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정진경 칼럼니스트] 우려를 씻고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 삼성생명, 그러나 끝내 승리를 지켜낸 정규리그 우승팀 우리은행.

이번 시즌부터 4강 시스템으로 바뀐 WKBL의 플레이오프가 시작됐다. 정규리그 1위 우리은행과 4위 삼성생명이 27일, 아산에서 먼저 1차전을 치렀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은행의 2승을 점쳤다. 다소 쉬운 시리즈가 될 수 있으리라는 예측도 많았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정규리그 후반부, 삼성생명의 광범위한 선수 투입과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며, 집중력을 요구하는 단기전인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모습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았다.

예상대로 1차전의 승리는 우리은행이 가져갔지만, 삼성생명은 우려와는 다르게 굉장한 집중력을 보여줬다. 배혜윤-김한별이 버틴 인사이드와 어린선수들의 외곽, 그리고 베테랑 감초 역할을 한 김보미의 활약이 돋보였다.

특히 이번 시즌 FA보상선수로 이적한 후, 확실히 자리를 잡아 리딩 스코어러 역할을 해 준 김단비까지. 삼성생명은 정규리그 막판의 부진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훌륭한 공수 조화를 보여줬다.

적은 스쿼드의 우리은행에 맞선 삼성생명의 인해전술
우리은행은 멤버 교체에 큰 변화 없이 오승인 포함 7명의 선수를 기용 했는데, 오승인이 채 1분도 코트에 있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결국 6명의 선수로만 경기를 이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박혜진(39분 35초), 박지현(40분), 김소니아(39분 4초) 등 주력 선수들은 사실상, 쉼 없이 40분을 소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삼성생명은 윤예빈이 40분을 소화했지만 포지션 별로 선수들의 로테이션을 가져가면서 총 10명의 선수가 코트를 밟았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오히려 이 부분이 삼성생명의 불안 요소 중 하나였다.

정규리그에서 삼성생명은 불안한 포인트 가드 포지션과 부상으로 흔들렸던 김한별, 배혜윤의 인사이드를 어린 선수들이 교체를 통해 채웠는데, 잦은 교체로 경기력의 기복이 심해졌고, 어린 선수들이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플레이오프와 같은 큰 경기에서 충분한 효과를 보여줄지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인해전술이 상대보다 체력소모가 적은 상태에서 첫 경기를 반드시 승리로 가져가야 한다는 집중력까지 더해지며 좋은 경기력으로 이어졌다.

가용인원이 적은 우리은행은 만약 이날 경기를 놓쳤다면 체력소모로 2차전이 더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하루 쉬고 열리는 2차전은 경기시간도 오후 2시 15분으로 앞당겨지면서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도 예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의 스위치 디펜스
결국 우리은행이 이겼다. 하지만 경기를 따지고 봤을 때는 오히려 삼성생명이 잘 한 부분이 더 많이 보였다.

우선은 삼성생명의 스위치 디펜스를 말하고 싶다. 삼성생명은 경기 초반, 이 스위치 디펜스를 통해 우리은행의 주득점원 중 박지현과 김소니아의 인사이드 공격을 상당히 괴롭혔다.

이 수비를 습관적으로 하다보면, 공격자가 겹쳐지는 상황에서 다소 느슨하게 대응을 하다가 더 쉬운 찬스를 내주는 경우가 발생한다. 때문에 감독들은 의식적으로 스위치 디팬스를 하지 못하도록 지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삼성생명은 1차전에서 몸싸움을 동반하고, 공격자가 겹치는 상황에서도 강한 접촉을 하며 수비자를 바꾸거나, 시야가 가려지는 뒤쪽에서 로테이션을 돌아 트랩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박지현과 김소니아가 공격 중 당황하는 모습이 여러차례 나타났는데, 이러한 삼성생명의 수비는 전체적으로 우리은행의 야투율을 떨어뜨렸다. 특히 3쿼터까지 큰 효과를 봤는데, 이날 우리은행의 2점 야투율은 전반 28.0%, 3쿼터까지는 32.4%였다.

우리은행의 이번 시즌 2점 야투율(46.3%)과 삼성생명 전 6경기에서의 결과(47.6%)와 비교해보면 삼성생명의 수비가 확실한 효과를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승부의 결정타가 된 3점슛
승부가 재미있게 진행된 또 하나의 이유는 3점슛의 변수였다고 생각한다. 삼성생명이 긴 시간 리드를 가져갈 수 있었던 이유는 수비에서의 효과와 맞물려, 대응한 리바운드, 그리고 확률 높은 외곽슛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생명은 정규리그에서 외곽이 가장 약했던 팀이다. 성공률이 27.5%로 최하위다. 특히 우리은행과의 경기에서는 21.3%에 그쳤다. 당연히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외곽보다는 배혜윤과 김한별의 인사이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날 삼성생명의 외곽은 상당했다. 전반에만 50% 이상의 적중률을 보였다. 외곽에서 만들어진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특정 선수에게 치중하지 않고, 김단비, 김보미, 윤예빈, 신이슬이 3점슛을 꽂아 넣었다.

주득점원이 달라지고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득점이 올라가자, 상대하는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3점슛 싸움은 마지막 4쿼터에 다른 양상을 보였다.

3쿼터까지는 삼성생명이 무려 50%(8/16)의 성공률을 보이며 26.7%(4/15)였던 우리은행을 압도했지만, 마지막 4쿼터에는 삼성생명이 시도한 7개의 3점슛 중 1개만 림을 통과했다. 반면 우리은행은 이 승부처에서 삼성생명과 똑같이 7개를 던져 4개를 적중시켰다.

짠 내 나는 우리은행의 4쿼터 클러치 타임
경기마다 느끼지만 우리은행의 집중력은 정말 짠 내가 난다. 보기에도 너무 지쳐버린 선수들이 가장 힘들고 넘겨야 할 시간에 어김없이 높은 집중력과 능력을 보여준다.

박혜진은 더 이상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해결사다. 클러치 타임에 반드시 공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선수다,

그런데 이날은 박혜진에 이어 박지현도 강심장임을 증명했다. 종료 2분 40초 전, 팀이 4점 지고 있던 상황에서 과감하게 성공한 박지현의 먼 거리 3점슛은 이날 삼성생명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던 경기의 흐름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마무리 돌파에 이은 앤드원 플레이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아쉽게 패했고 마지막 시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삼성생명의 김한별 역시 ‘플레이오프의 김한별은 다르다’는 것을 증명했다.

2차전의 키 플레이어
승리를 챙겼지만 우리은행은 김소니아가 이전의 모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정규리그 마지막 무렵의 몇 경기부터 김소니아의 경기력에 기복이 심해졌다.

본인의 공격루트가 막히면 좀처럼 여유가 사라지고, 무리한 모습이나 잦은 실수가 나온다. 슛이 나쁜 선수도 아니기 때문에 경기의 시야를 더 넓게 가져가면서, 본인의 좋은 밸런스를 찾는 게 중요 해 보인다.

삼성생명은 여전히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은 배혜윤의 득점이 필요하다. 특별한 부상 소식은 없지만, 배혜윤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임근배 감독이 배혜윤과 김한별이 함께 뛰는 시간을 최소화 시킨 것은 결국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활동량을 보완하기 위한 것인데, 김한별은 물론 배혜윤 역시 몸이 좋지 않기 때문에 더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배혜윤이 득점 지분을 어느 정도 가져가 주지 않으면 삼성생명이 우리은행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1차전에서 배혜윤은 20분 42초를 뛰며 4점 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2점슛 7개를 시도해 1개를 성공했다.

삼성생명은 1차전에서 김단비가 놀라운 폭발력을 보였다. 내외곽을 오가며 인-아웃 모두 득점을 챙겼고, 리바운드(6개)도 많이 잡아줬다. 삼성생명으로서는 이 득점이 어느 정도 분산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배혜윤의 역할이 중요하다. 삼성생명의 2차전 경기력은 배혜윤에게 달려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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