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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하의 스텝백] 또 한번 '국가대표의 자격'을 증명한 자랑스런 선수들

[루키=변연하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올림픽 본선무대 진출을 위해 꼭 넘어야 했던 상대, 영국을 이겼다. 12년만의 올림픽 진출을 위한 가장 큰 고비를 넘었다. 중국이 스페인을 잡으면서, 영국에게 패할 경우 탈락이 확정되는 상황이었기에 부담이 상당했을 텐데, 선수들이 큰 성과를 이루어냈다.

준비와 노력, 선수들의 집중력이 보여준 성과
3점슛 싸움에서 초반 흐름을 가져온 경기였다. 경기 시작 직후에는 다소 뻑뻑한 모습을 보였지만 강이슬과 김단비의 연속 3점슛으로 분위기가 풀렸다.

하프코트에서부터 밀착 마크하는 수비는 그동안 대표팀이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었는데, 영국의 가드 라인이 우려보다는 위협적이지 않아 더 효과적이었다. 결국, 영국을 당황시키는 데 성공했다. 준비한 작전이 성과를 거둔 것이다.

스페인전에서 침묵했던 김단비의 부활도 반가웠다.

김단비, 박혜진, 강이슬의 수비에서 보여준 활발한 움직임과 득점력에서 우리 대표팀의 간절함이 묻어났다. 찬스를 만들어내는 모습도 좋았고, 기회마다 적중한 3점슛도 좋았다. 초반에 외곽이 이토록 정확하게 터지면 상대는 당황할 수 밖에 없다. 먼 거리에서도 주저 없이 정확한 슛을 성공했다는 것은 그만큼 선수들의 집중력이 돋보였다는 것이다.

영국의 앞선 수비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던 부분도 다행이었다. 그렇게 외곽을 허용하면서도 존 디펜스를 바꾸지 않았다.

물론 우리도 2쿼터 막판 카일리 사무엘슨에게 같은 자리에서 3점슛 3개를 연속으로 허용했다. 사무엘슨은 내가 스탠퍼드 대학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던 시절 함께 했던 선수다. 얼마 전까지 신한은행에서 뛰었던 앨레나 스미스와 동기다. 대학 시절에도 파이팅이 넘치고 외곽슛이 정확했다. 다만 슛을 제외한 다른 부분의 장점이 부족하다. 그래서 스미스는 WNBA에 진출했지만 사무엘슨은 자국리그로 돌아갔다.

사무엘슨의 슈팅력에 대해서는 대표팀도 충분히 정보가 있었을 텐데 똑같은 상황을 반복한 것은 아쉽다. 하지만 3번째 3점슛을 맞은 후에는 마크맨을 바꾸면서 정비를 했다. 영국의 미숙했던 존 디펜스보다는 우리가 한수 위였다. 

박지수, 대한민국에 이런 센터가 있다
영국은 골밑의 박지수에 대한 경계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190cm가 넘는 장신 선수를 여럿 보유하고 있는 영국이지만, ‘대한민국의 박지수’에게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날 박지수는 15점 9리바운드 3어시스트 3스틸 6블록슛을 기록했다. 야투율은 60%였다. 

하지만 박지수의 위력은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박지수가 코트에 있는 것만으로 수비에서 갖춰지는 안정감이 엄청나다. 공격에서도 영리하게 팀 동료를 살리며 무리하지 않는다.

동료들의 슛 감각이 좋았던 초반에는 득점 욕심을 내지 않았고, 공격적인 역할이 필요했던 시점에는 과감한 골밑 공략과 미들슛으로 영국을 흔들었다. 영국은 박지수에 대한 견제로 인해 한국의 전통적인 강점인 외곽슛을 적극적으로 제어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에 이런 센터가 있다. 

국제대회에서 한국 여자농구가 다른 나라에게 ‘높이의 위력’과 ‘포스트의 장점’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사건’이다. 박스아웃을 당한 상태에서도 상대의 뒤에서 공을 걷어내 리바운드 하는 한국인 센터를 국제대회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색다른 행복이기도 하다.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박지수는 중요한 경기에서 더욱 자기역할을 해주는 선수다. 영국전에서도 그랬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박지수는 코트에 있었던 37분 19초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코트에서 찬란히 빛난 대한민국 국가대표
박지수 뿐이 아니다. 선수 모두가 120% 이상을 해줬다. 

한국 여자농구가 국제무대에서 승부를 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8~10개 정도의 3점슛이 터져줘야 한다.

WKBL 최고의 슈터로 자리매김한 강이슬은 영국전에서 혼자 6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다. 성공률은 무려 85.7%. 여기에 김단비, 박혜진도 가세하며 대표팀은 13개의 3점슛을 기록했다. 

거의 60%에 육박했던 우리 대표팀의 3점슛 성공률은 영국에게 가장 당황스런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대표팀과 선수들도 우리가 국제 대회에서 이기는 농구를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깨달았을 것 같다.

박혜진은 지난 경기에 이어 영국전에서도 좋은 모습을 유지했다. 스페인전에서 부진했던 김단비는 이틀 만에 대표팀에서 본인이 해줘야 하는 역할을 찾아갔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영국을 잡는데 기여했다.

박지수 외에는 인사이드 자원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고민을 덜어준 배혜윤의 역할도 칭찬받아야 한다.

중요도가 높은 경기에서는 핵심 선수들이 더 중용되고, 선수 기용이 특정 선수들에게 집중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6명의 로테이션, 그것도 3명이 풀타임을 뛰고, 다른 2명도 37분 정도를 소화하는 강행군은 해당 선수들에게 엄청난 피로이며,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대단한 투쟁이었을 것이다. 

영국전에서 우리 선수들은 이 힘든 싸움을 이겨냈다.

운영과 안배의 아쉬움
다만, 좋은 경기와 결과에도 불구하고 마무리는 아쉬움이 남는다. 15점차 정도 앞서던 경기를 1점차까지 따라잡혔다. 큰 위기를 맞이했다. 그 고비도 넘어서며 승리를 가져갔지만, 조금 더 영리한 운영은 분명 아쉬웠다. 

영국은 10점 정도를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팀의 중심인 테미 페그벤리를 경기 중간에 쉬게 했다. 하지만 우리는 15점 앞선 상황에서도 주축 선수들이 쉬지 못했다. 점수를 더 벌려서 일찍 승부를 냈으면 좋았겠지만, 결과적으로 페그벤리는 경기 막판에 힘을 냈고, 우리 선수들은 상대의 맹추격에 속수무책이었던 시간을 보냈다. 

무기력했던 대표팀의 마지막 시간이 선수들의 게으름이나 정신력 부족이 아니라는 점은 경기를 지켜본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많은 점수차를 지키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는 순간까지 온 힘을 짜내며 가장 중요한 승리를 지켰다.

선수들은 모두 칭찬받아 마땅하다. 선수들은 누구 하나, 국가대표 유니폼에 부끄러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순리의 결과를 기다리며...
우리 대표팀은 이제 하루도 쉬지 못한 채로 중국을 만나게 된다. 중국은 이미 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했지만, 지난 2차 예선에서 우리에게 패했던 만큼, 호락호락하게 승부를 해오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난번에 진 빚을 갚겠다는 듯이 달려들 수도 있다.

영국전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부은 우리 대표팀이 내일 중국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주축 선수들의 출전시간이 너무 많았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자세로 전력투구를 했다. 기록적인 대패를 당한다해도 뭐라 할 수 없을 상황이다. 

중국을 다시 한 번 잡으면서 자력으로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결국은 중국전을 마치고 스페인과 영국의 경기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스페인이 이기면 우리 대표팀은 조 3위로 올림픽 본선 진출이 확정된다. 하지만 스페인이 질 경우, 스페인-영국과 우리나라가 3팀 간의 득실차를 따져 한 팀이 떨어지게 된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우리 대표팀의 올림픽 행은 90% 이상 확정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객관적인 전력을 놓고 볼 때, 영국이 스페인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포츠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은 없지만, 두 팀의 기본적인 전력차가 현격하다. 영국 역시 우리와의 경기에 전력을 다한 만큼, 스페인전에는 몸놀림에 더 큰 부담이 있을 것이다.

다만, 스페인의 경기 자세가 걱정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스페인, 영국과의 경기에서 득실차가 -34점이다. 스페인은 +37점, 영국은 -3점이다. 스페인은 영국에게 아무리 크게 패한다 해도 최소 조 3위를 확보한다. 득실차로 가면 우리가 가장 불리하다. 그래서 영국과의 경기에서 막판에 점수차가 좁혀진 것이 더욱 아쉽다. 

마지막까지 모든 팀이 최선을 다하는 대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여 김정은에게...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 모두가 영국이 1점차로 따라붙었을 때, 정말 조마조마했을 것 같다. 나 역시 손에 땀을 쥐면서 선수들을 응원했다. 선수 모두가 간절했던 그 순간, 가장 마음이 무거웠을 사람은 누구였을까? 나는 ‘대한민국 여자농구 국가대표 선수’ 김정은이었을 것 같다.

김정은은 이번 대표팀이 소집됐을 때부터 아킬레스 건 쪽이 좋지 않아 정상적인 훈련을 하지 못했다. 이미 한국에 있을 때부터 대회에 뛰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 동행했다. 이는 김정은을 대체할 선수가 없기 때문이고, 단 1초라도 뛸 수 있다면 ‘그래도 김정은이니까’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김정은이라도 경기력 면에서 팀에 도움을 줄 수는 없다. 억지로 몸을 만든다 해도, 오랫동안 훈련을 쉬었기 때문에 대표팀에서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경기 막판, 작전 타임 때 잠깐 화면에 비친 김정은의 표정이 많이 어두워보였다. 마음이 무겁고, 후배들에게 미안했을 것이다. 

선수들이 자신의 바닥까지 다 끌어내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김정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코트에 들어가 단 1분이라도 후배들을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깝고, 아픈 발목이, 자기 자신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왜 움직이지 않고 서있냐”는 감독의 지적에도 코트 안의 선수들보다 본인이 더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여자농구가 최종예선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뉴질랜드에서 열렸던 2차 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보여줬던 환상적인 플레이, 혼란스러웠던 뉴질랜드전에서 보여줬던 리더십은 김정은의 가치를 증명한다. 

그 모든 시간 중 단 한 순간이라도 김정은이 없었다면, 우리 대표팀은 지금 세르비아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코트에서 함께 뛰지는 못해도, 벤치에서 후배들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후배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승리로 이를 보답했다. 

웃어라. 지난 해 11월, 중국을 이기고 환하게 웃었던 그때처럼 승리의 기쁨을 온전히 누려라. 그럴 자격이 충분한, 여전히 태극마크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여자농구 국가대표 선수’ 김정은이다.

“괜찮아, 김군!”

이번 대회 결과와는 별개로 꼭 한 번 다독여주고 싶다.

사진 = FIBA,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편집부  thebasket@thebask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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