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처음 주목을 받은 건 외모 덕이었다. 2020년 1월 지명 당시만 해도 수술 후 재활을 하는 탓에 경기에 나설 수 없었으니, 우리은행 오승인에 대한 관심의 8할은 아마 외모 덕이 맞을 것이다. 오죽하면 데뷔전에서 1분 42초를 뛰면서 무득점 1리바운드에 그쳤음에도 포털이 술렁였을까.

그런 그가 지난 1월 21일, 난적 KB와 경기에서 22분을 뛰며 기어이 일을 냈다. 리그 최고 선수 박지수를 막기 위해 깜짝 투입돼 그를 4쿼터 무득점으로 막는 ‘사고’를 친 것이다. 입단 당시부터 ‘농구만 잘하면 뜬다’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던 수려한 외모의 오승인이 드디어 코트 위에서 존재감을 내뿜기 시작했다. 팬들은 이제 그의 얼굴이 아닌 손끝을 주목할 때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21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오스타

2020년 드래프트 전체 5순위로 뽑혔으나, 그해 부상 재활로 인해 출전 경기가 없었다. WKBL은 드래프트 시즌 데뷔하지 못한 선수를 2년 차까지 신인으로 인정한다. ‘신인’ 오승인은 여자농구가 모처럼 낳은 스타였다. 

‘미모로 흔든 팬심 실력으로 흔들 날 꿈꾸는 오승인’
‘퀸승인 떴다! 21분 57초 활약 오승인에 팬심은 대동단결’
‘오승인, 화제의 청순 비주얼’‘우리은행 오승인, 여자농구가 원했던 스타가 될까?’

그가 1분을 뛰든 2분을 뛰든 아니면 안 뛰고 벤치에만 있어도 그는 주목을 받는다. 본인은 눈치 좀 보이겠지만, 잘못은 아니다. 21세기 스포츠 스타가 갖춰야 할 것은 실력만이 아니다. 미디어와 팬들의 관심을 끄는 것도 스타의 덕목이다.

“(박)혜진 언니가 ‘오스타’라고 놀려요. 언니들도 그러는데 저라고 안 당황스럽겠어요. 지난해만 해도 그렇게 주목받진 못했잖아요? 올 시즌 어느 날부터 갑자기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엄청 늘어나는 거예요. 저는 처음에 제가 뭐 잘못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까 기사랑 사진이 갑자기 많이 나가면서 그렇게 됐더라고요.”

오승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늘어난 것은 그가 재활을 마치고 1군 데뷔전을 치렀을 때 즈음이다. 2020년 11월 25일 신한은행전에서 1분 42초 데뷔전을 치른 오승인은 당시 긴장한 나머지 공을 제대로 못 받고 놓치는 등 잊지 못할 하루를 보냈다. 최종 기록은 1리바운드.

“긴장 안 한 척을 엄청 했죠.(웃음) 다 끝나가는 경기여서 벤치에서 응원만 하고 있다가 갑자기 감독님이 ‘오승인 나와!’ 하시더라고요. 원래 저희 감독님이 들어가는 언니들은 들어간다고 미리 말씀을 해주시거든요. 정말 아예 몰랐어요. 그렇게 들어갔으니 뭐(웃음) 긴장만 하다가 나왔죠. 끝나고 나서 저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더라고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농구하면서 꿈꿔왔던 프로 데뷔전의 모습이요. 저는 자세 낮추고 들어가서 막 상대랑 몸싸움도 치열하게 하고, 리바운드도 멋지게 잡고 이런 거 상상했는데 무슨 공도 제대로 못 잡고 미끄러지더라고요. 하하.”

“그 다음 경기 얘기가 더 웃겨요. BNK 전이었는데, 전반부터 점수 차가 크게 났어요. 전반이 끝나고 감독님이 제가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저는 그걸 듣고 또 ‘혹시 3쿼터부터?’하고 후반 시작부터 몸을 엄청 풀었어요. 결국 뛴 건 마지막 5분.(웃음) 15분 동안 몸만 엄청 풀었죠.”

 

청주 소녀

농구공을 처음 잡은 건 초등학생 때였다. 운동은 원래 잘해서 학교 운동회 때마다 계주로 나가 1등을 도맡아 했단다. 당시 아버지가 농구 코치셨는데, 딸의 운동 신경을 알아보고 농구 한번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때부터 키가 크긴 컸어요. 남들보다 한 7cm씩은 컸던 거 같아요. 항상 뒤에 서 있었으니... 처음에는 농구를 하려고 농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어요. 강서초라고. 그런데 전학을 가서 보니 집 가까운 곳에 사직초라고 또 농구부가 있는 학교가 있대요. 그래서 또 전학을 갔어요. 6개월 만에 학교를 세 군데를 다닌 거예요. 그때가 3학년 2학기였는데 저는 어린 마음에 친구들이랑 자꾸 헤어지는 것도 싫고 전학도 싫어서 울고 불고 난리를 쳤죠. 그래도 공놀이가 재밌더라고요. 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긴 했어요.”

그렇게 사직초-청주여중-청주여고를 나온 오승인은 사실 ‘청주의 딸’이다. 그러나 ‘청주의 딸’이라는 별명이 조심스러운 이유는 그가 청주를 연고로 하는 KB스타즈의 영원한 라이벌 우리은행의 선수이기 때문이다.

“청주 KB 경기장이요? 어휴.(웃음) 엄청 갔죠.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부에서 많이 갔어요. 고등학교 때도 경기장에서 마핑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드래프트에서 지명될 땐 KB 라이벌 뭐 이런 생각은 하나도 안 들더라고요. 긴장을 워낙 많이 해서 그런 거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지금도 그래요.”

 

 

본인 말에 따르면, 아마추어 시절에는 농구를 그다지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다고. 초등학교 땐 뭣도 모르고 따라다녔고, 중학교 때도 농구를 몰랐단다. 고등학교 땐 그저 뛰어다니면서 큰 키로 받아먹기 득점만 올렸는데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제가 부상 때문에 1년을 유급하고 올라와서 (박)지현이랑 동갑이잖아요. 지금은 팀에서 제일 친한 사인데, 고등학교 때만 해도 그러지 않았어요. 숭의여고가 그때 제일 잘했거든요. 정말 엄청 잘했어요. 지현이랑은 인사도 안 하고 그냥 지나가면 ‘와, 박지현이다...’하고 그랬어요. 국가대표에 뉴스에도 여기저기 많이 나오던 진짜 ‘스타’였거든요. 지현이는.”

사실 우리은행에 오기 전, 박지현과 인연이 닿을 뻔도 했다. 지난 2019년 여름 태국에서 열린 U19 월드컵 명단에 함께 이름을 올렸었기 때문. 당시 박지현은 우리은행의 1년 차 신인이었고, 동갑이지만 유급을 했던 오승인은 청주여고 3학년 신분이었다.

“제가 그해 5월 5일에 경기를 뛰다가 십자인대가 끊어졌어요. 그런데 그 십자인대를 다치고 난 다음날 코치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너 이거 뽑혔는데 다쳐서 어떡하냐’라고. 처음에는 다치고 병원에 갔는데, 정밀검진이 아니라 뼈만 봤거든요. 병원에서 뼈만 봤을 땐 괜찮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다행이다. 갈 수 있겠다’ 했는데 그날 오후에 알았죠.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걸.”

“지금은 삼성생명에 있는 (이)수정이가 그때 대표팀에 뽑혀서 갔거든요. 수정이가 영상통화를 많이 해줬어요. ‘언니 여긴 어때요’, ‘언니 저 여기 잘 있어요’ 하면서. 많이 부럽더라고요. 저는 그때 무릎에 보조기 끼고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으니까요. SNS에 사진도 많이 올라오기도 하고...”

 

 

우리은행 오승인

고교 시절 두 번의 전방십자인대 수술. 그것도 모두 같은 왼쪽 무릎. 드래프트 당시만 해도 오승인은 왼쪽과 오른쪽 무릎의 근육이 눈에 보일 정도로 달랐다. 때문에 드래프트 당일 아침, 그가 1라운드에서 뽑힐 것으로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런 오승인을 우리은행은 1라운드에서 호명했다.

“생각도 못했던 지명이어서 어안이 벙벙했죠. 그렇게 빨리 불릴 줄도 몰랐고, 또 그게 우리은행일 줄도 몰랐으니.(웃음) 지금은 좋아요. 주위에서 훈련량이 많다고 하는데, 솔직히 운동 선수면 훈련은 많이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요. 여긴 프로잖아요. 사실 고등학교 때도 청주여고가 훈련량이 적은 편이 아니라서.(웃음) 힘들긴 하지만 버틸 만해요. 청주여고 김남수 선생님께 감사하죠. 4년 동안 예행연습하고 온 느낌이라고 할까? 하하.”

그의 이름이 불렸던 2020 드래프트 데이가 지난 2020년 1월 18일이었으니, 어느새 프로에 온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1년간 달라진 점도 많다. 프로 오기 전 그의 몸무게는 63kg이었는데 지금은 67kg이 됐다. 고작 4kg 차이인데 생색이냐고? 아니다. 당시 63kg은 근육이 거의 없는 지방으로 이루어진 63kg이었는데, 지금 몸무게는 지방이 거의 빠지고 근육으로 이루어진 노력의 산물이다.

 

 

“하루를 보낼 땐 시간이 정말 느리게 간다 생각했는데, 1년이 지나고 나니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갔더라고요. 벌써 1년이 지났는데 농구는 크게 안 는 것 같아서 더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사실 프로 1년 중 반을 재활만 해서 농구를 한 시간은 얼마 안 됐어요. 그래도 이제는 팀 훈련이나 경기를 같이 소화하면서 또 느끼는 게 많죠. 우리은행이 명문이잖아요? 숙소에 처음 와서 훈련을 처음 볼 때부터 ‘괜히 우승 맨날 하는 팀이 아니구나’하는 자부심이 들었어요.”

오승인이 느끼는 우리은행의 자부심은 괜한 말이 아니다. 그는 우리은행에 와서 가장 좋은 건 위성우 감독, 전주원 코치, 임영희 코치부터 시작해서 김정은, 박혜진 등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전설들을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제가 슛폼이 원핸드거든요. 원래 보통 초등학교 때 처음 슛을 배울 땐 다 투핸드로 던지는데, 저는 하필 슛을 배울 때 왼 손목이 부러졌어요. 그래서 오른손으로만 스냅을 연습했는데, 그게 자연스럽게 원핸드가 된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원핸드 슛폼으로 가장 유명한 선수가 또 저희 (김)정은 언니잖아요. 재활할 때나 훈련할 때나 어깨 너머로 많이 배웠죠. 언니 슛폼은 매일 봐도 멋있어요.”

아이러니한 것은 오승인의 1군 로테이션 합류는 그의 롤모델이었던 김정은이 이탈하는 바람에 성사됐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 12월 하나원큐와 경기에서 발목 부상을 당했는데, 결국 수술을 받고 시즌아웃됐다. 183cm 오승인은 김정은의 대체자로 최근 조금씩 기회를 받고 있다.

“제가 팀에 와서 재활만 하다가 팀 훈련에 처음 합류했을 때였어요. 정말 기본적인 훈련을 하는 데도 제가 계속 못 따라가고 놓쳤어요.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하고 속상하더라고요. 그때 정은 언니가 제 기분을 읽고 방에 와서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때 그 한마디가 힘이 돼 지금 이렇게 올 수 있었거든요.”

 

 

“정은 언니가 다치면서 기회를 받게 됐는데, 그 자리는 제가 아무리 건강했어도 완벽히 메울 수는 없는 자리예요. 단순히 보이는 기록 말고도 정은 언니가 코트 위에서 하는 일이 정말 많았거든요.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메울 수 없는 자리라고 처음부터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할 수 있는 만큼은 다하고 나오려고 해요. 지금 조금씩 나가고 있는데도, 정은 언니가 이 자리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느껴지더라고요.”   

쳇바퀴 같은 재활을 반복할 때만 해도 다시는 수술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몸 상태도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 아직 위성우 감독은 오승인을 벤치에서 호출할 때마다 조심스럽다고 말하지만, 오승인은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다.

“경기를 뛸 때나 뛰고 나서도 이제 붓기나 통증은 하나도 없어요. 다만, 감독 코치님이나 주위 분들이 오히려 조심스러워 하시니까 저도 제 몸을 조심히 또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아, 그런데 그런 건 있어요.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면 무릎이 쑤셔요.(웃음) 안 믿으시죠? 진짜예요! 일기예보 안 보고 있다가 무릎이 쑤셔서 ‘혹시?’하고 보면 어김없이 저녁에 비 예보가 있다니까요? 이건 저 말고도 또 수술했던 (김)진희 언니도 알아요.”

남들은 평생 한 번도 하기 힘든 수술을 어린 시절 두 번이나 겪었던 아픔. 그러나 그 아픔을 비 오면 쑤시는 무릎이라 승화하는 유쾌함이라니. 오승인은 정말 우리가 찾던 스타일지도 모른다.

 

사진 =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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