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못해도 중간은 간다.’ WKBL에서 이 말이 가장 잘 통용되는 팀은 삼성생명이었다. 늘 강호는 아니었지만 리그 최약체로 내려간 적도 없다. 하지만 올 시즌 삼성생명은 유난히 힘든 순간이 많다. 핵심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정상 전력을 시즌 내내 꾸리지 못했고, 그 결과 창단 첫 리그 꼴찌라는 슬픈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2019-2020시즌은 삼성생명에 아픔의 시즌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상치 않았던 여름, 흔들려버린 플랜

지난 시즌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한 삼성생명은 플레이오프에서 디펜딩 챔피언 우리은행을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는 기염을 통했다. 비록 챔피언결정전에서 KB스타즈에 4전 전패를 당하며 허무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지만, 신구조화가 잘 이루어진 로스터의 가능성을 확인한 시즌이었다.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이라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만큼 비시즌 삼성생명의 목표는 그보다 높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임근배 감독과 선수들 모두 우승이라는 두 글자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시즌을 준비했다.

하지만 야심찬 계획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꼬이고 말았다. 올림픽 예선을 위해 대표팀에 소집됐던 김한별과 박하나가 모두 부상을 당해 하차하고 만 것.

무릎 연골 부상으로 대표팀을 떠난 김한별은 정확한 검진을 위해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야 했다. 검진 결과 다행히 수술은 피했지만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했고 9월 말이 돼서야 한국으로 돌아와 팀 훈련에 합류할 수 있었다. 재활이 순조로웠던 덕분에 개막전 출전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팀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적었던 것이 아쉬웠다.

박하나는 더 심각했다. 8월 말 관절경 수술을 받고 팀에 합류한 박하나는 개막전 출전을 목표로 재활을 진행했지만 끝에 출전하지 못했다. 수술 및 재활에 여름을 보낸 박하나는 시즌 중에 출전한 경기에서도 이전의 경기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가드진의 에이스였던 박하나가 결국 11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삼성생명의 비시즌 플랜은 크게 흔들렸다. 여기에 윤예빈까지 다리 부상으로 결장하는 경기가 생기면서 가드진이 사실상 무주공산이 됐다. 의미 있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지만 이주연이 그 공백을 다 메우기엔 당연히 무리였다.

올 시즌을 앞두고 임근배 감독은 국내선수 중심의 경기 운영을 가져가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국내선수진이 부상에 시달리고 결장 변수에 노출되면서 삼성생명의 시즌 운영 계획은 기대대로 전혀 이행되지 못했다.

 

카이저와 비키 바흐, 아쉬웠던 외인 존재감

6월 25일 열린 2019-2020 WKBL 외국인선수 선발회에서 삼성생명은 5순위로 리네타 카이저를 지명했다.

카이저는 6년 전 KB스타즈 소속으로 WKBL 무대를 누빈 경험이 있는 선수였다. 당시 태업 논란 속에 KB스타즈와의 인연이 너무 좋지 않게 끝났지만 삼성생명은 카이저의 정신적인 부분을 나쁘게 평가하지 않았다.

임근배 감독은 카이저가 골밑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 국내선수들의 인사이드 공수 부담을 덜어지고 조력자가 되길 기대했다. 

임 감독은 “외국인 선수에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내선수 중심으로 팀을 만들고 카이저가 조력자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라며 카이저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여름에 유일하게 WNBA에서 뛰지 않아 다른 5명의 외국인선수들에 비해 빠른 팀 합류가 가능하다는 점도 카이저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삼성생명과 카이저의 인연은 7경기 만에 끝나고 말았다. 카이저가 11월 말 BNK와의 경기 도중 왼쪽 발목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당시 카이저는 최소 2주, 최대 4주 진단을 받으며 전력에서 이탈했고 이후 삼성생명은 신한은행 소속이었던 비키 바흐를 대체 외국인선수로 영입한 12월 말까지 외국인선수 없이 경기를 치렀다.

카이저 부상 시점과 비키 바흐 영입 시점까지의 공백기 동안 국내선수만으로 경기를 치른 삼성생명의 성적이 좋을 리가 만무했다. 2라운드에 5전 전패를 기록한 삼성생명은 비키 바흐 영입 이후 골밑에 안정감이 생기며 다시 페이스를 끌어올렸지만 바흐 역시 경쟁력이 높은 외국인선수는 아니었기에 한계가 분명했다.

결국 5라운드에서 1승 4패를 당하며 다시 페이스가 눈에 떨어진 삼성생명은 6라운드 첫 2경기에서도 모두 패배를 기록한 끝에 9승 18패 리그 최하위로 정규시즌을 마무리했다.

국내선수진이 부상으로 크게 흔들린 상황에서 외국인선수들이라도 팀의 확실한 공수 옵션이 돼줬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올 시즌 삼성생명은 외국인선수가 팀을 확실히 이끌어주는 모습을 기대하기 힘든 팀이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내선수들에게 넘어갔다.

 

흔들린 가드진, 분투 펼친 베테랑들

박하나와 윤예빈의 동반 부상으로 시즌 초반부터 삼성생명의 가드진은 흔들렸다. 지난 시즌 경기당 15.1점 3점슛 2.0개를 책임져주던 최고급 공격형 가드 박하나가 빠지고 윤예빈마저 부상에 시달린 탓에 삼성생명은 늘 가드진에 대한 고민을 안고 경기를 치러야 했다.

지난 시즌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인 이주연은 선배들의 공백을 메울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공격에서는 경기 운영과 득점 생산 모두 서툰 모습이 많았고 수비에서는 실수를 쏟아냈다. 특유의 날랜 움직임과 허슬 플레이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려 했지만 이주연 혼자 삼성생명의 가드진에 생긴 균열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김한별이 포인트가드 역할을 수행하며 이주연의 부담을 덜어주려 했지만 역시 한계가 있었다. 카이저와 비키 바흐 모두 골밑에서만 활약하는 정통 빅맨들이었기에 이들에게도 일정 수준 이상의 활약을 기대하기엔 무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고군분투한 선수가 국가대표 빅맨 배혜윤이었다. 배혜윤은 올 시즌 26경기에서 평균 16.0점 6.5리바운드 3.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외국인선수가 없었던 11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한 달여의 기간 동안에는 더욱 눈부신 분투를 펼쳤다.

배혜윤은 수비에서는 양인영과 함께 상대 외국인선수 빅맨을 괴롭히고 공격에서는 자신감과 투지를 앞세워 득점을 쌓았다. 시즌 중반 7연패 늪에 빠지기도 했던 삼성생명은 배혜윤의 계속되는 활약과 비키 바흐의 합류 덕에 3라운드와 4라운드에 치른 10경기에서 5승 5패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베테랑 김보미의 활약도 돋보였다. 종종 슈팅 난조와 실책으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만, 박하나의 부재로 슈터진도 함께 무너진 상황에서 김보미만이 3점슛 라인 밖에서 무서운 화력을 보여줬다. 2018-2019시즌 3점슛 성공률이 30%였던 김보미는 2019-2020시즌에 33%로 성공률이 소폭 상승하는 등 평균 7.2점 3점슛 성공 1.2개를 기록하며 외곽에서 분투를 펼쳤다.

시즌 초반 부상 여파로 좀처럼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윤예빈이 1월 초부터 빠르게 페이스를 끌어올린 점도 고무적인 부분이었다. 윤예빈은 올 시즌 마지막 8경기 중 6경기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고 4경기에서 15점 이상을 기록하며 최고조의 경기력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창단 첫 정규리그 최하위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향후 삼성생명을 약체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박하나가 건강하게 돌아온다면 가드진은 리그 상위권인데다 포워드진에도 김한별이라는 확실한 터줏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비시즌을 부상 없이 안정적으로 보내며 호흡을 맞춰볼 수 있다면, 삼성생명은 다가오는 새로운 시즌에 다시 한 번 반등을 노려보기에 충분한 팀이다.

 

팀 MVP | 배혜윤

올 시즌 핵심선수들의 잇따른 부상과 공백 속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선수가 있었다. 국가대표 빅맨 배혜윤이었다. 올 시즌 단 1경기만 결장한 배혜윤은 26경기에서 평균 16.0점 6.5리바운드 3.8어시스트 2점슛 성공률 48%를 기록하며 삼성생명의 골밑을 든든히 지켰다. 때로는 외국인선수의 결장 공백마저 메운 배혜윤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삼성생명은 더 많은 패배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리그 대표 인사이드 득점원으로 거듭난 배혜윤의 활약은 올 시즌 삼성생명의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었다. 

팀 RISING STAR | 이민지

주전급 선수들의 부상 공백 속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선수는 이민지였다. 박하나, 윤예빈이 부상으로 결장하는 경기가 잦았던 상황에서 이민지가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이주연의 부담을 덜어줬다. 올 시즌 14경기에서 평균 2.1점 3점슛 성공률 67%를 기록한 이민지는 코칭스태프의 공수 요구사항을 상당히 안정적으로 이행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향후 성장을 더 기대케 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표 디자인 = 서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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