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정진경 칼럼니스트] WKBL 2020-21 시즌 정규리그 2위 KB스타즈와 3위 신한은행의 플레이오프에서 KB가 먼저 2승을 챙기며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1승 1패로 동률을 이루며 3차전까지 치르게 된 우리은행이나 삼성생명보다 여유를 갖고 챔프전을 맞이하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봄 농구가 열리지 않은 지난 시즌을 제외하면, KB는 3년 연속으로 챔프전에 진출하게 됐다. 1위가 확실시 된다고 평가를 받았던 정규리그 우승을 놓치며 통합 우승에 도전할 수는 없게 됐지만, 챔프전 우승을 노리며 자존심과 명예 회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위기를 극복한 KB, 압도적인 박지수
KB에게 ‘당연히’라는 말은 선수들에게나 코칭스텝에게도 상당한 부담일 것이다. ‘상대와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보다 ‘이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부담감’을 극복하는 것이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당연히’라는 표현이 가혹하다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박지수의 존재감은 리그 최강이고, 한 번에 두세 명이 막아야 할 만큼 위력은 절대적이다.

KB가 그렇듯이 박지수 또한 매번 달성하는 대단한 기록들이 대적할 선수가 없기에 ‘당연하다’는 평가절하를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지수는 시즌 내내 한결같은 실력을 보여줬고, 경기 중 불안한 팀원들을 잘 다독일 줄도 알게 됐다.

정규리그 30경기를 모두 더블-더블로 장식한 그는 플레이오프 들어서는 한 발 더 나아가 20-20으로 두 경기를 정리했다.

1차전에서는 플레이오프 역대 최다 리바운드(27개) 기록을 세우더니, 2차전에서는 24개의 리바운드를 잡으며 절반인 12개를 공격리바운드에서 건져냈다. 플레이오프 한 경기 최다 공격리바운드 신기록도 작성했다.

신한은행 선수들은 처절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 박지수에 맞섰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박지수의 제공권 장악은 KB 외곽 선수들의 심리적인 부분도 안정시켜줬다. 정규리그 후반부터 흔들렸던 KB의 3점슛도 박지수의 확실한 존재감 속에 위력을 찾았고, 2차전에서는 22개 중 10개(45.5%)를 성공했다.

20-20을 기록한 에이스의 압도적인 장악력. 확실하게 장악한 제공권. 거침없이 터진 외곽슛. KB의 승리 공식이 모두 이루어졌다.

졌지만 감동적인 시즌을 보낸 신한은행
사실상 신한은행의 승부수는 1차전이었다. 2연승으로 플레이오프를 마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절대적인 전력차이가 확실한 만큼, 1차전을 잡은 후 승부를 도모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활동량이 오버페이스가 되며 경기를 잡지 못했고, 그 여파가 2차전까지 이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2차전 출발은 나쁘지 않았지만 누적된 피로로 인해 야투율이 떨어졌고, 완벽한 슛 찬스를 만들어 내기 위한 움직임이 나오지 않았다. 신한은행이 KB를 이기기 위해서는 외곽에서 확실하게 우위를 잡아야 한다. KB보다 더 많은 3점슛을 높은 확률로 성공해야 한다.

2차전에서 신한은행은 22개의 3점슛을 시도해 6개를 성공하는데 그쳤다. 자유투 성공률도 50%였다. 피로도에 의한 체력저하는 집중력도 흔들리게 했다.

1차전에서 신한은행은 초반부터 KB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2차전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완급조절을 하다가 후반에 풀 코트 프레스와 트랩 수비로 다시 한 번 반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KB도 상대 압박에 잘 대처했다. 박지수가 백코트에 머물며 볼 연결에 가담했고, 프런트 코트로 무리 없이 넘어왔다. 경기를 앞서고 있던 만큼 서두르지 않으며 자신들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1차전에서는 포스트에 볼을 투입하다가 턴오버가 많았지만, 2차전에서는 박지수만 잡을 수 있는 높이를 이용한 패스로 맞섰다.

신한은행은 1차전보다 수비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공격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1차전만큼 힘있고 날카로운 돌파가 나오지 않았다. KB의 수비를 흔들기에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상대가 3점 라인 수비를 길게 올려붙이면서 쉬운 찬스를 허락하지 않았다.

KB는 자신들이 1강으로 평가받았던 전력의 우위를 십분 활용했다. 신한은행으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정상일 신한은행 감독은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고, “힘들어도 끝까지 하자”며 다독였다.

사실 3쿼터 중반을 넘어서며, 이 경기에서 투지로도 신한은행이 KB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결론은 극명하게 나타났다. 어쩌면 코트를 달리는 선수들이 가장 먼저 그 차이를 절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상 승산이 없음을 느끼면서도, 신한은행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71-60. 최종 11점차의 승부였지만 후반은 2점차의 대등한 승부였다. 신한은행이 성급하게 초반부터 힘을 뺐다면, 3쿼터에 20점차 이상까지 벌어질 수도 있던 분위기였다.

신한은행은 시즌 전부터 많은 불안요소를 갖고 있는 팀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신한은행의 플레이오프 진출이 어렵다고 판단했던 이유다.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기도 했고, 긴 재활을 마치고 이제 막 코트에 복귀한 선수도 있었다. 고질적인 부상을 안고 있어, 시즌 내내 안배가 필요한 선수도 있다. 베테랑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분도 큰 우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즌을 치르면서 신한은행은 그 우려를 지워갔다.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조직력과 경기력이 좋아졌고, 선수들의 신구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 시즌을 치르며 발전된 모습을 감안하더라도 신한은행이 거둔 17승 13패, 3위의 성적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정규리그에서도 KB에게 이긴 경험이 있기에, 플레이오프에서도 KB를 상대로 어렵지만 1승을 해내리라는 기대를 하게 했다. 정규리그 4-5라운드에 보여준 응집력과 경기력은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아쉽게도, 플레이오프에서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해주는 소위 ‘미친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 스몰 라인업으로 집요하게 박지수를 공략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위에서 걷어내는 리바운드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리고 두 경기만에 봄 농구를 마쳤다.

하지만 시즌을 지켜본 이들이라면 2020-21시즌의 신한은행에 대해 야박한 평가는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매번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들의 목표 이상을 이끌어낸 신한은행 선수단에게는 진심으로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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