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학철 기자] ②편에 이어..

 

두 형제, KBL을 접수하다

대학교까지 사이좋게 같은 팀에서 뛰던 두 형제. 허웅이 2014년 드래프트에 참여를 선언하면서 처음으로 갈라지게 된다. 당시 3학년이던 허웅은 4학년 시즌을 뛰는 대신 1년 빨리 드래프트 참여를 선언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웅 : 그 때는 1년이라도 일찍 프로에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어요. 개인적으로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아요. 그런데 약간은 아쉬움도 있어요. 4학년 때 그래도 대학 생활을 조금만 더 즐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있죠. 
루더바 : 형이 프로에 가는 모습 보면서 어땠어요?
훈 : 딱히 별다른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형 경기를 많이 챙겨봤어요. 형이 프로에 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긴 했어요. 곧 나도 프로에 가겠구나 하는 실감도 들었고요.

허웅을 지명한 구단은 5순위 지명권을 쥐고 있던 DB(당시 동부). 당시 허재가 감독으로 있던 KCC가 4순위 지명권을 쥐고 있어 허웅의 KCC행도 점쳐졌지만, KCC는 허웅 대신 김지후를 선택하며 부자(父子)가 한솥밥을 먹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DB 역시 허씨네 부자와 인연이 깊은 구단이다. 아버지 허재가 마지막 선수 생활의 불꽃을 태운 구단이 바로 DB. 현재 DB에는 허재가 현역 시절 달았던 등번호인 9번이 영구결번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웅 : 당연히 아들이기도 하고 그래서 KCC가 저를 뽑길 바랐는데 그렇게 되지를 않아서 원망스럽기도 했어요. 그래도 다 그런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은 DB에 와서 잘 하고 있으니까 만족스러워요. DB가 편안하긴 했죠. 어릴 때부터 워낙 많이 가던 곳이니까요. 아버지가 뛴 구단에서 뛰는 것이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저도 나중에 잘해서 팀에 계속 남게 된다면 영구결번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죠.

상상해 보자. 한 구단에서 나란히 영구결번 된 아버지와 아들이라니. 그야말로 가슴 설레고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후 허훈이 2017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KT의 부름을 받으며 두 형제는 처음으로 같은 팀이 아닌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된다. 2016-2017시즌 9위의 성적(18승 36패)에 머물렀던 KT는 LG와의 트레이드로 받은 드래프트 지명권을 포함해 총 2장의 1라운드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지명권이 1,2순위에 나란히 당첨되며 허훈과 양홍석을 동시에 지명하는 행운을 누렸다. 

훈 : 1,2순위가 나오는 것을 보고 ‘KT에 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팀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서 걱정도 했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KT에 와서 덕을 본 부분이 정말 많죠. 그때는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KT에 오게 된 것이 다행인 것 같아요. 

KBL 무대 입성 후 성장을 거듭하던 두 형제는 지난 시즌 나란히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며 KBL 무대를 접수한다. 허훈은 국내 선수 득점 2위(14.0점), 어시스트 1위(7.2개)에 오르며 데뷔 3년 만에 MVP 트로피를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고, 허웅은 부상으로 다소 아쉬운 시즌을 보냈으나 평균 13.7점을 올리며 출전할 때만큼은 위력을 떨쳐보였다. 그렇다면 두 형제는 각자의 지난 시즌과 서로의 지난 시즌을 어떻게 평가할까?

웅 : 훈이 너무 잘했죠. 팀 성적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고 생각해요. 원래 훈이는 이런 선수였어요. 단지 여태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거죠. 환경이 갖춰지니까 자기 실력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훈 : 형은 부상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부상만 없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웅 : 저도 준비를 정말 많이 했는데 발목을 크게 다쳐서 아쉬워요. 그래도 재활을 열심히 해서 제가 준비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드렸다고 생각해요. 다음 시즌에는 그런 모습을 마지막까지 이어갈 생각이에요. 
훈 : 저는 이렇게 빨리 MVP를 탈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단지 지난 2년 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자는 마음이 강했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이제 앞으로 이뤄야 할 것들이 더 많기 때문에 지금 MVP를 탔다고 자만하지 않고 항상 더 열심히 해야죠. 

 

MVP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꺼내보자. MVP 투표가 한창 진행되던 당시 허훈의 경쟁 상대는 김종규였다. 공교롭게도 허웅과 DB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선수. 그렇다면 허웅은 허훈과 김종규 중 누구를 응원했을까?

웅 : 훈이랑 저랑 종규형이랑 셋이서도 친해요. 저 이번에 다쳤을 때도 병문안 제일 먼저 와준 것도 종규형 이었거든요. 제가 장난으로 초밥이 먹고 싶다고 하니까 아침 7시에 사서 오더라고요. 집안에서 MVP가 나오면 좋긴 한데 종규형이 받았어도 기분 좋았을 것 같아요. 
루더바 : 그럼 만약에 허웅 선수한테 투표권이 있었다면 누구한테 표를 던졌을 것 같아요?
웅 : 그럼 훈이한테 주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가족이니까~!

역시 피는 초밥.. 아니 물보다 진한 법. 아무리 계속해서 티격태격 하더라도 역시 가족은 가족이다. 

두 형제의 어머니인 이미수 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훈이가 형에게 미안한지 MVP를 받고도 집에서 기쁜 내색을 크게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남긴 적이 있다. 그런데 이 형제의 지금까지 모습을 보면 전혀 그랬을 것 같지 않다. 과연 진실은?

웅 : 누가 그래요? 집에 오자마자 트로피 다 들고 사진 찍고 난리 났는데? 코코(키우는 강아지)보고 사진 찍어야 되니까 비키라고 그러고. 제일 신났어요 아주.(웃음)
훈 : 당연히 신났죠. (웃음) 저희는 집에서 눈치보고 그런 거 없어요. 

그래.. 이래야 허씨네 형제지.. 그런데 MVP를 받으며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은 허훈이 욕심을 낸 상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바로 허웅이 받은 인기상. 

훈 : 저 인기상 정말 받고 싶었어요! 아, 진짜 제가 받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튀어나와가지고..
웅 : 제가 압도적인 1위. 훈이가 압도적인 2위였죠.
훈 : 인기상 받았으면 4관왕이었는데 아쉬워요.
웅 : 얘가 처음에는 신경 안 쓰는 척 하더니 나중에는 KBL 홈페이지를 하루에 50번씩 들락거렸어요. 자기가 자기한테 투표하는 것 같더라고요.
훈 : 아니야! 저는 귀찮아서라도 저 안 찍어요. 차라리 저한테 투표하라고 전화를 돌리면 돌렸죠.(웃음)

허웅이 제기한 음모론에 발끈하는 허훈. 마지막까지 열심히(?) 싸워주시는 두 형제다. 그래도 마지막은 훈훈하게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두 형제에게 평소에 말하지 못했지만 서로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웅 : 사실 훈이가 이번에 MVP를 받아서 너무 자랑스러워요. 앞으로도 다치지 말고 항상 잘됐으면 해요. 농구 외적으로도 훈이가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훈 : 형이 내년 시즌에는 부상 없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가족이기 때문에 다른 건 없고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20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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