 “포인트가드니까”라는 설명이 붙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빅맨인 요키치는 그런 입장은 아니었다.

미드 시즌: 놀라운 스텝-업
하지만 시즌 개막 후 요키치는 또 한 번의 스텝 업을 보여주며 모두를 놀라게 한다. 강점은 그대로 유지한 채 다소 부족해 보였던 폭발력을 끌어올리면서 MVP 후보의 존재감을 보여준 것이다.
덴버의 가드 윌 바튼은 요키치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경기를 앞두고 저는 매번 요키치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코트에 나가서 네가 MVP가 되라고. 마음만 먹으면 너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적극적인 니콜라 요키치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사실 폭발력에 대한 고민은 지난 몇 년 동안 요키치를 꽤나 괴롭혔던 이슈였다.
어시스트는 많은데 득점이 10점 언저리에 머물다가 덴버가 경기에 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짓궂은 현지 언론들은 노골적으로 요키치에게 득점이 적은 이유를 물었다. 이 과정에서 “왜 어시스트만 하고 싶어 하냐”는 식의 유쾌하지 않은 화법의 질문도 꽤 나왔었다. 그때마다 요키치는 “나도 기회가 되면 당연히 득점을 생각한다. 기회가 없었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답했지만 아마 본인도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나 속앓이가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2020-2021시즌에는 그런 시선이 아예 사라졌다. 요키치가 폭발력이라는 측면에서 완전히 환골탈태한 시즌을 보냈기 때문이다.
새크라멘토의 시즌 개막전부터 15개의 리바운드와 14개의 어시스트에 무려 29점을 곁들인 요키치는 이 경기를 포함한 개막 20경기 중 17경기에서 20점 이상을 기록했다. 30점 이상 경기는 6경기에 달했고, 이중 5경기가 35점 이상, 1경기는 47점을 기록한 경기였다.
‘득점은 안 하고 패스만 신경쓴다’는 평가는 자연스럽게 쏙 들어갔다. 득점력까지 최대치로 끌어올린 요키치에 대해 찬사가 쏟아졌다.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있다. 바로 40점과 관련된 기록이다.
2015년 데뷔 이후 첫 5시즌 동안 요키치는 40점 이상을 기록한 경기가 4경기에 불과했다. 앞서 언급했듯 득점력, 폭발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선수였기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기록이었다.
하지만 요키치는 2020-2021시즌에만 40점 이상 경기를 5번 해냈다. 5년 동안 보여준 폭발력보다 올 시즌 한 해 동안 보여준 폭발력이 더 컸던 것이다. 심지어 그 중 한 경기는 50득점 경기였다.(2월 7일 새크라멘토전)
요키치가 대단했던 것은 이렇게 득점력을 눈에 띄게 끌어올리면서도 이기적이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키치는 여전히 상대 수비의 반응에 따라 가장 옳은 플레이를 했다. 슛을 던지는 게 맞을 때는 슛을 던지고, 패스를 하는 게 맞을 때는 패스를 했다. 패스를 해야 할 때 슛을 던지거나 슛을 던져야 할 때 패스를 하는 엇박자는 보기 힘들었다. 코트 상황에 가장 적합한 플레이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언제나 득점 혹은 어시스트로 돌아왔다.
사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득점을 많이 하려면 당연히 야투 시도도 그만큼 늘어나야 하고, 그러다 보면 야투 시도와 패스 횟수의 비율이 달라진다. 경기는 똑같이 하는데 패스는 줄이고 슛을 늘리면 당연히 그만큼 불필요한 야투 시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요키치는 이렇게 플레이의 밸런스를 바꿔가는 과정에서도 득점과 어시스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효율성도 유지했다.
평균 득점이 26.4점으로 이전 시즌에 비해 6.5점이나 치솟았는데, 야투율은 56.6%로 오히려 함께 상승했다. 그리고 어시스트 개수도 8.3개로 이전 시즌에 비해 1개 이상 늘어났다.(7.0개→8.3개) 그만큼 코트 위의 지배력은 더 커졌다. 코트를 지배하는 최강의 ‘조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애프터 시즌: 세르비아, 2라운더, 너게츠, 13년, 21년
앞서도 언급했지만 요키치의 이번 MVP 수상은 여러 면에서 특별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전 경기 출전 MVP가 됐다는 것이다.
요키치는 2020-2021 정규시즌에 진행된 72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단 한 경기도 결장하거나 도중에 코트를 떠나는 일이 없었다. 부상과는 거리가 먼 시즌을 보냈고, 이 부분은 올 시즌 요키치가 가진 가장 무서운 점이 됐다.
자말 머레이, 마이클 포터 주니어, 윌 바튼 등 많은 덴버 동료 선수들이 부상, 코로나와 싸우면서 코트를 비울 때 요키치만큼은 자리를 지켰다. 요키치가 건강하게 뛰지 못했다면 덴버는 결코 서부 3위라는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마이클 말론 감독의 용병술, 애런 고든 트레이드 효과, 파쿤도 캄파소의 NBA 연착륙 등 긍정적인 요소들도 있었지만 어느 것도 요키치의 건강하고 폭발적인 활약만큼 덴버의 성적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최근 NBA 역사를 뒤져봐도 전 경기 출전 MVP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최근의 사례가 2007-2008시즌의 코비 브라이언트였으니, 요키치는 무려 13년 만에 등장한 전 경기 출전 MVP인 셈이다.
2020-2021시즌이 코로나 팬데믹 도중에 다시 무리하게 일정을 앞당겨 개막한 시즌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대단하다.
요키치의 MVP 레이스 경쟁자였던 르브론 제임스, 조엘 엠비드 등이 모두 부상 여파로 경기에 빠지고 이로 인해 레이스에서 밀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요키치의 건강함은 확실히 비교 우위에 있었다.
올 시즌 전 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NBA를 통틀어 단 10명이었고, 그 중에 요키치가 있었다. 그리고 이 10명 중 요키치보다 평균 출전 시간이 많은 선수는 R.J. 배럿 1명뿐이었다.
요키치는 평균 34.6분을 뛰며 72경기를 소화했고 총 출전 시간은 2,488분을 기록했다. ‘혹사왕’으로 악명 높은 탐 티보도 감독이 지도하는 두 뉴욕 선수(줄리어스 랜들, R.J. 배럿)에 이어 리그 전체 3위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요키치가 올 시즌 개막을 불과 세 달 앞둔 시점까지 버블에서 플레이오프를 치른 선수였다는 점이다. 덴버의 마이크 말론 감독은 이런 요키치의 모습에 대해 "존경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내가 요키치의 여러 면 중에 가장 존경하는 면은 코트에 나가서 매일 같이 자신의 플레이를 하면서도 절대 쉬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즌 중에 요키치에게 휴식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그떄마다 요키치는 휴식이 필요없다고 했다. 요키치의 사전에 휴식이란 없었다. 요키치는 자신이 매일 경기에 뛸 수 있는 선수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시즌을 치렀다."
"요즘 많은 젊은 선수들은 출전 기회를 쟁취하기보다는 그런 기회가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기만을 바란다. 너무 쉬운 길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키치는 절대 그렇지 않다."

최초라는 수식어도 한꺼번에 여러 개 생겼다.
올 시즌을 통해 요키치는 덴버 역사상 정규시즌 MVP를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세르비아 출신 선수가 MVP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도 처음이었다. 1976년 NBA와 ABA의 합병 이후 최초로 2라운드 출신 선수로서 MVP에 선정됐으며, NBA 역사상 가장 낮은 순위에 지명된 MVP가 됐다.(2라운드 전체 41순위)
사실 기록 만들기, 스토리 만들기에 치중하는 NBA에서 스타급 선수라면 ‘최초’, ‘몇 년 만에’라는 타이틀은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지만 요키치가 이번 MVP 수상으로 얻은 수식어들은 하나같이 특별하다.
그중에서 세르비아와 관련된 이야기를 살펴보자면, 사실 그간 NBA에는 많은 세르비아 출신 선수들이 등장했다. 1989년에 데뷔한 블라디 디바치는 세르비아의 영웅 같은 선수였고, 밀레니엄 킹스에서 디바치와 함께 활약한 페야 스토야코비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NBA를 지켜봐온 팬들이라면 마르코 야리치, 블라디미르 라드마노비치, 네나드 크리스티치 같은 이름도 기억이 날 것이다. 2003년 드래프트에서 무려 2순위로 지명돼 아직도 그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다르코 밀리시치 역시 세르비아 출신 선수였다. 올 시즌 애틀랜타에서 더 상한가를 치고 있는 보그단 보그다노비치와 댈러스의 ‘귀염둥이’ 보반 마르야노비치도 세르비아 출신 선수다.
하지만 이중에서 NBA에서 올스타급 이상의 선수가 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MVP 수상자는 아예 없었다. 요키치는 세르비아 선수로서 그 벽을 무너뜨렸다. 세르비아 농구 역사에서도 특별하고 의미가 큰 사건이었다.
요키치는 21년 만에 등장한 센터 포지션 MVP이기도 하다.
2002년과 2003년에 MVP를 차지한 팀 던컨을 파워포워드로 본다면, 요키치 이전에 등장한 가장 최근의 센터 MVP는 2000년 샤킬 오닐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빌 러셀, 카림 압둘-자바, 하킴 올라주원 등 센터 MVP가 많이 등장했지만 2000년대 이후 NBA의 중심이 포워드와 가드로 재편되면서 센터들의 MVP 수상을 볼 수 없었다.
요키치의 MVP 수상은 현대농구에서 역할이 크게 달라진 센터가 어떤 방식과 플레이로 다시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센터 가뭄’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인 적도 있었지만, 이제 센터는 그들만의 생존법을 찾아 NBA에서 다시 존재감을 찾아가는 중이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