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학철 기자] 지난 시즌 신한은행은 6승 29패의 성적으로 최하위에 머무르며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시작 전부터 외국인 선수 문제로 삐걱거리더니 시즌 들어서는 주축 선수들의 연쇄 부상으로 좀처럼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시즌 출발 역시 좋지 않았다. 정상일 감독이 새롭게 부임했지만 선수들의 대거 은퇴와 부상으로 시즌 첫 훈련에 참가한 선수가 7명뿐이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그러나 지난 시즌 OK저축은행(現 BNK 썸)의 암흑기 탈출을 이끌었던 ‘정상일 매직’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휘됐고, 신한은행은 지난 시즌보다 2배 가량 많은 11승(17패)을 따내며 시즌을 마감했다. 

 

 

험난했던 출발

‘고난’과 ‘역경’. 많은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성공이라는 해피엔딩으로 향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끝끝내 이겨내고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맞이하는 이들의 스토리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시즌을 앞둔 신한은행 역시 고난과 역경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정상일 감독이 부임한 후 치러진 첫 훈련. 참여 인원은 단 7명이었다. 정상적인 훈련이 진행될 리 만무했다. “여기 무슨 신한여고냐?”며 선수들에게 던진 정상일 감독의 농담에는 깊은 고민이 함께 담겨 있었다. 

비시즌 FA 협상 결과 곽주영, 윤미지, 양지영 등이 은퇴를 택했다. 거기다 김규희와 김형경까지 은퇴를 선언하며 한꺼번에 5명의 선수가 무더기로 빠져나갔다. 부상 치료를 위해 재활조에 들어간 인원도 상당했다. 그 결과가 바로 훈련 7명 참여. 신한은행의 고난과 역경은 그렇게 시작됐다. 

외국인 선수 문제도 신한은행의 발목을 잡았다. 신한은행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 지명권을 활용해 엘레나 스미스를 지명했다. 호주 출신으로 193cm에 달하는 신장과 더불어 외곽슛 능력까지 보유한 스미스에 대한 기대는 컸다. 또한 스미스는 2019년 WNBA(미국여자프로농구) 드래프트에서 전체 8순위로 지명된 유망주다. 

그러나 신한은행과 스미스의 동행은 시작부터 꼬였다. 스미스가 WNBA 시즌을 소화하던 도중 발목 부상을 당하고 만 것. 이로 인해 스미스의 개막전 정상 합류는 불가능해졌다. 이에 신한은행은 과거 KDB생명과 KB스타즈에서 뛰었던 비키 바흐를 대체 선수로 영입해야만 했다. 

시계를 잠시 지난 시즌으로 돌려보자. 지난 시즌의 신한은행 역시 각종 악재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며 휘청거렸다. 그 결과 정규리그가 종료된 시점에서 신한은행이 거둔 승수는 단 6승. 35경기를 치르는 동안 무려 29번을 패했다. 연승은 단 한 차례도 없었으며 승률은 17.1%에 불과했다. 거듭된 좌절 속에 패배에 익숙해진 선수단의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지난 시즌의 실패를 거치며 심어진 패배 마인드와 선수 부족 사태. 그리고 외국인 선수. 이제 막 출범한 정상일호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렇듯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또 다시 발휘된 정상일 매직

갖은 암초를 만나게 된 정상일호. 그러나 정상일 감독을 필두로 한 신한은행은 좌절하지 않고 주어진 과제를 해결해나간다. 

우선 선수 수급 문제가 가장 시급했다. 7명의 선수로 훈련을 이어갈 수는 없을 터. 정상일 감독은 부족한 선수를 충원하기 위해 FA 시장과 트레이드 시장을 노크했다. 그 결과 김이슬이 신한은행의 품에 안겼고, 한채진과 김수연 등 베테랑들도 각각 사인&트레이드로 신한은행에 합류했다. 이어 황미우와 임주리 등도 속속들이 합류하며 점차 로스터가 완성되어 갔다. 

정상일 감독은 이렇게 구성된 팀을 두고 ‘연합군’이라는 표현을 썼다. 실제로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5개 구단의 선수가 모두 도원체육관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조직력 맞추기’라는 또 다른 과제가 주어졌다. 각자 다른 팀에서 뛰다 모인 선수들인 만큼 단기간에 호흡을 맞추기는 쉽지 않은 일. 정상일 감독 역시 비시즌 동안 많은 연습경기를 통해 이러한 부분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했다. 

많은 이들은 시즌을 앞둔 신한은행을 두고 “쉽지 않은 시즌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한은행이 맞이한 여러 가지 상황을 볼 때 이러한 예상은 사실 당연했다. 많은 우려 속에 마침내 개막한 시즌. 신한은행은 첫 2경기에서 KB스타즈와 삼성생명을 상대로 연패를 기록하며 우려를 더욱 가중시켰다. 

그러나 신한은행은 10월 28일 하나은행전에서 첫 승리(87-75)를 따내면서 반전스토리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신한은행은 17점을 올린 비키 바흐를 필두로 무려 6명의 선수(김단비, 김수연, 이경은, 김이슬, 한엄지)가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화끈한 공격을 선보였다. 친정팀을 처음으로 만난 김이슬은 팀 내 최다인 3점슛 4개를 포함해 12점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쳤다. 

시즌 첫 승을 거둔 신한은행은 질주를 이어갔다. 개막 2연패 이후 7경기에서 신한은행이 거둔 성적은 5승 2패. 12월 1일 BNK전부터 9일 삼성생명전까지는 3연승을 질주하기도 했다. 지난 2017-2018시즌, 1월 4일부터 24일까지의 7연승 이후 첫 3연승. 685일 만이었다. 지난 시즌의 경우 3연승은커녕 연승 자체를 단 한 차례도 거두지 못한 신한은행이다. 

이후에도 정상일호의 질주는 이어졌다. 12월 26일에는 우리은행을 상대로 64-63 승리를 따내면서 14경기 만에 지난 시즌의 승수와 동률을 이뤘다. 우리은행전 15연패 탈출은 덤. 이틀 뒤 펼쳐진 KB스타즈와의 경기에서도 86-65 승리를 따내면서 지난 시즌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시즌이 종료된 시점에서 신한은행이 거둔 총 승수는 11승. 불과 1년 전 압도적인 최하위였던 팀은 정상일 감독 부임 후 플레이오프 진출을 다투는 팀으로 변모했다. 1라운드 축소로 인해 지난 시즌에 비해 경기가 줄었고, 그마저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모든 경기를 치르지 못하고 시즌이 종료됐음을 고려하면 상당한 성과다. 

정상일 감독이 내세운 ‘선택과 집중’이라는 키워드 역시 제대로 적중했다는 평가다. 정상일 감독은 2강을 이루고 있는 우리은행, KB스타즈와의 경기보다는 하나은행, BNK 등 플레이오프 진출을 다투는 팀들과의 매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신한은행은 우리은행과 KB스타즈를 상대로는 1승 4패에 그쳤지만, 하나은행(3승 3패), BNK(4승 2패)를 상대로는 상대 전적에서 앞서거나 동률을 이뤘다.  

지난 시즌 정상일 감독은 직전 시즌 4승에 그쳤던 OK저축은행을 4위(13승 22패)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정상일 매직’은 신한은행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됐다. 정상일 감독 부임과 함께 최하위에서 4위까지 도약한 신한은행의 드라마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빛과 함께 공존했던 그림자

성공적으로 시즌을 치러낸 신한은행이지만 마냥 밝은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신한은행에게는 ‘실책’과 ‘외국인 선수’ 문제가 이러한 그림자에 해당했다. 

선수단 구성이 크게 바뀐 신한은행이었기에 단시간에 조직력을 가다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부분은 실책 수치를 보면 잘 드러난다. 이번 시즌 신한은행이 범한 실책은 경기당 14.2개. 리그 최하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리그 평균(12.5개)보다 약 1.7개를 더 범했으며 6개 구단 중 실책이 가장 적었던 우리은행(11.2개)과의 차이도 상당했다. 

특히 신한은행의 실책 문제는 체력적인 문제가 겹친 시즌 막바지로 갈수록 더욱 두드러졌다. 신한은행은 2월 28일부터 3월 9일까지 11일 동안 5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을 펼쳤는데 이 기간 동안 평균 실책은 17.6개까지 증가했다. 정상일 감독은 매 경기를 치른 후 “실책을 줄여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신한은행의 실책 퍼레이드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외국인 선수 문제 역시 시즌 내내 신한은행을 괴롭혔다. 대체 선수로 급하게 합류했던 바흐는 평균 14.09점 8.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12월 중순 팀에 합류한 스미스의 활약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스미스는 WKBL 데뷔전에서 28점 11리바운드로 활약했지만 9개의 실책도 함께 범했다. 이후 스미스는 심한 기복을 보이며 아쉬운 모습을 노출했다. 발목 부상의 재발 위험성 역시 도사리고 있었다. 

결국 신한은행은 또 다시 외국인 선수 교체라는 칼을 빼들어야 했다. 바흐와 스미스에 이어 팀에 합류한 선수는 아이샤 서덜랜드. 정상일 감독은 “시즌 내내 외국인 선수와 호흡만 맞추다가 끝날 판이다”며 한숨을 쉬었다. 

 

 

‘언니쓰’의 활약

이번 시즌 신한은행에서 평균 20분 이상의 출전 시간을 부여받은 국내 선수는 총 5명(김단비, 김수연, 김이슬, 한엄지, 한채진). 이들 중 김이슬과 한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선수는 모두 30대에 접어든 선수들이다. 

특히 프로 18년차로 이번 시즌 WKBL 최고령 선수(36세)였던 한채진의 활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출전시간이다. 이번 시즌 한채진은 경기당 평균 36분 16초를 뛰었는데 이는 안혜지(37분 16초), 박혜진(36분 36초)에 이은 리그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시즌 초에는 해당 부문 최상단의 위치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던 한채진이다. 

보이는 기록과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의 공헌 모두 뛰어났다. 한채진의 시즌 성적은 평균 10.57점 5.2리바운드. 지난 시즌 24.4%에 머물렀던 3점슛 성공률은 36.1%까지 끌어올렸다. 

또한 한채진은 가드진이 부진한 모습을 보일 때 보조 리딩을 도맡았고, 중요한 순간마다 정확한 슛을 터뜨리며 베테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시즌을 마친 후 팀과 재계약에 실패하며 은퇴 위기로까지 내몰렸던 한채진은 자신의 친정 팀인 신한은행에서 완벽히 부활에 성공했다. 

김수연의 활약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김연희가 아직 본인이 보유한 잠재력을 다 펼치지 못한 상황에서 베테랑 센터가 반드시 필요한 신한은행이었는데, 김수연은 이러한 역할을 120% 해냈다. 3.85점 5.3리바운드로 보이는 기록은 화려하지 않지만 김수연이 보여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공헌과 안정성은 정상일 감독 역시 인정한 부분. 부상 관리로 인해 경기 당 16분 42초를 뛰었지만 40.6%의 3점슛 성공률과 함께 평균 5.88점을 올리며 쏠쏠한 모습을 보인 이경은의 활약도 돋보였다. 

신한은행이 보유한 가장 확실한 카드인 김단비의 존재감 역시 두 말 하면 입 아픈 요소다. 각종 부상과 국가대표 차출 등으로 인해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았던 김단비지만 팀의 공/수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냈다. 이러한 언니들의 활약은 이번 시즌 신한은행을 지탱해준 가장 큰 힘이 됐다. 

 

 

팀 MVP | 한채진

22경기 평균 6.91점 3.9리바운드. 팀의 주축으로 성장한 후 가장 저조한 기록을 남긴 한채진은 BNK로 새 출발을 선언한 팀과 재계약에 실패하며 신한은행의 유니폼을 입었다. 적지 않은 나이의 한채진에게 많은 물음표가 던져졌지만 한채진은 완벽히 부활에 성공하며 이러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놓았다. 

팀 RISING STAR | 한엄지

프로 3년차가 된 한엄지는 정상일 감독이 가장 신경을 써서 키우고 있는 유망주 중 한 명이다. 이를 위해 정상일 감독은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시즌 중반 작전타임 도중 한엄지를 크게 나무라는 정상일 감독의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한엄지에 대한 정상일 감독의 기대를 대변하는 장면들. 기대대로 한엄지는 시즌 평균 7.42점 4.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지난 시즌 14.8%에 그쳤던 3점슛 성공률이 38.8%까지 증가한 부분이 눈에 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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