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이현중. 삼일상고 시절 제법 촉망받긴 했으나, 평범한 유망주 중 하나였던 그는 어느 날 불현듯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어느덧 3년, 그는 이제 2004년 포틀랜드의 하승진 이후 대한민국에서 가장 NBA에 근접한 사나이가 됐다. 무엇이 그에게 독기를 풀었을까? 무엇이 이역만리의 그를 버티게 했을까? 이현중은 오늘과 내일 무엇을 위해 뛸까? 여기, 40가지 문답으로 이현중과 가까워진다. (인터뷰는 5월 19일 진행됐습니다.)

Q1. 한국에 오고 자가 격리도 끝났다. 최근 근황은?
훈련하면서 국가대표 소집을 준비하고 있는데 순조롭다. 몸 상태도 좋고 잘 되고 있다.

Q2. 지난 시즌에도 여름 방학에 한국에 오긴 했지만, 이렇게 체계적인 훈련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작년에는 코로나 탓에 어수선하게 귀국했다. 개인 훈련은 했지만, 팀 훈련은 해봤자 삼일상고에 가서 저보다 어린 선수들이랑 몸을 부딪치는 정도여서 그렇게 큰 도움이 안 됐다. 지금은 김효범 선생님이 모은 미니 캠프에서 프로 형들과 훈련하고 있다. 프로에서 정점을 찍은 형들과 피 튀기게 하고 있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느는 게 느껴진다.

Q3. 김효범 코치가 모은 미니 캠프는 어떤 캠프인지?
김효범 선생님께서 인비테이셔널 캠프라고 프로에서 뛰는 형들을 모아 훈련 중이다. 처음 모였을 때부터 선생님이 서로 눈치 보지 말고 운동하고 가자고 하셨는데, 계획대로 잘 되고 있다. 정말 선후배 눈치 안 보고, 나이에 상관 없이 서로 경쟁심을 느끼면서 운동하고 있다. 만족스럽다.

Q4. 일주일 훈련 루틴이 어떻게 되나?
월, 수, 금 오전에는 이렇게 김효범 선생님이 모은 선수들과 픽업 게임을 한다. 그리고 월, 화, 목, 금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는 웨이트 훈련을 한다. 화, 목 오전에는 삼일상고에 가서 친구 이준희(원주 DB)와 슈팅 훈련을 한다. 주말에는 농구를 하고 싶으면 어디 경기를 찾아가거나 푹 쉰다. 쉴 때도 집에서 쉬기보단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서 사람을 많이 만나는 편이다.

Q5. 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따로 있나? 연마하고 있는 기술이라든지?
맥킬롭 감독님께서 몇 가지 짚어주시긴 하셨는데, 사실 그냥 거의 다 업그레이드해오라는 말씀이셨다.(웃음) 수비부터 리딩이나 미드레인지 풀업까지 다양하게 연습하고 있다.

 

 

Q6. 한국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은?
아무래도 부모님이나 친구들을 만나는 게 가장 좋다. 또 한국에는 제 차가 있으니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쉬다가도 시합을 뛰고 싶으면 운전해서 바로 코트에 가면 되니까. 미국에는 아직 차가 없다. 아마 내년에는 사긴 할 것 같은데, 사실 굳이 살 필요도 딱히 못 느끼긴 한다. 학교가 워낙 시골이라 어디 갈 데도 없고 매일 학교에서 운동만 하니까.(웃음)

Q7. 이번 여름 방학에는 경사가 많다. 국가대표에도 뽑혔다.
명단 발표 후 기대의 목소리도 많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제 학업이나 미국 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계시더라. 하지만 난 괜찮다. 여름 방학이기도 하고, 세계 선수들과 부딪칠 기회다. 꼭 가고 싶었다. 난 아직 부족한 선수고, 한창 배워야 할 때다. 대표팀에서 만난 같은 팀 형들이나 외국의 다른 팀 선수들의 장점을 다 뺏어오고 싶다.

Q8. 청소년 대표팀은 몇 차례 나갔지만, 성인 대표팀은 처음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건 어떤 느낌일까?
재밌을 것 같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부담보단 설렌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세계 다양한 선수들과 만난다는 건 설레는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부담감을 자극제로 바꾸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좋다. 제 농구에 촉진제가 될 것 같다.

Q9. 가장 기억에 남는 청소년 대표 경기가 있다면?
18세 아시아대회 때 중국에 져서 세계대회에 못 간 게 아직도 화가 난다. 충분히 갈 수 있는 멤버였는데 최악의 성적을 냈다.(이현중은 중국전에서 3점슛 6개 포함 33점을 넣었다.)

Q10. 17세 대표팀 때 만났던 8강 미국전은 아직도 회자된다. 지금 NBA에서 1~2옵션으로 뛰는 콜린 섹스턴, 자렌 잭슨 주니어 등과 맞대결을 펼쳤었다. 
8강에서 미국을 만났는데, 속된 말로 발렸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우리가 못한 것도 아니고, 슛이 안 들어간 것도 아닌데 점수판을 보면 40점, 50점 벌어져 있더라. 우리도 한국에서 난다긴다하는 선수들이었는데 참패했다. 뭐 어쩔 도리가 없더라. 그때 마음을 먹었다. 저들이 하는 농구를 나도 처음부터 배워보고 싶다고.

 

Q11. 일찍부터 외국 생활을 했다. 지금 대표팀 선수 중에서 가장 친한 사람은?
(이)대성이 형이랑 그래도 많이 가깝다. (여)준석이나 (하)윤기 형도 친했고. (양)홍석이 형도 많이 친해졌다. 라건아 선수와는 오늘 픽업 게임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그래도 손발이 잘 맞더라. 제가 영어를 할 수 있으니까 말을 걸면 존중해주면서 들어 주는 게 인상 깊었다.

Q12. 대표팀 발탁 당시 맥킬롭 감독은 뭐라고 했나?
24인 예비 명단이 나왔을 때 (맥킬롭) 감독님이 장난으로 그러시더라. ‘네가 만약 12인에 안 들어가면 내가 당장 한국 팀 감독에게 이야기하겠다’고.(웃음) 항상 나라를 위해 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격려해주시는 분이다. 굉장히 축하해주셨다. 

Q13. 부모님의 반응은?
오히려 부모님은 좀 걱정하셨다. 부상 위험도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렸다. 저한테는 업그레이드될 기회라고. 부모님이 정말 좋으신 게, 제가 고등학교 때 갑자기 호주를 간다고 했을 때도 제 의견을 항상 존중해주셨다. 덕분에 항상 부담 없이 든든하게 잘 하고 있다.

Q14. 성인대표팀은 오랜 꿈이었다. 대표팀에서 가장 만들고 싶은 하이라이트 장면이 있다면? 예를 들면 여준석과 앨리웁 플레이라든가.
음. 준석이랑 앨리웁 플레이는 청소년 대표 때도 해봤고… 저는 사실 라건아 선수와 픽앤롤을 좀 보여드리고 싶다. 오늘도 픽 게임을 좀 해봤는데, 스크린 걸어주는 게 확실히 다르더라. 기대된다.

Q15. 어려서부터 해외에 있었다. 해외 진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앞서 말한 미국과 8강전이었다. 중국이랑 해서 지면 ‘아, 이길 수 있었는데’ 이런 아쉬운 생각이 드는데, 미국한테 지고 나니까 그냥 멍하더라. 우리가 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부딪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Q16. 처음 진출한 곳은 호주 NBA 아카데미였다. 처음 갔을 땐 농구 문제보다도 언어 문제가 가장 컸을 것 같은데.
맞다. 그래도 영어 유치원을 나와서 중학교 땐 영어 시험에서 80점 정도는 맞았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수업도 안 듣고 그러니 영어는 인사만 아는 정도였다. 그렇게 호주에 막상 가보니 정말 아무 말도 안 나왔다. 

Q17. 아무래도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겠다. 
처음 혼자 호주에 갔을 때 첫 3개월. 이때가 제가 지금까지 해외에 있으면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저는 그곳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는데, 말도 안 되니까 무시도 많이 당했다. 말은 안 통하고, 부모님은 보고 싶고... 많이 울었다. ‘다 때려 치우고 내일이라고 한국에 돌아갈까’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다. 

Q18. 어떻게 극복했나?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무작정 호주 친구들이 있는 바깥으로 계속 나갔다. 들리지도 않는 영어였지만, 옆에서 친구들이 말할 때 통역기를 틀어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넷플릭스도 무조건 영어 자막으로 보고 핸드폰 소프트웨어도 영어로 바꿨다. 되돌아보면, 이때가 제겐 일종의 예방 접종 같은 때였다. 그때 그렇게 버틴 덕분에 지금 미국 생활을 잘할 수 있다. 절대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웃음)

Q19. 미국에 있을 때 경기가 있는 날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될까?
경기 시간에 따라 다르다. 보통 저녁 경기면 아침 10시쯤에 미팅 룸에 모인다. 상대 팀이 분석된 비디오를 보면서 ‘이 선수는 왼쪽 드라이브인을 좋아하네’, ‘여기서 슛을 하네’ 등 각 선수의 성향을 체크한다. 이것을 스카웃이라고 한다. 그 뒤에는 워크스루라고 패턴을 한번 간단히 맞춘다. 이후 낮잠도 자고 쉬다가 일어나서 트레이너와 15분 정도 요가를 한다. 그리고 경기 시작 네 시간 전 밥을 먹고 다시 돌아가서 두 시간 전 모인다.

Q20. 데이비슨의 라커룸 리더는 누구였나?
켈란 그레이디가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저희는 딱히 한 명의 리더가 팀을 이끌기보다는 다 같이 얘기를 하는 편이었다. 그게 팀 문화이기도 했고, 선수들이 다양한 국적에서 모인 탓도 있었다. 그게 좋은 점도 있지만, 확실한 리더가 없다 보니 지난 시즌에는 아쉬운 면도 있었다. 그래서 올 시즌에는 감독님께서 제게 리더 역할도 주문하셨다.

 

Q21. 중계만 봐도 확실히 미국은 신경전이나 트래쉬 토크가 많다. 경기를 하면서 들었던 가장 어이없거나 웃겼던 트래쉬 토크가 있다면?
경기 중 제가 드라이브 인을 했는데, 상대에게 맞아서 머리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상대 흑인 선수가 저보고 ‘약해빠졌다’라고 그러더라. 바로 일어나서 싸웠다.(웃음) 그 외에도 제 앞에서 3점슛을 넣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가기도 하고... 그러면 저도 다음번에 걔 앞에서 넣고 똑같이 소리를 지르고 온다. 재밌다. 놀다 오는 느낌이다.

Q22. 그렇다면 경기가 없는 날 일과는?
제가 딱히 취미가 없다. 그래서 농구로 받은 스트레스를 뭐로 풀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혼자 슈팅 훈련을 하러 갔는데, 슛이 잘 들어가니 스트레스가 풀리더라.(웃음) 1,000개 중 800개 들어가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운동으로 푼다. 

Q23. 별다른 취미 없이 농구만 좋아하는 선수로 유명하다. 농구를 보는 것도 좋아하나? 예를 들어 KBL이나 NBA, 다른 대학 경기들도 많이 챙겨보나?
시간이 안 맞아 KBL은 보기 어렵고, NBA는 좀 본다. 아, 한국에 와서 KBL 파이널은 좀 봤다. KGC인삼공사는 설린저도 설린저지만, 네 명의 국내 선수들이 자신의 역할을 정말 잘해주더라. 골든스테이트가 (스테픈) 커리를 위해 그렇게 받쳐주듯 KGC인삼공사 선수들도 각자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사실 전 쉴 땐 농구보단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이다. 

Q24. 가장 큰 힘이 된 드라마는 어떤 드라마였나?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본다. 미국에서 ‘동백꽃 필 무렵’이나 ‘사랑의 불시착’은 7번씩 보고 그랬다. 한국이 그리울 때 큰 힘이 됐다.(웃음)

Q25. 커리의 모교 데이비슨에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클레이 탐슨이다. 탐슨은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나?
옛날부터 좋아했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에는 KD(케빈 듀란트)를 좋아했다. 그래서 등번호도 35번이었다. 그러다가 호주와 미국에 건너오니까 미국에서는 현실적으로 제가 듀란트 같은 역할을 할 수 없겠더라.(웃음) 그렇다고 탐슨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겠다 싶어서 롤 모델을 다시 정했다. 멋진 선수다. 플레이도 플레이지만, 흔들리지 않는 멘탈도 멋지다.

 

Q26. 탐슨을 따라하는 자유투 루틴으로 유명하다. 라인에 서서 공을 세 번 정도 튀기다가 이제는 한 번만 튀기고 슛을 쏘던데 바꾼 이유가 있을까?
맞다. 맨 처음에는 세 번을 튀겼는데, 너무 많이 튀기니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지더라. 빨리 쏘고 싶어서 한 번만 튀기고 쏘는데 이게 더 잘 맞아 그렇게 바꿨다.

Q27. 자신이 슈터임을 깨달은 건 언제부터였나?
어른들께서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슛은 잘 쐈다고 하신다. 어려서부터 슛 쏘는 게 제일 재밌었다. 어린 나이에도 ‘그냥 멀리서 슛 쏘면 되는데, 뭐하러 힘들게 골밑으로 가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농구했다. 슛이 제일 좋았다.

Q28. 아무래도 슈터이다 보니, 다른 팀 경기를 볼 때도 슛을 위한 패턴 같은 데 맞춰져 있겠다. 최근 가장 인상 깊게 본 경기의 패턴은?
마이애미 경기를 많이 본다. 그중에서도 슈터 던컨 로빈슨을 위해 팀이 엘리베이터 스크린이나 핸드오프 등으로 슛 기회를 만드는 게 재밌다.

Q29. 마이애미 외 응원하는 NBA 팀이 있다면? 
아무래도 골든스테이트 경기를 많이 본다. 커리 경기가 제일 재밌긴 하다. 어떤 팀이든 저렇게 자기를 위해 모두가 맞춰주면 정말 재밌겠다 싶더라. 그런데 그렇게 맞춰주는 만큼 또 결과를 만들어 내니까 더 멋있고.

Q30. 데이비슨은 샬럿에 있다. NBA 샬럿 호네츠와 교류는 어느 정도인가?
비시즌 때 가끔씩 비공식 픽업 게임을 위해 부를 때가 있다. 작년에도 한 번 비공식 경기를 위해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말릭 몽크, 마일스 브릿지스와 경기를 했다. 그 선수들에게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먹기도 했지만, 제가 3점슛 6개를 넣었다.(웃음)

 

Q31. 경기 전 몸을 풀 때 특별한 루틴은 있나?
경기 전 루틴은 아침을 먹고, 비디오미팅과 워크스루를 한 뒤 혼자 남아서 코너부터 20개씩 슛을 메이드한다. 그리고 다시 미드레인지 점퍼를 10개씩 메이드하고 땀을 흘리며 숙소에 들어간다.

Q32. 본인만의 징크스는?
징크스는 하나도 없다. 징크스는 아닌데 그런 건 있다. 제가 어느 날 시합 전에 한 번 사랑의 불시착을 너무 재밌게 보다가 늦게 잠든 적이 있다. 다음날 VCU와 원정 경기였는데, 새벽 2시 반이 넘어 잠들었다. 눈을 감으면서도 ‘아, 큰일났다’ 했는데, 그날 경기에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웃음) 그때부터 드라마보다 늦게 잠드는 것에 대한 초조함이 없어졌다. 그래서 그냥 늦게 잘 거 같으면 아예 드라마를 틀어놓기도 한다. 커리어하이를 생각하면서.(웃음)

Q33. 드라마 외에 미국 생활에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김효범 선생님이 항상 큰 도움을 주신다. 제 멘토다. G리그 코치도 경험하시면서 현대농구에서 뭐가 필요한지 아시는 분이다. 뭐랄까, 영어와 비슷한 것 같다. 한국에서 아무리 영어를 배워봤자 미국에서 쓰는 영어는 다르지 않나. 미국에서 미국 농구를 직접 겪고, 저한테 조언을 해주시는 거라 정말 제가 필요한 말씀을 해주신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항상 피드백도 해주시고. 정말 감사한 분이다.

Q34. 경기마다 항상 영상을 분석해서 개인 필름 세션을 해준다고 들었다.
맞다. 경기마다 해주신다. 경기가 끝나면 동영상을 보내주시면서 ‘여기서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세밀하게 알려주신다. 이게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말로만 들으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데, 영상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정말 좋다. 현대농구에서 비디오 분석은 정말 중요한 영역이다.

Q35. 방금 언급한 것처럼 미국에서는 점점 비디오에 대해 할애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그렇다. 저희 감독님만 해도 비디오로 공부를 엄청 많이 하신다. 경기가 끝나는 당일도 잠을 안 주무시고 그날 필름을 3~4번을 보고 주무신다. 경기를 앞두고서는 상대 필름 세션만 두 시간씩 한다. 그리고 미팅을 마치고 연습을 나가면, 필름 세션에서 지적한 안 됐던 부분을 집중적으로 한다. 상대가 누구든, 약점이 무엇이든 반복적인 훈련만 하는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Q36. 본인도 틈틈이 비디오를 많이 보는 편인가?
혼자 볼 땐 좋았을 때 폼을 기억하려고 한다. 또 비교도 많이 한다. 예를 들어 클레이 탐슨의 무브를 익히고 싶으면, 제가 따라한 영상과 비교하면서 뭐가 다르지? 뭘 더 채워야 하지? 이런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러면서 스킬적인 부분이 모자라는지, 피지컬적인 부분이 모자라는지 결론을 내리고 트레이너에게 곧바로 얘기해 채운다.

Q37. 김효범 코치는 필름 세션뿐만 아니라 멘탈적으로도 큰 도움을 준다고 들었다.
제가 무득점 경기를 하고서 힘들어할 때면 ‘잘했어’ 하신다. 그런데 20점, 25점을 넣고 스스로 ‘잘했다’ 생각하고 있을 땐 오히려 쓴소리를 하신다. 20점을 넣은 날에도 필름을 편집해서 보내주시면서 ‘여기서는 왜 실수했냐?’라고 하신다. 그러면 저는 더 배고파진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달콤한 소리만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제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Q38. 올 시즌도 그랬지만, 팀의 주축 득점원이 모두 떠나는 다가오는 시즌은 이제 진짜 에이스로서 팀을 이끌어야 한다. 가장 늘리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
욕심나는 스탯은 딱히 없다. 그런데 그냥 이런 소리를 듣고 싶다. ‘아, 얘랑 뛰면 진짜 편하다’, ‘얘랑 팀하고 싶다’라는 평가를 동료로부터 받고 싶다. 그리고 감독님이 말씀하신 대로 훌륭한 리더가 되는 것이 목표다. 

Q39. 인터뷰를 위해 만날 때마다 느끼지만, 항상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겸손이 배어 있다. 겸손함은 누구에게 배웠나?
부모님에게 많이 배웠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항상 강조하시는 부분이다. 엄마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다 보니 어려서부터 인터뷰하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엄마는 누구를 만나도 항상 존칭을 쓰셨다. 아버지도 항상 ‘아무리 최고의 선수가 되더라도 겸손함을 잃으면 땅에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Q40.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많은 분들이 저를 보며 ‘얘는 NBA에 간다’, ‘못 간다’ 평가를 많이 하신다. 그러면서 또 어떤 분들은 ‘애한테 부담 주지 말라’고도 하시는데, 사실 저는 부담감은 전혀 없다. 저는 부담감으로 도전하는 선수가 아니다. 그냥 제가 재밌어서 하는 거다. 제가 재밌어서 하는 도전이니, 보시는 분들도 그냥 재밌게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 설령 NBA 도전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저는 한 명의 농구 선수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오는 것이기에 그게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가? 쟤는 NBA에 못 간다는 평가도, 너는 안 될 거라는 악플도 다 좋다. 저한테는 모두 자극제가 된다.

 

사진 =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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