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언더독’ 데미안 릴라드에게 2019-2020시즌은 기념비적인 시즌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평균 30점 시즌을 보내며 데뷔 후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올랜도 버블에서는 더 압도적이었다. 8경기에서 평균 37.6점을 쏟아 부으며 포틀랜드의 7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이젠 누구도 릴라드를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 데미안 릴라드는 NBA를 대표하는 명백한 슈퍼스타다.

무너진 포틀랜드, 무거워진 릴라드의 어깨
2019년 여름, 포틀랜드의 로스터는 상당히 변화가 많았다.
그간 릴라드, C.J. 맥컬럼을 도와 팀을 이끌었던 포워드들이 잇따라 팀을 떠났다. 팀 수비의 근간이었던 알 파루크 아미누는 FA가 되어 올랜도로 이적했고 모 하클리스도 클리퍼스, 마이애미, 필라델피아와의 4각 트레이드에 포함돼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에반 터너, 제이크 레이먼, 메이어스 레너드도 모두 트레이드로 떠나보냈다. 그 과정에서 하산 화이트사이드가 팀에 합류했으며 켄트 베이즈모어, 마리오 헤조냐, 앤써니 톨리버로 포워드진을 꾸렸다. 이만 하면 기둥 빼고 다 바꾼 셈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유수프 너키치가 2018-2019시즌 도중 당한 심각한 정강이 골절 부상으로 새 시즌의 절반 이상을 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몇 년째 플레이오프에서 포워드진의 공격력 문제를 절감했기 때문에 아미누, 하클리스 중심으로 구성된 포워드진도 분명 변화가 필요했다. 포틀랜드로서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일종의 리툴링을 감행한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새롭게 구성된 포틀랜드의 로스터는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다음은 2019-2020시즌 개막 당시 포틀랜드의 로스터 상황이다.
PG: 데미안 릴라드, 앤퍼니 사이먼스, 제일런 아담스
SG: C.J. 맥컬럼, 로드니 후드
SF: 켄트 베이즈모어, 마리오 헤조냐, 게리 트렌트 주니어
PF: 잭 콜린스, 앤써니 톨리버, 케일럽 스웨니건, 웨이넌 가브리엘
C: 하산 화이트사이드, 유수프 너키치
의도는 확실했다. 3&D 자원인 켄트 베이즈모어가 스몰포워드 포지션을 채우고, 파워포워드 포지션에서는 유망주 잭 콜린스의 활약을 보여줄 거라고 기대했다. 앤퍼니 사이먼스, 게리 트렌트 주니어가 스텝 업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벤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포틀랜드의 구상이었다.
그러나 시즌 개막 후 상황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잭 콜린스가 개막 3경기 만에 왼쪽 어깨 인대를 다치며 4개월 아웃 판정을 받았다. 이는 엄청난 나비 효과로 이어졌다. ‘폭풍 성장’을 보여줘도 모자랄 콜린스가 전력에서 이탈하자 포틀랜드의 파워포워드 포지션은 순식간에 무주공산이 됐다. 베테랑 앤써니 톨리버를 기용하고 마리오 헤조냐를 스몰라인업의 파워포워드로 활용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둘 모두 최악의 공수 경기력을 보이며 실망감만 안겨줬다. 켄트 베이즈모어마저 형편없는 야투 감각을 보이며 스몰포워드 포지션도 무너졌다. 아미누, 하클리스 등을 과감히 포기한 선택이 엄청난 손실로 돌아온 것이다.
데미안 릴라드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포워드진의 부상 공백과 부진은 팀 전체 수비력이 붕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발이 느려 수비 범위가 좁은 하산 화이트사이드는 불안한 가드진과 포워드진의 수비까지 만회할 수는 없는 선수였다. 이로 인해 포틀랜드는 만성적인 수비 불안에 시달렸고, 결국 많은 실점을 득점으로 메우며 경기를 치르는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득점 부담은 고스란히 데미안 릴라드에게 넘어갔다. 2019-2020시즌이 릴라드에게 큰 시험대였던 이유다.

지난 1년, 릴라드가 만든 대기록들
어느 때보다 압박감이 심한 시즌이었지만 결국 릴라드는 자신의 역량을 증명해냈다.
릴라드는 2015-2016시즌부터 꾸준히 시즌 평균 25점 이상을 기록하며 올-NBA 팀 레벨의 가드로 이미 올라서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올 시즌 활약은 차원이 또 달랐다. 66경기에서 37.5분을 뛰며 평균 30.0점 4.3리바운드 8.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12년 데뷔 이래 평균 30점 시즌은 처음이었다. 득점 부문 리그 3위(1위 제임스 하든, 2위 브래들리 빌), 어시스트 부문 리그 5위에 올랐다. 경기당 4.1개의 3점슛을 무려 40.1%의 확률로 꽂으며 3점슛 성공 리그 2위에 올랐다. 완벽에 가까운 시즌이었다.
폭발력은 리그 어떤 선수보다도 대단했다. 올 시즌 릴라드는 3경기에서 60점 이상을 쏟아 부었다. 2019년 11월 9일 브루클린전(60점 4리바운드 5어시스트), 2020년 1월 21일 골든스테이트전(61점 10리바운드 7어시스트), 2020년 8월 12일 댈러스전(61점 5리바운드 8어시스트)이었다.
이 3경기로 릴라드는 NBA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릴라드는 윌트 체임벌린과 함께 NBA 역사상 한 시즌에 60점을 세 차례 이상 기록한 ‘유이’한 선수가 됐다. 또한 데뷔 이래 60점 이상을 세 차례 이상 기록한 6명의 선수 중 1명이 됐다.(윌트 체임벌린, 엘진 베일러,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 제임스 하든, 데미안 릴라드)
또한 릴라드는 1월 21일 골든스테이트전부터 2월 2일 유타전까지 총 6경기 동안 총 293점을 쏟아 붓기도 했는데(61, 47, 50, 36, 48, 51) 이는 NBA와 ABA가 통합된 1976-1977시즌을 기점으로 무려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이 6경기에서 평균 기록이 48.8점 7.2리바운드 10.2어시스트 야투율 54.8% 3점슛 성공률 57.0%였던 릴라드는 NBA 역사상 최초로 정규시즌 6경기 동안 평균 45점 10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되기도 했다.
여름에 시작한 올랜도 재개 시즌에서 릴라드의 활약은 더 빛났다. 8월 7일 덴버전에서 3점슛 11개 포함 45점을 쏟아 부으며 팀의 승리를 이끈 릴라드는 10일 필라델피아전에서 51점, 12일 댈러스전에서 61점을 기록했다. 릴라드의 활약 속에 버블에서 6승 2패를 기록한 포틀랜드는 서부 8위로 정규시즌을 마치고 와일드카드전에서 멤피스를 누르며 7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재개 시즌 8경기에서 득점(301점)과 3점슛 성공(44개)에서 1위, 어시스트(77개)에서 2위를 차지한 릴라드는 결국 버블 MVP를 수상했다. 이후 릴라드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 1차전에서 34점을 기록하며 레이커스를 무너뜨리는 대이변을 만들기도 했다. 릴라드와 처음 함께 시즌을 보낸 카멜로 앤써니는 “릴라드는 내가 데뷔 이래 만난 동료 중 단연 최고의 선수였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경이로운 시즌이었다.

데미안 릴라드, 왜 막을 수 없었나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2019-2020시즌의 데미안 릴라드는 도대체 왜 알고도 못 막는 선수가 된 걸까? 릴라드는 무엇이 달라진 걸까?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미드레인지 점프슛을 줄인 것이다. <바스켓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데뷔 후 7시즌 동안 릴라드는 미드레인지 구역에 해당하는 5미터에서 3점슛 라인 사이 구역에서 전체 야투의 14.6%를 던지는 선수였다. 3점슛은 전체 야투의 41.5%를 차지했다. 2018-2019시즌에도 릴라드는 미드레인지 구역에서 전체 야투의 13.2%를, 3점슛 라인 뒤에서 41.9%를 던졌다.
하지만 올 시즌은 이 비율이 달라졌다. 미드레인지 구역에서 던지는 슛이 전제 야투의 6.4%에 불과했다. 반면 3점슛 시도 비율은 50.0%로 늘어났다. 즉 미드레인지 점프슛 시도는 줄이고 그만큼 3점슛 시도는 늘린 것이다.
이 같은 변화로 릴라드의 득점 효율은 더 높아졌다. 경기당 8.0개였던 3점슛 시도 개수가 10.2개로 데뷔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가 됐는데, 3점슛 성공률은 40.1%로 지난 시즌(36.9%) 대비 오히려 더 높아졌다. 페인트존과 3점슛 라인 바깥에 중점을 둔 슈팅 시도의 ‘선택과 집중’은 어시스트 창출에도 도움을 줬다. 림 어택 이후의 패스 숫자가 늘어나면서 릴라드의 경기당 어시스트 개수는 6.9개에서 8.0개로 상승했다. 그 결과 릴라드는 데뷔 후 처음으로 평균 30점 시즌을 보내며 득점과 어시스트 부문에서 모두 리그 최고 수준의 생산력을 보일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더 늘어난 릴라드의 3점슛 시도 중 ‘딥 스리’가 상당히 많다는 것. NBA.com에 따르면 올 시즌 릴라드는 총 674개의 3점슛을 던졌는데 그 중 130개가 30피트(약 9.14미터) 이상의 거리에서 던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 41.5%에 해당하는 54개가 림을 갈랐다.
성공률 자체도 놀라웠지만 54개의 성공 개수도 압도적인 NBA 역대 1위였다.(이전 1위는 2018-2019시즌에 트레이 영이 기록한 25개) 미드레인지 점프슛을 포기하고 3점슛 라인 바깥에서 비거리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공격을 펼친 덕분에 릴라드는 공격 효율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 상대 수비수들은 릴라드를 사실상 하프라인 앞부터 견제해야 했고, 이는 포틀랜드 팀 전체의 공격에도 큰 도움이 됐다. 릴라드가 수비수들을 바깥으로 끌어내면서 다른 포틀랜드 선수들이 공격을 펼칠 공간이 늘어났다.
물론 이건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점슛을 더 많이, 더 멀리서 던진다고 해도 성공률 자체가 높지 못하면 득점 기댓값과 공격 효율은 높아질 수 없다. 결국은 슈팅 레인지를 근본적으로 늘리면서 높은 성공률까지 유지한 릴라드만의 역량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관건은 릴라드의 이런 스텝 업이 포틀랜드의 우승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다. 릴라드는 지난해 여름 포틀랜드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바 있다. 억지로 슈퍼 팀을 만들어 우승 반지를 따내는 것은 그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 결국 앞으로 릴라드에게 필요한 것은 포틀랜드에 계속 남으며 우승 반지를 따내는 일이다. 하지만 포틀랜드의 전력은 아직은 우승권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과연 데미안 릴라드와 포틀랜드는 어떤 미래를 맞이할까. 한층 더 성장한 릴라드는 언젠가 우승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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