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감독님이 웬 속근육이랑 역도 훈련 얘기를 하셨을 땐 정말 갸우뚱했다니까요!”, “버튼 거르고 셀비를 뽑았을 땐 정말...” 

여신을 섭외할 때부터 주위에서 ‘그 친구, 농구 정말 좋아해요’라고 얘기를 듣긴 했는데, 직접 만나 얘기해보니 보통 수준이 아니다. 웬만한 팬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전문 용어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업으로 하는 것을 요즘 사람들은 ‘덕업일치’라고 부른다는데, 바로 여기 그 누구보다 그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게토레이 서포터즈 김유정이 그 주인공이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게토레이 터줏대감
김유정은 KBL에서 가장 오래된 게토레이 서포터즈다. 그녀가 게토레이 서포터즈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서포터즈의 공식 명칭은 게토레이 서포터즈가 아닌 ‘게토레이 걸’이었다. 지금은 학교를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된 김유정 또한 당시만 해도 21살 풋풋한 대학생이었다.

“대학에서는 러시아어를 전공했어요. 그런데 어려서부터 워낙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농구도 좋아하지만, 그땐 축구를 정말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FC서울 시즌권을 사서 다녔거든요. 고등학교 땐 KBS에 ‘도전! 골든벨’에 나와서 아디 선수한테 영상 편지를 보냈을 정도였다니까요.(웃음)”

오... K리그 팬들에게 추억의 이름 아디. 인터뷰 시작부터 낌새가 심상치 않다. 팩트 체크를 위해 실제로 포털에서 ‘골든벨 아디’를 검색해 보니 정말 진심 어린 영상 편지를 보내고 있는 그녀의 앳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것.

 

“대학에 와서도 스포츠 기자단 같은 여러 대외 활동을 많이 했는데, 어느 날 같이 대외 활동을 하던 언니가 ‘야, 이런 것도 있네’라면서 게토레이 서포터즈 지원 글을 보여줬어요. 그때가 게토레이 서포터즈 1기를 모집할 때였거든요. 보면서 ‘와, 이거 하면 맨날 농구 볼 수 있겠다’싶어서 고민도 안하고 지원했어요.”

그녀의 말대로 구단별 1명씩 총 10명으로 매 시즌을 꾸리는 게토레이 서포터즈는 구단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항상 경기장에서 찾을 수 있다. 

“게토레이 서포터즈의 취지가 ‘구단을 정말 사랑하는 팬들에게 구단을 서포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거예요. 외모가 눈에 띄는 모델을 뽑는 게 아니라 농구를, 그리고 팀을 정말 사랑하는 팬, 말 그대로 서포터즈를 뽑는 거죠. 저도 그렇게 시작했답니다.”

스포츠에 대한 사랑은 축구로 입문했지만, 이제는 농구에 푹 빠졌다. 그녀는 “축구가 첫사랑이라면, 농구는 지금 만나고 있는 애인”이라고 말한다.

“농구는 공격 전개가 정말 빠르고, 골도 많이 터져요. 제가 워낙 성격이 급해서 이런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들을 좋아해요. 축구나 농구처럼. 그래서 전개가 좀 느린 편인 야구는 별로 안 좋아해요. 특히 농구는 경기장에서 보고 있으면 뭘 먹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잖아요? 팬 친화적인 것도 매력이죠. 프로 스포츠 중 코트와 관중석이 가장 가까운 종목이잖아요.”

 

게토레이 서포터즈의 하루는 경기가 열리기 두 시간 전부터 시작된다. 출근해서 서포터즈 복장인 주황색 의상으로 갈아입고, 이벤트 응모함을 운영한다. 경기가 시작되면 선수단 벤치 옆에서 수건과 물을 준비해 함께 경기를 본다. 그러다가 2쿼터 작전타임이 울리면, 게토레이 응원타임이 시작된다. 전 구단 공통인 이 게토레이 응원타임은 직관을 해본 팬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멜로디와 춤 동작. 이후 다시 경기를 보다가 경기가 끝나면, 인터뷰하는 수훈 선수에게 게토레이 수건을 주면서 일과를 마무리한다.

“제가 1기 때부터 시작했는데, 벌써 전자랜드에서만 4년 차가 됐어요. 그땐 언니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최고참이에요. 이 자리가 정말 돈 주고도 못 보는 자리예요. 평범한 팬이 팀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게 게토레이 서포터즈의 가장 짜릿한 매력이죠.”

해마다 10명의 게토레이 서포터즈가 활동하지만, 김유정만큼 리그에서 유명한 서포터즈도 없다. 워낙 전자랜드를 좋아하는 그녀는 골이 들어가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리액션이 튀어나온단다. 덕분에 방송 중계에도 많이 잡혀 팬들 사이에서 ‘박제’되곤 한다.

“주위에서 ‘혹시 팀이 이기면 승리수당이 나오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왜 그렇게 골이 들어갈 때마다 방방 뛰느냐면서...(웃음) 그런 것 없어요. 저는 그냥 전자랜드가 이기면 좋아요. 특히 버저비터요. 얼마나 짜릿한데요.”

 

눈물의 택시비 5만원
사실 게토레이 서포터즈를 시작할 때만 해도, 딱히 응원하는 팀은 없었다고 한다. 그냥 우연히 전자랜드에 배정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집과 체육관이 멀어서 썩 내키지 않았었다고.

“집이 서울인데, 삼산체육관이 좀 거리가 있는 편이에요. 게다가 배정을 처음 받았을 때가 16-17시즌이었는데, 그 직전 시즌이 전자랜드가 꼴찌였어요. 검색을 해보면 무슨 이상한 별명 밖에 없더라고요. 예를 들면 개그랜드. 하하하.”

그러나 한 경기, 한 경기 벤치에서 전자랜드와 함께할수록, 그녀는 전자랜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는 몸이 됐다고 고백할 정도.

“다들 아시죠? 전자랜드는 정말 특유의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있어요. 다른 서포터즈의 대타로 가끔 다른 구단을 가기도 하는데, 작전타임이나 훈련을 지켜봐도 전자랜드만큼 끈끈한 팀이 없다니까요. 코치진, 선수단, 프런트 그리고 팬들까지. 그 사이사이 허물이 가장 적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서포터즈 첫 해를 마치고, 두 번째 시즌부터는 집과 가까운 서울 팀으로 옮길 수 있었어요. 잠실은 집에서 20분밖에 안 걸려요. 근데 안 옮겼어요. 첫 시즌, 전자랜드와 함께하면서 진짜 팬이 됐거든요. 그렇게 4년째 의리를 지키고 있는 거죠.”

그녀가 전자랜드와 함께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은 바로 전자랜드가 창단 후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올랐던 지난 시즌이었다고 한다. 

“서포터즈 이전에 한 명의 전자랜드 팬으로서 어떻게 작년을 잊겠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처음 팀을 맡았을 때가 꼴찌였으니, 정말 우승은 꿈도 못 꾸고 있었죠. 그러다가 작년에 기회가 왔어요. 4강에 직행했을 때만 해도, 사실 챔프전은 힘들 것 같았는데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해서 사상 첫 챔프전에 갔을 땐 어찌나 짜릿하던지... 그러다 챔프전 마지막 홈 경기에서 되게 아깝게 졌어요. 그때 경기가 끝나고 너무 슬픈 나머지 체육관 근처에서 술을 마셨어요. 막차고 뭐고 술을 엄청 마신 다음 집에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택시비가 5만원이 나오더라고요.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②편에서 계속...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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