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2020년 원주 DB는 KBL 돌풍의 핵이 됐다. KBL 최초 4라운드 전승과 9연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고 리그 단독 1위로 올라섰다.

그 중심에는 두경민이 있었다. 1월 초 상무에서 전역해 원주로 돌아온 두경민은 복귀 후 치른 13경기에서 평균 14.2점 4.5어시스트 3점슛 2.1개를 기록했다. MVP급 가드 두경민이 합류한 이후 DB는 더욱 강력한 팀이 됐다.

지난 11일 원주에 위치한 DB 연습체육관에서 두경민을 만났다. 당시 두경민은 국가대표 차출을 앞두고 밀린 인터뷰를 소화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경희대 시절 이야기부터 MVP 시즌의 태업 논란에 대한 회상까지. 두경민과 나눈 대화를 지금부터 공개한다.

 

3월호 표지 모델이 됐다. 표지 촬영을 하면서 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다. 이런 경험은 오랜만일 것 같다.

예전에 웨딩 촬영을 할 때는 이것보다 더 많이 찍긴 했었다.(웃음) 말씀대로 이런 사진 촬영은 정말 오랜만이긴 하다. 군대를 다녀와서 더 오래된 느낌이 든다. 군대 가기 전에는 그래도 종종 촬영을 해봤다. 무엇보다 저 혼자 표지 모델 촬영을 한 것은 아예 처음이다.

루키더바스켓 2017년 12월호에 디온테 버튼과 함께 표지 모델을 했었다.

맞다. 그런데 그때는 제가 표지모델인지도 모르고 촬영을 했다. 사실 그 후에 잡지도 못 받았다.(웃음)

정말인가? 나중에 따로 챙겨드리겠다.

진짜다. 챙겨주시면 정말 감사하다.

전역 후에 팀 성적과 분위기가 좋다. 최근에는 아들도 태어났다. 여러모로 좋은 일이 많은 것 같다. 요즘 기분이 어떤가. 인터뷰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 있었고 여러모로 잘 풀리고 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이 든다.

어떤 부분이 그런가?

전역하고 나서 제가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고 있다. 하지만 기존에 팀을 끌고오던 선수들은 따로 있다. 그 선수들 덕분에 우리 팀이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 선수들이 쌓은 공과 그들이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제가 뒤늦게 와서 가져가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굉장히 미안하고 고맙다.

많은 동료들이 시즌 내내 팀을 굳건히 끌고 와줬다. 그리고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해주면서 저, (김)민구, (김)종규 같은 선수들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고 있다. 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 미안한 마음도 많다.

상무 입대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DB의 선수 구성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 복귀를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해왔겠지만, 처음 복귀했을 땐 DB가 원소속 팀임에도 낯선 느낌이 있었을 것 같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낯선 느낌은 전혀 없었다. 내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내 집에 온 것 같고 너무 편했다.

물론 바뀐 것도 있다. 제가 입대하기 직전의 DB는 우승이 목표로 시즌을 준비하는 팀이 아니었다. 가지고 있는 걸 코트에서 모두 미친 듯이 쏟아내야 이길 수 있는 팀이었다. 다 쏟아내더라도 이기지 못하는 경기도 많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뭉치고 정신없이 같이 농구를 했던 팀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계기가 돼서 한 단계 성장한 선수들이 많고 거기에 능력 있는 선수들이 많이 왔다. 농구를 재밌게, 잘 하는 선수들이 팀에 많아졌다. 그래서 당시에 비해 더 즐겁게 농구를 하는 느낌은 분명히 있다. 저조차도 코트에 들어서면 정말 재밌고 신나고 그렇다. 그런 부분이 많이 달라졌다.

국내선수 비중이 커지고 외국선수 의존도가 줄어든 점도 달라진 점이다. 입대 전 시즌에는 디온테 버튼이라는 좋은 외국선수를 중심으로 시너지를 만드는 팀이었다면, 지금은 서로 시너지를 만들어낼 국내선수들이 많다. 심지어 저 한 명 없어도 시너지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국내선수층이 좋다. 그 부분이 많이 다르다.

마침 디온테 버튼 얘기가 나와서 궁금해졌다. 지금은 칼렙 그린, 치나누 오누아쿠와 호흡을 맞추는 중이다. 버튼과 뛰던 시절과 어떤 점이 다를까?

지금 시점에서 저한테 더 맞는 선수들이 누구냐고 하면 아무래도 디온테 버튼과 로드 벤슨일 것이다. 함께 오래 뛰지 않았나. 특히 벤슨은 지금도 많이 생각나는 선수다.

외국선수 구성이나 스타일에서 분명 다른 부분이 있다. 디온테 버튼은 득점력도 좋고 힘도 좋고 상대가 막기 굉장히 까다로워 했다. 폭발력에 강점이 있었다. 반면 오누아쿠는 패스를 받아먹는 득점을 올려주거나 2대2 게임에서 가드와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 있는 선수다. 그린은 개인 득점력도 좋지만 어시스트로 다른 선수들의 득점도 잘 만들어준다. 오누아쿠와 그린의 그런 면이 팀에 다양성을 더해주는 것 같다.

 

상무에 있는 동안 DB가 김종규, 김민구를 영입하는 등 로스터에 변화가 많았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어땠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좀 놀랐다. 특히 (김)태술이 형은 경기 운영과 관련해서 많이 배우고 싶은 선수여서 정말 좋았다. 사실 다들 이름값만 놓고 보면 대단한 선수가 아닌가. 상당수가 대표팀 경력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선수들이었다. 이런 로스터가 만들어지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상무에 있을 때는 DB에 돌아가도 내 자리가 있을지 걱정하기도 했다. 복귀한 지금은 저조차도 제 역할을 수행하는 데 미흡한 부분이 많아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농구에 집중하고 있다. 새로운 선수들이 많이 합류한 당시에는 저도 많이 놀랐었다.

새로 온 DB 선수들과 개인적으로 연락은 주고 받았었나?

종규, 민구와 연락을 했었다. 종규는 시즌을 준비하는 기간부터 시즌을 치르는 내내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종규와 민구 모두 저한테 개인적으로 무척 고마운 친구들이다.

둘 모두 큰 부상 없이 꾸준히 나오면서 팀을 지탱해주고 있다. 특히 종규는 아픈 곳이 있는데도 단 한 경기도 결장 없이 시즌을 치렀다. 소속팀과 대표팀 오가면서 힘든 내색 없이 뛰는 중이다. 그 와중에 후배들에게 솔선수범 보이고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굳이 덩크슛을 하기도 한다. 책임감을 가지고 경기 준비하는 부분에 대해서 종규와 민구에게 많이 고맙고 그런 부분이 제가 팀에 빨리 적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 것 같다.

많이 받아본 질문일 것 같다. 셋은 경희대 시절에 같이 뛰기도 했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를까?

정말 많이 받은 질문이긴 하다.(웃음) 셋이 다시 뭉치는 것이 확정됐을 때 처음에는 걱정되고 불안했었다. 전역해서 팀에 다시 합류해서는 기대가 됐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걱정이 조금씩 된다.

왜 그런가?

저, 민구, 종규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너무 쏠리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저희가 책임감을 가지려고 생각하다 보니 걱정도 많이 된다. 셋이 서로 신나게 하자고 많이 얘기하긴 하지만 농구는 우리 셋만 하는 게 아니다. 팀 전체가 다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과도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다.

상무 입대 전과 지금 본인의 역할은 얼마나 다르다고 봐야 할까?

상무 전과 지금은 굉장히 다르다. 지금은 (허)웅이도 있고 태술이 형도 들어왔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이 점점 부상에서 낫고 컨디션이 더 올라오면 지금 모습에서 또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공격 횟수를 늘리려고 하기보다는 공격의 성공률을 높게 가져가야 팀이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 맞춰갈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하면서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전역 후에 7연승을 경험하고 팀은 라운드 전승을 기록했다. 라운드 MVP에도 뽑혔다. 하지만 걱정된다고 하는 걸 보니 그 와중에도 본인은 내심 불안했던 것 같다.

사실 매 경기가 불안하다. 지금 제가 체력적으로도 완벽한 상태가 아니다. 경기 전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지 않으면 몸에 힘이 없을 정도로 굉장히 힘들다. 저희 팀 트레이너 형들이 많이 신경써주신 덕분에 그나마 버텨내고 있다.

결국 좋지 않은 컨디션 속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퍼포먼스를 유지하는 것이 올 시즌 제게 주어진 과제인 것 같다. 몇 득점을 하고 몇 어시스트를 하고 제가 얼마나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제가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를 코트에서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서 팀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있다.

상무는 시즌 경기 수 자체도 적을 뿐더러 팀 운동 시간보다는 개인 운동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부분이 영향을 준 것일까?

상무이긴 하지만 군대는 엄연히 군대다. 일반적인 팀과 당연히 다르다. 일정도 D-리그를 뛴다고 해도 일주일에 한 경기 정도다. 창원, 부산을 가는 것처럼 멀리 원정 경기를 가는 일도 없다. 그래서 아직도 장거리 원정 경기가 어색하다. 피로도도 높아지는 것 같고 제 리듬을 조절하는 것도 어렵다. 이 부분은 올 시즌 제가 가장 관리하고 신경써야 할 부분인 것 같다.

결국 올 시즌은 장거리 이동, 많은 경기 수 등 프로 특유의 환경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될까?

결국 과도기가 올 것 같다. 제가 불안감을 느끼는 게 그래서다. 저는 농구에 대해 욕심을 많이 부리는 편이다. 그런데 지금 제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더 보여주고 싶고, 더 잘하고 싶고,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크다. 늘 더 잘하고 싶은데 시간이 갈수록 경기가 오히려 더 안 풀리는 것 같다. 그래서 불안하다.

제가 합류한 이후의 저희 팀에 대해 상대 팀들은 당연히 전술적인 준비를 해온다. 그러면 저도 거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될 때가 있다. 어떤 때에는 제가 팀에 마이너스가 될 때도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법에 대해 스스로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8월에 KBL 유소년 대회 취재 차 국군체육부대가 있는 문경에 갔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인터뷰를 했었다. 전역 후 KBL 복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자신에 대해 너무 기대를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전역을 했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솔직히 지금도 제 생각은 다르지 않다. 저에 대한 기대를 너무 크게 가지시지 않는 게 좋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저 혼자 코트에서 모든 걸 다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진 못할 것이다. 제가 아닌 우리 팀 선수들이 함께 뭔가를 보여드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하지 못하면 다른 선수들이 해주고 다른 선수들이 하지 못할 때 제가 도와줄 것이다. 저 혼자 뭔가를 한다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 냉정하게 스스로를 평가하면 지금의 저는 아직 그 정도 기량이 안 된다.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선수가 아니다.

지금은 팀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고민하고 제가 거기에 맞게 플레이하는 게 중요하다. 팬 분들이 저를 높게 평가해주고 계시고 라운드 MVP 같은 과분한 상도 받았다. 하지만 그건 저 스스로는 책임감의 계기로 삼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만해서는 안 된다.

 

불안감을 거론했고 욕심이 많다는 얘기도 했다. 사실 불안하고 욕심이 많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초조함 혹은 조급함이다. 스스로가 초조해질 때 마인드를 어떻게 컨트롤하나. 초조함을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사실 경기를 뛸 때 초조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있으면 농구가 정말 잘 안 된다. 실제로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부분이 제 단점이긴 하다. 고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초조함과 불안감에 잘못했던 플레이, 놓쳤던 플레이를 되돌아보고 고치려고 노력한다. 농구에 대해 너무 많이 고민하다가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피하려고 한다. 농구를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시간이 많이 지난 이야기를 물어보고 싶다. 농구를 늦게 시작한 걸로 안다.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했다고 들었다.

맞다. 2학년, 3학년 때쯤에 시작했다.

농구를 늦게 시작한 만큼 먼저 스타트를 끊은 또래들을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다. 선수로서 출발이 늦은 것이 스스로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궁금하다.

열심히 해야 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전지훈련을 가면 하루에 4시간밖에 안 잤다. 그때는 종규와 민구가 저에게는 따라잡아야 하는 큰 벽이었다. 지금 좋게 포장하면 3인방이지만, 그때는 절대 3인방이 아니었다. 종규와 민구가 우리 팀의 핵심이었다. 저는 같은 팀에 있다 보니 운 좋게 스포트라이트를 함께 받았다. 잘하는 선수 2명이 있고 저는 그냥 같이 뛰는 동료 1명이었다. 그 격차를 어떻게든 따라잡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스스로에게는 큰 동기부여가 되는 부분이었다.

도움도 많이 받았다. 제가 대학교에서 주전으로 뛰게 된 것도 사실은 민구 덕분이다. 최부영 감독님이 민구에게 누구랑 뛰는 게 편하냐고 물었었는데 민구가 저를 얘기해준 덕분에 주전으로 뛰기 시작했다. 원래 저는 주전 선수가 아니었다. 그냥 식스맨이었다. 10분에서 15분 정도 뛰는 정도의. 주전이 된 뒤로 제가 다른 선수들과 시너지가 날 수 있게 민구와 종규가 많이 도와줬다. 서로 또래다 보니 더 많이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운이 좋았고 고마운 마음이 크다.

4시간 자면서 하루를 보낼 때의 루틴은 어땠었나?

사실 대학 때는 새벽 운동과 야간 운동까지 하느라 기본적으로 훈련량이 많고 힘들었다.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했다. 남들보다 한 시간 더 일찍 훈련하러 가고 한 시간 늦게 훈련을 끝내고 나오려고 했다. 그렇게 매일 했다. 그 마음만 가지고 매일을 보냈다.

그렇게 늘린 훈련 시간에 어떤 걸 연습했나?

기본기였다. 기본기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체력과 주력도 부족했다. 다른 사람들은 제 주력에 대해 타고 났다고들 많이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것도 훈련을 통해 좋아진 부분이다.

대학 때 코트를 뛰는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다. 짧은 시간에 제가 어느 정도까지 빨릴 달릴 수 있을지, 얼마나 지치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걸 확인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계속 연습했다.

훈련량을 늘리는 것도 중요했겠지만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어떻게 만들어갈지도 고민이었을 것 같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런 고민보다는 그냥 농구 자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 잘하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패스도 잘하고 싶고, 슛도 잘 쏘고 싶고, 코트에서 잘 뛰고 싶고, 2대2도 잘하고 싶고, 속공도 잘하고 싶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그냥 전부 다 잘하고 싶었다. 이런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상황에 맞게 플레이 스타일을 어떻게 다듬어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그냥 농구에 관해서는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거기에 맞춰서 훈련을 했다.

그저 농구 자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그 마음이 컸다. 그래서 다 연습했던 것 같다. 속공할 때 실책이 나오면 실책이 안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마침 주변에 좋은 교과서가 있었다. 민구였다. 민구는 어려운 플레이도 그냥 척척 해내곤 했다. 대단했다. 그래서 민구 플레이를 보면서 참고하고 배우고 따라하고 그랬었다.

스스로는 대단한 선수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어쨌든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지명됐다.

그건 경희대 선수라는 점이 컸다. 최부영 감독님이라는 좋은 감독님을 만나서 4년 동안 정말 힘들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좋은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친구, 선후배 선수들 만나고 좋은 감독님 밑에서 4년을 뛴 덕분에 높은 순위로 뽑힐 수 있었다.

당시에 제가 아니라 다른 선수가 경희대에 와서 동료들, 감독님과 함께 열심히 농구를 했으면 3순위는 제 자리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경희대에 가고 최부영 감독님을 만나고 종규, 민구 같은 좋은 동료들을 만난 점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경희대 시절에 고려대와의 라이벌리가 큰 화제였다. 그런데 얘기를 듣다보니 본인은 그런 라이벌리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경기와 훈련에만 집중했을 것 같다.

고려대한테는 저희가 져본 적이 몇 번 없는 걸로 기억한다. MBC배 결승 때는 민구와 종규가 파울 트러블에 걸리면서 연장전에서 저 혼자 뛰었던 탓에 졌다. 대학리그 챔피언결정전 때는 민구 무릎 상태가 너무 안 좋고 종규도 대표팀 왔다갔다 하면서 발목이 매우 안 좋았다. 한 번 이기고 두 번 연속 졌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라이벌리는 사실 제게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고려대에 대한 라이벌 의식은 개인적으로는 따로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 팀에 대한 자신감이 워낙 컸었다.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붙었다면 고려대에 한 번도 안 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 고려대에 있었던 이승현, 이종현 같은 선수들한테 이 이야기를 전해봐도 될까?

상관없다. 그 친구들도 우리가 어려운 상대였을 것이다. 종규, 민구 같은 레벨의 선수를 상대하긴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다시 맞붙는다면 어떨까?

지금 컨디션으로 붙으면 정말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웃음) 다들 너무 잘한다. 승현이도 잘하고 있고.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정말 자신 있었다.

 

그렇게 프로에 왔다. 프로에 온 다음에는 어떤 목표가 있었고 스스로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했나?

솔직히 프로에 와서 첫 3년 정도는 자만심이 너무 컸다. ‘나는 3순위 선수이고, 나는 잘할 수 있고, 나는 다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을 했다. 귀가 닫혀 있었다.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많이 다를 것이다. 너무 넘치는 자신감을 억누르고 주변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려고 노력할 것 같다.

후회가 커보인다.

그때 첫 3년이 정말 아쉽다. 많이 아쉽다. 많은 걸 배우고 더 많은 걸 해볼 수 있는 시기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하지만 상무 입대를 앞두고 MVP 레벨의 선수로 급격히 올라섰다. 팬들은 물론 주변의 평가도 달라졌다. 좋지 않았던 마인드에 변화가 있었던 걸까?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했고 결국 저라는 선수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라진 계기가 있을까?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사실 MVP를 받은 시즌의 바로 전 시즌에 제가 부상으로 시즌아웃됐었다. 17경기밖에 뛰지 않았다. 마지막 경기에서 복귀했지만 사실상 시즌아웃이었다.

그 후에 상무를 미뤘다. 김영만 감독님께 찾아가서 상무 입대를 미루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다음 시즌에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 상태가 워낙 좋았다. 한 시즌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부상없이 풀 시즌을 뛰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과 욕심이 함께 있었다. 얘기를 꺼내니 감독님이 많이 놀라셨다.

결과적으로 그게 신의 한수가 됐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었다. 솔직히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아마 저는 입대를 미루지 않고 바로 상무에 갔을 것이다. 갑자기 상무 입대를 미루는 건 미친 짓이었다.(웃음)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 꼴찌 후보라고 주변에서 이야기해도 저 스스로는 자신이 있었다. 그 선택이 제가 달라진 계기였다. 책임감이 커졌다. 주변의 이야기도 많이 듣고 팀 전체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저도 거기에 맞추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 후에 대단한 시즌을 보내며 정규리그 MVP를 받았다. 어떤 기분이었나?

영광스럽고 정말 좋았다. 하지만 그 시즌에 있었던 태업 논란을 통해 마음에 큰 짐이 하나 생겼다. 저 스스로에게도 실망했지만 무엇보다 팬분들과 감독님, 팀 동료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안 좋은 이미지도 생겼다. 그 부분에 대한 마음의 짐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그걸 지금 이겨내야 한다. 두경민이라는 선수가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드리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후회되는 사건이 있었던 탓인지 스스로는 그 시즌을 마냥 좋은 시즌이었다고 기억하지는 않는 것 같다.

후회되는 부분이 많았다.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했던 시즌이었다.

그 시즌에 챔피언결정전에서 SK에 아쉽게 패하면서 우승을 빼앗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역 후 홈 복귀전도 상대가 SK였다. 하필 올 시즌도 DB와 SK는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다. SK만큼은 잡고 싶다는 욕심 같은 건 없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지는 않다. SK와 만난 홈 복귀전에서도 저 때문에 말이 많지 않았었나. 그 불문율과 관련해서.(웃음)

맞다. 그랬었다.(웃음)

그때를 돌이켜보면 마지막 3점슛을 넣고 세리머니까지 한 부분에 대해서는 SK 선수들에게 미안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제 홈 복귀전이었던 탓에 너무 마음이 들떠 있었다. 오랜만에 원주 팬들이 모인 홈 코트에서 경기를 한다는 설렘이 너무 커서 그런 과도한 액션이 나왔다.

그 후에 저희 연승이 SK전에서 끊겼는데 SK 자밀 워니가 제가 했던 것과 똑같은 세리머니를 하더라.(웃음) 하지만 저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는다. SK라고 해서 반드시 이기겠다고 생각하고 그러지는 않는다. SK전도 정규리그의 한 경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게 있다. 두경민이라는 선수는 특정 선수나 팀에 대한 경쟁심이나 승부욕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향상심이 더 크고 중요한 선수 같다. 제대로 본 게 맞을까?

사실 어떤 선수나 팀을 싫어하고 그들에게 승부욕을 느끼는 건 제게 의미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싫어하는 선수도 팀도 특별히 없다. 적어도 저는 그렇다.

농구를 더 잘하고 싶고, 경기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 그게 더 크다고 보면 될까?

맞다.

 

데뷔 후에 아직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DB라는 팀 자체가 우승을 꽤 오래 경험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데뷔하고 준우승만 두 번 했다.

우승에 대한 간절함이 생기지는 않나?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우승에 대해 늘 조심스럽게 생각하려고 한다. 처음 준우승할 때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챔피언결정전을 뛰었다. 두 번째 준우승 당시에는 자신감만 가지고 우승에 도전했다. 하지만 잘 안 됐다. 앞으로 그 두 번의 경험을 잘 살려서 우승에 도전해야 한다.

물론 팀의 목표는 우승이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아직 우승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우승에 대해서 만큼은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려고 하고 있다.

조금 전에 홈 코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경기장을 찾는 사람이 줄었음에도 원주만큼은 경기장에 사람이 많더라. 원주 팬들 앞으로 돌아온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

감사한 마음뿐이다. 정말 감사하다. 제가 FA까지 계약 기간이 두 시즌 남아 있다. 한 시즌 미뤄지면서 그렇게 됐다. 그걸 모르시는 팬분들은 벌써부터 저한테 “다른 팀 가지 마세요!”라고 외치시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감사하다. 제가 팀을 선택해서 뛸 선수는 아직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저를 응원해주시고 좋게 봐주시니 정말 감사할 뿐이다.

최근에 아들이 태어났다.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커졌을 것 같다.

저는 빵점(0점)짜리다. 빵점.

가장으로서 0점이라는 얘기인가?

그렇다. 결혼을 할 때 준비를 와이프 혼자서 했었다. 그리고 결혼한 후에는 한 달 만에 상무에 갔다. 그 시간 동안 와이프 혼자 아이를 품고 낳았다. 오늘이 아이가 태어난 지 21일째다. 그 기간 중에 아이를 본 게 3일, 4일 정도밖에 안 된다. 남편으로서도, 아빠로서도 당연히 빵점이다. 늘 미안하고 고맙다.

그 미안함을 어떻게 만회해야 할까?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일단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저는 농구선수이지 않은가. 아이가 좀 더 컸을 때 와이프와 아이가 제 모습을 보면서 든든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선수 두경민, 남편 두경민, 아빠 두경민을 다른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더 잘하고 싶다. 연봉도 많이 받아서 와이프한테 좋은 선물도 해주고 분유값도 잘 벌어야 하지 않겠나.(웃음)

마지막으로 뻔하고 형식적인 질문 하나만 하겠다. 농구선수 두경민에게 남은 커리어의 목표는 무엇일까?

제가 가장 첫 번째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다. 농구가 재미없어지는 순간 농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농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저 스스로 농구를 일로 여기거나, 일이라는 이유로 농구를 억지로 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언제든지 농구를 그만두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앞으로도 그 마음을 가진 채 농구를 재밌게 하고 싶다.

그리고 MVP 시즌에 생겼던 후회와 마음의 짐을 완전히 씻어내고 은퇴하고 싶다. 그때 생긴 마음의 짐이 남은 채로 은퇴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이 저한테 그런다. 태업하지 말라고. 시간이 꽤 지났으니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제 친구 중에 한 명은 제 이름을 ‘두태업’이라고 부른다.

저한테도 무척 큰 아픔이었지만 제가 받은 아픔보다 다른 사람들한테 준 아픔이 컸던 사건이었다. MVP 시즌에 저지른 실수와 잘못에 대해 마음의 짐을 좀 덜고 은퇴하고 싶다.

2017-2018시즌에 겪은 다양한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이 남은 커리어에 계속 영향을 미칠 거라고 봐야 할까?

그렇다. 좋은 쪽으로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제게 득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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