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정진경 칼럼니스트] 포스트시즌 삼성생명의 승리에는 더 이상 ‘언더독의 반란’이나 ‘이변’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을 것 같다. 말 그대로 ‘준비’와 ‘실력’의 승리라고 해야겠다.

‘준비’라는 단어 안에는 정신력, 체력, 집념, 희생 등 좋은 태도의 모든 것들이 들어가 있다. 플레이오프 이후 삼성생명은 이런 것들이 쌓여, 실력으로 자리 잡아, 경기력으로 표출 되는 모습이다.

벤치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삼성생명은 선수들이 코트 안에서 보여주는 태도로 그 이상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삼성생명은 플레이오프에서 정규리그 1위팀 우리은행을 상대로 멋진 경기를 펼쳤고, 승리했다. 하지만 그 성과와는 별개로 챔프전은 또 다시 KB의 일방적인 승리를 예상했다.

KB는 한국 여자농구 ‘최강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박지수를 보유하고 있다. 하루 먼저 플레이오프를 마치며 시간적인 유리함을 가졌고, 2경기 만에 플레이오프를 끝내 체력적인 부담도 적었다. 포지션별 밸런스도 6개 구단 중 가장 좋은 팀이다.

무엇보다 불과 2년 전, 통합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으며, 지난 몇 시즌 동안 꾸준히 플레이오프와 챔프전을 경험한 저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박지수의 인사이드와 외곽 선수들의 조화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그 어느 팀도 KB를 이기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KB스타즈의 행복농구?
올 시즌 KB의 농구는 행복농구와 거리가 멀다.

외국인 선수가 없어지자, ‘박지수 의존도’는 심해졌다. ‘절대 1강’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에 어울리는 경기력을 보여준 경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은 박지수 하나만을 바라보는 농구를 했다.

박지수가 잡고, 박지수가 넣고, 박지수가 수비 하고, 박지수가 찬스를 만들어 주고, 경기가 뜻대로 안 되면 박지수만 분하다.

박지수를 편애하는 것도, 다른 선수들을 폄하 하는 것도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KB 선수들은 지금 그런 농구를 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챔프전 1차전에서도 이기고자 하는 어떠한 의지도 보여주지 못했다.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그만큼 수동적인 모습만 보였다는 것이다.

공격 흐름이 답답하다.

인사이드에서 나오는 볼을 잡아 어떻게든 던질 준비를 능동적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잘 빼준 공을 머뭇거리며 타이밍을 죽이고 다시 수비가 몰려 있는 인사이드로 치고 들어간다. 그러다가 마무리를 못하면 다시 박지수에게 볼을 돌린다.

가장 확실한 득점원에게 효과적인 패스를 하는 게 아니라 폭탄 처리를 시킨다.

상대가 박지수를 막기 위해, 포스트에 트랩 수비를 들어가 있다면 어딘가 빈 공간은 있다는 것인데, 제 타이밍에 뛰어 들어오거나, 외곽 빈 공간으로 움직여 주는 선수가 없다.

수비는 엉성하다.

누군가 헬프 수비를 했다면, 리커버는 기본이 되어야 한다. 아주 열심히 공격자에게 달려 나가 바로 뚫려 버린다면, 열심히 하는 척만 하는 것이지, 책임감을 갖고 공격자를 막았다고 할 수 없다.

KB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스위치를 하거나, 뚫리게 되면 누군가 뒤에서 도와준다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 ‘박지수가 막아주겠지’라는 생각이 플레이에 완전히 박혀 있다.

“내가 이 선수를 반드시 막겠다”는 아주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수비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는 수비로 너무 쉽게 뚫려 버리니, 이 모든 것을 뒤에서 커버해야 하는 박지수의 체력 소진은 더 심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상대는 박지수를 지치게 하려고 수많은 방법을 고민한다. KB 선수들은 이런 상황에 박지수의 체력 부담을 더 가중시키고 있다. 뚫릴 때마다 후방의 박지수를 찾지 말고, 상대를 막겠다는 의지, 수비수로서의 책임감을 먼저 찾아야 한다.

오늘 보여 준 KB선수들의 모습은 올 시즌 중 가장 실망스럽고 화가 나는 경기력이었다.

올 시즌 박지수의 연봉은 3억 원. 팀 전체 샐러리캡의 21.4%에 해당한다. 나머지 78.6%는 다른 선수들의 몫이다. 과연 챔프전 1차전에서 박지수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78.6%의 몫을 했을까? 21.4 대 78.6의 비율이 정반대였다고 해도, 할 말 없을 모습이었다.

경기 결과는 5점차 삼성생명의 승리였다.

일방적인 완패를 당했어도 할 말 없을 경기가 5점 밖에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KB가 얼마나 강한 전력을 갖췄는지를 증명한다. 그만큼 KB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KB는 이런 결과와 차이에 만족하면 안 되는 팀이다.

1차전은 심판 판정도 삼성생명보다 KB에 유리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윤예빈이 4쿼터 중요한 승부처에 5반칙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삼성생명에게 그다지 큰 위기가 되지 않았다. KB가 너무 무뎠다.

KB는 김단비와 배혜윤이 훨씬 이른 시간에 파울 트러블에 걸렸지만, 이들을 코트 밖으로 쫓아내는 공략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파울을 뺏어내는 박지수를 데리고, 그런 공략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을 페어플레이라고 말해야 할까?

제공권 장악에도 실패했다. 4쿼터에는 단 2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삼성생명이 박지수의 리바운드를 적극적으로 막아선 이유도 있겠지만, 박지수가 아니면 리바운드를 잡는 방법을 아예 모르는 것 같은 선수들의 허술함은 챔피언을 노리는 팀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았다.

완패했어야 하는 내용이었다.

이날, KB는 15개의 턴오버를 기록했고, 이중 절반에 가까운 7개를 박지수가 범했다.

박지수에게 이 부분을 뭐라 할 수 있을까? 센터인 그가 가장 많이 볼을 잡고 있었고, 가장 많은 시간동안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농구는 개인 종목이 아니다. 박지수의 정규리그 7관왕은 함께 코트에 있었던 다른 4명의 선수, 그리고 벤치에 있는 선수 전원, 코칭스태프 등의 노력이 모두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 KB는 그냥 박지수와 아이들이었다.

삼성생명의 무서운 집중력
삼성생명은 철저한 1대1 수비를 기본 바탕으로 승리를 챙겼다.

박지수에게는 드리블이 멈춰지는 타이밍, 혹은 멈춘 후 피봇을 도는 타이밍에만 적절하게 트랩을 걸었다. 이를 통해, 트랩과 로테이션으로 소모되는 활동량과 체력을 비축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선수 개개인이 1대1 수비를 책임감 있게 잘 해 줬고, 리바운드에서 밀리지 않았다. 빼앗은 공은 속공 점수로 잘 마무리 해 주기도 했다.

'당연히 가져가야 하는 것들'을 충실하게 가져간 삼성생명은 같은 것들을 전혀 하지 않은 KB와 확실한 차이를 보였다.

김한별의 활약도 눈부셨다. 초반부터 터진 김한별의 3점슛은 기선을 제압했고, 그의 승부욕과 집중력으로 삼성생명 선수들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KB를 상대하는 팀들은 3점슛 확률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안쪽의 2점슛 싸움에서는 KB를 이기기가 힘들다. 김한별을 시작으로 외곽 싸움에서 우위를 잡으며, 삼성생명은 자신감 있게 공격을 풀어갈 수 있었다.

기회를 잡았을 때 확실하게 속공을 마무리한 것도 KB와는 다른 점이었다.

아웃 넘버 상황에서의 전진 패스, 완벽한 노마크의 우리편에게 볼 조차 투입하지 못한 KB와 적극적으로 속공 기회를 득점으로 가져간 삼성생명의 차이는 어느 팀에게 승리의 자격이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삼성생명 선수들의 집중력이 포스트 시즌 들어와서 경기를 할수록 더 높아지고 있는 부분은 보고 있으면서도 무서운 부분이다.

‘잘’ 해야 하는 KB
열심히는 누구나 한다. 프로 농구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비시즌부터 정규리그, 포스트 시즌에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들은 없다. 선수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열심히 하는 이유는 잘 하기 위해서다. 잘 하지 못하면서 수년째 발전 없이 열심히만 하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도 없다.

코트 위에서 KB 선수들은 ‘열심히’가 아니라 ‘잘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더 중요한 부분은 본인들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한다.

관계자들과 팬들이 자신들을 ‘절대 1강’으로 뽑은 이유는 객관적으로 그런 전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리그 챔피언을 다투는 자리에서 찬스조차도 피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자기 불신은 스스로한테 어울리지 않는다.

삼성생명은 이제 2승, KB는 3승을 남겨두고 있다. 이번 시즌 자신들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경기들이다. 이 경기들 이후 수없이 많은 시간을 후회로 대신하지 않도록, 다시 한 번 자신들의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경기들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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