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지난 27일 아산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패하면서, 용인 삼성생명은 벼랑 끝에 몰렸다. 1일 열리는 2차전마저 패배한다면 삼성생명의 올 시즌은 끝이 날 운명이었다.

시즌이 끝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보통의 선수들에게는 긴 여정을 치른 뒤 따르는 달콤한 휴식의 시간이 될 테다. FA를 앞둔 윤예빈, 김단비, 배혜윤 등에게는 선택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또 여기,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끝나는 36살의 누군가에게는 농구 시계의 끝을 알리는 버저 소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보미는 자신이 떠날 시간을 스스로 미뤘다.

김보미는 1일 열린 2차전에서 16점 6리바운드 3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 시리즈를 3차전으로 이끌었다. 3점슛은 8개를 던져 4개를 넣었다. 

WKBL은 포스트시즌 매 경기 수훈선수인 ‘Liiv M FLEX(리브모바일 플렉스)’를 선정하고 있는데, 이날의 주인공은 김보미였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김보미의 눈시울은 이미 마이크를 잡기 전부터 붉어져 있었다.

“그냥…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뛰었어요. 개인적으로 제 인생의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오늘, 그냥 후회없이 뛰자고 했는데 팀도 이기고 MVP까지 돼서 기분이 좋아요.”

“정규리그 때 제가 수비 미스가 너무 많아서 팀 선수들에게 되게 미안했어요. 플레이오프 땐 절대 수비 미스를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공격은 안 하더라도 수비만 하자는 생각으로 나왔거든요.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뛰고 있습니다.”

거짓말이다. '공격은 안 하더라도 수비만 하자'는 생각으로 뛰었다던 김보미는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공격과 수비를 모두 수위급으로 해내고 있다. 

먼저 수비. 김보미는 2경기를 치르면서 평균 1.5스틸을 기록하면서 팀 내 가장 많은 스틸을 기록 중이다. 상대 바이얼레이션 유발을 측정하는 수비지표인 굿디펜스 또한 1.5개로 팀 내 제일 많다. 공이 있든 없든 코트 모든 구석에 발품을 파는 그의 헌신은 팀 전체로 전염돼 허슬 플레이를 이끈다.

공격 또한 마찬가지. 삼성생명의 정규리그 30경기 3점슛 성공률은 27.5%로 리그 전체 압도적 꼴찌였다. 그러나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생명의 3점슛은 34.8% 확률이다. 경기당 3.0개 3점슛을 46.2% 확률로 성공 중인 김보미 덕분이다.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3.0개 3점슛을 성공하고 있는 선수는 리그에 김보미가 유일하다.

 

그런데 김보미가 떠나는 시간을 미룬 이유는 순전히 본인만을 위한 건 아닌 듯하다. 

“박하나 선수가 수술을 했어요. 하나가 오늘 저희랑 같이 안 뛰고 있어서…” 김보미가 울먹이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인터뷰하고 꼭 하나한테 맛있는 거 사주려고 했거든요. 하나랑 같이 뛴다는 마음으로 뛰었고, 하나가 있었으면 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도 있고… 그래도 항상 하나랑 같이 있다는 마음으로 플레이하고 있고, 그런 마음을 담아서 선수들이 번호를 테이핑에 써서 오늘 게임했습니다. (네. 박하나 선수와 오늘 상금 함께 쓰시길 바라겠습니다.) 네! 오늘 맛있는 거 사주기로 했어요.”

2018-19 플레이오프였다. 삼성생명은 1차전을 우리은행에 내준 뒤 2차전과 3차전을 내리 잡으며 챔프전에 진출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2차전 방송사 MVP 인터뷰는 3점슛 4개를 성공했던 박하나였다. 그리고 꼭 2년 뒤, 김보미는 똑같이 2차전에서 3점슛 4개를 넣으며 2년 전 박하나가 섰던 단상에 올랐다. 경이로운 우연이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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