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키=이동환 기자] 이제 김낙현은 KBL 최고 가드 자리를 노리는 선수가 됐다.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는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정규리그 1라운드를 7승 2패 리그 전체 1위로 마감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다. 시즌 개막 전 전자랜드는 국내선수진 불안으로 인해 약체로 분류됐던 팀. 헨리 심스-에릭 탐슨으로 구성된 외국선수 조합도 높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하지만 개막 첫 2경기에서 우승후보로 꼽혔던 KGC인삼공사와 SK를 잇따라 무너뜨렸고, 이후 6경기에서도 무려 5승을 챙기며 순식간에 돌풍의 주인공이 됐다.
전자랜드 상승세의 중심에는 리그 최고급 가드로 성장한 김낙현이 있다. 1라운드 9경기에서 김낙현은 평균 25분 49초 동안 14.2점 2.2리바운드 5.9어시스트 야투율 44.7%를 기록했다. 득점은 국내 4위, 어시스트는 국내 2위다.
특히 3점슛 부문에서 생산력과 효율이 엄청나다. 경기당 5.6개를 던져 2.4개를 성공하고 있다. 성공 개수는 두경민(2.9개)에 이어 리그 전체 2위다. 3점슛 성공률이 무려 44.0%에 달한다.

김낙현의 올 시즌 3점슛 효율이 더 놀랍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체력과 힘이 요구되는 ‘풀업(pull up) 3점슛’을 많이 던지는 선수이기 때문.
보통 드리블 이후에 던지는 슛을 풀업 점프슛, 볼을 받은 후 드리블 없이 던지는 슛을 캐치앤슛이라고 부른다.
주전 가드이자 전자랜드 공격의 핵심인 김낙현은 올 시즌 들어 풀업 점프슛 빈도가 더 늘어났다. 얼리 오펜스 상황에서 동료들의 스크린을 받은 후 드리블하다가 3점슛 라인 앞에서 풀업 3점슛을 던지는 상황이 많아졌는데, 이 슛이 매우 높은 확률로 림에 꽂히고 있다. 빠른 픽앤롤 상황에서 본인이 직접 3점슛 기회를 만들어서 던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풀업 3점슛은 많은 체력과 힘이 요구된다. 드리블 도중 상대 수비의 허점을 파악해서 빠른 타이밍에 3점슛을 던져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난이도도 높다. 탁월한 하체 힘과 공중 밸런스를 겸비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플레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올 시즌 김낙현은 그 어려운 걸 손쉽게 해내고 있다.

김낙현의 강력한 풀업 3점슛은 전자랜드 팀 전체 오펜스에도 엄청난 효과를 창출한다.
김낙현이 2대2 게임을 시도할 때 상대 수비는 3점슛 라인 앞을 절대 비워둘 수 없다. 때문에 김낙현의 마크맨은 스크린의 뒤를 돌아가는 수비보다는 스크린 위를 뚫고 김낙현을 쫓아가는 수비를 해야 한다. 이것 자체가 김낙현의 마크맨에게는 상당한 부담이다. 스크리너 수비수도 마찬가지다. 3점슛 라인을 비워두고 골밑으로 처지지 못하고 3점슛 라인 가까이 더 올라와줘야 한다.
이처럼 김낙현의 풀업 3점슛이 상대 수비의 적극적인 3점 대응을 강제함으로써, 전자랜드는 3점슛 라인 안쪽 공간이 넓어지는 스페이싱 효과를 얻게 된다.
이 공간을 이대헌, 에릭 탐슨, 차바위, 전현우, 정영삼 같은 선수들이 드리블 돌파와 컷인으로 효과적으로 침투함으로써 미드레인지 구역과 페인트존의 득점 효율도 극대화되고 있다.
평소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은 농구선수에는 3가지 단계가 있다고 설명해왔다.
1단계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오픈찬스에서 공격을 하는 선수’, 2단계는 ‘스스로 본인의 공격을 만들 수 있는 선수’다. 그리고 3단계는 ‘1단계, 2단계를 다하면서 동료들의 기회까지 챙겨주는 선수’다.
이번 비시즌 중 유 감독은 김낙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김낙현이 3단계에 도달하는 선수가 돼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 바 있다.
적어도 올 시즌 김낙현은 3단계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어시스트를 직접 뿌리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지만, 3점슛 라인 앞에서 수비를 몰고 다니며 강력한 스페이싱 효과를 창출한다. 그리고 전자랜드 동료들은 김낙현이 만들어내는 공간을 활용해 보다 수월하게 득점을 생산하는 중이다.

NBA에서는 스테픈 커리가 이런 방식으로 팀 전체 공격에 크게 기여한다.
엄청난 3점슛 능력을 갖춘 커리가 코트에 투입되면 수비수들은 커리를 막기 위해 3점슛 라인 뒤쪽까지 그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이렇게 커리가 만들어낸 스페이싱 효과를 통해 골든스테이트는 팀 공격의 효율을 극대화한다.
미국 현지에서는 이 같은 커리의 능력을 ‘커리 그래비티(Curry Gravity)’라고 부른다. ‘커리의 중력’이라는 의미로, 수비수들을 림에서 아주 먼 곳까지 붙이고 다니는 커리의 특별한 능력을 일컫는 표현이다.
플레이스타일은 커리와 꽤 다르지만, 적어도 1라운드의 김낙현은 자신만의 ‘낙현 그래비티’로 전자랜드의 공격을 이끈 에이스였다. 지금의 김낙현을 그저 점프슛 잘 넣는 선수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과연 김낙현은 과연 2라운드에서도 MVP급 활약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전자랜드는 4일 SK를 상대로 2라운드 첫 승 사냥에 나선다.
사진 = KBL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