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2007년 봄,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으로 한 대릴 모리는 휴스턴 로케츠에 단장으로 부임했다. 지금이야 비농구인 단장을 쉽게 볼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모리 단장은 NBA 최초의 비농구인 분석가 출신의 단장이었다. 그야말로 파격.

그러나 2007년의 NBA는 33살의 풋내기 그것도 분석가 출신 단장의 숫자놀음에 관대할 리 없었다. 평생을 코트에서 보낸 선수들이었기에 이러한 저항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모리 단장이 부임하고 1년 뒤인 200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33순위 픽으로 조이 도시(전 전주 KCC 이지스)를 데려왔을 때 일화다.

그러나 도시는 리그 적응에 실패했고, LA 클리퍼스가 그보다 2순위 뒤인 35번에서 뽑은 디안드레 조던이 리그 최고의 센터로 성장하자 모리 단장에 대한 조롱은 더욱더 커졌다. 

도시는 지명 당시 휴스턴에 부름을 받고 “은퇴 후 포르노 스타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도시의 이 발언은 모리 단장의 실패를 더욱더 우스꽝스럽게 하는 기폭제가 됐다. 이전해 드래프트에서 26순위와 31순위로 뽑아 NBA 주전으로 거듭난 애런 브룩스나 칼 랜드리의 성공은 모두 잊혀졌다.

그중에서도 언제나 거침 없이 소신을 말하는 NBA의 전설 찰스 바클리는 2015년, TV쇼에서 모리 단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숫자를 믿는 바보들 중 하나야. 나는 숫자는 언제나 헛소리라고 믿어왔거든. 그건 똑똑이들이 이 판에 끼고 싶어서 만든 헛소리야. 왜냐고? 걔네들은 여기서 뛸 재능이 없거든. 마이애미 히트가 무슨 숫자놀음을 했지? 시카고 불스가 그랬나?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그냥 그들은 최고의 선수들과 코치진을 가졌을 뿐이야. NBA는 재능의 장이라고.” 

“숫자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어. 걔네들은 코트에서 뛰어본 적이 없고, 고등학교 때 여자도 만나본 적 없지. 그리고서 이 판에 끼고 싶은 거야.”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오늘, 바클리는 아직도 모리 단장의 숫자놀음을 불신하고 있을까?

휴스턴은 바클리의 그 발언 뒤 16-17시즌부터 치른 정규시즌 318경기서 68% 승률로 서부에서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부임 당시 원투펀치였던 야오 밍과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를 모두 부상으로 잃었지만, 13년간 77건의 트레이드를 통해 단 한번도 5할 승률 아래로 시즌을 마친 적이 없었다. 8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은 리그에서 가장 오래 이어지고 있는 연속 진출 기록이다.

그러나 바클리의 인정과 상관없이 이제 모리 단장과 휴스턴의 동행은 끝났다.

지난 16일(이하 한국시간) 모리 단장은 휴스턴 단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ESPN에 따르면, 모리 단장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뒤 틸먼 퍼티타 구단주에게 직접 찾아가 사임 의사를 전했다. 모리 단장과 휴스턴의 13년간 동행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19일, 모리 단장은 지역지 휴스턴 크로니클에 전면 광고를 실었다. “제임스 하든은 내 인생을 바꿨다”라는 제목으로. 다음은 전문 중 발췌.

 

놀라움 속에 있던 지난 14년, 저에게 보내주신 여러분의 사랑과 지지 그리고 에너지에 감사합니다.

제임스 하든은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이 페이지 전체를 하든에게 보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는 제 인생뿐만 아니라 농구라는 게임에 혁명을 불러일으켰죠. 예전에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그 혁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농구는 하든으로 인해 다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다음 세대들이 하든을 따라 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어요.

지금도 저는 하든과 더 이상 전술을 논의할 수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하든을 위해 드와이트 하워드, 크리스 폴, 러셀 웨스트브룩 등 명예의 전당급 선수들을 영입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하든이 휴스턴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응원할 겁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야만 하니까요.

끝으로, 휴스턴 시민들과 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의 지지는 제게 언제나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성공을 이끈 원동력이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진심을 담아,
대릴 모리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33살 분석가 출신의 혁명은 끝내 우승에 닿지 못했지만, 그의 위대한 도전을 실패라 비웃는 소시민은 없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대릴 모리 트위터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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