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진호 기자] 대한민국 농구협회(이하 ‘협회)의 국가대표팀 지원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여전히 협회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협회의 부실한 대표팀 지원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이 되어 온 부분이다. 각종 보도와 농구계 내부에서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협회는 복지부동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수들의 소신발언과 올림픽이 맞물리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회는 여전히 문제의 핵심과는 거리를 보이며 ‘그들만의 세상’을 사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여자 대표팀 연습경기를 바라보는 시선
지난 11일,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획득한 여자농구 대표팀의 입국했다. 박지수(KB)는 협회의 열약한 지원을 성토했다. 국제대회를 준비하며 제대로 된 연습경기를 갖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협회 관계자는 발 빠르게 변명에 나섰다. 올림픽 본선 무대를 앞두고는 당연히 외국팀과의 연습 경기를 주선하겠다고 했다. 애초부터 계획에 있었다고 했다.
마이데일리의 보도에 따르면, 협회 관계자는 11일 공항에서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출전국가들이 한국에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며, 베이스캠프를 한국에 차리는 팀을 대상으로 연습경기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황스럽다. 전력 향상을 위한 연습경기의 의미를 알고 한 발언인지 의심스럽다.
우리나라는 이번 올림픽에서 1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림픽 본선 조편성이 나온 후, 1승 대상으로 삼을 팀이 어디인지 정하고, 그 팀과의 모의 시뮬레이션이 될 수 있는 나라나 팀을 섭외하여 연습경기를 치러야 한다. 그 대상은 올림픽 진출 국가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협회 관계자의 발언은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나라에 베이스캠프를 차리는 나라를 불러서 하겠다는 입장이다.
올림픽 본선에 오른 팀 중, 우리보다 약체라고 할 수 있는 팀은 없다. 하지만 목표가 확실하다면, 그에 맞는 계획으로 진행하는 것이 온당하다. '세계 최강' 미국과 연습 경기를 치른다고 1승 상대로 점찍은 팀과의 경기에 적응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이나 굵직한 대회를 앞두고 전지훈련을 해외로 다니며, 같은 조에서 만날 팀들과 비슷한 팀을 찾아 경기를 펼쳐 ‘모의 수능’이라는 말을 듣는 것과 비교하면 뜬 구름 잡는 계획이 아닐 수 없다. 그저 체면치레를 하겠다는 수준이다.
협회가 말하는 연습 경기는 그 동안에도 종종 있었다.
대만 국가대표팀이 거의 매년 여름, 우리나라를 찾는다. 해외 전지훈련에 나선다는 점만 놓고 보면 대만 대표팀이 우리보다 낫다. 이 기간 중 대만 대표팀은 우리나라 프로팀들과 자주 연습경기를 갖는다.
그리고 마침 이 시기에 우리나라 대표팀이 소집되어 있다면, 대표팀간의 연습경기도 치러진다. 협회 관계자가 언급한 연습경기는 딱 이 수준이다. 다만, 그 팀이 대만이 아닌 올림픽 진출팀이라는 점만 다르다.
허훈의 대표팀 버스 논란, 본질은?
14일에는 남자 대표팀 버스 문제가 터졌다. 허훈(KT)이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동 버스 사진을 찍어 이를 조소하는 듯 한 게시물을 자신의 SNS에 올린 것이다.
협회는 해명에 나섰다. OSEN 보도에 따르면, 선수촌이 있는 진천에 자차로 오겠다는 선수가 3명뿐이어서 나머지 9명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한 조치였다는 것.
사실 협회는 그동안 대표팀이 충북 진천에 위치한 선수촌에서 훈련을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서울 방이동에 위치한 농구협회 사무실로 대표팀 선수들을 주로 소집해왔다.
모여서 하는 일은 특별한 것이 없다. 간단한 서류 작성과 방열 회장의 훈시를 듣는다. 주로 오전에 이 절차를 마치고 진천으로 이동한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절차다. 국가대표 선수들도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른다.
그냥 진천에서 소집하면 된다. 서류 작성은 협회 직원이 선수촌으로 가서 받으면 될 일이다. 굳이 회장 훈시가 필요하다면, 회장이 직원과 동행하면 된다. 불필요하게 선수들이 협회에 모였다가 진천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자면, 누구라도 “회장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닐까”라는 오해를 할만하다.
협회는 딴에 배려를 한 것이 역풍으로 돌아오니 당황하는 기색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진천으로 바로 소집하는 것에 익숙했다면, 이런 해프닝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파주 NFC로 소집될 때, 서울 신문로 축구 회관에 들려 회장 훈시를 듣고 이동하지 않는다. 협회는 ‘없는 살림에 배려를 했다’고 하지만, 제3자의 시선에서는 전 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업무 처리 방식이 일으킨 문제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대표팀 운영 능력 없는 협회의 무리수
이런 문제의 근본 원인은 협회가 대표팀을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협회는 이번 올림픽 본선을 앞두고 여자 대표팀의 연습 경기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예산과 관련해서는 WKBL과 협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주고 받는 것이 없다. 일방적으로 협회가 지원을 받겠다는 것. 그냥 돈을 달라는 것이다.
WKBL은 협회 산하 기관이 아니다. WKBL의 주요 구단들이 금융그룹을 모기업으로 하지만, 그들이 협회의 주거래은행 자동입출금 통장도 아니다.
협회는 대표팀 운영과 관련해 습관적으로 KBL과 WKBL에 손을 벌린다. 협회가 자생적으로 대표팀을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수년간 증명된 사실이다.
양측 프로 연맹의 지원이 줄어들자 협회는 남자 대표팀 선수의 신장을 2미터 미만으로 조절해 비즈니스 항공권 비용을 아꼈고, 항공권 예약에 실수를 범해 여자 대표팀이 비행기를 놓치고, 인도 델리 공항 바닥에 6시간 이상을 주저 앉아있게 만들었다.
결국 양 연맹과 각 구단들은 협회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태도에 선수들을 보호하고자, 항공권 업그레이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지난 해 아시아컵(인도)과 올림픽 2차 예선(뉴질랜드), 이번 최종예선(세르비아)까지 약 6개월 사이에 WKBL과 구단이 지출한 금액은 거의 1억 원에 육박한다.
사실상 협회가 국가대표 선수들을 볼모로 양 연맹에 운영비를 받아내는 구조다. 심하게 지적하면 인질극과 다를 바가 없다.
대표팀 경쟁력의 걸림돌이 되는 협회
대한민국 농구협회가 대외적으로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기관임은 분명하다. 대표성을 갖고 국가대표팀의 운영주체가 되어야 함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협회가 자생적으로 대표팀을 운영할 능력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야구의 예를 봐도, 대표팀은 협의를 통해 KBO가 운영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농구협회 역시 대표팀 운영 능력이 없다면 이런 방법을 찾아야 한다.
KBL과 WKBL도 대표팀을 직접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협회는 양 연맹에 자금 지원만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협회가 갖고 있는 대표성 때문일까?
많은 관계자들은 “나이키나 국민은행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고, KBL과 WKBL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협회가 대표팀 운영을 놓지 못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각 연맹과 프로팀 관계자들은 “협회가 대표팀 지원과 관련해 연맹의 지원을 받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마치 줘야 할 돈을 안 준다는 태도로 일관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원을 요청하면서 세부적인 지출 계획을 준 적은 없다. 협회의 공문은 거의 1장이다. 3장을 넘어가는 걸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전체 금액만 정해서 요구하고, 그 돈을 주면 세부적으로는 알아서 쓰겠다는 입장”이라고 비판한다.
한 프로 관계자는 “대표팀 운영을 맡고 있는 기관에게 대표팀은 ‘의무’다. 대표팀을 제대로 운영하고,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할 의무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협회는 대표팀을 갖고 있는 것을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올림픽을 지척에 두고, 선수들의 불만이 수면위로 올라온 상황에서도 협회는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협회가 계속 대표팀 운영의 정당성을 주장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나 대한체육회의 대대적인 감사가 필요할 것 같다.
대표팀 운영과 관련해 매년 예산을 받으면서도 살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면, 예산 사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문체부가 지원하는 예산 설정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버스비도 아껴야 하는 입장의 협회가 대표팀을 운영하고자 하는 것은 욕심이다. 현재의 협회에게 국가대표 운영은 사실 상, '개 발의 편자'다.
대표팀 운영을 누가 맡아야 하는지의 기준은 허울 좋은 명분 찾기보다, 대표 선수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최선의 능력을 다할 수 있는 지원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각 연맹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대표팀을 꾸릴 수 없는 협회와 자생적으로 대표팀을 운영할 수 있는 KBL과 WKBL. 누가 대표팀을 운영해야 할 지, 답은 자명하다.
몇 년 전, 한국 농구의 3대 대표기구인 협회와 KBL, WKBL은 농구인들이 모두 수장을 맡으며, 현실적인 노력으로 발전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안타깝게도, 3개 단체의 대표가 모두 농구인 출신이었던 시기가 한국 농구계 최악의 암흑기였음을 집행부 당사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이 시인하고 있다.
KBL과 WKBL은 새로운 총재와 집행부가 들어선 후, 많은 쇄신을 통해 발전을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여전히 심판 판정 등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지적되지만, 전체적인 운영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특히 예산과 재정 문제에 대해서는 총재가 직접 나서 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협회는 여전히 깜깜하다. 늘 예산 타령이다.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회장과 집행부의 책임이자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예산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은 회장과 집행부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며, 참을 수 없는 모욕이어야 한다.
방열 회장은 전임 이종걸 회장의 문제를 지적하며 농구인들의 공통된 목소리를 모아 회장에 올랐다. 당시 방열 회장은 원로 농구인들과 함께 집행부의 무능한 행정 능력과 약속 불이행을 성토했다.
새롭게 회장에 오르면서 방열 회장은 대표팀 전력 강화, 국제대회 유치, 서울에 여자대학농구부 창단, 고사 위기의 여고 농구부 발전 등을 약속했다.
2013년 취임 이후 지금까지, 무엇 하나 이룬 것이 없다. 심지어 방 회장이 성토했던 전임 시절보다 한국 농구의 가치와 위상은 더 떨어졌다.
협회의 인적 구성을 보면, 쇄신과 발전의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자조가 농구계에서도 나온다. 존경받는 농구인이었던 방열 회장에 대해 이제는 부정적인 시선이 압도적이다.
방 회장의 임기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 농구 발전과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협회는 대표팀 운영과 관련한 전권을 각 프로 연맹에게 위탁하고, 능력 있는 외부 인사를 후임 회장으로 추대해 전폭적인 쇄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임기 내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방열 회장과 집행부가 대한민국 농구에 받을 수 있는 면죄부는 아마도 이것이 유일할 것이다.
사진 = 이현수 기자, 허훈 SNS, 대한민국농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