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저 멀리 미국에서 구단의 운영은 보통 GM(General Manager, 단장)의 영역이다. 그러나 한국 여자 프로 농구단에서 단장의 포지션은 주로 결재자다. 트레이드나 드래프트 등 전반적인 실무는 대부분 사무국장이 담당한다.

대한민국에서 단 6개뿐인 여자농구단 사무국장의 자리. 시즌이 한창 진행되는 겨울이 감독의 시간이라면, 시즌이 끝나고 날이 더워지는 비시즌은 이제 국장의 시간이다. 

그들의 시간이 되면, 6명 국장 사이에는 많은 전화가 오간다. 이 글을 읽는 팬이라면 누구나 몰래 엿듣고 싶을 트레이드에 대한 이야기부터 드래프트, 이벤트, 체육관 대관 혹은 시시콜콜한 밥 약속이나 술 약속까지.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부산에서 용인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좀 특별한 전화였다.

“김한별을 트레이드할 수 있습니까?”

 

지난 시즌 5승에 그친 BNK는 쇄신이 필요했다. BNK는 이번 봄 감독을 바꿨고, 코치를 바꿨고, 주장을 바꿨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팀의 1옵션까지 바꾸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남들보다 시작이 늦었다면, 똑같이 걸어서는 따라잡을 수 없다. 더 부지런하게, 더 화끈하게, 더 파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게 BNK의 방식이다.

누군가는 전화를 먼저 걸고, 누군가는 그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그 전화의 목적이 만약 트레이드라면, 주도권을 쥐는 쪽은 대개 전화를 받는 쪽이다. 

BNK는 김한별을 원했지만, 삼성생명은 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난 시즌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섰던 디펜딩 챔피언이었다.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 김한별에게 트레이드 의사를 묻기만 했을 뿐, 전혀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이 과정에서 김한별은 BNK라면 트레이드가 되더라도 괜찮다고 답했다. 박정은 감독이 있기 때문이다.)

BNK는 다양한 카드를 제시했다. 선수 A 아니면 선수 B 그것도 아니라면 지명권까지. 하지만 파이널 MVP에 대한 대가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실제로 거래는 몇 번이나 엎어졌고, 그렇게 이 모든 일이 없던 일로 될 수도 있었던 그때, 하나원큐가 테이블에 의자를 펼쳤다.

“우리는 구슬을 데려오고 싶습니다.”

지난 달 문을 닫은 FA 시장에서 에이스 강이슬을 잃은 하나원큐가 전력 보강을 원한다는 사실은 비밀이랄 것도 없었다. BNK만큼 전력 보강이 절실했던 하나원큐는 즉시 전력감을 찾고 있었다.

세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국가대표 포워드. 골밑과 외곽 공격이 모두 가능하며 3번과 4번을 오갈 수 있는 스코어러. 그들은 구슬을 원했다.

 

“세 팀이 참여한 딜이지만, 셋 중 저희는 유일하게 잃을 게 없는 위치였어요.”

삼성생명 사무국이 당시를 회상했다. “여자농구단이 6개밖에 없잖아요. 다들 비밀이 많지 않습니다.” 삼성생명의 말대로 BNK와 하나원큐의 니즈는 이미 모두 밝혀진 상태였다.

판이 커졌다. 삼성생명은 부산에서 부천으로 눈을 돌렸다. 그들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김보미가 넣어주던 경기당 1.4개의 3점슛을 채워줄 슈터가 필요했다. 심지어 김보미가 있었던 지난 시즌에도 삼성생명의 3점슛 성공률은 27.5%로 리그 전체 꼴찌였다. 경기당 1.2개 3점슛을 32% 성공률로 기록한 강유림이 삼성생명의 레이더에 들었다.

"미래요?" 강유림을 품은 삼성생명은 이렇게 말한다. "글쎄요. 유림이는 무궁무진한 선수고 팀의 미래이자 현재입니다. 우리 팀의 올 시즌은 미래만 보는 시즌이 아닙니다."

 

강유림은 신인왕이다. 그것도 까다로운 기자단 투표 108표 중 108표를 모두 받은 만장일치 신인왕. 

“휴가를 마치고 청라에 복귀할 때, 정말 굳게 각오하면서 숙소 문을 넘었거든요.” 강유림이 말했다. “이번 시즌이야말로 감독님이나 팬분들께 진짜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그런 시즌으로 만들겠다고.”

트레이드가 터진 건 5월 17일이었지만, 강유림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것은 전날인 16일 밤부터였다.

그날 저녁까지 평범한 일과를 함께했던 강계리와 장은혜가 다음 날 신한은행으로 트레이드될 것이라는 소식이 한밤 중 하나원큐 청라 숙소에 알려졌고, 선수단은 아닌 밤중에 아쉬움 속 작별 인사를 나눴다. 강유림도 강계리와 인사를 나눈 선수단 중 하나였다. 

"하루 아침에 그렇게 트레이드되는 게 무섭더라고요. 계리 언니랑 은혜한테 '이게 무슨 일이야'하면서 옆에서 위로하고, 그날 밤 누웠는데 잠이 잘 안 왔어요. '아, 이게 프로구나. 여긴 정말 냉정한 곳이구나'하면서."

 

그리고 다음 날 오전이었다. 강계리의 트레이드 기사가 터졌고, 하나원큐 선수단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 웨이트 훈련을 마쳤다. 그때, 강유림의 이름이 불렸다.

“유림아. 감독님.” 

매니저의 호출에 강유림은 스트레칭을 하다 말고 1층 코트 옆 감독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설마? 에이, 그래도 설마? 에이, 아니야. 아닐 거야. 점점 빨라지는 심장 박동 속 강유림이 감독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트레이드됐어.”

이훈재 감독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둘뿐인 감독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강유림은 대답 없이 울었다. 

“그 자리에서 많이 울었어요. 삼성생명이 가기 싫어서 운 건 아니고요. 뭐랄까? 복합적인 감정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저를 뽑아 주고, 저를 신인왕으로 키워준 구단을 떠난다는 게… 휴가를 마치고 비시즌을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했던 각오도 스쳐 지나갔고요. 그냥 뭐 여러 가지로…”

이훈재 감독이 트레이드 내용을 설명했고, 강유림은 조용히 듣고 감독실을 나왔다. 방에 올라와 짐을 싸고, 선수단과 인사를 나눴다. 트레이드 소식을 듣고 눈물 흘리던 어제의 장은혜는 24시간 후 자신의 모습이었다. 잠을 청하려 애써 눈을 감았지만, 새벽이 가도록 잠은 오지 않았다. 

2003년 겨울리그 신인왕 곽주영이 1년 뒤 트레이드된 적은 있었지만, 그해 트로피를 받은 신인왕이 당해 트레이드된 것은 이 리그에서 처음 있는 일. 강유림의 이날 밤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감독님이 섭섭하냐고 여쭤 보셨을 땐 아니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삼성생명 강유림이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섭섭해요.(웃음) 많이 섭섭하죠. 그래서 보란 듯이 여기 삼성생명에서 더 잘하고 싶어요. 더 잘해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드래프트장에 있던 저를 처음으로 선택한 건 하나원큐였지만, 두 번째로 선택한 건 삼성생명이니까.”

드래프트장에서 한 다발, 신인왕을 받으며 또 한 다발. 강유림은 이제 하나원큐로부터 받은 꽃다발을 내려 놓고, 신지현, 고아라 그리고 하나원큐 구슬을 매치업할 준비를 한다.

트레이드는 이런 것이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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