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농구는 그 자체로 역동적이고 짜릿한 스포츠다. 하지만 경기 속에 숨어 있는 전술적 디테일을 알고 보면 그 재미가 훨씬 커진다. ‘작전판’을 통해 여러분이 농구 전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길 기대한다.

한국시간으로 3월 7일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는 전세계 농구 팬들이 주목하는 빅매치가 열렸다.
나란히 양대지구 1위를 질주하고 있는 LA 레이커스와 밀워키 벅스가 올 시즌 두 번째 맞대결을 펼친 것이다.
결과는 113-103 레이커스의 승리였다. 특히 레이커스의 르브론 제임스는 37점 8리바운드 8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하며 야니스 아데토쿤보와의 맞대결에서 판전승을 거뒀다.
이날 르브론은 페인트존에서만 18점을 올리며 리그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밀워키의 골밑 수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 중 우리가 살펴볼 것은 르브론 제임스의 돌파 득점을 살린 레이커스 빅맨들의 ‘실 스크린(Seal Screen)’이다.
이 경기에서 레이커스는 실 스크린을 활용해 총 3차례, 승부처였던 4쿼터에만 2차례나 르브론 제임스의 득점을 만들어냈다.
지금부터 르브론 제임스의 돌파 득점을 도운 실 스크린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왜 밀워키 수비를 상대로 효과를 볼 수 있었는지 설명하려고 한다.

밀워키의 수비 기조와 ‘드랍백 수비’
레이커스의 실 스크린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는 밀워키라는 팀이 가지고 있는 수비 기조를 알고 갈 필요가 있다.
최근 NBA의 득점은 총 3가지 구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경향을 가진다. 페인트존, 3점슛 라인 바깥, 자유투 라인 앞이다.
이 말을 다르게 풀어쓰면 페인트존 득점, 3점슛 득점, 자유투 득점이 득점을 구성하는 주요 골자가 돼가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휴스턴 로케츠의 ‘모리 볼’ 철학과도 일치한다.(모리 볼이 결코 별난 농구 철학이 아님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3가지 득점 종류 중 인플레이(In-Play) 상황에서 나오는 것은 결국 페인트존 득점과 3점슛 득점이다.
결국 현대 NBA의 모든 팀들은 공수 기조를 결정할 때 두 가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첫째, 3점슛 득점 싸움에서 어떻게 우위를 가져갈 것인가?
둘째, 페인트존 득점 싸움에서 어떻게 우위를 가져갈 것인가?
2010년대 최고의 왕조였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두 찾은 팀이었다.
스테픈 커리와 클레이 탐슨을 앞세워 3점슛 득점 싸움에서 먼저 확실한 우위를 가져갔다. 그리고 이로 인해 허술해지는 상대의 페인트존 수비를 다채로운 컷인 전술과 속공으로 공략하며 페인트존 득점에서도 우위를 가져갔다. 2017년 케빈 듀란트 영입 이후 미드레인지 득점 생산이 늘어나며 팀 컬러에 다소 변화는 생겼지만, 5년 연속 파이널 진출에 성공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골든스테이트는 3점슛 라인 밖과 페인트존에서 모두 훌륭한 마진을 기록하는 팀이었다.

그렇다면 밀워키는 어떨까?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이 야인 생활을 마치고 지휘봉을 잡은 2018-2019시즌부터 밀워키는 팀의 공수 기조를 현대농구의 트렌드에 맞게 바꿔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밀워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 즉 페인트존 득점 싸움에서 우위를 가져가는 것이었다.
페인트존 득점 싸움에서 우위를 가져가기 위해선 결국 ①페인트존 득점은 극대화하고 ②페인트존 실점은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페인트존 득점 극대화는 ‘그리스 괴물’ 야니스 아데토쿤보와 에릭 블레소 등의 적극적인 돌파를 통한 림 어택을 통해 실현할 수 있었다.
관건은 페인트존 실점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밀워키는 꽤나 극단적인 해답을 내놓았다. 3점슛 수비를 어느 정도 포기하더라도 페인트존 실점만큼은 최소화하는 전략을 쓴 것이다.
그 전략의 핵심으로 활용한 것이 바로 드랍백(Drop Back) 수비였다. 보통 ‘드랍 커버지(Drop Coverage)’라고 많이 불리는 드랍백 수비는 2대2를 수비할 때 스크리너의 수비수가 페인트존 가까이 처져서 골밑 수비에 중점을 두는 수비를 말한다. 드랍백 수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은 아래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동환의 NBA노트] 픽앤롤은 어떻게 수비할까? - ①드랍백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398&aid=0000018322

드랍백 수비 등을 활용해 페인트존 수비를 최우선으로 삼은 밀워키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2017-2018시즌 평균 페인트존 실점 리그 23위(47.3점), 페인트존 득실 마진 +0.1점을 기록했던 밀워키는 부덴홀저가 감독으로 부임한 첫 시즌이었던 2018-2019시즌에 페인트존 실점 리그 1위(42.2점), 페인트존 득실 마진 +11.1점을 기록했다. 페인트존 득실 마진은 리그 전체 1위였다.
올 시즌도 밀워키는 페인트존 실점과 득실 마진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가져가고 있다. 페인트존 실점은 38.8점으로 리그에서 유일하게 30점대를 기록하고 있으며, 페인트존 득실 마진은 +11.3점으로 여전히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페인트존을 1순위로 잠그고 3점슛은 2순위로 막는 수비법으로 결국 밀워키는 2년 연속 정규시즌 동부지구 1위를 노리고 있다. 부덴홀저 시대의 밀워키를 페인트존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고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러셀 웨스트브룩과 함께 뛰던 시절 스티븐 아담스는 절묘한 실 스크린을 통해 그의 돌파 득점을 돕곤 했다.)
드랍백 수비의 카운터 펀치: 실 스크린(Seal Screen)
결국 밀워키를 상대하는 모든 팀은 2대2 공격을 펼칠 때 드랍백 수비를 공략하는 것이 중요한 미션이 된다.
일단 지난 3일 밀워키에 16점 차 완패를 안긴 마이애미(89-105)는 픽앤팝 공격을 통해 밀워키의 드랍백 수비를 무너뜨렸다.
2대2 공격을 시도할 때 스크리너(스크린을 거는 선수)가 페인트존으로 달려들지 않고 3점슛 라인 바깥에 머문 후 캐치앤슛을 터트리며 밀워키의 3점 라인을 끈질기게 공략했다. 이날 마침 선수들의 3점슛 감각이 유난히 좋았던 마이애미는 37개의 3점슛 시도 중 절반에 가까운 무려 18개를 성공하며 경기를 가비지 게임으로 만들어버렸다.
7일 밀워키를 만난 레이커스 역시 밀워키의 드랍백 수비를 공략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
르브론 제임스를 중심으로 한 2대2 공격이 중요한 팀인 만큼, 이날 레이커스의 성패는 드랍백 수비 공략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레이커스 역시 마이애미가 그랬던 것처럼 2대2 공격 시에 픽앤팝 공격을 자주 펼쳤다. 르브론 제임스의 아이솔레이션 공격도 적극 활용했다.
더불어 경기 중 3번, 4쿼터에만 2번이나 ‘실 스크린(Seal Screen)’을 활용해 르브론의 돌파 득점을 만들어내며 드랍백 수비를 성공적으로 공략해냈다.

(▲위 사진 속 다니엘 타이스의 모습을 주목하자. 등과 엉덩이로 니콜라 요키치의 몸을 막아서고 있다. 이를 활용해 제이슨 테이텀은 골밑으로 돌파해 슛을 시도하려 한다. 여기서 타이스가 만드는 벽이 바로 실 스크린이다. 실 스크린은 오펜스 파울의 위험이 높은 스크린이기에 상당한 노련미를 필요로 한다.)
‘실(seal)’은 ‘봉인하다’, ‘밀봉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다. 그리고 농구에서는 공격수가 몸으로 수비수를 밀어내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실링(Sealing)’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포스트업을 위해 공격수가 등과 엉덩이를 활용해 수비수를 밀면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포스트 실(post seal)’ 혹은 ‘실 더 포스트(seal the post)’라고 부른다. 결국 ‘실(seal)’은 농구에서 공격수가 자신의 몸을 활용해 수비수를 밀어내며 공간을 확보하는 동작을 총칭하는 표현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 스크린’은 무엇일까?
‘실 스크린’이란 공격수가 자신을 막고 있는 수비수를 몸으로 밀어냄으로써 볼을 가지고 있는 다른 공격수의 돌파 공간을 만들어주는 스크린을 의미한다.
이때 공격수가 몸으로 밀어내는 대상이 다른 공격수의 수비수가 아니라, 자신을 막고 있는 수비수라는 것이 중요하다.
오클라호마시티의 스티븐 아담스, 워싱턴의 마신 고탓이 실 스크린을 통해 러셀 웨스트브룩과 존 월의 돌파 득점을 도왔던 대표적인 빅맨이었다.
올 시즌은 보스턴의 다니엘 타이스가 실 스크린을 통해 팀 공격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보스턴은 켐바 워커, 제일런 브라운, 제이슨 테이텀 등의 돌파 득점을 살리기 위해 타이스, 에네스 캔터 등을 비롯한 빅맨들의 실 스크린을 주요 공격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림을 통해 ‘실 스크린’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가자. 위 그림은 지난 2월 27일 보스턴 셀틱스와 유타 재즈의 경기에서 2쿼터 1분 12초를 남기고 나온 장면을 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낸 것이다.
제이슨 테이텀과 에네스 캔터가 2대2 공격을 시도했고, 그 결과 테이텀이 자신의 마크맨이었던 조 잉글스를 제치고 골밑으로 돌파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에네스 켄터의 움직임이다. 켄터는 테이텀이 돌파하는 타이밍에 맞춰 자신의 마크맨이이며 드랍백 수비를 펼치고 있던 루디 고베어를 몸으로 밀어내며 테이텀을 위한 돌파 공간을 만들어준다.

드랍백 수비를 통해 골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베어는 켄터의 ‘실 스크린’에 가로막혀 테이텀의 돌파에 이은 슛 시도를 제대로 견제할 수 없었다. 테이텀은 켄터가 만든 ‘벽’ 뒤에서 높은 각도의 레이업슛을 통해 결국 돌파 득점을 올렸다.
이번엔 7일 레이커스와 밀워키의 경기에서 나온 장면을 직접 확인해보자.
아래는 4쿼터 시작 1분 6초 만에 나온 르브론 제임스가 돌파 득점을 성공한 상황을 다이어어그램으로 나타낸 것이다.

르브론 제임스와 드와이트 하워드가 45도 부근에서 픽앤롤 공격을 펼친다.
이때 하워드의 마크맨인 브룩 로페즈의 위치를 주목하자. 페인트존의 엘보우 부근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드랍백 수비다.

스크린을 건 하워드는 페인트존으로 롤링(rolling)한다. 이때 흥미로운 것이 르브론의 움직임이다.
자신의 마크맨이었던 마빈 윌리엄스가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상황에서, 르브론은 자유투 라인 앞에서 잠시 멈춘 채 드리블을 이어가며 등과 엉덩이로 마빈 윌리엄스를 밀어내고 있다.
이때 순간적으로 브룩 로페즈는 1대2의 상황에 놓인다. ①자신의 앞에서 드리블을 하며 돌파를 노리는 르브론 제임스와 ②스크린을 건 후 페인트존으로 달려가는 드와이트 하워드를 모두 견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르브론처럼 드리블러가 등과 엉덩이로 뒤에서 오는 자신의 수비수를 밀어내며 자신의 앞에 있는 수비수를 2지선다의 상황에 놓이게 만드는 것을 ‘풋 어 디펜더 인 더 제일(put a defender in the jail)’이라고 부른다.
직역하면 수비수를 감옥에 갇히게 만든다는 얘기인데, 2대2 공격에서 드랍백 수비를 펼치는 수비수를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게 해버리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르브론의 이 동작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르브론이 자신을 막던 마크맨은 등으로 밀어내고 자신의 눈앞에 있는 빅맨 수비수는 페인트존에서 잠시 얼어붙게 만드는 동안, 스크린을 걸었던 하워드는 페인트존으로 달려갈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된다. 즉 르브론의 ‘풋 어 디펜더 인 더 제일’ 동작을 통해 드와이트 하워드는 골밑에서 자신의 ‘두 번째 동작’을 가져갈 시간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하워드의 이어지는 ‘두 번째 동작’이 바로 ‘실 스크린’이다.
페인트존으로 달려간 하워드는 브룩 로페즈의 앞에 서서 순간적으로 벽을 만들고 공격자 파울을 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로페즈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하워드의 몸에 가로막힌 로페즈는 어쩔 줄 몰라하고, 르브론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골밑으로 진입해 레이업슛으로 득점을 올린다.
이와 동일한 장면이 이날 경기에만 총 3번 나왔고 4쿼터에만 2번 나왔다. 위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 2번의 장면에서는 하워드 대신 자베일 맥기가 ‘실 스크린’을 통해 르브론의 돌파 득점을 도왔다.
이 경기에서 밀워키는 4쿼터 종료 6분여를 남기고 레이커스를 4점 차까지 바짝 추격했던 바 있다. 이 점을 고려하면 레이커스가 ‘실 스크린’을 활용해 만들어낸 르브론 제임스의 6득점은 상당히 중요했다. 특히 밀워키의 수비 기조인 드랍백 수비를 제대로 무너뜨리는 공격법이었기에 실질적인 효과는 더 컸다.

(▲2쿼터 2분 18초를 남기고 나온 르브론 제임스의 원 핸드 덩크도 자베일 맥기의 실 스크린 덕분에 나왔다. 마침 사진에 정확히 나오고 있다. 골밑에서 자베일 맥기가 자신의 몸으로 벽을 만들어 브룩 로페즈를 가로막고 있다.)
한편 레이커스처럼 ‘실 스크린’으로 드랍백 수비를 공략하는 것을 ‘스크린 더 드랍(Screen the Drop)’이라고 부른다. 드랍백 동작을 가져가는 빅맨 수비수에게 스크린을 건다는 의미다.
‘실 스크린’이 자신의 마크맨을 몸으로 밀어내며 동료의 득점을 돕는 스크린 자체를 칭한다면, ‘스크린 더 드랍’은 ‘실 스크린’을 통해 드랍백 수비를 공략하는 것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 즉 후자가 전자보다는 좁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스크린 더 드랍’은 픽앤팝과 더불어 드랍백 수비를 공략하는 대표적인 공격법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7일 레이커스와 밀워키의 경기에서 나온 ‘실 스크린’을 통한 드랍백 수비 공략법을 살펴보았다. 이날 레이커스의 승리에는 많은 전술적 변수들이 작용했고 그 중에서 ‘실 스크린’도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리그 전체 1위 밀워키를 상대로 레이커스가 거둔 승리는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밀워키의 수비 기조에 대한 공략법을 준비하고 실제로 이행해낸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짜릿한 결과물이었다.
사진 제공 = 로이터/뉴스1
이미지 제작 = 이동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