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재즈 마스터(The Jazz Master).’

마이클 조던의 평화로운 치세가 이어지던 1997년 3월이었다. 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재키 맥뮬런 기자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졌다.
그가 던진 돌의 이름은 <재즈 마스터>라는 제목의 기사로, 맥뮬런 기자는 유타 재즈의 ‘우편배달부’ 칼 말론의 꾸준함을 찬양하며 그가 MVP 투표에서 지금보다 더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다. 인쇄 매체의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던 시절로, 맥뮬런 기자의 <재즈 마스터>는 호수에 태풍을 일으켰다.
이 기사를 기점으로 여론은 급격하게 바뀌었고, 결국 말론은 조던을 제치고 MVP가 됐다. ‘재즈 마스터’ 말론은 유타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의 MVP이자 유일한 MVP로 남아있다.

그렇게 말론과 함께 한 영광의 시대를 뒤로하고 강산이 두어 번 변한 2021년, 유타에는 새로운 스타가 있다. 신성 도노반 미첼은 9일 열린 LA 클리퍼스와 경기에서 45득점을 폭격하며 팀의 112-109 신승을 이끌었다.
쉽지 않은 경기였다. 올스타 가드 마이크 콘리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결장했다. 유타는 1쿼터 중반 8분 30초 동안 무려 20개의 야투를 연속으로 놓쳤다. 그 대가는 확실했다. 유타는 클리퍼스에 47-60으로 13점 차 뒤진 채 전반을 끝냈다.
“슛이 안 들어가는 게임도 있습니다.” 유타의 퀸 스나이더 감독이 말했다. “이런 경기는 수비로 승부를 봐야 합니다. 한 가지 만족스러운 건 우리가 슛을 던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는 거예요.”
스나이더 감독의 말처럼 포기하지 않은 유타는 3쿼터부터 힘을 냈다. 미첼이 그 중심에 있었다. 미첼은 3쿼터 3점슛 3개를 포함해 야투율 75%(6/8)로 16점을 올렸다. 3쿼터 양 팀이 기록한 점수는 32-19로, 미첼의 분전 속 유타는 3쿼터를 79-79 동점으로 마쳤다.
그렇게 가장 중요한 4쿼터에 들어가기 전, 벤치에 앉은 미첼이 팀원들에게 연설을 시작했다.
“쟤들은 이틀 전에 7차전을 치르고 왔어.” 미첼이 말했다. “그게 우리가 이번 쿼터를 시작하는 방법이야. 우리가 쟤들을 몰아넣으면, 쟤네는 아마 금방 포기하고 2차전을 준비할 걸?”

24살 미첼은 팀에서 5번째로 어린 선수다. 그의 앞에는 33세 조 잉글스가 앉아있었다. 잉글스의 옆에는 32세 보얀 보그다노비치도 있었고, 29세 조던 클락슨과 28세 루디 고베어도 있었다. 하지만 유타의 이 젊은 미래는 이미 팀의 리더였다. 미첼의 연설은 중계방송사 TNT의 마이크를 타고 전국에 송출됐고, 경기를 지켜보던 미디어와 팬들의 트위터는 요동쳤다.
그리고 맞은 승부처 4쿼터, 미첼은 약속을 지켰다. 3쿼터 16점에 이어 4쿼터에도 63% 야투율로 16점을 몰아쳤다. 후반 3, 4쿼터 도합 32점의 경이로운 퍼포먼스로 자신이 뱉은 말을 지킨 것이다. 클리퍼스는 후반 37% 야투율을 기록하며 급격히 무너졌다. 유타의 112-109 대역전승.
“제 커리어 4년간, 우린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단 한 번밖에 이기지 못했어요.” 미첼이 말했다. “사람들에게 말했어요. 그건 내 머릿속을 매일 같이 맴돌고 있다고. 이곳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우리를, 나 자신을 증명해야만 한다고요.”
미첼은 이날 37분을 뛰면서 45득점을 기록했다. 개인 통산 플레이오프 4번째 40득점 이상 경기. 미첼은 이전 이 기록을 유일하게 갖고 있던 유타 선수는 ‘재즈 마스터’ 칼 말론으로, 말론은 40득점을 네 번 기록하는 데 194경기가 필요했다. 미첼은 이 기록을 세우는 데 28경기가 걸렸다.
공교롭게도 이날 경기가 열린 유타의 홈 구장 비빈트 아레나 관중석 1열에는 말론이 앉아있었다. 새로운 재즈 마스터의 대관식이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캡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