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키=이동환 기자] “제 앞에 예수님이 서 있었더라도 전 슛을 던졌을 거예요.”
11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LA 레이커스와 덴버 너게츠의 경기는 단 한 방의 3점슛으로 승부가 갈렸다.
레이커스의 카일 쿠즈마가 종료 0.4초를 남기고 앤써니 데이비스의 패스를 받아 위닝 3점슛을 터트렸다. 신장 216cm, 윙스팬 234cm의 괴물 볼 볼이 쿠즈마의 슛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쿠즈마는 주저 않고 슛을 던졌고, 121-121로 팽팽하게 진행되던 경기는 쿠즈마의 3점슛으로 균형이 무너졌다. 결국 경기는 124-121 레이커스의 신승으로 마무리됐다.
경기 후 쿠즈마의 위닝 3점슛은 슛이 만들어진 과정이 큰 화제를 모았다. 레이커스의 프랭크 보겔 감독이 쿠즈마의 3점슛 찬스를 만든 패턴에 대해 직접 언급했기 때문이다.
보겔 감독은 이날 쿠즈마의 3점슛 기회를 만든 패턴이 사실은 마이크 부덴홀저 밀워키 감독이 애틀랜타 감독 시절에 폴 밀샙, 카일 코버를 위해 쓴 패턴을 그대로 베껴온 것이라고 실토(?)했다.
더불어 그는 “이번 시즌 중에 이 패턴을 사용해본 적은 단 한 번뿐이었다. 피닉스전에서 켄타비우스 칼드웰-포프의 슛 기회를 만들 때였다”라고 덧붙였다.
이후 전술 전문 사이트 ‘더 바스켓볼 플레이북’을 운영하고 있는 깁슨 파이퍼 코치를 비롯한 여러 전술 전문가들이 관련 내용을 공유하면서, 보겔 감독이 쿠즈마를 위해 활용한 패턴은 더 관심을 끌었다.
이날 쿠즈마의 위닝 3점슛 기회를 위해 활용된 패턴은 ‘펀치 립 핸드 오프(Punch Rip Hand Off)’였다.
포스트에 볼을 투입한 후(Punch), 립 스크린이 시도되고(Rip), 핸드 오프를 통해 슈터에게 볼이 전달되기 때문에(Hand Off) 그런 이름이 붙었다.
지금부터 쿠즈마의 위닝 3점슛을 위한 레이커스의 패턴을 펀치, 립, 핸드 오프 상황을 차례로 분석하며 살펴보자. 다이어그램이 낯설다면 영상을 함께 보며 기사를 읽으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1. 펀치(Punch)
펀치(Punch)는 농구에서 포스트업을 뜻하는 표현이다. 다만 패턴 이름으로 쓰일 때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쓰인다. 선수가 포스트 구역에서 볼을 잡는 상황 그 자체를 아예 펀치라고 부른다.
(2K 게임을 할 때도 Punch라는 단어는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Punch가 패턴 이름에 들어가 있으면 포스트 구역 볼 터치가 패턴에 포함돼 있다고 보면 된다.)


위 다이어그램은 레이커스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될 때의 상황이다. 르브론 제임스가 인바운드 패서로 오른쪽 사이드에서 볼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왼쪽 사이드에서 대니 그린은 45도에, 디온 웨이터스는 코너 부근에 자리를 잡고 있다.
레이커스가 가장 먼저 노리는 것은 왼쪽 사이드 로우 포스트에 자리잡고 있는 앤써니 데이비스가 오른쪽 사이드의 포스트 구역에서 인바운드 패스를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른쪽 사이드 로우 포스트에 서 있던 카일 쿠즈마는 5초 바이얼레이션을 카운트하는 심판의 휘슬이 불리자마자 데이비스 쪽으로 달려가 그를 위해 스크린을 건다. 로우 포스트 지역에서 사이드라인 방향을 바라보며 걸어주는 크로스 스크린이다.


쿠즈마의 크로스 스크린을 받은 데이비스가 자유투 라인 쪽으로 가는 척 하다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꿔 베이스라인에 붙어서 오른쪽 로우 포스트로 이동한다. 메이슨 플럼리가 순간적으로 데이비스를 놓쳐버렸지만, 쿠즈마의 마크맨인 볼 볼이 스위치를 통해 곧바로 데이비스에게 달라붙는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볼 볼은 대단한 신체 스펙을 가진 선수다. 키가 216cm에 윙스팬이 234cm에 달한다. 힘은 데이비스에 밀려도 몸의 길이는 데이비스보다 우위다. 스위치 수비를 했음에도 전혀 미스매치가 아니다.
데이비스가 오른쪽 사이드 포스트에 자리잡자 르브론이 인바운드 패스를 건넨다. 데이비스가 포스트에서 안전하게 볼을 잡았다. 펀치(Punch)가 실행된 것이다.

#2. 립(Rip)
립(Rip)은 립 스크린(Rip Screen)의 줄임말이다. 그리고 립 스크린은 백 스크린(Back Screen)과 동의어다.
백 스크린은 볼 없는 공격수의 마크맨의 등(back) 뒤에서 스크리너가 스크린을 거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패턴에 립(Rip)이라는 단어가 포함되면 그 패턴은 수비수의 등 뒤에서 거는 백 스크린이 포함돼 있다고 보면 된다.(Rip도 2K 게임을 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단어다.)

다이어그램을 통해 계속 확인해보자. 포스트의 데이비스가 볼을 받은 상태. 인바운드 패스를 한 르브론은 코트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카일 쿠즈마의 움직임이다. 앞선 펀치(Punch) 장면에서 데이비스를 위해 크로스 스크린을 걸었던 쿠즈마가 어느새 자유투 라인까지 올라왔다.
여기서 쿠즈마의 목적은 르브론을 위한 스크린을 거는 것이다.

르브론이 림 쪽으로 컷인하기 시작한다. 이때 쿠즈마는 르브론 제임스를 마크하고 있는 덴버의 케이타 베이츠-디옵의 등 뒤에서 스크린을 시도한다. 백 스크린, 즉 립 스크린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립(Rip)이 실행된다.

#3. 핸드 오프(Hand Off)
핸드 오프(Hand Off)는 이제 농구 팬들에게도 익숙한 단어다. 가까운 거리에서 손등을 아래로 향한 채 공을 건네듯이 주는 패스를 핸드 오프 패스(Hand Off Pass)라고 부르는 것을 이제는 많은 농구 팬들이 알고 있다.

쿠즈마의 립 스크린 시도가 벌어진 직후의 장면을 나타낸 다이어그램이다.
컷인하는 르브론을 위해 백 스크린을 거는 듯 했던 쿠즈마가 갑자기 속도를 붙여 볼을 가지고 있는 앤써니 데이비스 쪽으로 달려간다. 데이비스에게 핸드 오프 패스를 건네받기 위해서다.
이 패턴의 목적이 비로소 드러나는 순간이다.
펀치, 립이라는 과정이 있었지만 이 패턴의 궁극적인 목적은 크로스 스크린을 걸고 립 스크린을 걸었던 쿠즈마가 슈팅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이 애틀랜타를 이끌던 시절에는 카일 코버가 쿠즈마의 역할을 했었고, 폴 밀샙이 인바운드 패스 후 컷인하는 르브론의 역할을 했었다.

쿠즈마가 데이비스에게서 핸드 오프 패스를 건네받았다. 앞선 크로스 스크린 상황에서 스위치로 쿠즈마의 마크맨이 됐었던 메이슨 플럼리는 르브론 쪽을 신경쓰다가 쿠즈마의 빠른 움직임에 미처 대처하지 못했고, 데이비스를 마크하던 볼 볼에게 다시 스위치 수비를 지시한다.

하지만 이미 상황이 늦어버렸다. 데이비스는 쿠즈마에게 핸드 오프 패스를 건넨 후 팔을 모으며 벽을 만든다. 볼 볼이 쿠즈마에게 달려가 긴 팔을 뻗었지만, 슛을 완벽하게 방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3점슛 기회를 쿠즈마는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남은 시간은 0.4초.
덴버는 작전 타임 후 마지막 공격을 지시했으나 3점슛 라인 바깥 쪽으로 볼이 전달되지 못하면서 경기는 레이커스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①쿠즈마의 크로스 스크린을 받은 앤써니 데이비스가 포스트에서 볼을 받고 ②쿠즈마가 인바운드 패서인 르브론을 위해 립 스크린을 거는 척 하다가 ③앤써니 데이비스 쪽으로 빠르게 달려가 핸드 오프 패스를 건네받는 ‘펀치 립 핸드 오프(Punch Rip Hand Off)’ 패턴이 기막히게 적중한 장면이었다.

AND ONE: 프랭크 보겔 감독의 절묘한 역할 분배
똑같은 패턴을, 똑같은 5명의 선수에게 지시하더라도 패턴 선수가 어떤 선수가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그 패턴의 위력은 달라진다.
레이커스가 이번에 활용한 ‘펀치 립 핸드 오프(Punch Rip Hand Off)’ 패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보겔 감독이 르브론에게 맡긴 역할이다.
이번 패턴에서 르브론은 앤써니 데이비스에게 인바운드 패스를 하고, 그 이후엔 쿠즈마의 립 스크린을 받아 반대편 사이드로 컷인하는 역할을 맡았다.
보겔 감독은 왜 르브론을 이렇게 활용했을까?
보겔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코멘트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르브론이 레이커스에서 클러치 상황을 책임지는 가장 위협적인 공격 옵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추측이 그리 어렵지 않다.
‘펀치 립 핸드 오프(Punch Rip Hand Off)’ 패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간적으로 쿠즈마에게 최대한 오픈된 점프슛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립 스크린을 거는 척 하다가 빠르게 앤써니 데이비스 쪽으로 달려가는 쿠즈마의 면밀한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쿠즈마의 립 스크린을 받아 반대편 사이드로 움직이는 공격수가 상대 수비의 시선과 발을 묶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쿠즈마 쪽에 오픈 기회가 생길 확률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보겔 감독이 르브론에게 립 스크린을 받아 컷인하는 역할을 맡긴 것은 결과적으로 절묘한 한 수였다. 르브론의 마크맨이었던 케이타 베이츠-디옵은 물론 스위치 수비로 쿠즈마를 마크해야 했던 메이슨 플럼리도 르브론을 의식해 쿠즈마를 완전히 놓쳐버렸다.
클러치 상황에서 초대형 미끼(?)로 보이지 않는 공헌을 해낸 르브론은 쿠즈마의 맹활약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동시에 쿠즈마의 활약이 앞으로 더 중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가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쿠즈마가 팀의 3옵션 역할을 해줘야 한다. 내가 부진하거나 앤써니 데이비스가 부진하는 날은 쿠즈마가 언제든 팀의 2옵션 이상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쿠즈마가 잘해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승하기 힘들 것이다.”
한편 위닝샷의 주인공이 된 쿠즈마는 자신에게 클러치 슛을 던질 기회를 준 보겔 감독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열에 아홉은 르브론이 마지막 슛을 던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겔 감독님이 이번엔 저에게 기회를 줬다. 제게 정말 큰 신뢰를 보내주셨다고 생각한다.”
사진 제공 = 로이터/뉴스1
이미지 제작 = 이동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