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FA 시장은 눈치 싸움, 두뇌 싸움이 어우러진 전쟁터다.

2021 KBL FA 시장 역시 다르지 않다. 선수들의 전화 벨은 수없이 울리고, 각 구단은 시장 상황 파악에 정신이 없다. 찰나의 순간에 선수를 빼앗길 수도, 빼앗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FA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론 스피드, 정보력이 아닌 진심이다. 특히 그 진심을 전하는 것이 동료 선수라면 더더욱 더 효과적이다.

이재도의 LG행 역시 진심이 닿은 결과였다. 그 진심을 전한 쪽은 이관희였다.

"재도의 선택에 따라서 한국에 남을지 미국에 갈지 결정하려고 했어요.(웃음)" 이관희가 특유의 익살스러운 농담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제가 아버지처럼 따르는 조성원 감독님이 먼저 재도를 원하셨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작년에 LG에서 두 라운드 정도 뛰면서 뛰어난 가드와 함께 뛰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재도가 우리 팀으로 오길 저도 간절히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재도와 이관희는 평소에 친분이 있는 사이가 전혀 아니었다.

뻘쭘할 법도 한데, 이관희는 서슴없이 이재도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다. 선배, 형이라는 자존심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이관희가 바랐던 것은 단 하나. 이재도의 마음을 창원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사실 재도랑 원래는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요. 개인적으로도 잘 몰랐고요.(웃음)" 이관희가 말했다.

"제가 사실 1년에 술 먹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에요. 한 5번 정도? 그런데 이번에 재도랑만 술을 2번을 먹었어요. 애초에 술도 잘 안 먹는 스타일인데 재도한테 먼저 연락을 해서 술 한 잔만 하자고 했죠."

그렇게 성사된 이관희와 이재도의 만남. 하지만 이관희의 회유에도 이재도는 빨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농구선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인 FA.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모든 선택지를 고려해야 했다. 이관희의 적극적인 대시(?)에도 이재도가 고민을 거듭했던 이유다.

"아니... 이 친구가 계속 간을 보더라고요.(웃음)" 이관희가 말했다.

"그래서 재도한테 말했죠. 네가 먼저 LG랑 계약하면 그때 나도 계약할 거다. 빨리 LG랑 계약해라. 너랑 같이 하고 싶다. 이렇게요."

여전히 고민을 이어가던 이재도. 그 앞에서 술을 훌쩍이던 이관희는 마침내 승부수를 던졌다.

"재도야, 창원 올래, 나랑 원수 될래?"

 

이관희와 이재도의 술자리는 이후에도 한 차례 더 이어졌다. 20일 저녁, 그러니까 이재도가 최종 결정을 내리기 하루 전날이었다.

이재도는 이틀 전 받은 손목 수술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이재도를 앞에 두고 이관희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관희 형이 그러더라고요. 진짜 다른 데로 떠날 거면 빨리 말해달라고요. 창원에 안 올 거면 빨리 손절해야 한다면서요.(웃음)."

이재도는 마침내 이관희에게 확신을 줬다. LG와 계약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여러 구단에서 재도를 원하신 걸로 알아요." 이관희가 말했다.

"그래서 제가 술 먹으면서 재도한테 얘기했죠. 나랑 원수로 지낼 거면 다른 데로 가고, 아니면 LG로 오라고요. 협박이라면 협박이 맞는 것 같아요.(웃음)"

"얘기를 나누면서 재도도 저와 함께 하고 싶어한다는 걸 느꼈어요. 결국엔 서로 마음이 맞았죠. 서로의 필요함을 알게 된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우리 LG가 지난 시즌에 꼴찌였잖아요. 다음 시즌부터는 최정상으로 올라가야 했어요. 그러려면 재도 같은 든든한 지원군이 옆에 있는 것과 없는 건 차이가 크거든요. 제가 재도한테 잘 얘기했던 게 영입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재도도 저랑 뛰어보고 싶지 않았을까요?(웃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재도가 LG와 계약을 맺은 21일에도 이관희는 LG 구단에 당부를 남겼다.

"제가 먼저 단장님을 만나서 계약을 하고, 그 다음에 재도가 와서 단장님을 뵙기로 예정돼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 계약을 먼저 마무리한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단장님께 부탁을 드렸어요. 재도 계약까지 잘 마무리해서 하루 빨리 마음 편하게 새 시즌을 준비하게 해주셨으면 좋겠다고요."

 

이관희에 이어 LG 구단을 만난 이재도. 그는 결국 LG가 내민 계약서에 최종 사인했다. 이관희의 FA 리쿠르팅이 대성공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관희의 대시만이 이재도의 LG행을 만들어낸 요인은 아니었다.

이재도는 협상 과정에서 LG 구단이 보여준 적극적인 태도와 정성에 마음이 열렸다. 여기에 이관희의 결정적인 한 방(?)까지 더해지면서 둘은 창원에서 역사적인 백코트 듀오를 이루게 됐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재도가 입을 열었다.

"LG에서 저를 너무 신경 써주시는 게 협상하면서 느껴졌어요. 정말 정성을 많이 쏟아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이관희와의 술자리를 통해 이재도는 자신과 이관희의 마음이 통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사실 저랑 관희 형은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어요. 그동안 인연이 전혀 없었거든요. 이번에 같이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짧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마음이 너무 잘 맞더라고요. 코트에서도 관희 형과 제가 서로의 단점을 채워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상대 팀들이 버거워할 만한 시너지가 나는 백코트 콤비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관희의 적극성은 이재도에게도 상당히 크게 다가왔다.

"계약하기까지 관희 형의 영향이 상당히 컸어요."

"관희 형이 같이 창원에서 좋은 그림을 그려보자면서 먼저 저한테 믿음을 줬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아, 나는 관희 형만 믿고 같이 따라가도 되겠구나."

"저도 평소에 관희 형이라는 선수에 대해 정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관희 형과 함께 뛰었을 때의 시너지 효과에 대해 혼자서 상상해봤는데 너무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다가오는 시즌이 너무 기대됩니다."

이관희도 역시 설렘을 느끼고 있다. 남은 것은 새로운 백코트 파트너와 함께 LG를 다시 상위권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구단에서 정말 큰 힘을 써주셨어요. 다가오는 시즌에 우승을 위해 달릴 수 있는 강력한 원투 펀치를 만들어주셨잖아요. 구단에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이관희의 말이다.

마침내 함께 뭉친 이재도와 이관희는 다음주에도 한 차례 만남을 가진다. 이제는 콤비로서 함께 하는 술자리다.

"관희 형이 계약하게 되면 꼭 술자리 한 번 더 하자고 했거든요. 다음주쯤에 관희 형이랑 또 한 번 자리를 가질 생각입니다."

창원을 뜨겁게 달굴 '도관희' 듀오를 볼 날이 머지 않았다.

 

 

사진 =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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