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대학에서 두목 호랑이라 불렸는데, KBL에 가서도 두목으로 불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당차게 도전장을 내민 오리온 프랜차이즈의 첫 1순위는 그로부터 1년 6개월 뒤 챔피언 결정전 MVP로 우뚝 서며 그 약속을 지켰다. 그랬던 어린 두목은 이제 어느덧 오리온에서 6시즌을 뛰며 '수호신'으로 팀을 이끈다. 오늘 여기, 지금껏 볼 수 없었던 50가지 문답으로 우리는 이승현과 가까워진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20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Q1. 휴식기를 맞아 외박을 받았다. 첫날 가장 먼저 한 게 뭐였나?

3일 휴가를 받았다. 집밖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쉬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집에서만. 밀렸던 드라마도 보고 게임도 하고 푹 쉬었다.

Q2. 나머지 이틀은? 감독님께서 “전생에 부부”라고 했던 이종현과 함께 보냈나?

말하기 싫지만 3일 중에서 3일 다 만났다.(웃음)

Q3. 누가 먼저 연락해서 만났나?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핸드폰 올려서 ‘뭐해?’, ‘보자’하고 봤다. 저랑 종현이가 둘 다 아끼는 친한 동생이 이번에 카페를 개업했다. 그 카페에서 커피도 먹고 저녁도 먹고 그랬다. 딱히 하는 건 없었는데 그냥 3일 다 만났다.

Q4. 이종현은 이적하고서 집은 구했나?

안 그래도 종현이 집이 일산이다.(웃음) 정말 잘 온 거다. 사실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을 때도 ‘이게 진짜 될까?’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되더라.

Q5. 보통 휴일은 어떻게 보내는 편인지?

휴일 말고 휴가를 길게 받을 땐 저도 성인이니까 뭐 팀 동료들과 맥주도 한잔하고, 여자친구 있을 땐 여자친구도 보고. 아니면 친구들도 보고. 시즌 땐 약속 잡고 보기가 힘드니까 주위 사람들을 보려고 하는 편이다.

Q6. 휴식기 전까지 출전시간이 평균 35분 38초. 리그 1위로 정말 길었다. 리그에서 아마 이 휴식기가 제일 반가운 선수였을 텐데.

반반이었다. 휴식기가 길어서 쉬거나 보완할 시간이 많아서 좋은 것도 있고, 너무 오래 쉬어서 걱정되는 것도 있고. 휴식기 전에 또 2연승을 하면서 흐름이 좋았는데 휴식기 후에 그 분위기가 무뎌지지 않을까. 반반이었다.

Q7. 사실 올 시즌뿐만 아니라 커리어 출전시간이 33분 16초로 계속 길었다. 익숙한가?

출전시간은 저 때문에 긴 거다. 진짜로.(웃음) 경기장에 있으면 저는 계속 뛰고 싶다. 올 시즌에도 강을준 감독님이 교체할 때면, 제가 ‘왜 빼냐’고 눈빛으로 감독님한테 항의한다. 감독님이 ‘한 타임만 쉬었다 들어가’라고 말릴 정도다. 그럼 그때야 ‘예’하고 쉰다. 사실 올 시즌은 또 팀 특성상 종현이가 오기 전까지는 제 백업 빅맨이 없다 보니 그 책임감 때문에 더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컸고. 최근에 종현이가 오고서는 출전시간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있다. 또 그게 맞는 거고.

Q8. 선수단이 지난 시즌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 지난 시즌 이맘때인 11월 24일 경기를 찾아보니 선발이 전성환-최승욱-최진수-이승현-보리스 사보비치더라. 지금 오리온의 가장 최근 선발은 이대성-허일영-김강선-이승현-제프 위디였다. 이승현 빼고 다 바뀌었는데? 

와, 듣고 보니 그렇네.(웃음) 사실 작년 라인업에는 (허)일영이 형이 원래 있어야 하는데, 자꾸 부상을 당했다. 제가 다 속상해서 많이 위로도 하고 그랬다. 이번에도 잠깐 다쳤었는데 복귀를 빨리해서 다행이다. 그런데 사실 작년에는 저도 저기 없을 뻔했다. 발바닥 근육이 찢어진 상태였는데, 팀에 부상이 너무 많다 보니까 저까지 빠질 수가 없더라. 근데 그게 독이 됐다. 제 경기력도 떨어지고, 팀 성적도 떨어졌고 그렇게 자신감도 떨어졌다. 저 자신에게 창피한 시즌이었다.

Q9. 지난 시즌 9.5점 5.9리바운드로 커리어로우 시즌을 보냈다가 올 시즌 13.3점 7.1리바운드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신인도 아니고 NBA에서도 이렇게 커리어로우에서 곧바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는 선수는 보기가 힘들다.

새로운 선수들이 와서 달라진 게 많다. (이)대성이 형이 와서 분위기를 많이 바꿨고, 강 감독님도 새롭게 오시면서 저한테 많은 역할을 주셨다. 그렇게 믿음을 주시니 저도 자신감을 찾게 되고 또 그 믿음에 보답하고자 잘하게 되더라.

Q10. 여러 기록이 눈에 보이지만 그중에서도 두 가지가 눈에 띈다. 먼저 출전시간은 늘어났는데 턴오버는 지난 시즌 1.2개에서 1.1개로 오히려 줄었다.

시즌 중에는 아니지만 시즌이 끝나고 나면 저도 기록을 본다. 군대 가기 전에는 제가 원래 턴오버가 없었는데, 갔다 와서 보니까 늘었더라.(웃음) 턴오버는 자신감의 차이 같다. 제 타이밍에 나가야 하는 패스가 자신감이 없을 땐 한 박자 느리게 가서 스틸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올 시즌에는 자신감도 있고 믿고 맡길 동료들도 많이 생기면서 좀 줄었다.

 

Q11. 반대로 어시스트는 2.7개로 데뷔 후 최다다. 전술의 변화일까?

아무래도 볼 소유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어시스트가 늘었다. 외국 선수도 제가 빅맨이랑 뛰는 게 커리어 처음이다. 그러다 보니까 골밑에서 찬스를 바로바로 줄 수 있어서 그 부분에서 늘어난 것도 있고.

Q12. 리그 최고의 빅맨 중 하나인데 커리어 덩크슛이 하나도 없는 것도 특이하다. 프로에 와서는 덩크를 시도조차 안 했다.

맞다. 몸 풀 때만 한다.(웃음) 언젠간 하긴 할 건데… 그런데 참 희한한 게 저한테는 그런 찬스가 잘 안 난다. 노마크 레이업도 기회가 없고 거의 수비자를 달고 하다 보니 덩크를 할 만한 기회가 없다. 또 제 플레이스타일이 또 막 돌파를 해서 높이 뛰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까… 팬분들이 항상 얘기하시더라. (함)지훈이 형이랑 저는 왜 덩크를 안 하냐고. 못하는 건 아니다. 언젠간 하겠다.

Q13. 최준용, 이종현, 이대성 등 친한 선수들은 인 게임 덩크를 좋아하지 않나?

맞다. 종현이, (최)준용이, 또 삼성 (김)준일이도… 근데 대성이 형은 이제 좀 힘든 것 같기도 하고.(웃음)

Q14. 초등학교 땐 유도를 했다고?

초등학교에 유도부가 있었다. 제가 워낙 어려서부터 체격이 크다 보니까 유도 코치님께서 권유를 하셨다. 처음에 부모님은 반대하셨는데, 제가 그때 살이 많이 쪄서 살 좀 빼라고 한번 시키셨다.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했는데, 하고 나서 20kg가 더 찌더라.(웃음) 가뜩이나 또래 중에서 키도 제일 큰데, 살도 찌니까 덩치가 너무 컸다. 금방 그만두긴 했지만 재밌긴 했다. 누구를 메쳐서 넘긴다는 그 쾌감이 좋더라. 

Q15. 유도는 잘했나?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코치님께서 저 보고 인재라 그랬다. 진짜 인재.

Q16. 언제 그만 뒀나?

아버지가 농구를 하셨는데, 대구 계성중에 아버지 친구분이 농구 코치로 계셨다. 그분이 그러시더라. 지금 준비하고 있는 유도 대회에서 우승하면 유도 계속하고 지면 농구하자고. 그런데 결승에서 판정패로 졌다. 그때부터 농구를 했다. 농구를 처음 시작할 때도 국가대표나 프로 가는 게 목표는 아니었다. 살 빼려고 했다. 살이 너무 쪄서 안 되겠다 싶었다.(웃음) 그렇게 농구 시작하고서 두~세 달 사이에 30kg을 뺀 거 같다. 지금도 몸무게가 완전히 고무줄이다. 하루 쉬면 2kg 찌고, 하루 뛰면 2kg 빠진다.

Q17. 그렇게 농구를 시작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악명 높았던 용산고에 진학했는데 어땠나?

어휴. 거긴 진짜 지옥이었다.(웃음) 왜 선배들이 항상 하는 말 있지 않나. 자기 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저도 제가 다닐 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그때 감독님이 지금 DB에 계신 이효상 코치님인데 그땐 정말 카리스마가 대단하셨다. 말도 못 걸고 눈도 못 마주치고 그랬다. 

Q18. 지금도 벤치에서 보면 무섭나?

지금은 완전 달라지셨다. 제가 가서 장난도 걸고 잘 웃어주시기도 하고. 그때만 힘들었다. 딱 졸업하는 순간 완전히 180도 다르게 대해 주시더라. 제자일 때만 엄하게 대하시는 본인의 지도 방식인데, 참 좋았다. 그래서 더 감사했고. 

Q19. 또 프로선수 이승현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은사가 있다면 누가 있을까?

고등학교 땐 이효상 코치님이 그랬고 대학 와서는 이민형 감독님이 많이 가르쳐 주셨다. 저를 믿고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완전히 저를 위한 팀을 만들어 주셨다. 평생 잊지 못할 분이다. 그땐 정말 제가 뭘 하든 다 믿어 주셨다. 제가 못 넣어서 지든, 제가 넣어서 이기든 오로지 믿어만 주셨다. 거기에 보답하려고 더 열심히 훈련하고 더 열심히 뛰었던 기억이 난다.

Q20. 고려대 이승현에게 연세대란?

얼마 전에 대학리그 결승전에서 연대에게 졌더라.(웃음) 뭐 다들 열심히 했겠지만 그래도 이겼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는 졸업해서 그런 경기는 신경이 안 쓰이겠다 싶었는데, 오히려 졸업하고 나니까 더 신경 쓰이더라. 지면 같은 팀 연대 출신 선수들이 괜히 장난도 걸어 오고. 우리 팀 (김)무성이가 연대 출신인데 안 그래도 되게 좋아하더라.

 

Q21. 참 빛나는 대학시절을 보냈다. 지금 다시 대학시절로 가게 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2014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 선발됐다가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제가 부족해서 탈락했지만 너무 아쉬웠다. 그때로 돌아가 2014년 그 최종엔트리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 농구하면서 제 유일한 한이라고 할까? 제가 많이 부족했다. 유재학 감독님 스타일을 잘 못 따라가기도 했고, 주문하시는 것도 잘 이행하지 못해 떨어졌다.

Q22. 당시 탈락 소식은 어떻게 접했나?

그때 최종엔트리가 나오기 전, 14명 선수가 뉴질랜드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갔다 와서 2~3일 정도 쉴 때였는데, 지금은 여자농구 감독님이 되신 이훈재 코치님한테 전화가 왔다. 탈락했다고 하시더라. ‘예, 알겠습니다’하고 아버지한테 곧바로 전화했다. ‘탈락했습니다’ 하니까 ‘알았다’라고 한숨을 쉬셨다.

Q23. 가장 먼저 뭘 했나?

처음에는 나도 ‘신경 쓰지 말고 운동이나 하자’했는데 갑자기 운동이 너무 하기 싫더라. 이민형 감독님께 가서 ‘감독님. 저 휴가 좀 주십쇼’하고 일주일 정도 휴가를 받았다. 그러고 오후 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술을 마셨다. 너무 속상하니까 먹어도 먹어도 취하지가 않더라. 살면서 제일 많이 마셨다.

Q24. 심각한 와중에 미안한데, 주량과 먹성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현주엽 전 감독님과 필적한다고 하던데.

하하하. 저도 현 감독님 방송을 봤는데 저는 그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뭐 저도 많이 먹긴 먹는 스타일이긴 하다. 종현이랑 둘이 고깃집에 가면 보통 10인분은 먹으니까. 휴가가 길면 술 한잔하는 것도 좋아한다. 이겼을 때 먹으면 기분 좋고, 졌을 때 먹으면 속상한 게 위로 되고. 

Q25. 주량은 어느 정도인가?

그건 저도 정확히 모르겠다. 컨디션 안 좋을 땐 한 병 반만 먹어도 취하고 좋은 날에는 아무리 먹어도 취하지가 않는다. 기복이 있다. 

Q26.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서 프로행. 오리온에 지명됐다. 

지명됐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건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1순위 지명이 정말 기뻤지만 그건 잠시였다. 1순위가 주는 기대치, 보답해야 한다는 그 부담에 고민이 많았는데, 허일영 선수가 정말 큰 도움을 줬다. 제 프로 적응에 제일 큰 도움을 준 형이다. 저랑 형이랑 나이 차가 무려 7살 차다. 그때 일영이 형은 이미 고참이었고 친해지기 힘든 나이 차인데, 정말 많이 챙겨줬다.

Q27. 추일승 감독님에 대한 생각은 어땠나?

추 감독님도 참 많이 도와주셨다. 신인 때부터 출전시간이 30분을 넘게 밀어주셨으니까. 실수를 하면 혼내시기도 했지만, 잘할 땐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또 첫 우승을 함께 하지 않았나. 감독님도 저도 처음. 작년에 그만두셨을 때 저는 마침 대표팀에 있었다. 그것도 해외에 있어서 전화를 드릴 수도 없어 장문의 문자를 드렸다. 너무 감사한 분이다.

Q28. 신인 지명 때 ‘KBL 두목이 되어 보겠다’라는 멘트는 혼자 준비했나?

아…(웃음) 그때 드래프트 추첨 후 쉬는 시간이었다. KBL 직원분이 ‘각자 지명 후 각오를 준비하라‘고 하시더라. 그때 1순위가 준일이 아니면 저였던 분위기였는데, 제가 하도 어려워하니까 KBL 직원분께서 소스를 주셨다. 대학 때 별명을 한번 살려보자고. 강하게 한번 가보자고. 그렇게 함께 머리를 맞대 나온 별명인데 그게 아직까지 따라다닐 줄은 몰랐다.(웃음) 결과적으로는 뭐 대성공인 거고. 그분들 연맹에 아직도 계신다. 그 뒤로 친해져서 장난도 친다. ‘아, 우리 경기 일정 좀 쉬엄쉬엄 잡아줘요~’하면서.

Q29. 이후 한 6년이 지났는데, 두목호랑이가 되겠다는 그 약속은 지금 어느 정도 지킨 것 같나?

제 농구인생의 마지막 목표가 다섯 손가락에 반지를 다 끼는 것이다. 지금은 한 손가락이다. 그러니까 20% 정도 했다. 농구스타일 롤모델은 현주엽 감독님이나 (오)세근이 형이었지만, 선수로서 롤모델은 동근이 형이었다. 그 누구보다 성실히 열심히 뛰었던, 마인드가 너무 멋진 선배님이었다. 동근이형이 6개를 끼고 은퇴했는데, 나도 형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Q30. 별명 부자다. 두목 호랑이도 있고 최근에는 ‘고양의 수호신’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수호신…(웃음) 1라운드 중에 감독님이 어느 날 ‘우리가 홈 경기에서 이기면 네 별명 하나를 공개하겠다’고 예고를 하셨다. 그러고 아마 LG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경기가 끝나고 나서 터뜨리셨더라. ‘고양의 수호신’이라고. 저도 처음 알았다. 

 

Q31. 팬들 사이에서는 ‘용수(용병 수비, 외국 선수를 잘 막아서 지어진 별명)라는 별명도 있다. 

알고 있다. 좋기도 하지만 싫기도 한 별명이다. 그런 닉네임을 지어주시는 것 자체가 관심이기 때문에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의식도 있다. ‘얘는 용병 수비밖에 못해’, ‘그 수비 말고는 없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래서 그런 평가를 바꿔보고자 열심히 뛰기도 했다. 더 자극이 됐다. 

Q32. 그래도 워낙 잘하는 걸 어떻게 하나. 최근 전자랜드전에서도 헨리 심스와 에릭 탐슨을 잘 막으면서 화제가 되지 않았나. 특히 탐슨의 포스트업을 막다가 순간적으로 힘을 빼면서 상대를 넘어뜨린 그 수비는 일품이었다. ‘용수’에 대한 비결이 있다면?

주위에서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본능적이다. 탐슨의 포스트업을 막은 수비도 생각하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몸이 반응했다. 그날 또 심스가 포스트업을 할 때 반대쪽에서 스틸을 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그건 제가 원래 자주하는 스틸이었다.

Q33.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항상 자신보다 큰 선수를 막지 않나?

큰 선수를 막을 땐 그런 생각이 있다. 키가 큰 선수들은 이 밑, 그러니까 하체 쪽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저는 어차피 상대보다 작으니까 이 쪽을 공략해보자는 마인드로 수비한다. 특히 리그에서는 (하)승진이형을 상대하면서 연마를 좀 했다. 그러면서 국제대회에서 큰 선수 막을 때 잘 활용했다.

Q34. 가장 막기 어려웠던 외국 선수는 누구였나?

라건아. 건아는 정말 모든 면에서 막기 어렵다. 힘에서도 당연히 밀리는데, 트랜지션이 그렇게 빠른 선수는 살면서 처음 봤다. 제가 골을 넣어도 건아는 이미 우리 코트로 뛰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40분을 뛰어도 지치지를 않는다. 어쩌다 제가 한 번 막으면 여유 있게 ‘굿디펜스’ 한마디하고 가더라. 정말 잘하는 선수다. 

Q35. 대표팀에서 같이 뛰었을 땐 어땠나?

항상 ‘동료로 뛰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는데 대표팀에서 그게 이뤄졌다. 함께 뛰어보니 정말 믿음직스럽다. 커리어 초반에는 슛이 없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미들 슛을 장착해오니 정말 약점이 없는 선수더라. 인간적으로도 좋은 사람이고. 그렇게 친해져서 사석에서도 자주 보는 사이가 됐다.

Q36. 라건아와 모여서 놀 땐 의사소통은 어떻게 하나?

대성이 형이 거의 다 해준다.(웃음) 그리고 건아도 한국에 오래 있다 보니까 이제 웬만한 건 다 알아듣는 편이고.

Q37. 그럼 트래쉬 토크가 가장 많았던 외국 선수는 누구였나?

예전에 뛰었던 에릭 와이즈라고. 여러 팀에서 뛰었던 선수가 있는데 저한테 정말 말을 많이 했다.(웃음) 사실 욕인지 뭔지 잘 모르겠는데 골밑에서 쉼 없이 계속 말을 걸더라. 말재주뿐만 아니라 손재주도 워낙 좋아서 제가 공격할 때도 스틸을 많이 당한 기억이 있다.

Q38. 골밑에서 플레이하는 것과 외곽에서 플레이하는 것 둘 중 어느 플레이를 더 선호하나?

당연히 골밑에서 하는 게 좋은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라인이 있다. 3점 라인 앞에 미들 라인으로, 골대를 바라봤을 때 오른쪽 180도 자리다. 그 자리에서 슛 쏘는 것도 좋아하고 치고 들어가서 페이드 어웨이를 쏘는 것도 좋아한다. 원래 180도 자리가 어려운 자리인데 이상하게 저는 편하더라. 팀 연습할 때도 거기서 슛을 쏘면 형들도 그냥 믿고 들어간다고 농담한다.

Q39. 외국 선수 제도가 최근 많이 바뀌었는데, 가장 좋았던 시즌은?

좋았던 시즌은 저희가 우승했던 2015-2016시즌이다. 조 잭슨과 애런 헤인즈가 팀에 있었는데, 팀이 이기니까 당연히 좋았다.

Q40.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시즌은?

이것도 2015-2016시즌이다.(웃음) 이겨서 좋기는 한데 잭슨과 헤인즈가 외국선수 수비가 안 되다 보니까 제가 외국선수 수비를 해야 해서 힘들기는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그땐 자부심도 있었다. 저희가 그렇게 우승하고서 이후 단신 외국 선수를 영입하는 팀이 늘었는데, 우리 팀이 그런 트렌드를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Q41. 그 시즌 챔프전 5차전에서 감기몸살로 아침부터 링거를 맞고 오지 않았나? 그런데 그날 무려 23점을 폭격했다.

4차전 끝나고 전주에 내려가야 하는데 갑자기 경기가 끝나자마자 몸이 너무 처지더라. 너무 힘이 없어서 보니 몸살 기운이 좀 있었다. 코칭스태프에 얘기를 해서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왔다. 

Q42. 조던의 ‘플루게임’도 그렇고 선수들을 보면 그렇게 감기에 걸리거나 어딘가 불편할 날 오히려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픈 구석이 있으니까 이걸 이겨내겠다는 그런 정신이 몸을 지배하게 되는 것 같다. 집중력이 극대화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또 챔프전 같이 워낙 큰 경기에서는 팬들의 환호도 크다 보니까 이런 몸의 업다운도 두 배로 요동친다.

Q43. 국가대표에서의 헌신 때문에 우리나라 농구 팬 중에 이승현을 싫어하는 팬은 유독 없는 느낌이다. 이승현에게 국가대표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뛸 땐 그런 생각으로 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농구 잘하는 12명이 모여서 뛰는 것 아닌가. 국가대표에서는 공격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더 애쓰려고 한다. 그렇게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팀 플레이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뛴다. 제 역할은 파워포워드니까 남들이 하기 어려워하는 리바운드나 수비에 집중하자는 마인드다. 그렇게 뛰다 보면 공격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농구라는 게 어차피 뛰다 보면 찬스는 무조건 나오기 마련이다. 

Q44. 국가대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제일 아쉬웠던 경기는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패배했던 이란과 4강전이 아쉬웠고… 가장 기분 좋았던 경기는 농구월드컵에서 코트디부아르를 이긴 경기였다. 전 세계 농구 국가가 모인 자리에서 거기서 1승을 했다는 것과 대표팀에 25년 만의 1승을 안겼다는 게 기뻤다. 

Q45. 농구 A매치는 항상 아시아권에서 비슷한 나라를 많이 만나는 편인데, 만나면 가장 재밌는 나라는 어디인가?

저는 일본전이 제일 재밌다. 승부욕 자체가 다르다. 이유는 여러분과 같다. 일본한테는 지고 싶지 않다. 

Q46. 지난 휴식기 전 팀의 15경기를 평가한다면?

초반, 팀에 부상 선수가 많은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부상 선수가 나오는 가운데 잘 극복해낸 건 다행이었다. 그래도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된다. 휴식기 동안 새로운 선수들과 하루 빨리 손발 맞춰서 휴식기가 끝나고 나서 첫 경기인 12월 3일 경기부터 다시 치고 올라가야 한다.

Q47. 올 시즌 개인적인 목표는?

개인적인 목표라… 사실 저는 농구선수는 2점을 넣든 20점을 넣든 팀이 지면 꽝이라고 생각한다. 20점을 넣고 질 바에는 2점을 넣고 이기는 게 더 좋다. 자기 혼자 잘해서 경기에 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무조건 팀 승리가 목표다. 다만, 한 가지 큰 목표가 있다면 지난 시즌의 부진을 씻어내는 거다. 좋지 못했던 시즌 시즌을 털어 올해 이승현이 부활하고 오리온도 부활했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

Q48. 플레이오프에 대한 갈증도 있겠다.

물론. 저희가 우승할 때 유니폼이 보라색이었다. 챔프전에서 관중석을 수놓던 팬들의 보랏빛 물결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정말로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다시 꼭 그런 장면을 만들겠다.

Q49. 은퇴는 언제쯤 생각하고 있나?

코트에서 40분 풀타임을 뛰라 그랬을 때 힘들어서 못 뛰면 은퇴를 생각할 것 같다. 선수는 코트 위에서 뛰어야 사는 거다. 

Q50. 은퇴 후 계획은?

저는 농구계에 계속 있을 것 같다. 지도자든 뭐든 아마 농구 쪽에 있을 거다. 아,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제 손으로 어린 선수들을 키워보고 싶은 꿈도 있다. 뭐 아직은 먼 미래 일이지만, 저는 농구가 너무 좋다.

 

사진 = 한규빈 기자, KBL 제공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