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정진경 칼럼니스트] ‘여자농구특별시’라 불리는 청주에서 홈팀 KB스타즈가 기사회생했다. KB는 3차전에 이어 13일 열린 4차전에서도 삼성생명을 물리쳤다. 연장 접전 끝에 85-82로 이기고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렸다. 5차전에서 챔피언이 결정되는 일이 14년 만에 일어나게 됐다.

두 팀 모두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치른 경기다. 몸싸움이 존재하는 스포츠에서 어쩌면 가장 치명적인 요소일 수 있는 체력 고갈의 문제를 정신력으로 이겨낸 두 팀 선수들은 3차전보다 더 좋은 움직임을 보였다.

삼성생명은 최다 11점차 까지 리드를 허용했고, 김한별이 U파울을 범하면서 자칫 분위기를 완전히 넘겨줄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적극적인 수비로 KB의 턴오버를 유발시켰고, 점수 차를 좁혀가면서 끈질기게 따라 붙었다. 패색이 짙었던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연장까지 승부를 이어갔다. 시리즈를 4차전에서 끝내겠다는 강한 집념을 보여줬다.

KB 또한 계속 발목을 잡던 실책으로 다 잡은 승리를 놓칠 뻔 했지만, 연장전 집중력 싸움에서는 간발의 차로 상대보다 앞섰다.

이번 챔프전은 특별하다.

외국인 선수가 없는 시즌, 4강으로 바뀐 플레이오프 제도 등 여러 변화가 있었던 것도 이야기의 소재가 되지만, 무엇보다 KB와 삼성생명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스토리가 두고두고 회자되고, 이것이 WKBL 역사에 남을 만한 것들이기에 더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0% 의 확률
정규리그 4위 팀의 챔프전 진출과 업셋 우승의 확률, 챔프전에서 2연패를 당한 팀의 리버스 스윕 우승의 확률, 어느 팀이 우승을 하든 WKBL 최초이고 역사의 남을 기록이다.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예측을 뒤엎은 삼성의 돌풍은 여자농구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여줬다. 그리고 매 경기 선수들이 보여주는 경기력은 감동적이다.

수년간 시행착오를 겪은 삼성생명의 ‘팀 문화’가 이번 플레이오프와 챔프전을 치르며 제대로 자리 잡은 것도 고무적인 부분이고, 이는 삼성생명 뿐 아니라 여자농구 전체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대가 높았던 만큼 비판과 질타도 많이 받았던 KB가 좋지 않았던 과정들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내상이 큰 패배를 포함해 먼저 두 경기를 내줬지만, 심성영의 결자해지 속에 추락한 분위기를 극복하며 3차전을 이겼고, 4차전에서는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위력의 농구를 보여줬다.

KB가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2연패를 당하며 시리즈를 0-3으로 내 줄 수 있던 상황에서 동률을 만들며, 우승 확률을 똑같이 만들었다는 부분도 박수 받아 마땅하다.

김보미와 심성영의 눈물
봄에 찾아 온 김보미는 4차전에도 정말 초인적인 힘을 보여줬다. 공이 아웃된 상황이면 코트에서 휘청거리며 몸도 못 가누는 모습으로 양 무릎을 잡고 있지만, 휘슬이 울리면 어김없이 가장 많은 활동량을 가져간다.

선수 생활을 하며 여러 팀을 옮겨 다녔고, 가장 많은 선수들과 함께 해 봤을 것이고, 가장 많은 코칭스태프를 만나봤을 김보미다.

김보미를 보면 어디서나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스스로 이번을 마지막 시즌이라고 밝힌 그는 이제 우승 또는 준우승이라는 유종의 미로 선수 생활을 마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김보미의 기록을 놓고 경기마다 기복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보미의 활약은 단순히 기록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플레이오프부터 챔프전 4차전까지 삼성생명이 치른 7경기는 김보미가 쏟아낸 운동량과 투혼에 의해 팀의 전체적인 전투력이 최대치로 끌어올려 졌다.

어떤 결과가 나오던 ‘마음 속의 MVP는 김보미’라는 마음을 갖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여전히 이 시리즈에서도 KB는 박지수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박지수는 득점, 리바운드, 공격과 수비, 어디에나 존재한다. 196cm의 장신 센터가 쉬지 않고 코트에서 버티고 있다. 두 번의 연장전이 펼쳐지며, 박지수는 4경기에서 평균 40분 47초를 뛰었다. 삼성생명 김한별에 이어 가장 많은 시간이다.

절대적인 박지수의 높이를 막기 위해 삼성생명은 다양한 수비를 펼치고 있고, 여기에 맞서며 박지수는 치열한 몸싸움의 타겟이 되고, 코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뇌진탕 증세를 보이기도 했고, 이후 목에도 테이핑을 하고 뛴다. 힘든 상황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간절한 박지수의 눈물보다 KB를 깨운 것은 심성영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심성영은 2차전의 아픔을 3차전에서 눈부신 활약으로 만회했고, 눈물의 인터뷰를 했다. 4차전 역시 좋은 경기를 보여줬다.

3점슛이 거의 없다던 약점을 해를 거듭하면서 보완했고, 이제는 3점슛 라인에서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도 위력적인 슛을 던지는 선수가 됐다. 신장의 단점을 딛고, ‘리그 최강 센터’ 박지수를 만나서 더 많은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땅콩’이라는 별명이 농구 선수로서는 마음 아플 때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즌을 거듭하면서 과감한 플레이의 빈도도 늘었고, 신장은 작지만 심장은 강한 선수로 성장하고 있다.

최고 포워드와 최고 센터의 승부욕
삼성생명의 김한별과 KB의 박지수는 소속팀은 물론, 대표팀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선수들이고, 또 리그에서 승부욕이 가장 강한 선수들이기도 하다.

김한별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승부욕과 자기 주관이 강한 만큼, 때에 따라 지나치게 흥분하는 약점이 있던 김한별은 이번 시리즈에서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제어하며,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

리그 최고참 선수 중 한 명인 김한별의 몸 상태는 온전치 못하다. 발목과 무릎에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있으며, 이번 챔프전에서는 햄스트링도 올라왔다. 완벽하지 않은 몸 상태와 체력적인 과부하를 김한별은 정말 강한 집중력과 정신력으로 이겨내고 있다.

4차전에서도 리그에서 가장 막기 힘든 선수인 박지수를 수비했던 김한별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 파울 트러블에 걸렸다. 김한별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4번째 파울 콜이었다. 심판 판정에 흥분하는 모습도 오랜만에 보였다.

하지만 바로 자신을 추스르며 경기에 임했고, 연장까지 45분 풀타임을 버텼다.

이전보다 득점이 적었고, 승부처에서 슛이 림을 외면했지만, 김한별이 그렇게 버텨주지 않았다면 훨씬 전에 넘어갔을 경기였다.

박지수 역시 엄청난 승부욕을 자랑하는 선수다. 타고난 신체조건의 강점 외에도 그러한 승부욕이 박지수를 더 강하게 만들고 있다.

공격에서는 더블 팀, 트리플 팀을 이겨내야 하고, 수비에서는 상대의 공략으로 내 외곽을 모두 움직여야 한다. 심지어 동료들이 놓치는 상황까지 부지런하게 핼프를 간다.

KB가 패했던 지난 2차전. 박지수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득점이나 리바운드의 문제가 아니다.

거의 2미터에 육박하는 박지수가 상대를 수비하기 위해 내외곽으로 혼자 3바퀴의 로테이션을 도는 모습, 루즈볼을 잡기 위해 땅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선수가 몸을 던지고 싸우는 모습. 김한별의 위닝샷이 들어가던 순간, 박지수는 넘어졌음에도 김한별을 향해 닿지 않을 손을 뻗었다. 볼 하나에 대한 절실함과 절대로 지고 싶지 않다는 승부욕을 정말 간절하게 보여준 장면이다.

운동 선수에게 승부욕과 투지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그것을 경기력으로 만들어 코트에 쏟아내고, 체력이 무너진 순간까지 발휘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운동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렇기에 박지수에 대한 평가는 더 높아 질 수 밖에 없다.

배혜윤, 강아정 주장의 리더십
동기인 삼성생명과 KB의 주장은 이번 시즌, 부상에 시달리며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지 못했었다. 배혜윤은 허리, 강아정은 발목에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있다.

우선 배혜윤은 김한별과 같이 정규리그에서부터 제대로 된 컨디션을 보여주지 못했고, 플레이오프 초반에도 스스로 안배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전반보다 후반에 더 집중력을 보여주며, 중요한 승부에서 제 역할을 보여줬다.

자신보다 선배인 김한별을 포함해, 선수들이 흥분했을 때 이를 진정시키는 역할은 주장인 배혜윤의 몫이다. 볼 데드 상황에서 어린 선수들을 다독이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며 경기를 풀어가고 있다.

여전히 약간의 기복이 있지만, 주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

강아정 역시 건강하지 못한 시즌을 보냈고, 정규리그에서 결장한 경기가 많았다. 경기 중에도 슈터로서 많은 기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클러치 타임에는 반드시 존재감을 보이는 선수다. 그 플레이 하나로 경기를 이길 때도 있었고, 분위기를 가져올 때도 있었다.

챔프전 첫 승을 가져온 3차전부터는 강아정의 활발한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4차전에서는 득점 후 화를 내는 모습도, 벤치에서 선수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그의 적극성과 집중력이 살아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강아정의 모습은 5차전 KB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모두가 주인공 혹은 씬스틸러
삼성생명의 윤예빈은 이번 플레이오프와 챔프전에서 성장이 두드러진 선수다.

‘장신 가드 유망주’였던 윤예빈은 이제 ‘포스트 이미선’을 애타게 찾던 삼성생명의 숙원을 풀어줄 선수, 나아가 에이스 역할을 해줄 선수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신장과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가드라는 포지션에 갇히지 않고, ‘명품 포워드’역할까지 기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플레이오프와 챔프전에서는 이전과는 다르게 간혹 판정에 불만을 표현하는 모습도 나온다. 지양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윤예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 정도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자신감도 넘치고, 더 집중하는 모습도 긍정적이다. 앞으로 윤예빈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은 더 많을 것이다.

삼성생명의 이적생 김단비와 신인 이명관도 돋보였다. 이들이 보여 준 간절한 투지와 집중력이 챔프전에서 두 번의 연장 승부를 이끌었다. 신이슬이 보여 준 집중력도 삼성의 우승 목표에 꼭 필요한 것이다.

삼성생명은 유망주가 많은 팀이었지만, 그 유망주가 가능성을 기대 효과까지 폭발시킨 예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번 정규리그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친 선수들이 이번 시리즈에서 거침없이 자기 역할을 해주고 있는 부분은 삼성생명에게는 정말 고무적인 부분이라고 본다.

KB의 경우 항상 김민정이 안타까웠다.

KB가 그 강한 전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김민정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지난 시즌까지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던 김민정은 이번 시즌에는 발전 그래프에 정체가 온 느낌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신감 없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하지만 챔프전 4차전에서는 자신이 보여줘야 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나타났다.

조금 더 팀 전력의 중심으로 올라서야 하는 선수다. 드래프트 2라운드 출신이고, 오랫동안 퓨처스 멤버에 있었지만, 그런 과거가 현재의 김민정이 오를 수 있는 계단의 한계를 정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올라섰으면 좋겠다. 심지어 인터뷰도 더 자신 있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년 전 ‘KB 우승의 마지막 퍼즐’이었던 염윤아는 챔프전 3차전부터 살아나는 모습이다. 염윤아가 자신의 역할을 해준다면 여전히 그는 KB가 가는 목표의 중요한 조각이다. 빈 공간의 움직임이나 상대 외곽 에이스에 대한 수비 역할은 KB에서 염윤아가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이다.

현재 KB는 짧은 시간을 뛸 지라도 겁 없는 센스를 보여주는 허예은의 역할이 가드 포지션에서 꼭 필요하고, 더욱 체력 부담이 커질 5차전에서는 김소담의 스트레치 포워드로서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에필로그
이제 마지막 1경기가 남았다. 그 40분의 승부가 길었던 한 시즌의 최강자를 결정한다.

야속하게 짧은 시간이지만, 이미 한계를 넘어선 시간을 싸우고 있는 선수들에게는 길고도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예측을 뒤엎고 연일 놀라운 경기를 하며 찬란한 봄 농구를 보여주는 삼성생명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승부를 5차전까지 가져 온 KB도 모두 우승의 자격이 있다.

두 팀의 승부는 아직 한 경기가 남았지만, 플레이오프부터 계속 이어온 이번 시즌 칼럼은 여기서 먼저 마치고자 한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어떤 승부를 펼치든, 이제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 다 떨어진 것 같다. 

마지막 한 경기, 이제는 농구 팬으로서 이 두 팀을, 그리고 선수들을, 격렬하게 응원하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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