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키=원석연 기자] “뉴욕이요? 다 알잖아요. 거긴 빅마켓이에요.”
애틀랜타 호크스의 네이트 맥밀란 감독이 뉴욕과 결전을 앞두고 말했다. “뉴욕에는 엄청나게 많은 팬이 있고, 그들은 지난 몇 년간 플레이오프에 못 올라갔어요. 우리는 아마 원하는 대로 콜을 받기 힘들 거예요. 리그는 뉴욕을 원합니다.”
맥밀란 감독은 이 발언으로 2만 5천 달러, 한국 돈으로 3천만 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었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뉴욕 닉스. 2013년 이후로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한 구단. 그러나 6년 연속 포브스 선정 NBA 구단 가치 1위를 사수한 전 세계 최고의 빅마켓. 애틀랜타가 상대하는 뉴욕은 그런 구단이다.
8년 만의 봄 농구 나들이에 뉴욕은 도시 전체가 흥분했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1차전서 관중석 15,000석을 개방하기로 했는데, 선수들을 망원경으로 봐야 하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자리의 가격도 1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앞자리의 가격은 무려 1,500만 원에 달했다. 파이널의 가격이 아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의 가격이 그랬다.

1차전이 열리는 24일, 트레이 영은 매디슨 스퀘어 가든 원정 라커룸에서 신발 끈을 묶고 있었다.
'Always Remember.(언제나 기억해)'
영의 오른팔에 적혀진 타투는 이날따라 유난히 선명해 보였다. ‘Always remember when they doubted you.(사람들이 너를 의심하던 그때를 언제나 기억해)’ 지난해 자신의 시그니처 신발에 새긴 그의 좌우명이다.
15,000명의 군중 앞에서 경기는 시작됐다.
8년 만의 플레이오프 복귀, 줄리어스 랜들이라는 새롭게 군림한 뉴욕의 왕, 코로나 팬데믹 이후 뉴욕에서 허용된 가장 많은 관중석. 팁오프 전부터 주인공과 빌런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애틀랜타 선수단을 향해 경기장을 가득 메운 뉴욕 팬들은 쉴 새 없이 야유를 퍼부었다.
“엿이나 먹어, 트레이 영.(F**k you, Trae Young)”
특히 트레이 영이 공을 잡으면 데시벨은 더 커졌다. 아니, 야유를 넘어 그들은 챈트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열성적이기로 유명한 뉴욕의 팬들이라지만, F로 시작하는 과격한 챈트를 1쿼터부터 부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트레이 영이 뉴욕에 뭘 잘못한 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정규시즌에 경기당 25.3점 9.4어시스트를 기록했던 애틀랜타의 에이스였을 뿐이다. 만 22세의 어린 에이스 영은 그렇게 경기 내내 만 오천 명 관중의 미움을 받아냈다. 그중에는 영화 감독 스파이크 리, 코미디언 트레이시 모건, ‘퀸스 갬빗’의 애니아 테일러 조이도 있었다.
“저를 향한 야유가 들려올 때면,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아, 내가 오늘 좀 하고 있네.’라고.” 경기 종료 후 영이 야유를 회상했다. “중요한 건 말이죠. 팬들은 제게 야유를 보낼 수 있지만, 그게 다라는 거죠. 그들은 저를 막을 수 없어요. 저에게 그건 그냥 게임의 일부예요. 저는 팬들이 돌아와 기쁩니다. 오늘 밤 출렁거리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경기는 팽팽했다. 48분간 양 팀은 7번의 동점을 만들었고, 10번이나 리드를 바꿨다. 영의 말대로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쉬지 않고 출렁였다.

백미는 4쿼터였다. 경기 종료 9.8초 전, 103-105로 뒤지고 있던 뉴욕이 데릭 로즈의 플로터로 동점을 만들었다. 전광판의 점수는 105-105로 동점. 이들의 플레이오프 1차전은 이제 9.8초짜리 단판 승부가 됐다.
“절대 패스하지 마.” 애틀랜타의 마지막 작전 타임, 벤치에 있던 베테랑 루 윌리엄스가 영에게 말했다. “이 팀은 너의 팀이고, 이 사람들은 구단의 운명을 네 어깨에 올려 뒀어. 너는 포인트가드야. 나가. 패스하지 마. 그리고 이기고 와.”

뉴욕은 애틀랜타의 마지막 공격을 막기 위해 R.J 배럿을 프랭크 닐리키나로, 로즈를 레지 불록으로 교체했다. 경기 재개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고, 영이 하프라인에서 공을 받았다.
닐리키나와 타즈 깁슨이 더블팀으로 그를 막아섰지만, 영이 크로스오버로 둘을 돌려세웠다. 레지 불록이 코너에서 도움 수비를 나왔지만, 가속 페달을 밟은 영의 패스 페이크에 불록은 손도 뻗지 못하고 영을 페인트존으로 보내야만 했다. 남은 시간은 0.9초, 골대 앞에 당도한 영이 ‘뉴욕의 왕’ 랜들의 머리 위로 플로터를 올렸다. 그리고.
“겁나 조용하네.”
랜들의 머리 위를 지난 영의 플로터는 그대로 골대를 통과했다. 출렁거리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도서관처럼 고요해졌다. 영이 조용해진 관중석을 응시하며 손가락을 입에 올렸다. 쉿.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32점 7리바운드 10어시스트. 트레이 영은 플레이오프 데뷔전에서 30점-10어시스트를 기록한 역대 네 번째 선수가 됐다. 앞선 세 선수의 명단은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폴 그리고 데릭 로즈.
“그 슛이 저들을 아주 조용하게 만들었어요.” 상기된 표정의 영이 복도를 지나 라커룸으로 향하며 소리쳤다. “아직도 저 바깥에서는 웅성거리고 있지만... 난 신경 안 써요. 자! 다음!"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트레이 영 트위터 캡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