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그래, 어게인 2019!” “아니, 그건 플레이오프까지만!”

2020-21시즌, WKBL에 통합 우승은 없다. 정규리그 우승팀 우리은행이 4위 삼성생명에게 덜미를 잡혔다. 삼성생명은 신한은행을 2경기 만에 이기고 챔피언 결정전에 선착한 정규리그 2위 KB스타즈와 WKBL 왕좌를 놓고 자웅을 겨룬다.

삼성생명은 WKBL의 ‘왕조 종결자’다.

2012-13시즌, 통합 6연패를 달성하고 그 이상을 꿈꾸던 신한은행을 플레이오프에서 좌절시킨 주인공이다. 그리고 6년 뒤, 신한은행이 이룩한 왕조의 역사를 넘어서려던 우리은행도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생명에게 무릎을 꿇었다.

‘왕조 종결자’ 삼성생명은 그리고, ‘퀸 메이커’였다.

통합 6연패를 달리던 팀들을 두 번이나 플레이오프에서 밀어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새로운 지배자의 탄생을 지켜봐야만 했다.

‘어게인 2019.’

삼성생명은 지난 2월 27일, KB국민은행 Liiv M 2020-2021 여자프로농구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우리은행에게 아쉽게 패한 뒤, 2019년의 재현을 꿈꿨다. 그때도 삼성생명은 1차전을 내주고, 2-3차전을 잡아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어게인 2019’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단어를 지워야 한다.

2019년 3월. 삼성생명은 우리은행을 쓰러뜨린 후, KB에게 시리즈 전적 0-3으로 패했다. 안방에서 새로운 챔피언의 등장을 지켜봐야 했다. 이제 ‘어게인 2019’를 외치는 쪽은 KB다.

삼성생명이 달갑지 않은 ‘퀸 메이커’의 명패를 걷어차고 왕좌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 그것은 박지수의 제공권을 최소화시키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이번 시즌 리바운드를 가장 많이 잡은 팀이다.

팀 리바운드 포함, 삼성생명은 경기당 42.63개로 우리은행과 리바운드 부문 공동 1위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삼성생명은 제공권이 강한 팀일까?

삼성생명의 리바운드 숫자에는 허수가 있다. 리바운드 마진을 보면 드러나는 부분이다. 상대적 약팀과의 대결에서는 리바운드를 압도했지만, 강팀을 상대로는 그렇지 못했다.

삼성생명은 리그 최하위이자 리바운드에 약점이 있는 BNK와의 맞대결에서 평균 9.5개의 리바운드를 더 잡았다. 하나원큐(+6.2), 신한은행(+4.2)을 상대로도 확실한 리바운드 마진의 우위를 보였다. 

그러나 우리은행에게는 오히려 -1.2였고, KB에게는 -2.3이었다. 정규리그에서 우리은행, KB를 상대로 2승 10패를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명 제공권 장악이 상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전체 1위를 기록한 삼성생명의 리바운드는 엄밀히 리그 3위 수준인 것이다. 강팀에게는 열세를 보이고, 약팀에게는 약탈 수준의 리바운드 마진을 기록했다.

챔프전에서 만나는 KB도 리바운드에 고민이 있는 팀이다.

평균 리바운드는 40개가 넘는 상위권, 그리고 삼성생명과 맞대결에서 리바운드 마진의 우위를 보였지만, 리바운드가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KB는 상대보다 높이가 높다는 절대적인 장점이 있음에도, 리바운드 적극성은 리그에서 가장 떨어지는 팀 중 하나다.

팀 리바운드의 40% 이상을 박지수가 혼자 잡고 있다.

박지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리바운드를 잡을 필요가 없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지수가 인사이드에 없을 때도, KB는 다른 선수들의 리바운드 가담이 거의 없다. 

평균 리바운드 4개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KB는 박지수 포함 3명이다. 리그에서 제일 적다. 우리은행과 삼성생명은 5명의 선수가 평균 4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기록했고, 다른 3팀도 4명의 선수가 평균 4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기본적으로 KB는 박지수 제외한 다른 선수들의 박스 아웃 능력이 떨어지고, 리바운드 적극성이 약하다. 그래서인지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리바운드 부문에 있어서 박지수 의존도는 점점 커지고 있다.

1~3라운드 15경기에서 박지수는 팀 리바운드의 39.4%를 차지했지만, 4~6라운드에는그 비중이 43.4%로 늘어났다. 6라운드 5경기에서는 팀이 잡은 166개의 리바운드 중 박지수가 86개를 잡았다. 절반이 넘는(51.8%) 수치다.

신한은행과의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는 팀이 잡은 80개의 리바운드 중 51개(63.8%)가 박지수의 몫이었다.

팀 KB의 리바운드는 무섭지 않다. 문제는 그 리바운드에서 절대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박지수인 것이다.

삼성생명은 정규리그에서 박지수의 리바운드를 가장 잘 통제한 팀이었다.

KB와의 리바운드 마진에서는 뒤졌지만, 박지수에게 허용한 리바운드는 6경기 평균 13.7개. 박지수가 평균 15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아내지 못한 유일한 팀이 삼성생명이었다.

삼성생명은 정규리그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박지수의 리바운드를 방해해야 한다. KB는 박지수가 적게 잡는 만큼, 다른 동료들의 리바운드 가담이 늘어나는 팀은 아니다.

쉽지 않은 전쟁이 될 것이다.

삼성생명은 플레이오프에 오르면 정규리그 때보다 높은 집중력을 자랑하는 김한별에게 많은 기대를 건다. 실제로 김한별은 정규리그보다 플레이오프에서 훨씬 더 높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스틸을 제외한 전 부문에서 플레이오프 성적이 정규리그보다 우위다.

하지만 KB의 박지수도 마찬가지다.

이번 신한은행과의 플레이오프에서도 두 경기 연속 20-20을 기록하며 이를 증명했다. 심지어 슛 밸런스가 좋지 않아 힘들었다고 하면서 세운 플레이오프 최초의 연속 경기 20-20이다.

박지수만 아니었으면 이번 시즌 개인 기록 3관왕(득점, 블록슛, 공헌도)에 올랐을 신한은행의 김단비가 박지수를 철저하게 박스 아웃 하고, 자신의 높은 탄력을 이용해 리바운드에 나섰지만, 박지수는 뒤에서도 공을 걷어갔다.

정상일 신한은행 감독은 “(김)단비도 높은 집중력으로 인사이드에서 맞섰는데, 박지수는 정규리그 때 보다 점프가 한 뼘은 더 높더라”며 “단기전의 박지수가 정규리그 때의 박지수보다 5배는 더 무섭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지수는 큰 경기에 강하다. 기록 이상의 지배력을 보여준다. 신체 조건은 물론 영리한 농구를 할 줄 아는 선수다.

신한은행은 박지수의 출전 시간을 늘리며 체력을 소진시키려 했지만, 코트 위에서 스스로 안배하는 모습까지 보였고, 결국 골리앗의 무릎을 꺾으려던 신한은행 선수들이 먼저 지쳐버렸다.

박지수는 신인 시절에도 “큰 경기, 관중이 많은 경기가 훨씬 신난다. 어차피 똑같은 농구라 부담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챔프전에는 제한적이지만 관중 입장도 허용된다. 박지수의 아드레날린 수치는 최고조일 것이다.

우리은행과의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생명은 효과적인 리바운드 싸움을 펼쳤다. 1차전(33-34)과 3차전(39-42)은 리바운드 수가 비슷했고, 2차전(37-27)에서는 무려 10개를 앞섰다.

삼성생명은 위성우 감독 부임 이후 체력 싸움에서 져본 적 없던 우리은행에게 체력에서 앞섰다. 많은 가용 인원을 바탕으로 한 발 더 뛰는 농구를 펼쳤고, 주요 선수들이 쥐가 나고, 과호흡이 올 만큼 엄청난 활동량을 보였다.

모든 선수가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 페인트존으로 달려드는 우리은행 선수들과 대등하게 맞섰고, 시간이 흐를수록 인사이드의 볼 잡기 경쟁에서 우리은행이 밀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우리은행이 가장 자신하는 체력과 활동량. 거기에 가장 적극적인 박스 아웃과 리바운드. 이 부문에서 삼성생명은 정규리그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우위를 보였다.

가용 인원에 한계가 있는 우리은행의 약점을 파고 들었지만, 결국은 우리은행이 가장 잘하는 것을 못하게 했다.

KB의 가장 큰 무기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 박지수다. 플레이오프에서 우리은행의 가장 큰 강점을 틀어막았던 삼성생명이 15년 만에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이번에도 KB의 가장 큰 강점을 무력화시켜야 할 것이다.

사진 = 이현수 기자
인포그래픽 =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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