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불혹을 앞둔 나이에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KT 김영환의 얘기다. 띠동갑 후배들이 코트를 지배하고 있는 요즘, 1984년생 김영환은 누구 못지 않은 경기력으로 KT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베테랑’, ‘리더’, ‘솔선수범’과 같은 단어가 나오면 김영환은 강한 책임감 때문인지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코트에서 더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치는 순간도 있었다

KT의 베테랑 리더, 김영환을 루키더바스켓이 직접 만났다. 인터뷰는 후반기 시작을 앞둔 1월 19일 오후에 이뤄졌다.

*본 인터뷰는 루키더바스켓 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Q. 4위로 전반기를 마쳤다.

김영환. 시즌 초반에 7연패만 아니었으면 더 위에서 경쟁했을 것 같다. 아직 아쉽다.(웃음) 그래도 시즌을 치르다 보면 좋을 때, 나쁠 때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7연패는 나쁜 게 빨리 찾아온 거라고 생각하고 후반기를 잘 치러야 할 것 같다.

Q. 허훈, 양홍석, 박준영 같은 젊은 선수들이 잘해주고 있다. 베테랑 입장에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김영환.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웃음) 농구를 워낙 잘하는 선수들이다. 고참으로서 좋은 후배들을 만난 게 행운 같기도 하다. 젊은 선수들을 등에 업고 우승 한 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웃음)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막 그렇다. 여러 마음이 생긴다.

Q. KT에서 데뷔했고 지금도 KT에서 뛰고 있다. 2007년에 데뷔했으니 벌써 14년 전이다.

김영환. 맞다. 8순위로 전자랜드에 뽑혔다가 6월에 비시즌 시작할 때 트레이드됐다.

Q. 그때만 해도 드래프트가 연초에 열렸다.

김영환. 내 기억엔 2월에 뽑혔다.

Q. 2월부터 전자랜드에서 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6월에 갑자기 트레이드된 셈이다. 신인 입장에서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김영환. 그때는 정말 멋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사실 드래프트 때 무릎도 안 좋고 그래서 평가가 내려가 있었다. 그게 8순위로 뽑히는 원인이 됐다. 어린 마음에 실망을 많이 하고 있었다. 더 높은 순위에 뽑힐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트레이드는 정작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디서 뛰든 일단 제 가치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젊은 혈기에 뭐든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트레이드엔 그다지 상처받지 않았다. 마침 고향이 경상도였다. 고향과 가까운 팀에서 뛸 수 있으니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Q. 마침 고향 얘기가 나와서 얘기하자면 김해가야고 시절의 김영환은 알아주는 최고급 유망주였던 걸로 알고 있다.

김영환. 최고급까진 아니었다.(웃음) 제 또래 중에 잘하는 선수들이 사실 너무 많았다. 전국 대회에 나가서 맞붙어 보고 청소년 대표 팀에 뽑혀서 같이 훈련해보니 또래 친구들이 너무 잘하더라. 내가 프로에 갈 수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12명만 뽑히는 청소년 대표 팀에 일단 들어갔으니 그걸 생각하며 일단 안심하기도 했었다.

Q. 프로에 못 갈까 걱정할 정도였나. 당시 김영환이라는 선수의 명성을 생각하면 신기하다.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감을 못 잡고 있었다고 봐야 할까.

김영환. 그렇다. 워낙 쟁쟁한 선배들도 많고 또래 선수들도 너무 잘했다. 고등학교 때는 내가 얼마나 농구를 잘하는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잘 몰랐다. 그냥 열심히 하는 시기였다.

Q. 사실 8순위라는 지명 순위도 대학 시절 명성에 맞는 순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김영환. 그땐 나름 잘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나와 주위에서 평가하는 내가 달랐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상처도 좀 받았다. 더 빨리 뽑힐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때는 잘 몰랐다. 팀마다 필요한 선수와 포지션이 있지 않은가. 그런 걸 고려 안하고 그냥 지명 순위에 섭섭함만 느꼈던 것 같다. 화도 나고 그랬다.

Q. 벌써 14년이 흘렀다. 드래프트 때 예상보다 평가절하 받았던 것이 지금까지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동력이 됐다고 봐도 될까?

김영환. 그런 것 같다. 대학교 때 아프고 지명 순위가 내려가는 일들을 겪은 것이 몸 관리를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다. 아프면 다 소용이 없더라. 부상이 있으면 경기도 못 뛰고 실력도 좋아질 수가 없다. 부상 때문에 일찍 고생했기 때문인지 저는 그 문제를 어릴 때부터 많이 고민헸다. 어떻게 하면 안 아프고 농구를 계속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시기였다.

그땐 사실 수술하고 재활도 하면서 좌절을 많이 했다. 크게 다친 건 아니었다. 어릴 때 무리하면서 쌓이고 쌓인 작은 부상이 치료고 제대로 안 된 채 계속 되면서 고질병이 돼 버린 케이스였다. 많이 속상했고 원망도 많이 했다. 서울에서 운동을 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서울에서 운동을 했으면 더 좋은 환경에서 전문적인 치료도 받으면서 어릴 때부터 부상을 관리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후회와 섭섭함,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그렇게 힘들어하다가 우울한 생각만 하면 뭐하겠냐 싶었고 결국 마음을 고쳐먹었다. 프로에서 적어도 10년 이상은 선수 생활을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안 아프고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많이 생각했다. 재활 센터에 다니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직접 재활을 지켜보기도 하면서 나만의 노하우가 많이 쌓였고 그때 고민하고 공부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Q. 데뷔 전후로 부상에 많이 고생했던 게 자기 관리에 집중하는 계기가 된 걸까? 그 전엔 어땠나?

김영환. 어릴 때는 철저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제가 다른 선수들보다 확실하게 낫다고 할 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운동능력이 좋거나 몸이 더 튼튼한 것도 아니었다. 슛이 좋지도 않았다. 고민을 했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들보다 더 성실하게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성실하긴 했던 것 같다.(웃음) 남들이 핀잔을 줘도 무조건 성실하게 했다. 친구들이 무식하다고 뭐라고 할 정도였다. 감독님, 코치님도 안 나올 때도 나와서 운동을 했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까지 운동을 하냐고 뭐라고 했었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나름 성실했다.

Q. 철저한 자기 관리가 성격에도 잘 맞았던 것 같은 느낌이다.

김영환. 사실 저는 살면서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하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나한테 어떤 게 중요하고 어떤 걸 해야 내가 행복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어릴 때 이것저것 많이 경험하고 생각해보니 나는 농구할 때가 제일 즐거운 사람이더라. 저도 술도 마셔보고 밖에서 놀아보기도 했었다. 친구들 따라서 클럽도 가보고 그랬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다음 날에 후회만 되더라. 남는 것도 없고 몸만 망가지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몸 관리를 해서 몸이 더 좋아지고 그렇게 해서 코트에서 내가 원하는 플레이가 나올 때 느끼는 행복이 놀면서 느끼는 행복보다 훨씬 더 컸다. 그래서 지금도 자기 관리가 힘들다거나 자기 관리를 하느라 스트레스 받는 부분은 없는 것 같다. 자기 관리했을 때 느끼는 행복이 더 크기 때문이다.

Q. 지금도 밤 10시 취침, 7시 기상을 지킨다고 들었다. 주량이 센 편인데도 비시즌 휴가 기간이 아니면 술을 절대 안 먹는다고 하더라. 사실인가?

김영환. 맞다. 이제는 습관이 된 것 같다. 전혀 힘든 게 없다. 사실 옛날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 생각도 나고 그랬다. 이제는 안 그렇다. 요즘에는 스트레스를 너무 심하게 받으면 어쩌다 한 번씩 치킨을 먹는다. 치킨 한 마리에 콜라 500ml를 하나 두고 먹는다. ‘1인 1닭’ 한다.(웃음) 그 외에는 없다. 야식도 안 하고 탄산 음료도 안 먹는다.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도 최대한 지키려고 한다. 저녁 7시에 경기가 있는 날은 10시에는 잘 수 없기 때문에 경기가 끝나면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일찍 자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똑같이 아침을 먹고 똑같이 생활하려고 노력한다.

Q. 그렇게 철저하게 관리를 한 덕분일까? 관계자들 얘기를 들어보니 다른 어린 선수들보다도 몸이 더 좋다고 하더라. 팀에서 몸이 제일 좋은 선수가 김영환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김영환. 어린 선수들이 약해서 그런 건 아닐까.(웃음) 저는 프로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과 관리를 해오지 않았나. 우리 팀에 있는 어린 선수들은 아무래도 대학 때부터 체계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제가 몸이나 체력이 더 좋은 것 같다. 한편으로는 애들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웃음)

 

Q. 어느덧 30대 후반이다. 선수 생활은 언제까지 하고 싶은가.

김영환. 어릴 때는 ‘이때까지는 선수 생활을 해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은 안 하고 있다. 일단 하루하루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KT와 계약이 내년까지 돼 있다. 그때까지 열심히 해보고 그 뒤의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

매일 계획하고 준비했던 걸 잘 실천하면 선수 생활은 알아서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커리어가 끝나는 시기를 정해놓고 농구를 하면 스스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을 것 같다. 40살까지 한다고 다짐했는데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그걸 못 지키면 좌절감이 너무 크지 않겠는가. 선수 생활은 부상, 구단들의 평가 등 제가 결정하지 못하는 부분도 따라줘야 한다. 제가 언제까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팀 상황이 안 따라주고 나를 찾는 팀이 없을 수도 있다. 내 뜻대로 되는 부분이 아닌 것 같다. 그냥 할 수 있을 때까지 힘닿는 데로 해볼 생각이다. 계속 후배들과 부딪혀보고 경쟁해보고 이젠 아니다 싶은 때가 오면 쿨하게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다.

Q. 지금 기량 정도면 모든 팀들이 원하지 않을까? 14년 차 선수라는 게 안 믿겨질 정도로 아직도 잘하는 것 같다.

김영환. 그동안 노력했던 게 이제 효과가 나오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몸 관리를 꾸준히 한 덕분인 것 같다. 사실 어릴 때 팀 형들이 나이 들면 운동도 덜 하고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게 의문이었다. 그래서 저는 갈수록 오히려 운동을 더 하고 있다. 물론 코트 훈련을 더 늘린 건 아니다. 대신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재활 운동은 예전보다 더 많이 하고 있다. 어린 선수들한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막상 해보니 몸 상태도 잘 유지되고 오히려 더 좋아지는 부분도 있더라. 웨이트 중량은 어릴 때보다 오히려 더 늘어났다. 그동안 꾸준히 실천해왔던 게 틀리지 않았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다. 어린 선수들한테 조언해줄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생긴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다.

Q. 서동철 감독께 여쭤보니 김영환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리더라고 하더라. 솔선수범하는 리더라며 극찬하셨다.

김영환. 제가 LG로 트레이드되면서 29살에 주장이 됐다. 일찍 주장을 시작한 셈이다. 막상 주장을 해보니 힘들었다. 말로만 리드해서는 선수들이 안 따라오더라.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됐다.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으로 최대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사실 처음에는 많이 힘들긴 했다. 저만의 운동 스케쥴, 루틴, 운동 방법이 있는데 다른 선수들이 보고 따라올 수 있도록 어떻게든 다 해야 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도 솔선수범해야 하는 게 사실 정말 많이 힘들더라. 좋은 티, 싫은 티 내는 것도 자제해야 했다. 어쨌든 제가 행동하지 않으면 어린 선수들이 따라오지 않는 것은 확실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내려고 노력했다. 그때부터 솔선수범하려고 했던 게 이어져 오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행동으로 보여주니 선수들이 제 조언을 받아들이고 따라오려는 모습이 보여서 지금까지 그렇게 하려고 신경 쓰고 있다.

Q. 허훈, 양홍석 같은 선수들은 어떤가. 평소에 선배 김영환을 굉장히 리스펙트한다고 들었다.

김영환. 사실 그 친구들은 제가 굳이 리드하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다.(웃음)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자기만의 운동 방법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다. 제가 뭐라고 할 부분이 딱히 없을 정도다.

나이가 어린 데도 벌써 뭘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다. 프로 마인드가 정말 강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요즘 어린 선수들은 개성이 강한 만큼 오히려 더 책임감 있고 프로마인드가 갖춰져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세대가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다. 오히려 제가 더 자극받아서 행동으로 더 열심히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훈이와 홍석이는 타고난 것도 많은데 노력까지 하는 선수들이다. 그러니 S급 선수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Q. 많은 농구 팬들이 김영환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사실 KT로 트레이드된 후 LG를 상대로 터트린 극적인 버저비터다. 일단 트레이드 당시를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가?

김영환. 그때는 트레이드될 거라고 사실 생각도 못했었다. 계속 주장을 하면서 LG에 많이 정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외박을 갔다가 팀에 합류하니 갑자기 감독님이 얘기 좀 하자고 방으로 부르시더라. 그때가 트레이드 마감일이 임박했을 때였다. 그때는 예상을 전혀 못하고 ‘다른 선수가 트레이드되는 걸 내가 주장이니까 나한테 먼저 말씀하시는가 보다’하고 찾아갔다.

그런데 문을 열고 가니 분위기가 엄청 싸했다. 다들 저와 눈을 못 마주치시더라. 그 순간 ‘이게 뭐지? 설마?’했다. 그리고 트레이드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 시즌에 좀 부진하긴 했지만, 정말 설마 했다. 어느 팀으로 가는지 여쭤봤는데 KT라고 하시더라. 상대가 (조)성민이 형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성민이 형이랑 저랑 트레이드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완전히 멘탈이 나갔다. 엄청 당황했다.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성민이 형과 맞트레이드됐다는 이유로 KT 팬들께 욕 먹었다.(웃음) LG 팬분들은 확실한 슈터가 온다고 좋아하셨다. 반면 KT 팬분들은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성민이 형을 보냈다는 이유로 화가 많이 나셨었다. 저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면유도제라는 걸 먹고 잠을 잤다. 며칠 동안 계속 그랬다.

Q. 그리고 첫 맞대결에서 KBL 역사에 남을 극적인 버저비터를 터트렸다. 버저비터를 넣고 반대편 림으로 달려가서 두 손으로 림을 잡고 턱걸이(?)를 하지 않았나. 트레이드 이후에 속상했던 마음을 마음껏 분출하는 느낌이 드는 장면이었다.

김영환. 너무 이기고 싶었던 경기였다. 그 경기는 정말 이기고 싶었다. 마지막에 LG에서 (김)시래가 득점을 하고 우리가 사이드라인에서 공격이었다. 2초 정도 남았던 것 같다. 그때 (이)재도한테 가서 나한테 무조건 볼을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책임지고 던질 테니까 나한테 볼 달라고 했다. 그래서 볼을 받아서 던지려고 하는데 앞에 수비가 두 명이 있더라. 그래도 일단 무조건 던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냥 던졌다. 그게 들어갔을 때 저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확 돋았다. 정말 후련했다. 나를 포기한 팀을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문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림으로 달려가서 그런 세리모니를 했다.

사실 그때 저는 너무 슬픈 처지였다. 솔직히 말하면 버림 받은 느낌이었다. LG 팬분들은 성민이 형이 온다는 사실에 그저 좋아하기만 하셨다. 이제 와서 말하지면 그땐 솔직히 많이 섭섭했다. 저도 나름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프로의 세계가 냉정한 곳이라 머리로는 이해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많이 섭섭했다.

Q. KT는 농구선수 김영환에게 운명의 팀인 것 같다. 처음 데뷔 팀도 KT였고 나중에도 결국 트레이드로 KT에 와서 지금까지 뛰고 있지 않나.

김영환. KT가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것이다. KT에 데뷔하고 2년 차에 무릎 수술을 받았다. 사실 그 수술이 국내에서는 불가능한 수술이었다. 막막했다. 일단 재활하면서 계속 운동을 하다가 부상이 심해지면 은퇴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까지 들었었다. 정말 상심이 컸다.

그때 정말 감사하게도 추일승 감독님이 미국, 독일 쪽에 수소문해주셔서 다행히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 팀이다. 제가 힘든 시기에 절 보듬어주고 아껴준 팀이기도 하다. 트레이드로 LG에서 KT로 다시 왔을 때 사실 많이 힘들었다. 그때 동료 선수들, 프런트, 국장님, 단장님, 감독님, 코치님들까지 저를 엄청 잘 챙겨주시고 신경써주셨다. 덕분에 힘든 걸 잘 이겨냈다. 저는 은퇴도 KT에서 하고 싶다. 선수 생활이 끝날 때까지 힘 닿는 데까지 KT에 도움을 주고 싶다. KT는 제가 정말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는 팀이다. 여기서 은퇴하고 싶은 마음이다.

Q. 정말 조심스럽지만 KT에서 계속 뛰면서 커리어를 멋지게 마무리하면 영구결번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김영환. 하하하. 그건 모든 선수들의 꿈 아니겠는가. 국가대표에 뽑히고 한 팀에서 영구결번이 되는 건 모든 농구 선수가 가진 꿈이자 궁극적인 목표일 것이다. 그런 일까지 벌어진다면 그 이상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제 뜻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구단에게도, 팬들에게도 인정받아야 한다.

일단 더 노력해보겠다. 제 커리어는 이제 시작 아니겠는가. 이제서야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이제야 농구가 좀 늘고 있다.(함박웃음)

 

Q. 본인이 농구가 늘고 농구에 눈을 떴다고 느낀 때는 언제였나.

김영환. 30대 들어서 그런 걸 느낀 것 같다. 20대에는 정말 열정으로만 농구를 했다. 30대가 돼서는 경기에 뛰면서 체력 관리도 신경 쓰게 되고 코트 전체가 다 보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예전에는 제 것만 하느라 바빴다. 내가 움직이는 것만 신경 썼다. 이제는 좀 다르다. 코트 전체를 보게 됐다. 다른 선수가 이렇게 움직이면 나는 이렇게 움직여야 한다는 게 저절로 보인다. 한결 여유로워진 것 같다. 앞으로도 몸 상태만 괜찮으면 기량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계속 제 몫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생긴다.

Q. 2007년 드래프트는 황금 드래프트로 지금도 많이 회자된다. 이제는 다들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김영환. 제 또래 선수들이 워낙 농구를 잘한다. 사실 지금은 제가 출전시간이 기니 기록상으로 더 보여주고 있지만, 그 선수들도 저만큼 출전 시간이 주어지면 전성기처럼 할 수 있을 것이다. 팀 사정상 출전 시간을 관리받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친구들이고 더 오래할 것 같다. 다들 앞으로 몇 년 충분히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Q. 드래프트 동기로서 느끼는 동지애, 애틋함 그런 것도 있을까?

김영환. 사실 어릴 때는 경쟁심만 마구 불타올랐다. 동기들보다 더 노력하려고 했고 만나면 이기려고 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다 같이 잘됐으면 좋겠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도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다 같이 오래 하면서 후배들에게 당당하게 실력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걸 보고 어린 선수들도 보란 듯이 잘하고 그랬으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이제는 체육관에 가면 얘기 나눌 사람이 없다.(웃음) 친구들이 많이 떠나고 없어져서 쓸쓸하기도 하다. 후배들이 오면 그냥 웃으면서 인사해주고 다치지 말고 잘하라고 한다. 괜히 먼저 말을 걸지는 않는다. 부담 되지 않겠나.(웃음) KCC (신)명호, 현대모비스 (함)지훈이를 만나면 너무 반갑다. 지훈이는 만나면 먼저 포옹하면서 잘 지냈냐고, 오랜만이라고 감격하면서 인사한다. 다 같이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얘기도 한다.(웃음)

Q. 남은 선수 생활 동안이든, 선수 생활 이후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까?

김영환. 우승이 제일 하고 싶다. 우승 반지를 하나는 끼고 은퇴하고 싶은 마음이다. 다만 우승은 정말 하늘이 도와줘야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도 훈이, 홍석이, 준영이처럼 잘하는 선수들이 팀에 많으니 제가 몸 관리만 잘하면 우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든다. 그래서 더 몸 관리를 열심히 하려고 한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도 생각하고 있다. 목표를 일단 크게는 잡아놨다. 농구를 그만두기 전에 어떤 걸 해야 하고 그만두고 나면 어떤 걸 하고 싶다는 큰 틀은 잡아놓은 상황이다. 팀 우승과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이 현재의 꿈이다.

 

 

사진 = 이현수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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