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 프로필에는 두 개의 직업이 적혀 있다. 모델 그리고 농구선수. 프로필 사진은 농구 유니폼을 입고 찍은 셀카인데, 피드에는 모델로 찍은 사진이 가득 차 있다. 2017 신입선수 선발회에 나왔던 단국대의 미녀 농구선수 이루리라로 기억하는 팬들에겐 다소 낯선 광경일 수도 있겠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이루리라는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21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모델을 겸업하면서 최근에는 다른 일도 좀 찾아보려고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었어요. 시간 많을 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루리라. 이름이 워낙 특이해 한 번 들으면 쉽게 잊기 어렵다.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 주셨단다. 

“아버지가 기독교예요. 모든 꿈을 다 이루라고 지어주신 이름인데, ‘이루리’와 ‘이루리라’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이루리라로 결정하셨대요. 지금은 이름이 좋은데, 어렸을 땐 싫었어요. 애들이 많이 놀리기도 하고, 한 번 이름을 소개하면 다 잘 못 알아들어서 여러 번 설명해야 하는 것도 있었고… 또 까먹기가 어려운 이름이라 나쁜 짓도 잘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착하게 살았어요.(웃음)”

농구를 시작한 건 강원도 춘천에 있는 봉의초등학교에 다닐 적이었다. 봉의초에서 농구공을 잡았다가 봉의여중, 춘천여고까지 농구를 이어갔다.

“원래 워낙 활동적인 성격이라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뛰어놀다가 체육 선생님이 ‘너 농구 한번 해보자’라고 해서 시작했어요. 11살 여름방학 때부터 시작했는데, 아빠 말로는 그때만 해도 제가 그냥 재미로 공놀이하고 온다는 줄 알았대요. 그런데 어느 새 보니 맨날 시합 나가고 있다고.(웃음)”

그때 이루리라와 함께 농구를 시작한 게 지금 청주 KB스타즈에서 주축으로 활동 중인 포워드 김민정이다. 

“민정이가 제 동기예요. 민정이랑 지금 사천시청에서 뛰고 있는 김민선, 전주 서일초에서 코치로 있는 박수희, 춘천시 체육회에 있는 오지혜 그리고 저까지 이렇게 동기인데, 지금도 연락 엄청 자주 하고 모이고 그래요.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좀 어렵지만.”

 

그렇게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얼떨결에 시작한 농구였지만, 재능은 있었다. 2011년 열린 FIBA 아시아 U16 대회와 2012년 U17 대회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쟁쟁한 선수들이 진짜 많았어요. 지금 프로에서 활약 중인 김시온, 신지현, 이민지, 양인영, 박지은, 안혜지… 박지수도 있었고요! 아직도 엄청 선명한 게 저희가 중국전에서 지고 있었어요. 막판까지 1점 차로 지고 있었는데, 그때 김시온이 7초를 남기고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페이크로 상대를 제치고 드라이브인으로 역전 득점을 넣었어요. 다 뛰어나와 부둥켜안고 울고… 아, 그런데 그때 시간이 남았다고 그만 울고 다시 벤치로 들어가라 해서 들어갔던 것도 기억나요.(웃음)”

이후 야심 차게 단국대학교에 진학해 농구를 이어 갔으나 오히려 대학 시절은 그녀의 농구 기억 속 가장 힘든 시절 중 하나였단다. 

“어우! 힘들었어요. 운동량은 고등학교 때가 훨씬 많았는데, 대학교 땐 학업이랑 운동을 병행해야 하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학점 관리만 해도 빠듯한데 시합 준비도 해야 하고… 체력적으로 오히려 훨씬 힘들 시절이었어요.”

그렇다고 나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대학 캠퍼스만의 낭만도 있었다. 이미 고교 시절부터 ‘얼짱’이나 ‘미녀’ 등의 수식어가 붙으며 학교 안팎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 프로 도전장을 내밀기 전인 대학 시절 역시 인터뷰와 화보 촬영 요청이 쏟아졌다.

“걸크러쉬라고 다들 예쁘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제가 좀 남상이라서 걸크러쉬로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닮은꼴 연예인도 남자 연예인이 많아요. 육성재, 서인국 등.(웃음) 여자 연예인 중에서는 나나랑 트와이스 정연 얘기도 해주시고, 안영미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요. 그리고 때마침 제가 대학 선수로 뛸 때 딱 여자부 대학리그가 생겼거든요. 그러면서 관심을 더 많이 주시기도 했고요. 과에서도 단체로 응원도 오고 재밌었어요.”

“그런데 좋은 건 좋은 거지만 선수로서 뭐랄까, 양날의 감정을 느꼈던 시기예요. 저는 농구로 인정받고 싶은데 그 외적으로 이슈가 되니까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쏭달쏭하더라고요.(웃음) 처음에는 헷갈리다가 ‘그래. 이 관심에 걸맞게 더 실력을 키우자’라는 마음으로 더 채찍질하긴 했지만요.”

 

그렇게 단국대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졸업을 앞둔 시기 즈음해 열린 2017 신입선수 선발회에 당차게 지원서를 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드래프트장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구단은 없었다. 쓰디쓴 고배. 

“끝났을 때는 담담했어요. ‘아! 이제 진짜 농구 끝이네?’ 싶은 생각에 아쉬운 생각이 들긴 하더라고요. ‘나 이제 농구 진짜 못하는겨?’하고 속으로 되묻고. 내가 많이 부족했구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김천시청에서 연락이 왔어요.”

농구를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그에게 실업 팀인 김천시청이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김천시청 유니폼을 입고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나, 그 시간을 길지 않았다.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들어간 지 한 반년? 지났을 때였나. 허리가 갑자기 너무 아프더라고요. 어디 앉지도 못할 정도로요. 바로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별 거 아니겠지’하고 참고 했어요. 그러다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추간판 탈출증이라고 하더라고요. 허리디스크.”

“운동도 그렇고 일상 생활도 너무 괴로웠어요. 할 때마다 아프니까 농구도 재미가 없어지고. 그전까진 잘하든 못하든 농구가 재밌었거든요. 더 잘할 수 있을 거란 희망도 있었고요. 그런데 디스크가 발병한 순간부터 계속 ‘이제 다른 걸 알아봐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훈련을 아무리 해도 통증 때문에 코트에서 훈련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까 많이 속상하더라고요.”

그렇게 이루리라는 김천시청 입단 2년 만에 은퇴를 택했다. 지난 2018년 일이니 얼마 전이다. 재계약을 하는 시기에 감독에게 찾아가 은퇴하겠다고 얘기하니 팀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것처럼 덤덤히 받아들였다고. 농구선수 이루리라의 인생 1막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다른 꿈이 있긴 했어요. 운동만 했더니 워낙 하고 싶은 게 많았어서.(웃음) 승무원도 하고 싶어서 공부해보고 여기저기 관심을 갖다가 주위에서 모델 쪽 일을 많이 얘기해주더라고요. 저도 원래 관심이 있어서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시작한 모델의 길. 그 첫 걸음은 2019년에 열린 ‘미스그린코리아’라는 미인 대회였다. 겁도 없고 준비도 없이 지원서를 냈는데 덜컥 붙었단다. 그렇게 미인 대회를 치렀는데 생각보다 잘 맞는 옷이었다.

“대회를 하면서 메이크업 선생님들이나 헤어 선생님들이 잘한다고, 모델 학원에 가서 제대로 배워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학원에 등록해 워킹도 배우고, 연기도 배우고 시작하게 됐어요.”

“아, 근데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특히 먹는 거 참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웃음) 제가 먹는 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농구선수를 할 땐 힘이 있어야 하니까 주위에서 다들 살 좀 붙으라고 계속 먹이는 분위기였는데, 모델 쪽에서는 계속 살 더 빼야 한다고 안 먹이는 분위기라서. 하하. 참기 어렵더라고요.”

그녀는 어디 먹는 것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한창 청춘인 만큼, 친구들과 모여 술 한잔하는 것도 즐긴다고. 

“아예 못 마시는 건 아닌데 주위에서는 자꾸 ‘알쓰(알코올 쓰레기)’래요. 청하 기준으로 한 병 반? 정도 마시거든요. 그런데 맥주를 잘 못 먹어요. 두 캔 정도? 예전에 양주 먹고 한 번 크게 뻗은 적이 있는데 그 뒤로 친구들이 알쓰라고 하더라고요. 저 술자리도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아해요.”

먹는 걸 참는 건 어려웠지만 그래도 모델 일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모델과 농구는 전혀 다른 분야의 일 같지만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고 한다.

“되게 비슷해요. 농구나 모델이나 뒤에서 연습하고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보이는 거잖아요? 잘하고 나면 짜릿한 성취감도 있고. 그런데 제일 중요한 건 그 잘했을 때 성취가 농구만 못하더라고요. 농구 생각이 좀 났죠.”

 

사실 이때만 농구 생각이 난 건 아니었단다. 선수에서 은퇴하고 나서도 농구는 줄곧 이루리라를 따라다녔다. 돈을 벌기 위한 개인 레슨부터 스스로 즐기기 위한 동호회 농구까지 그녀는 농구공을 놓지 않았다.

“처음 그만둘 땐 아예 관심도 두고 싶지 않았는데, 그 동안 계속해온 게 농구라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니더라고요. 모델 일을 배우면서 성인 남녀나 어린 친구들을 가르치는 일도 같이 하기도 했고, 동호회도 많이 나갔어요. 동호회 나가서 정말 순수하게 재미로 농구를 하니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더라고요. ‘아, 농구가 이렇게 재밌는 운동이구나’ 싶더라고요. 학생 때부터 진작 이렇게 재밌게 즐겼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웃음) 그런데 그마저도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못해요.”

하는 농구는 좋아하지만 보는 농구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동기였던 김민정의 경기가 TV에서 나오면 보는 정도다.

“농구는 잘 안 봐요. 가끔 민정이가 나오면 좀 챙겨보고 뿌듯해 하고. 그런데 얘가 얼마 전에 억대 연봉 선수가 됐는데 글쎄, 친구들한테 밥 한 번을 안 사더라고요?” 

농구는 안 보려고 안 보는 게 아니고 원래 집에서 가만히 TV를 보는 게 어려운 성격이다. 쉬는 날이 생기면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는 타입이라고. 

“엄마가 제발 집에 좀 있으라고 할 정도로 밖에 많이 다녀요. 밖에 나가 친구들 만나서 볼링이나 농구게임 하는 것도 좋아하고 이것저것 그냥 일을 많이 벌이고 다녀요.(웃음) 그런데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어디 다니지도 못해서 집에서 넷플릭스도 많이 보고 책도 보고 있어요. 안 믿기시죠? 옛날에는 자기개발서를 많이 읽다가 요새는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봐요. 은퇴 후 심리 관련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위로가 많이 되더라고요. 원래 심리 쪽에 관심도 있었고.”

 

비록 선수 이루리라는 더 이상 없지만, 영락없는 이십 대 청춘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 그녀. 가드 출신답게 앞으로 미래 계획도 꽤나 짜임새 있다.

“모델은 계속할 거예요. 그런데 모델만 하려고 보니까 ‘무조건 잘 돼야 해’라는 강박관념이 생겨 스스로 힘들어하고 있더라고요. 모델은 안정적인 일을 하나 갖고 겸업으로 해야 더 잘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새로운 일을 또 준비하고 있어요. 요새는 연기도 해요. 독립 영화랑 웹드라마 같은 데도 몇 번 나오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한예종과 촬영한 독립 영화도 유튜브에 올라갔어요.”

“그런데 모델이든 연기든 일단 2021년에 가장 바라는 건 건강이에요. 아직도 허리가 디스크 때문에 좀 아파요. 도수 치료랑 재활을 아직도 하고 있어서,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서 주위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 같은 은퇴 선수들에게도 은퇴 선배로서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움을 주고 싶기도 하고요. 다들 2021년에는 제가 바라는 것처럼 건강하고, 또 행복하고, 또 돈도 많이 버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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