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키=이동환 기자] 전자랜드의 인버티드 픽앤롤(Inverted pick and roll)을 KCC는 제어할 수 있을까.
21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는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전주 KCC 이지스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4강 플레이오프 시리즈 1차전이 열린다.
이 시리즈에서 눈길을 끄는 전술적 포인트가 하나 있다. 바로 ‘인버티드 픽앤롤(Inverted Pick and Roll)’이다.
인버티드(inverted)는 ‘반대의’, ‘뒤집힌’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즉 인버티드 픽앤롤은 일반적인 픽앤롤의 성격을 뒤바꾼 형태의 픽앤롤이라는 의미다.
KCC와 전자랜드의 시리즈에서 인버티드 픽앤롤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뭘까? 지금부터 간략히 살펴보자.

전통적인 픽앤롤, 이제는 바뀌고 있다
픽앤롤(Pick and Roll)은 농구 역사에서 오랫동안 활용되고 사랑받아온 전술이다. 가드가 볼을 가지고 드리블러 역할을 맡고, 키가 큰 빅맨이 스크리너 역할을 하며 2대2 공격을 펼친다. 가드는 스크린을 통해 만들어지는 돌파 동선을 활용하며 공격 기회를 엿보고, 빅맨은 스크린 이후의 움직임을 골밑으로 침투하며 득점을 노리는 것이 전통적인 픽앤롤의 모습이다.
전통적인 픽앤롤에서 가드가 드리블러 역할을, 빅맨이 스크리너 역할을 수행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일반적으로 가드가 볼 핸들링 능력, 돌파 능력이 더 좋고 빅맨은 크고 두꺼운 몸으로 보다 질 좋은 스크린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같은 픽앤롤의 전통적인 역할 구조가 파괴되고 있다.
포워드, 빅맨의 볼 핸들링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면서 픽앤롤의 드리블러 역할을 장신 자원이 하는 상황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NBA의 LA 레이커스는 지난 시즌 앤써니 데이비스가 드리블러 역할을 하고 대니 그린, 켄타비우스 칼드웰 포프, 알렉스 카루소 같은 가드 혹은 슈터들이 스크리너 역할을 하는 2대2 게임을 활용해 큰 재미를 봤다.
덴버는 NBA 역사상 최고의 패싱 빅맨으로 꼽히고 있는 니콜라 요키치를 드리블러로, 뛰어난 슈팅력을 가진 자말 머레이를 스크리너로 활용하는 2대2 게임으로 오래 전부터 큰 재미를 보고 있다.
밀워키 벅스도 야니스 아데토쿤보를 드리블러로 활용하고 돈테 디빈첸조 같은 가드들을 스크리너로 활용하는 2대2 게임을 즐겨 쓴다.
이처럼 전통적인 픽앤롤과 반대로 가드와 빅맨이 역할을 바꿔 빅맨이 드리블러 역할을, 가드가 스크리너 역할을 하며 2대2 게임을 펼치는 것을 ‘인버티드 픽앤롤’이라고 부른다.

전자랜드가 일으키는 새 바람
최근 KBL에서 인버티드 픽앤롤을 유난히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팀이 있다. 전자랜드다.
사실 그동안 KBL에서 인버티드 픽앤롤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장 올 시즌만 해도 KCC는 송교창이 드리블러, 이정현이 스크리너 역할을 하는 픽앤롤을 종종 시도했다. 현대모비스도 숀 롱이 드리블러 역할을 하고 이현민, 서명진 같은 가드가 스크리너 역할을 하는 2대2를 얼리 오펜스 패턴으로 활용했다. LG도 시즌 초반에 케디 라렌, 리온 윌리엄스가 핸들러 역할을 하고 가드가 스크리너 역할을 하며 상대 수비를 변칙적으로 흔드는 식으로 인버티드 픽앤롤을 활용했다.
그런데 전자랜드는 좀 특별하다. 다른 팀이 인버티드 픽앤롤을 팀 공격의 일부 옵션으로 쓰는 것과 달리 최근 전자랜드는 아예 메인 옵션으로 쓴다. 빈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정규리그부터 전자랜드는 외국선수 조나단 모트리가 드리블러 역할을 하고 김낙현, 차바위, 전현우 같은 가드 혹은 슈터 자원들을 스크리너로 쓰는 인버티드 픽앤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장신임에도 코스트 투 코스트(coast to coast)가 가능할 정도로 볼 핸들링 능력과 기동성을 겸비한 모트리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전술이었다.
플레이오프 들어 전자랜드는 인버티드 픽앤롤을 더욱 노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오리온 디드릭 로슨의 파워 문제를 모트리가 드리블러 역할을 하는 인버티드 픽앤롤을 통해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파워가 약한 로슨은 인버티드 픽앤롤을 수비하다가 전자랜드 국내 자원들의 스크린에 손쉽게 나가떨어지거나, 스크린을 받아 돌파하는 모트리의 강한 몸싸움에 밀려버리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 오리온은 모트리의 림 어택을 막기 위해 페인트존에 도움 수비를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모트리는 오리온의 도움 수비가 늦으면 손쉽게 골밑에서 득점을 마무리하거나 킥아웃 패스를 통해 국내선수들의 슛 기회를 만들어줬다.
모트리가 드리블러 역할을 하는 인버티드 픽앤롤을 오리온이 제대로 막지 못하면서 전자랜드와 오리온의 6강 시리즈는 승부가 쉽게 기울어버렸다. KCC와 전자랜드의 4강 시리즈에서도 전자랜드의 인버티드 픽앤롤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자랜드의 신형 무기, KCC 상대로도 통할 수 있나
그렇다면 전자랜드의 인버티드 픽앤롤은 4강에서도 재미를 볼 수 있을까? 뻔한 얘기지만 일단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전자랜드와 KCC는 현재의 로스터 구성으로 정규리그에서 제대로 맞붙은 적이 없다. 6라운드 맞대결에서 전자랜드는 김낙현, 이대헌, 정효근, 정영삼이 모두 빠졌고 모트리는 10분도 뛰지 않았다. KCC 역시 이미 정규리그 우승이 확정된 상황에서 백업 자원들을 가동했다. 즉 모트리가 중심이 된 전자랜드가 KCC와 경기를 펼치는 건 사실상 4강 플레이오프 시리즈 1차전이 처음이라는 얘기다.
KCC도 전자랜드의 인버티드 픽앤롤 활용을 모를 리 없다. 비디오 미팅을 통해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그에 대한 수비를 분명히 준비했을 것이다.
추승균 스포티비 해설위원 역시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모트리가 모든 공격을 외곽으로 빠져 나와서 2대2 게임으로 했다. 직접 볼을 잡고 골밑으로 치고 들어가면서 하는 공격이 많았다. 사실 정규리그 때는 모트리를 위해 전자랜드의 작은 선수들이 스크린을 서는 경우가 그 정도로 많지는 않았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이 부분에 대한 KCC의 수비가 시리즈의 관건”이라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KCC는 오리온과는 상황이 다르다. 라건아는 로슨에 비해 파워가 훨씬 좋은 선수다. 심지어 기동성도 뛰어나다. 모트리의 인버티드 픽앤롤에 대한 대처를 잘할 수 있는 선수라는 얘기. 여기에 전자랜드 가드 스크리너를 막을 정창영, 이정현, 김지완 등도 오리온 외곽 자원들에 비해 파워와 압박 능력이 좋다.
다만 KCC가 전자랜드의 인버티드 픽앤롤을 반드시 효과적으로 막아낼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인버티드 픽앤롤이 현대농구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수비 역할이 달라진 가드와 빅맨이 어색함을 느끼고 이로 인해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픽앤롤을 수비할 때 가드는 스크린 대처에 신경쓰고, 빅맨들은 헷지 앤 리커버, 드랍 백과 같은 위치 선정과 동선 저지에 신경쓴다.
그런데 인버티드 픽앤롤은 완전히 반대다. 빅맨 수비수가 스크린 대처에 신경써야 하고, 가드 수비수는 상대 드리블러의 돌파 동선을 막거나 헷지 동작을 해야 한다.
평소에 픽앤롤을 수비할 때와 완전히 다른 동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빅맨 수비수든 가드 수비수든 이런 부분이 무척 낯설 수밖에 없다. 머릿속으로는 달라진 수비 역할을 잘 인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막상 코트에서 이걸 몸으로 실행해야 할 때는 어색할 수밖에 없다.
만약 시리즈 초반 KCC가 인버티드 픽앤롤 수비에서 헤매는 모습이 나올 경우 전자랜드는 이 부분을 노골적으로 공략할 것이다. 반대로 KCC가 충분히 준비된 모습을 보인다면 전자랜드가 모트리 활용법을 바꿀 가능성도 충분하다. 인버티드 픽앤롤 빈도를 낮추고 전통적인 픽앤롤 빈도를 높이거나 모트리의 미드레인지 1대1 공격을 더 활용하는 것이다.
과연 전자랜드의 인버티드 픽앤롤은 4강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전자랜드와 KCC의 1차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 KBL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