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변연하 칼럼니스트] 말 그대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한 경기였다. 핵심 선수의 결장과 예년보다 약해진 전력이라고 해도 ‘FIBA 랭킹 3위의 유럽 챔피언’, ‘세계적인 강호’인 스페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팀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인 우리 대표팀은 변칙 라인업으로 선발 명단을 꾸리고도 1쿼터를 16-19로 선전했지만,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여기까지였다. 2쿼터부터는 실력의 차이가 나타났고, 박지수의 휴식으로 인해 높이가 낮아지자 점수는 더욱 벌어졌다. 

후반에도 특별한 반전은 없었다. 46-83, 37점차의 대패였다.

잊어도 되는 스페인전 결과
사실, 스페인전은 결과에 큰 의미는 없는 경기였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버리는 경기’였다고 할 수 있다. 

4팀 중 3위를 차지하는 것이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우리가 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가능성이기에, 4일간 3경기를 치르는 이 일정에서는 특히나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게다가 앞서 벌어진 경기에서 중국이 영국을 이기며, 우리의 목표는 더 명확해졌다. 당초 계획대로 영국을 잡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 대표팀의 스페인전 포커스는 시차적응과 주축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 그리고 코트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틀 뒤 열리는 영국과의 경기가 우리에게는 사실상의 결승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페인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변칙 선발을 내세운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전술적 변화가 없었다. 경기 흐름의 변화나 상대의 선수교체에 맞춰 특별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점수차가 벌어져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준비한 새로운 작전 같은 것들도 보여주지 않았다. 늘 하던 모습이었다고 할까? 준비한 카드를 보여줄 이유가 없는 경기였으니, 큰 의미를 부여할만한 부분도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부터 ‘1승 상대’로 점찍었던 영국과의 경기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주축 선수들의 역할
긍정적인 신호도 분명 있었다. 대표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선수들이 분명한 존재감을 보였다는 것이다. 

스페인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1쿼터 중반 이후, 김한별과 박혜진이 투입되면서 상당히 좋은 경기를 펼쳤다. 분위기를 바꿨고, 앞서가던 스페인도 살짝 당황하는 기색이 나타났다. 

김한별과 박혜진의 플레이가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특히 박혜진이 국내 리그에서와 같이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주고 있어 다행이다. 대표팀에서도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김한별, 박혜진, 박지수는 자기 역할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으며, 국가대표로서의 책임감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고 본다.

스페인전에서의 박지수는 나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았다고도 보기 힘들다. 경기 집중력이 뉴질랜드에서 열렸던 지난 2차 예선 때와는 달랐다. 

하지만 경기마다 비중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런 대회에서 꼭 잡아야 하는 경기와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경기에서 똑같은 집중력을 가져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박지수는 큰 경기에 강했다. 절실함이 경기력으로 이어지는 것도 박지수가 갖고 있는 장점이다. 영국전에서는 충분히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전에서 나타난 우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여전했던 ‘박지수 없는 시간의 활용’이라는 딜레마가 첫 번째다.

40분 내내 박지수를 코트에 세워둘 수는 없다. 불굴의 의지로 박지수가 40분을 모두 소화한다고 하면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그 위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대체 불가 자원’인 박지수가 쉬는 시간 동안, 어떻게 경기력을 유지하느냐는 것은 우리 대표팀에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며 숙제다. 

대표팀은 지난 2차 예선의 중국전과 뉴질랜드전에서 박지수가 없는 시간을 버텨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보였다. 박지수가 없어도,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플레이를 가져가다가 상대의 높이에 어려움을 겪었다.

박지수가 대표팀의 가장 핵심적인 전력이지만, 박지수 없이도 가장 현명하게 싸울 수 있는 ‘플랜B'의 마련이 절실했다. 

이날 스페인 전에서 박지수는 22분 34초만을 뛰었다. 대표팀의 '플랜B'를 실전에서 실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별다른 모습은 없었다. 주요 전술과 전략은 감춘다고 해도, 이런 플레이는 어느 정도 경기에 나타날 수 있는 부분인데, 이전과 다른 것이 없었다. 

박지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반대로 공백의 약점으로 수없이 나타났기에 이에 대한 대책은 분명 준비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벤치가 올림픽에 도전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분명 복안이 있는 상황이고, 스페인전에서는 굳이 이를 보이지 않은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실 가장 걱정스런 부분은 김정은의 부상이다. 

김정은은 스페인전에 결장했다. 훈련도 오랫동안 못했다고 들었다. 지금의 결장이 몸 상태가 낫지 않아서라면 이틀 뒤 영국전도 뛰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뛴다 해도 훈련 부족과 경기 감각 문제로 큰 도움이 되기 힘들 것이다.

우리 대표팀은 4번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가 아쉽다. 김정은은 4번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내외곽에서 공격 활로를 열어주고, 선수들을 이끌면서 경기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는 선수다. 이런 선수가 결장한다는 것은 상당한 전력 손실이다.

지금 대표팀의 면면을 볼 때, 김정은의 역할을 그대로 대체해줄 수 있는 선수는 없다. 김단비, 강아정, 강이슬 등이 김정은이 뛸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김정은의 자리를 채워줘야 한다. 

김단비는 스페인전에서 몸놀림이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컨디션이 좋을 때와 나쁠 때를 구분하여 자기가 어떻게 플레이를 가져가야 할 지 아는 선수기 때문에 영국과의 경기에서는 스스로 해법을 찾을 것이다.

초반부터 집중력을 잃지 말아야 할 영국전
만약 우리의 전력이 100%가 아니라면, 상대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제대로 펼칠 수 없도록 흔들 필요도 있다. 

강한 수비나 변칙적인 플레이에 당황하게 되면 흐름을 잃으면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한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들, 그리고 그 중에서 주전으로 나서는 선수들이면 충분히 이런 플레이로 상대를 괴롭힐 수 있다. 

영국과의 경기에서는 초반부터 상대를 흔들어서 분위기를 가져올 필요가 있다. 뜻밖에 경기 초반이 승부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본선 진출을 다투는 무대인만큼 참가 팀들 모두 분명 수준이 높다. 객관적으로 우리보다 약팀은 하나도 없다. 초반에 끌려가면, 경기 막판에 승부를 뒤집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초반부터 꾸준히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고, 상대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서 그에 맞는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대표팀은 지난 2차 예선에서도 상대에 맞춰 기민하게 전술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못했다. 이 부분은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앞서 열린 영국과 중국의 경기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영국의 장단점을 잘 분석해서, 정확한 포인트를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장점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영국 전 맞춤형 전술’이 공수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영국과의 경기가 사실상 결승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올림픽을 향한 선수들의 절실함은 분명하다. 쉽지 않은 승부가 되겠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잘 싸워온 대표 선수들이 영국과의 경기에서 응어리 진 간절함을 경기력으로 폭발시켜주기를 기대한다.

사진 = FIBA, 대한민국 농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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