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하나은행이 달라졌다.

“지난 시즌보다 페이스를 끌어올려서 전체적인 득점을 더 올리려고 해요. 여자농구 선수들은 자꾸 세트 오펜스를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팀에는 속공 때 치고 나갈 수 있는 빠른 선수들이 많거든요. 속공을 늘려 공격 횟수를 더 많이 가져가고 싶어요." 

올 시즌 부천 KEB하나은행에 새롭게 부임한 이훈재 감독이 개막을 앞두고 지난 9월 말, 실업팀 김천시청과 연습 경기를 마치고 했던 말이다.

그로부터 약 석 달 뒤, 하나은행은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하나원큐 2019-2020 여자프로농구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와 경기에서 82–50으로 이겼다. 시즌 7번째 승리. 하나은행은 이날 승리로 공동 3위에 안착했다.

하나은행은 이날 5개의 속공을 기록하며 신한은행에 대승을 거뒀다. 앞선에 김지영과 신지현부터 빅맨진 백지은과 마이샤 하인즈 알렌까지 모두 속공에 참여하며 신한은행의 수비를 초토화했다.

* 2019-20시즌 팀별 속공 순위
1. 하나은행 5.75개

2. 삼성생명 3.81개
3. 우리은행 3.75개
4. 신한은행 3.38개
5. BNK 2.75개
6. KB 2.38개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 한 가지. 하나은행의 이날 5개 속공은 그들의 시즌 평균 기록보다 낮은 수치다. 하나은행은 올 시즌 경기당 5.8개 속공으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데, 남자 농구와 비교해봐도 현재 하나은행보다 높은 속공을 기록 중인 팀은 안양 KGC인삼공사(5.9개)가 유일하다.

 

하나은행은 리그에서 가장 젊은 팀 중 하나지만, 지난 몇 년간 속공이 많은 팀은 아니었다. 직전 시즌 속공은 3.7개에 불과했으며, 17-18시즌은 3.09개에 그쳤다. 16-17시즌 역시 3.6개.

올 시즌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이훈재 감독은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이 감독은 부임 후 여름부터 팀에 색깔을 불어넣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키워드는 '속공'.

그동안 하나은행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높이와 수비를 수리하는 것보다, 젊고 빠른 선수들의 장점을 더 살리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공격을 가져가는 방법을 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하나은행이 창단 후 처음으로 경기당 5.1개 이상의 속공을 성공하며 완전히 다른 팀이 된 것이다. 단지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공격력 자체가 수직 상승했다. 하나은행은 올 시즌 72.5득점으로 속공뿐만 아니라 리그 득점도 전체 1위다.

* 하나은행 역대 최다 속공 시즌
1. 2019-20 / 5.75개

2. 2014-15 / 5.09개
3. 2018-19 / 3.66개
4. 2016-17 / 3.57개
5. 2012-13 / 3.31개

하나은행의 달라진 속공 비결은 무엇일까? 그들의 공격은 아이러니하게도 수비로부터 나온다. 이훈재 감독은 “실점 후 베이스라인에서 시작하는 공격은 속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리바운드와 스틸이 속공 기회를 만든다”고 말한다. 

선수단은 이 감독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했다. 하나은행은 현재 경기당 7.4개 스틸을 기록하며 이 부문 리그 2위에 올라있다. 페이스가 워낙 빠른 탓에 실점도 자연스레 많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은행의 적극적인 압박 수비는 이제 모든 팀의 경계 대상이다. 속공 1위의 하나은행에게 스틸을 허용하는 것은 곧 실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미디어데이만 되면, 모든 감독이 "팬들이 좋아하는 농구, 빠르고 화끈한 농구"를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약속하지만, 대부분의 감독은 개막 후 몇 달이 채 되기도 전에 거짓말쟁이가 된다. 공격 농구가 그만큼 어렵다.

하지만 이훈재 감독은 달랐다. 

그는 WKBL 데뷔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자리에 센터가 아닌 185cm 포워드 마이샤 하인즈 알렌을 뽑는 승부수를 던졌다. 가뜩이나 지난 몇 년간 높이 문제로 고전했던 하나은행이었기에 이 감독의 선택은 더욱더 파격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개막 후 16경기, 마이샤는 경기당 1.6개의 속공(리그 1위)을 올리며 완벽하게 리그에 적응했고, 하나은행은 6개 팀 중 가장 높은 평균 득점을 기록하며 어느덧 플레이오프권에 안착했다.

모처럼 등장한 색깔 있는 농구, 하나은행의 화끈한 ‘훈재볼’에 리그는 뜨거워지고 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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