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하나은행에서의 삼천포 서킷트레이닝, KB에서의 태백 마라톤 훈련, 폭염경보와 함께 한 우리은행 트랙훈련, 스킬팩토리에서 지옥 훈련까지. 이번 여름, 선수들만큼 숨 가쁜 비시즌을 보냈노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장 학습>의 종착역, 그 열매는 달콤했다. 고생 끝에 봄이 온다고 했나? 치어리더와 함께하는 치어리딩 체험이라니. 단언컨대, 지금껏 이렇게 완벽한 <현장 학습>은 없었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축복 받은 몸치
이번 여름 하나은행, KB, 우리은행 세 구단을 포함 스킬팩토리까지 돌아다니며 <현장 학습> 컨텐츠를 진행하면서 만난 코치들에게 들었던 한결 같은 평가. 

“원석연 기자는 타고난 몸치다.”

순발력은 물론 무슨무슨 지각력까지 떨어져 도저히 운동을 잘 할 수 없는 몸이란다. 농구는 좀 못해도, 신월동 야구장과 화곡동 스트리트 풋살파크에서 다져진 기자의 29년 운동 신경을 싸그리 무시하는 발언. <현장 학습>을 다녀올 때마다 편집장의 차에서 “코치라는 분들이 선수 볼 줄을 너무 모른다. 그러니 못 이기는 거다”라며 투덜거렸더니, 편집장 왈, “너는 그냥 몸이 뻣뻣하대. 뭘 해도 못할 거란다.” 발끈한 원 기자, “제가 그 동안 하필 농구만 안 해서 그렇지, 다른 운동들은 곧잘 합니다.” 편집장은 “농구전문지가 다른 종목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확인할 방법이 하나 있긴 하지”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섯 번째 <현장 학습> 장소가 정해졌다는 소식. 놀랍게도 그곳은 서울 SK나이츠와 부천 KEB하나은행의 치어리딩을 맡고 있는 스포츠 이벤트 사 ‘HS컴’이었다. 

이런 선생님 또 없습니다

이번 <현장 학습>의 기획은 간단했다. 치어리더와 함께 농구장에서 쓰이는 안무 하나를 배워오면 된단다. 그저 춤만 배우고 오면 된다! 그것도 무서운 코치님들도 아닌 치어리더에게! 뭇 남성들은 아리따운 치어리더들과 콘텐츠를 함께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겠지만, 내게 이번 <현장 학습>이 무엇보다 반가웠던 이유는 트랙을 뛸 필요도 없고, 역기 같은 쇠를 들 일이 없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 구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이 가장 기뻤다.

그렇게 그 어느 때보다 발걸음이 가벼운 <현장 학습>의 아침이 밝았고, 오전부터 HS컴에 도착해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바로 SK와 하나은행의 목소리, 박종민 장내 아나운서. 박 아나운서는 HS컴의 본부장을 겸직하고 있다.

“치어리더가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화려하지만, 그 모습을 보이기 위해 뒤에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합니다. 생각만큼 쉽지 않을 텐데 열심히 배워 보고 가길 바랍니다.”

앞에서는 “여부가 있겠냐”며 고개 숙여 악수했지만, 속으로는 사실 코웃음 쳤다. 

‘내가 이번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데... 아무렴 그것들보다 어려울까요.’

그렇게 박 아나운서와 인사를 마치고, 이제 <현장 학습>을 위해 오늘의 현장인 음악 소리가 들리는 연습실의 문을 열었다. HS컴의 치어리더들이 연습에 한창인 가운데, 노래가 끝나고 인사를 나눴다. 

 

이번 <현장 학습>의 ‘훈련 친구’이자 코치님은 바로 윤별하 치어리더와 박소정 치어리더. 

먼저 윤별하 치어리더는 HS컴 치어리더 팀 ‘드림팀’의 팀장이다. 한 눈에 들어오는 금발의 짧은 머리서부터 카리스마와 팀장의 포스가 느껴진다. 박소정 치어리더는 이번 년도부터 치어리딩을 시작한 새내기 치어리더로, 본지 <월간여신>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인사한 적 있는 낯익은 인물. 미인 대회 우승자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의 치어리더이기도 하다. 

어색함 속에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훈련(?)을 위해 장소를 다른 연습실로 옮겼는데 사방이 거울이다. 순간 우리은행에서의 서킷트레이닝 훈련이 떠오르며 식은 땀이 흘렀다. 대부분 거울이 있는 곳은 요령을 피우기가 어렵다.

“반갑습니다. 선생님, 그래서 제가 오늘 제가 배울 안무는 무엇인가요?”

사실 연습실에 오기 전 상상했던 안무는 ‘그대에게’나 ‘질풍가도’ 같은 대중적이면서도 파워풀한 안무들이었다. 내심 ‘여기서 제대로 배운 다음 회식 자리 같은 곳에서 써 먹으면 제대로 인싸 될 수 있겠다’라며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응원곡인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를 배워보려고 해요. 만나기 전에 간단히 전해 들었는데, 아주 몸치라고 하셔서... 최대한 안무가 쉬운 노래를 선곡해봤어요!” 윤별하 치어리더가 말했다.

참나,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어떻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몸치로 판단하고 멋대로 쉬운 노래를 골라? 사실 살면서 춤을 춰 본 적이 없긴 하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제대로 춤을 배운 것이 초등학교 때 췄던 태권무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노래가 아마 <낭만 고양이>였다.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딱히 좋아하지도 않아 서른이 다 되도록 그 흔한 클럽 한 번 가본 적이 없긴 하다. 그러나 단지 좋아하지 않아서 일뿐, 춤을 못 춰서는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이날 춤을 배우기 전까지는.

 

우리는 하나

우리는 하나. 그것은 쉽지 않은 노래였다. 우리의 오늘 미션은 3분 남짓한 ‘우리는 하나’를 배우는 것이었는데, 노래의 가사가 등장하기도 전인 전주 부분에서 이미 두 치어리더들은 할 말을 잃었다. 상체 동작을 가르쳐주면 하체 동작을, 하체 동작을 교정해주면 상체 동작이 어긋났다. 동작도 버거운데, 박자까지 맞추는 것은 당연히 어불성설이었다. 두 치어리더 사이에 서서 배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거울을 통해 저들끼리 눈을 맞추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리고 느껴졌다. 이들이 눈으로 욕을 하고 있음을.

“기자님... 우리 목표를 1절로 줄이는 것은 어떨까요?” 대답은 필요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 완곡을 다하려면 하루 종일, 아니 일주일을 합숙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기대마저도 저버렸다. 겨우 한 이음 동작을 배운 뒤 “이건 이제 완벽히 마스터했다.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자”고 말하자, 윤별하 치어리더가 “그럼 음악에 맞춰 해보고 넘어가자”고 했다. 그래, 바라던 바다. 나는 태생이 실전에 강한 스타일. 리듬에 몸을 맡기면 더 잘 출 수 있으리라.

하지만, 윤별하 치어리더는 음악을 재생한 지 10초가 채 안 돼 다시 음악을 끄러가야만 했다. 그냥 구분 동작으로 추는 것과 음악을 들으면서 추는 것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였고,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구단에서 했던 지난 훈련들은 모두 힘껏 달리거나, 뭘 들거나 하다 보면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끝났다. 비유를 하자면, 여태껏 <현장 학습>이 타임아웃이 있는 농구와 축구였다면, 이번 훈련은 못하면 밑도 끝도 없이 늘어지는 야구를 하는 기분이랄까. 게다가 콜드 게임이 없는 야구. 사방에 위치한 거울의 내 한심한 모습을 보며 자괴감이 들었다.  

 

이때, 두 선생님이 솔깃한 제안을 했다. 

“같은 노래를 하되, 혹시... 괜찮으시면 우리 회사에 나오는 6~7세 아이들이 추는 안무로 춤을 바꿔는 것은 어떨까요?” 처음 만난 기자의 체면을 고려한 아주 조심스럽고 정중한 제안. 

“왜 이제야 말해요...?” 

자존심? <현장 학습> 1회 때부터 그런 것은 내게 없었어...

안무는 전면 수정됐다. 점차 치어리딩보다는 에어로빅에 가까워지는 느낌. 그러나 쉬운 동작에 자신감을 얻는 것도 잠시, 음악과 함께 춤을 추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안무를 다시 까먹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진도는 가사조차 들리지 않는 전주 부분.

그때, 이 광경을 한심한 듯 보고 있던 편집장과 영상 기자가 “차라리 KBL 작전타임 때 나오는 게토레이 춤을 배워보는 것은 어떠냐”고 말했다. 이들이 말한 게토레이 춤은 KBL 경기 3쿼터 첫 번째 작전타임 때 볼 수 있는 춤이다. 3쿼터 작전타임 콜이 울리는 순간, 코트 중앙에 게토레이걸과 치어리더들이 음료를 들고 나와 춤을 춘다. 처음 보는 이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안무로, 모든 구단이 똑같은 노래와 안무를 사용하기 때문에 취재 기자인 나로서도 꽤 낯이 익은 춤.

제안을 듣자마자 기자와 두 치어리더는 이구동성으로 “OK”를 외쳤다. 진정으로 ‘우리는 하나’가 된 순간. 

 

게토레이보이

나도 모르게 취재를 하면서 꽤 많이 곁눈질을 했었나보다. 놀랍게도 내 몸은 게토레이 춤을 기억하고 있었다. 구관이 명관이라. 지금껏 안무와 달리 게토레이 춤의 진도는 술술 진행됐다. 음악에 맞춰서도 곧잘 하니, 처음 인사를 나눈 뒤로 사라졌던 윤별하 치어리더와 박소정 치어리더의 미소 또한 다시 볼 수 있었다. 

간혹 동작이 틀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박소정 치어리더가 “어”하면서 지적하려고 하면, 윤별하 치어리더가 거울을 통해 박소정 치어리더에게 재빨리 눈으로 말했다. ‘제발 그냥 넘어가자...’ 들리지 않았지만, 들렸다.

썩 완벽하진 않았지만, 안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성공하며 이날 <현장 학습>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게토레이로 안무를 선회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만약 게토레이가 없었다면, 이번 <현장 학습>은 취소됐거나 혹은 다음날까지 촬영을 했었어야 할지도 모른다. 함께한 두 치어리더들은 연습을 마치고 “덕분에 우리도 너무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 또 와 달라”며 웃으며 인사했다. 역시 같이 웃으며 “그렇다면 정말 또 오겠다”고 하니 서둘러 연습실을 빠져 나갔다. 

이번 훈련은 지난 훈련들보다 확실히 강도는 낮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군가 내게 구단 훈련과 치어리딩을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구단에서의 훈련을 고를 것이다. 서킷트레이닝 혹은 스킬트레이닝 때 느꼈던 굴욕감은 이곳에서 느꼈던 수치심에 비하면 애기 걸음마 수준이었다. 그건 선수가 아닌 내가 못하는 게 당연한 거였는데, 이건 적어도 최소한의 운동 능력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이렇게 못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체험이었으니까...

그리고 코치들의 눈은 정확했다. 나는 몸치가 맞다. 

사진 = 김예지 기자,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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