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서울 삼성 썬더스는 최근 강행군을 치렀다. 10월 31일 전주 KCC전을 시작으로 11월 8일 안양 KGC전까지 9일간 다섯 경기를 소화하는 험난한 일정. 더군다나 10월 31일 순위표를 기준으로 다섯 경기 중 3팀이 3위 이내 강팀으로, 당시 1승 6패를 기록하던 삼성에게는 너무도 잔인한 일정이었다.

그로부터 9일 뒤, 삼성은 그 험난한 다섯 경기에서 4승 1패를 거두며 기가 막힌 반전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패배한 전자랜드전도 3점 차 분패로 진한 아쉬움이 남았던 경기였다.

이 같은 삼성의 최근 반전에는 베테랑 김동욱의 부활, 김현수-이호현-이동엽 등 가드진의 분전 등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그 중심에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외인 아이제아 힉스가 있다. 

 

개막을 앞두고 삼성의 약점은 명료했다. 3가지 요소의 부재.

첫 번째로 천기범의 상무 입대로 인한 주전 가드의 부재. 두 번째로 김준일, 이관희, 임동섭, 장민국 등 국가대표급 국내 선수들은 많지만 그중에서 경기의 흐름을 바꿀만한 ‘크랙’, 즉 에이스의 부재. 마지막으로 언제나 골머리를 앓던 골밑 수비수의 부재.

그러나 개막 후 12경기, 힉스는 이상민 삼성 감독의 이 모든 고민을 홀로 해결하고 있는 모양새다. 

힉스는 올 시즌 경기당 18.3점을 올리면서도 2.7개 어시스트를 함께 기록 중이다. 2.7어시스트는 올 시즌 KBL 전체 외국 선수 중 전체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부문 꼴찌인 LG 캐디 라렌(0.5개)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고, 2위 SK 자밀 워니(2.1개)와 비교해도 큰 차이다. 

특히 김준일이 발목 부상으로 이탈하고 치른 1일부터 8일까지 최근 4경기 기록을 살펴보면 힉스의 진가는 더 선명히 드러난다. 

이상민 감독은 주포 김준일이 부상으로 빠지자 힉스에게 골밑이 아닌 바깥에서 공을 잡게 해 공간을 넓게 쓰는 전술로 계획을 수정했다. 드라이브 앤 킥. 돌파를 시도해 상대가 골밑을 내주면 그대로 골밑 슛을 넣으면 되고, 상대가 골밑에 몰리면 외곽에 손을 벌리고 있는 다른 선수들에게 패스를 한다. 

탑에서 공을 잡고 직접 돌파를 할 수 있는 속도와 바깥에 있는 동료를 볼 수 있는 코트 비전 두 가지를 모두 갖춘 힉스를 위한 맞춤 전술. 특히 개인 최다 어시스트인 8어시스트를 기록한 지난 5일 창원 LG전의 힉스의 움직임은 NBA 밀워키 벅스의 야니스 아데토쿤보를 떠오르게 했다.

바꾼 전술의 효과는 굉장했다. 이 기간 삼성은 경기당 10.0개 3점슛을 성공하며 이 부문 전체 1위를 기록했다. 전체 성공률도 37.4%로 높았는데, 김광철이 66.7%, 장민국 64.3%, 김동욱 53.8%, 김현수 38.1%, 이호현 33.3%로 모두 ‘힉스 프리미엄’을 누렸다.

돌파를 통해 스스로 상대 수비를 폭격하는 ‘크랙’ 역할과 동시에 팀 내 최고의 패서까지 자처하며 이상민 감독의 고민을 지운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우울한 시즌을 보냈던 삼성 팬들에게 힉스가 유난히 반가운 이유는, 그의 공격 코트에서의 활약보단 수비 코트에서의 활약 때문일 것이다.

힉스는 올 시즌 경기당 2.2개 블록슛을 찍어내고 있다. 독보적인 리그 1위 기록.

골밑을 지키다가 제자리에서 뜨는 블록, 상대 공격을 뒤에서 쫓아가 걷어내는 체이스 다운 블록 등  매 경기 하이라이트 필름을 찍어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지난 8일 KGC전 종료 직전 팀을 구한 체이스 다운 블록은 최근 몇 시즌 KBL의 '짤방'을 모두 통틀어도 손에 꼽힐 명장면 중 하나였다.

삼성 가드진들은 “(아이제아) 힉스가 골밑을 든든히 지켜주니, 앞선에서도 ‘우리가 뚫려도 뒤에 힉스가 있다’는 마음으로 더 타이트하게 붙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힉스의 활약 속 삼성은 올 시즌 4.4블록슛으로 이 부문 전체 1위를 마크하고 있는데, 삼성은 프로농구 원년부터 단 한 번도 블록슛 1위를 기록한 적이 없는 팀이다.

힉스와 함께 하는 삼성은 이 골밑에서의 역사적인 페이스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또 시즌이 끝나는 날, 이들의 종착역은 과연 순위표 어디쯤일까? 올 시즌 우리가 삼성의 경기를 유심히 지켜봐야 할 이유다.

 

사진 = KBL 제공
인포그래픽 = 원석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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