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정진경 칼럼니스트] 삼성생명이 챔피언에 한 발 더 다가갔다. 1승만 더 올리면 WKBL 사상 처음으로 4위팀이 우승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삼성생명은 9일,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차전에서 독하게 마음을 다잡고 준비해 온 KB의 공세에 밀려 14점차까지 끌려갔지만, 연장 접전까지 펼친 끝에 84-83으로 이겼다.

두 팀 선수들은 말 그대로 체력과 정신력을 쥐어 짜내며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삼성생명은 플레이오프부터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도 삼성생명은 연장 명승부를 승리로 장식했다.

주전 멤버 3명이 5반칙으로 나가 있었고, 오랜만에 터진 KB의 외곽 화력, 그리고 그로 인해 후반에는 수비를 벌릴 수밖에 없어 박지수를 대처하기 더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선수 구성으로도,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열약한 환경에 놓인 상황에서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내가 갖고 있던 편견과 고집이 얼마나 위험한 것 인지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선수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기회가 됐다.

승리 키워드 +α
‘팀워크’

김보미, 김한별, 배혜윤이 코트 안에서 솔선수범하며 이끌고, 윤예빈, 김단비가 흔들릴 수 있는 중심을 잘 잡아준다.

2차전에서는 주축 선수들의 파울 트러블과 퇴장으로 어린 선수들이 대거 투입됐다. 챔피언 결정전에 처음 출전하는 김나연, 김한비, 마지막에 들어왔던 이명관까지,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던 중요한 타이밍이라 불안 했을 텐데, 짧은 시간이지만 잘 버텨냈다.

그리고 챔프전에서 조커로 등장한 신이슬은 포스트시즌 승리의 중요한 역할을 차분하게 해내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경기를 뛰지 못하는 벤치의 분위기도 코트의 선수들과 함께 집중하고, 함께 뛰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김보미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김보미가 코트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온도차가 확실하게 느껴진다.

플레이오프부터 엄청난 운동량을 보여주고 있는 김보미는 1쿼터부터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경기를 보는 내내 정말 숨이 넘어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잠시 쉬었다가 들어와서는 거침없는 움직임으로 공격권 하나를 더 가져오고, 팀이 득점을 올리게 도와줬다. 그런 김보미의 에너지에는 정말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었다.

‘수비’

삼성의 맨투맨 스위치 디펜스는 빈틈이 없다. 포스트 디깅(digging), 헬프, 트랩, 외곽 로테이션, 리바운드까지 모든 선수들이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공격의 핵’이기도 한 김한별의 역할은 수비에서도 절대적이다.

박지수를 1대1로 막는 것도 현재 WKBL 선수 중 가장 완벽하게 해 내고 있는데, 이날 경기에서는 4쿼터에 이미 햄스트링 부상으로 드리블을 시도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모습이었지만, 결국 클러치 샷을 성공했다.

뒷걸음 치며 버텨야 하는 수비에서는 박지수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투지를 보여줬고,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파울 관리도 잘 했다.

윤예빈도 수비에서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윤예빈의 스틸은 정말 딱 필요한 타이밍에 나오고, 바로 속공으로 연결시키는 가속력과 폭발력을 보여준다.

‘얼리 오펜스’

삼성생명의 얼리 오펜스를 KB는 알면서도 계속 당하고 있다. 특히 수비자 머리 뒤, 등 뒤를 노리는 절묘한 타이밍의 엔트리 패스는 일품이다.

삼성생명은 스틸에 성공 했을 때, 리바운드를 잡았을 때, 심지어 상대가 득점을 올렸을 때도 얼리 오펜스를 시도 하는데, 특히 수비 몰래 달리는 것처럼 이를 받아먹는 윤예빈은 수비, 공격, 속공 모두 가능한 본인의 능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존중’

마지막으로는 존중을 말하고 싶다.

삼성생명이 보여주는 포스트 시즌의 모습은 ‘이변’이나 ‘기적’이 아닌, 서로에 대한 존중, 농구에 대한 존중, 자신에 대한 존중, 그리고 농구를 보고 있는 모두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 것이라 감히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관중 없이 치러진 시즌이 더욱 아쉽고, 챔프전도 관중이 단 10%밖에 입장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경기장을 찾아준 팬들에게 응원을 받는다는 것이 정말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 질 것 이다.

KB의 3차전
KB는 1차전 보다 훨씬 좋은 모습으로 2차전의 스타트를 끊었다.

선수들이 코트와 벤치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고, 서로 격려해 주며 경기를 시작했다.

초반, 외곽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오랜만에 3점 슛이 터졌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KB는 박지수의 전반 득점이 적었지만, 외곽 득점 분산으로 상대 수비를 더 벌리게 만들고, 상대의 인사이드 트랩과 핼프 수비를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는 후반, 박지수가 공간을 활용하며 공격을 가져가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신장의 열세인 삼성생명 입장에서는 박지수에게 바스켓카운트를 주는 것 보다는 차라리 2점을 주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줄 점수는 주는 농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부진했던 리바운드 문제도 2차전에서는 훨씬 나은 모습을 보였고, 삼성생명보다 14개나 많은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하지만 아쉽게도 턴오버와 수비 미스에 발목을 잡혔다.

신장이 작은 앞선 가드들은 상대적으로 키가 큰 수비에 밀리면 시야가 가려지면서 패스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이날 KB는 삼성생명의 강한 압박과 가드진의 높이에 의한 고전으로 분위기를 내주고 말았다.

패스를 주지 못하는 가드의 탓을 하기 보다는 볼을 받아 주는 다른 선수들이 타이밍에 맞게 가드의 시야에 들어와야 하고, 상대 수비를 갈라지게 해서 볼을 받기 편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이날 KB는 22개나 범한 턴오버와 함께, 볼다툼 상황에서 자기 손에 들어온 공을 쉽게 놓치는 모습, 그리고 앞선의 높이에서 밀리는 상황이 14점을 지키지 못한 이유가 됐다.

KB로서는 득점 후, 바로 쉬운 득점을 허용한다는 점도 개선해야 한다. 상대 얼리 오펜스에 대한 대처가 부족했다.

공수 전환 과정에서 상대 공격자에 대한 픽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로 안일하게 백코트를 한다는 이야기다. 볼 핸들러와 달리는 공격자에 대한 픽업이 선행되어야 될 것 같다.

항상 이야기 하지만 KB에 대한 기대치는 야속하리만큼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2차전은 1차전보다 훨씬 나았고, 외부의 야박한 평가에 선수들도 각성한 모습은 긍정적이었지만, 결국 연장 역전패를 당하면서 삼성생명과 같이 체력 소모도 심해졌고, 정신적인 부담은 더 커 질 수밖에 없다.

KB로서는 마지막 공격에서 경기 종료 6초를 남기고 불린 심성영의 트래블링이 오심이었다는 점이 너무 개탄스러울 것이다. 결과가 바뀔 수 없는 이 오심은 어쩌면, 이번 시리즈의 향방을 결정짓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힘들겠지만 이런 생각도 빨리 잊어야 한다.

3차전이 열리는 청주는 홈 팬들의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이다. 30%의 관중이 입장한다. 체육관을 가득 채우는 이전만큼의 열기는 아니겠지만, 오랜만에 듣는 팬들의 응원에 조금 더 힘을 내, 3차전도 명승부를 보여 줬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다.

두 팀 모두 새로운 것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는 없다. 컨디션 관리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지금까지 해온 것을 바탕으로 3차전에 나설 것이다. 힘든 일정에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부상 없이 시리즈를 마치기를 바란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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