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정진경 칼럼니스트] 많은 기사들로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정규리그 4위 팀의 챔피언 결정전 진출은 20년 만이고 역대 2번째의 기록이다.

우리은행의 이번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러한 우리은행이 플레이오프에서 4위 팀에게 덜미를 잡힐 것도 예상치 못한 결과다.

업셋, 예측을 뒤집은 승부
WKBL을 대표하는 강팀인 우리은행이 상위권을 유지하리라는 예상은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시즌은 개막 이전의 예상보다 더 험난했다.

초반 박혜진의 전력이탈에 이어 김정은의 시즌 아웃, 그리고 최고의 식스맨으로 평가 받는 ‘쐈다골’ 이라는 별명의 최은실도 부상으로 여러 차례 전력 외에 있었다.

하지만 박지현과 김소니아의 활약, 갑작스럽게 주전 가드 역할을 하게 된 김진희와 백업 홍보람의 도움, 그리고 깜짝 스타로 등장한 오승인까지,..

우리은행은 위기에서 새로운 역할을 해주는 선수들이 나타나며 여전히 끈끈한 전력과 집중력, 그리고 편견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은행 인데’, ‘역시 우리은행이네’ 라는 인식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심어 주면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저력을 보여 주었다.

반면 지난 시즌 최하위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은 삼성생명은 에이스인 박하나가 부상으로 거의 전력 외에 있었으며, 팀의 주축인 배혜윤, 김한별도 만성 부상에 시달리며 지난 시즌 보다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정규리그를 치렀다. 가드 유망주 이주연 역시 부상으로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경험이 없던 어린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줬고, 정규리그 경기력이 6개 구단 중 가장 들쑥날쑥 한 것도 사실 이었다.

수비에서 강점을 보이며 팀 스틸이나 상대 턴오버 유발은 많이 시켰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만나는 우리은행은 팀 턴오버 가장 적은 팀이였다. 수치로 나타는 것 이외의 부분까지 보자면, 수비력 역시 리그에서 가장 강한 팀이 우리은행이다. 두 팀의 맞대결 기록을 찾아봐도 삼성생명이 앞선 부분은 공격 리바운드 정도였다.

팀 성적, 상대 전적에서 일방적인 열세, 맞대결에서 나타난 경기력, 그리고 기록으로 증명된 통계까지. 삼성생명이 우리은행을 이길 수 있다고 내세울 수 있는 근거는 사실상 없었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박혜진 외에 큰 경기 경험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그 박혜진의 코트 지배력은 어마어마하다. 우리은행은 박혜진의 부상 복귀 이후, 더 강한 전력을 보여줬고, 다 넘어갔다고 생각한 경기도 클러치 타임에서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뒤집는 모습을 보였다. 베테랑 선수는 적을지 몰라도, 최근의 큰 경기 경험은 우리은행 선수들이 삼성생명보다 오히려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결국 얕은 스쿼드였다. 우리은행은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경기당 출전 선수 명단에 15명의 이름을 채우지 못한 유일한 팀이다. 부상으로 뛸 수 없는 김정은을 포함하고도 13명이었다.

실질적으로 1군 경기에 투입한 선수, 중요한 승부처에 투입할 수 있는 선수의 수는 더 적었다. 결국 시즌 내내 적은 스쿼드로 경기에 출전했던 선수들의 체력 저하가 발목을 잡았다.

가뜩이나 백업이 적은 팀에서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더 약해진 백업 선수층이 결국 우리은행에게 2년 만의 아픈 기억을 다시 재현하게 했다.

삼성생명의 반격
외부의 일방적인 패배 예상에 자극을 받았다는 삼성생명 선수들의 이야기는 실제 경기력으로 나타났다.

삼성생명 선수들은 플레이오프에서 누구라 할 것 없이 강한 집중력과 투지를 보여줬다. 첫 경기에서는 김단비, 두 번째 경기에서는 김보미의 활약이 돋보였고, 에이스로 자리 잡은 윤예빈의 꾸준한 경기력이 빛을 발했다.

다른 누구보다 이적생 김단비의 깜짝 활약과 베테랑 김보미의 희생이 돋보였다.

3일 열린 3차전은 사실 어떤 포인트를 뽑을 수 없는 경기였다. 전략이나 경기력을 말할 것도 없이 양 팀 모두 지친 상태였다. 힘든 상황에서 누가 더 집중력을 갖고, 볼을 한 번이라도 더 잡고, 한 골을 더 넣느냐가 중요한 경기였다.

초반부터 더 잘 뛰고, 더 잘 잡고, 더 잘 넣은 쪽은 삼성생명이었다. 삼성생명은 끝까지 분위기를 내주지 않았다. 양 팀 모두 외곽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삼성생명은 우리은행보다 많인 공격리바운드를 건져냈고, 무엇보다 턴오버에서는 두 배(7-14)의 차이를 내며, 수비에 이은 속공 득점과 자유투 성공률에서 차이를 만들었다.

결국 삼성생명이 이겼다. 이변을 일으키며 감동적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모두의 예측을 뒤엎은 삼성생명은 ‘프로’로서 도전과 가능성, 그리고 프로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줬다. 아직 경기가 남았기에, 좋은 경기를 보여준 그들에게 축하보다는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쉽지만 의미 있었던 시즌, 우리은행의 남은 숙제
우리은행이 체력과의 사투를 벌이는 모습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스피드, 공수 전환이 느렸고, 무엇보다 우리은행이 자랑하는 강력한 몸싸움과 박스아웃, 리바운드 경합에서의 적극성이 보이지 않았다.

체력 저하는 집중력을 흔들고 야투 정확도도 떨어뜨린다. 야투율이 떨어지던 우리은행은 3쿼터, 정규리그에도 출전 시간을 거의 주지 않았던 박다정, 나윤정 등을 투입했다. 두 선수 모두 수비보다 공격, 특히 슛에 강점을 가진 선수들이다. 하지만 분위기를 바꾸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우리은행은 종료 4분 20여초를 남기고 주전 선수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토너먼트의 마지막 경기임을 고려하면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야 할 시점에 백기를 든 것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이 경기에서의 완패 인정이다. 뭘 해도 분위기를 더 반전시키거나 이길 수 있는 재료가 없다는 것을 판단하고, 마지막 경기인 만큼 선수 전원에게 코트를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정규리그에서 큰 점수차가 나도 이런 모습을 거의 보인 적 없는 우리은행의 코칭스태프가 내린 판단이기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1위팀이 단기전에서 4위팀에게 패해 떨어진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WKBL에 두 번밖에 없었던 일이고, 앞서 언급했듯 이 마저도 20년만이다. 하지만 그런 불명예로 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쳤음에도 우리은행 역시, 어제의 신한은행처럼 정말 의미 있는 시즌을 치렀다고 말하고 싶다.

어려운 가운데 정말 좋은 경기를 보여줬고, 또 많은 것을 이루어 낸 시즌이다. 이번 시즌을 지켜보면서 우리은행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한 고비를 넘기면 더 큰 고비가 나타나는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끝까지 싸우고 버텨냈다. 그리고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프로농구에서 ‘챔피언’은 정규리그가 아닌 챔프전의 승리자에게 돌아가는 칭호다. 하지만 단기전에 오를 자격을 가리기 위한 기간으로 의미를 축소하기에는 정규리그는 수많은 과정과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는 대장정이다. 그 기간의 여정에서 최정상에 섰다는 것은, 그에 마땅한 갈채가 뒤따라야 한다.

의미 있는 시즌을 다소 아쉽게 마친 우리은행은 앞으로 더 중요한 숙제가 남은 것 같다. 바로 선수단 구성이다.

정규리그에 시즌 전력으로 최소 8명의 선수는 코트에 꾸준히 나설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FA 자격을 획득한 김소니아를 잔류시켜야 할 것이고, 또 주요 전력으로 역할을 해낼 선수를 영입하든지, 키워내든지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선수층으로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면 분명한 한계가 존재할 것 같다. 젊은 선수들의 성장은 분명할 것이고, 오승인과 같은 루키급 선수들은 더욱 존재감을 키워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상징과도 같은 박혜진도 어느 새 서른 살이 넘었다. 김정은 역시 리그 최고 고참 중 한 명이며, 선수에게 부상 등의 위험은, 준비한다고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다.

대한민국 여자농구 2010년대를 지배한 우리은행의 화려한 역사가 꾸준히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기틀을 이어갈 선수층의 규모가 반드시 보충되어야 할 것이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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