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키=이동환 기자] LG의 ‘닥공농구’는 시작부터 무섭고 강력했다.
LG가 KBL 컵 대회 첫 경기에서 화끈한 공격 농구를 선보이며 짜릿한 역전승을 챙겼다. 창원 LG 세이커스는 20일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열린 2020 MG새마을금고 KBL 컵대회 첫 날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와의 A조 경기에서 99-93으로 이겼다.
이날 전반을 43-56으로 뒤진 채 마친 LG는 3쿼터에만 37점, 후반에만 56점을 쏟아 붓는 막강한 화력을 뽐내며 현대모비스를 눌렀다. 공격 농구를 선언한 조성원 감독은 첫 경기부터 빠르고 화끈한 농구를 선보이며 팬들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이날 LG의 공격 템포는 무척 빨랐다. 40분 동안 총 83개의 슛을 시도했고 3점슛도 28개나 던졌다. 분당으로 나누면 1분에 2개가 넘는 슛을 던진 셈이었다.
2019-2020시즌 KBL 경기당 야투 시도 1위 팀 KGC인삼공사의 기록도 69.6개로 70개가 채 안됐다. LG는 그보다도 약 13개가 많았다. 컵 대회 첫 경기에서 LG가 보여준 공격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LG의 공격은 현대농구의 트렌드 3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모습이었다. ①무척 빠른 템포로 상대 수비를 공략했고, ②적절한 스페이싱이 이뤄졌으며, ③때로는 포지션 파괴적이었다.
지금부터 현대모비스와의 3쿼터 경기 장면 3가지를 통해 LG가 ‘닥공농구’를 전술적으로 어떻게 코트에서 설계하고 실현했는지 파악해보자. 실제 경기 영상을 보며 기사를 읽으면 이해가 더 쉽고 빠를 것이다.

1. 코너를 비워라(스페이싱)
이날 LG의 얼리 오펜스 장면 중에 상당히 많은 장면이 코너를 비운 상태에서 전개됐다. 코너를 비운 채 빠르게 2대2 게임을 시작하는가 하면, 수비의 역동작을 이용해 백도어 컷으로 득점하는 장면도 있었다.
코너를 비우는 것은 현대농구에서 스페이싱을 위해 활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코너가 완전히 비워진 사이드에서 공격수들이 2대2 게임을 전개하거나 볼 없는 움직임을 가져가면, 넓은 공간에서 손쉽게 득점을 올릴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NBA에서는 LA 레이커스, 토론토, 마이애미 같은 팀들이 한쪽 코너를 비운 채 공격을 전개해 상대 수비를 손쉽게 무너뜨리곤 한다. 세 팀 모두 NBA에서 스페이싱을 잘하는 대표적인 팀들이다. 컵 대회 첫 날의 LG 역시 이들처럼 코너를 비우고 공격을 펼치는 모습을 보였다.

위 사진은 3쿼터 1분여를 남기고 진행된 LG의 공격을 나타낸 것이다. 공격 제한 시간이 16초 남은 상황에서 김시래와 케디 라렌이 왼쪽 사이드에서 바로 픽앤롤을 시작한다.
이때 나머지 선수들의 위치를 주목하자. 위크사이드(코트를 반으로 갈랐을 때 볼이 없는 사이드, 여기서는 오른쪽 사이드)에서 조성민은 탑에, 서민수는 45도에, 박병우는 코너에 위치했고 그 결과 스트롱 사이드(코트를 반으로 갈랐을 때 볼이 있는 사이드, 여기서는 왼쪽 사이드)는 코너가 완전히 비어버렸다.
이런 형태로 스페이싱을 해서 2대2를 전개하면, 상대 수비는 스트롱 사이드에서 림을 지키는 헬프 수비를 가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위크사이드에서도 헬프 수비를 가기 까다로워진다.
무엇보다 위 장면에서 위크사이드에 서 있는 LG 선수 3명(조성민, 서민수, 박병우)가 모두 3점슛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이들을 마크하고 있는 현대모비스 수비수들은 자신의 마크맨을 버려두고 과감하게 페인트존에 처져서 수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골밑으로 처져서 수비하는 순간 눈썰미 빠른 김시래가 킥아웃 패스를 통해 이들에게 오픈 3점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코너를 비우는 선택을 통해 LG는 볼을 가진 김시래의 돌파 공간과, 스크린 이후 림으로 달려가는 케디 라렌을 위한 공간이 동시에 넓어지는 효과를 얻었다.
이 장면에서 페인트존 한가운데로 돌파한 김시래는 이후 림으로 함께 달려오는 라렌에게 짧은 패스를 연결했고, 라렌은 투 핸드 덩크로 손쉽게 득점을 마무리했다.
LG가 코너를 비운 것은 이 장면뿐만이 아니었다.
3쿼터 7분 3초를 남긴 상황에서는 김시래와 케디 라렌이 공격 시작 4초 만에 오른쪽 사이드에서 픽앤롤을 시도했다. 이때도 나머지 LG 선수 3명은 모두 반대편 사이드에 가 있었고, 스트롱사이드의 코너는 완전히 비워져 있었다. 이 장면에서 LG는 2차 공격이었던 위크사이드의 백도어 컷 득점이 나오며 멋지게 공격을 성공했다.
*3쿼터에 LG가 코너를 비우고 전개한 대표적인 픽앤롤 장면들
- 9분 41초: 케디 라렌-김시래 엘보우 픽앤롤(오른쪽 사이드, 남은 시간 16초)
- 7분 3초: 김시래-케디 라렌 픽앤롤(왼쪽 사이드, 남은 시간 15초)
- 6분 25초: 조성민-케디 라렌 픽앤롤(오른쪽 사이드, 남은 시간 16초)
- 1분: 김시래-케디 라렌 픽앤롤(오른쪽 사이드, 남은 시간 16초)
느린 템포 속에 2명의 빅맨 간의 하이-로 게임에 집중했던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LG는 코너를 비운 채 공격을 전개하는 상황이 많지 않은 팀이었다. 페인트존을 공략하려고 시도했던 빅맨들 간의 하이-로 게임이 오히려 코트를 좁게 만들고 페인트존 득점을 어렵게 만드는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컵 대회 첫 경기에서는 달랐다. 하이-로 게임은 줄어들었고, 그 대신 4아웃(4명의 선수가 3점 라인 밖에 서 있는 것) 혹은 5아웃(5명의 선수가 3점 라인 밖에 서 있는 것) 형태로 선수들이 자리를 잡거나 코너를 비우는 식으로 스페이싱을 한 후에 얼리 오펜스를 전개하며 모든 선수들에게 비교적 넓은 공격 공간에서 공격을 펼칠 수 있었다. 조성원 감독 체제의 농구는 첫 경기부터 훌륭한 스페이싱을 통해 얼리 오펜스의 힘을 극대화했다.

2. 케디 라렌을 위한 업 스크린(얼리 오펜스 패턴)
이날 LG의 얼리 오펜스 패턴 중에 눈에 띄었던 것 하나가 바로 케디 라렌을 위한 ‘업 스크린’이었다.
위 사진을 보면 업 스크린과 다운 스크린 상황이 동시에 나와 있다.
왼쪽 상황처럼 공격수가 하프라인 쪽을 바라보며 거는 스크린을 업 스크린(up screen)이라고 한다. 반대로 오른쪽 상황처럼 공격수가 림 쪽을 바라보며 거는 스크린은 다운 스크린(down screen)이다. 하프라인이 위쪽에, 림이 아래 쪽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날 LG는 케디 라렌을 위해 가드들이 업 스크린을 걸어 얼리 오펜스를 전개했다.

위 사진은 3쿼터 5분 29초를 남기고 시작된 LG의 공격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바로 직전 수비 상황에서 LG는 현대모비스의 전준범에게 3점슛을 허용했지만, 공격 시작 3초 만에 김시래가 오른쪽 사이드 라인을 따라 볼을 몰고 프론트코트 45도 부근까지 넘어왔다.
이때 자유투 라인 부근에서 흥미로운 움직임이 포착된다. 박병우가 케디 라렌을 위해 업 스크린을 건다. 라렌은 박병우의 업 스크린을 받아 페인트존으로 진입. 이 작업은 단 2초만에 이뤄진다.
①전준범에게 3점을 허용하고 ②오른쪽 사이드라인을 따라 김시래가 프론트코트 45도 위치로 볼을 운반하고, ③박병우가 업 스크린을 걸고, ④케디 라렌이 페인트존에 진입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총 5초에 불과했다. 엄청난 스피드였다.

LG의 엄청나게 빠른 업 스크린에 이은 라렌의 골밑 진입으로 현대모비스는 순간적으로 수비 실수를 한다. 박병우의 마크맨이었던 전준범은 스위치로 라렌의 골밑 진입을 막아섰는데, 숀 롱은 스위치를 하지 않고 라렌을 따라가버린 것.
박병우가 와이드오픈 상태에 놓였고, 김시래는 이 상황을 놓치지 않고 박병우에게 패스한다. 박병우는 곧바로 3점슛 시도. 박병우가 던진 슛이 손을 떠났을 때 남은 공격 시간은 18초였다.
LG는 3쿼터 7분 51초를 남기고 시작한 공격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얼리 오펜스를 시도했다. 이때는 조성민이 라렌을 위해 업 스크린을 걸어주고, 이를 이용해 라렌이 골밑에 진입했다. 이 상황을 놓치지 않고 김시래가 랍 패스로 라렌에게 볼을 연결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①사이드라인을 따라 볼을 운반하는 김시래의 움직임, ②라렌을 위해 업 스크린을 걸어준 이후 곧바로 3점슛 라인 밖으로 빠져나오는 LG 슈터들(박병우, 조성민)의 움직임, ③업 스크린을 활용해 페인트존 안으로 달려가는 라렌의 움직임이 모두 치밀하게 짜여진 약속이라는 점이다. 김시래의 동선(사이드라인 옆)과 케디 라렌의 동선(코트 중앙 길)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LG가 얼리 오펜스를 전개하는 방법은 여럿 있었다. 그리고 위에서 확인한 케디 라렌을 위한 슈터들의 업 스크린도 중요한 패턴 중 하나였다.

3. 빅-스몰 엘보우 픽앤롤(포지션 파괴)
이날 LG의 공격 패턴 중에서는 포지션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형태의 패턴도 하나 있었다. 빅맨(빅)과 가드(스몰)의 픽앤롤이었다.
위 사진은 3쿼터 9분 43초를 남기고 진행된 LG의 공격을 나타낸 것이다.
라렌이 엘보우에서 볼을 받은 가운데 탑에 조성민, 반대편 45도와 코너에 각각 서민수와 박병우가 자리해 있다. 그리고 스트롱사이드(볼이 있는 사이드)의 숏 코너에는 김시래가 자리하고 있다.
예년의 엘지였다면 김시래가 코너 3점슛 라인 바깥으로 나가서 공간을 더 벌리고 라렌이 수비수를 상대로 1대1을 하는 단순한 공격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날의 LG는 다른 방법을 썼다. 김시래가 갑자기 숀 롱에게 달려가 스크린을 건다. 빅맨이 볼을 가진 상황에서 가드가 스크린을 걸어서 엘보우에서 픽앤롤을 전개하는 것이다.(여기서도 볼이 있는 사이드의 코너가 비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빅맨이 볼 핸들러 역할을 맡고, 가드가 스크리너 역할을 맡는 픽앤롤은 사실 해외농구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NBA의 LA 레이커스만 해도 앤써니 데이비스 볼을 가지고 대니 그린, 알렉소 카루소와 같은 가드들의 스크린을 받아 직접 픽앤롤을 시도하는 상황이 많다. 덴버 너게츠는 니콜라 요키치가 볼 핸들러, 자말 머레이가 스크리너 역할을 맡는 빅-스몰 픽앤롤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날 LG 역시 과감하게 포지션을 파괴하는 빅-스몰 픽앤롤을 시도했다.

바로 다음 상황을 나타낸 사진이다. 김시래가 작은 몸집으로 숀 롱에게 스크린을 걸었고, 숀 롱이 김시래에게 가로막히면서 순간적으로 라렌에 대한 현대모비스의 수비가 헐거워졌다.
이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볼이 없는 반대편 사이드에서 이뤄지는 움직임이다.
김시래가 라렌에게 스크린을 거는 타이밍에 맞춰 반대편 사이드에서는 박병우가 서민수를 위해 스크린을 걸어준다. 이 스크린을 받아 서민수는 코너 부근으로 이동하며 오픈 기회를 노린다.
이때 서민수는 볼이 있는 곳(라렌)에서 더 멀어지며 오픈 기회를 노리기 때문에, 박병우가 서민수를 위해 걸어주는 스크린은 플레어 스크린(flare screen)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핵심은 라렌을 위한 김시래의 볼 스크린(ball screen)과 서민수를 위한 박병우의 플레어 스크린이 거의 동시에 나온다는 것.
이때 라렌은 2가지 선택지가 생긴다. 자신이 직접 슛을 던져도 되고, 반대편 사이드에서 오픈 기회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는 서민수에게 긴 크로스 패스를 연결해도 된다. 감독들이 볼이 없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 약속되고 훈련된 것이긴 하다.) 선택지가 하나라도 더 늘어나고 수비수들을 헷갈리게 만들 수 있다.
결국 이 장면에서 라렌은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생긴 공간을 놓치지 않고 스텝 백 점프슛으로 공격을 마무리했다.
이날 8분 23초를 남기고 서민수가 3점슛을 터트린 장면에서도 위와 비슷한 모습이 있었다.
오른쪽 사이드 45도 3점슛 라인 앞에서 서민수가 볼을 받은 상황에서 마크맨인 장재석이 엘보우로 처지자 조성민이 장재석에게 다가가 스크린을 걸려고 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서민수는 기습적으로 3점슛을 던졌고, 슛은 림에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물론 컵 대회 1경기를 가지고 LG의 공격 농구에 대해 온전히 평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이날 양 팀 모두 주전급 선수들의 출전 시간을 어느 정도 조절한 데다, 현대모비스는 외국선수들이 팀 수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장면만으로 LG가 예년과 완전히 다른 농구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또한 LG의 달라진 농구는 무척 빠르고 공격적이며 위력적이었다.
향후 컵 대회 경기와 10월에 시작하는 2020-2021 정규리그 경기에서는 LG가 ‘닥공농구’를 얼마나 완성도 있게 펼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사진 = KBL 제공, 이동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