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정진경 칼럼니스트]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예선 프리-퀄리파잉 토너먼트로 인한 휴식기 이후 시작된 WKBL 2라운드도 어느 덧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삼성생명이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힘겨운 행보를 이어가는 가운데 지난 5일 최하위 BNK가 대어 우리은행을 75:70으로 잡으며 창단 후 2승, 부산 홈에서 첫 승을 챙겼다. 3위를 달리던 삼성생명이 흔들리는 사이 최하위 BNK가 힘을 내며 중위권 싸움이 혼전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힘들었던 1R, 변화의 시작을 예고하는 2R
BNK는 창단 첫 경기에서 주전 빅맨 진안과 기대주 이소희가 부상을 당했다. 

BNK는 비시즌 훈련은 물론, 지난여름 박신자컵 서머리그에서도 주축 선수들을 꾸준히 활용하며 시즌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 중 핵심자원 2명이 부상을 당하며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받는 심리적, 정신적 압박이 상당했을 것이다. 신한은행과 비교되는 묘한 신경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담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야심찬 창단과는 달리 악재와 부담이 겹친 BNK의 첫 승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BNK는 우려보다 빨리 승리를 기록했다. 이들에게는 국가대표 일정으로 인한 휴식기가 무척 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미리스 단타스가 브라질 국가대표로 차출되어 함께 훈련을 못했지만, 변수가 생긴 상황에서 비중이 커진 다른 선수들이 충분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이 기간 중 진안도 회복했고, 과감한 트레이드를 통해 팀 분위기도 바꿨다.

BNK는 KB에게 김소담을 내주고 김진영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BNK가 손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김소담은 BNK에서는 주전급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센터로 국가대표 경력도 있다. 몸싸움과 골밑에서의 적극성이 떨어지지만 좋은 신체조건을 갖고 있고 슛 거리도 길어서 국내 선수 중에 희소성이 높은 선수다.

반면 김진영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개막하기 전부터 팀 전력에서 이탈해 있었다. 따라서 BNK로서는 그다지 소득을 기대하기 힘든 트레이드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가 어려웠다.

BNK는 젊은 팀 컬러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투지와 적극성이 발현되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는데, 김진영의 합류가 궂은일을 해주는 블루워커는 선수가 없는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김진영은 전체적으로 아직 여문 선수가 아니어서 단점도 많지만, 공수 모두 2~4번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BNK에서 높이 평가 한 것이고, 선수 또한 농구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기 때문에 이적을 통한 변화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되었다. 

씬스틸러 안혜지 
BNK의 반등을 말하면서 이 선수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팀의 주전 가드 안혜지다.

안혜지는 거둔 삼성생명 전에서 39분 2초 동안 14점 12어시스트로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홈 첫 승을 신고한 우리은행 전에서는 16점 12어시스트로 다시 한 번 더블더블을 작성했다.

안혜지는 프로 경력 6년차다. 공교롭게도 앞서 언급 한 김진영과 동기로 당시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1순위 경쟁을 했다. 당초 고교시절 한 경기 66점을 득점하며 주목을 받았던 김진영이 더 유력해보였지만,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한 KDB생명(BNK의 전신)의 선택은 안혜지였다.

그러나 프로 무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경은이 건재했던 시절, 안혜지에게는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 이경은이 고질적인 부상으로 결장하는 시간이 길어졌을 때에도 김시온에게 밀려 출전시간을 잡는 것도 힘들었다.

소속팀 KDB생명은 해체 선언을 했고, 연맹 위탁팀이 된 소속팀은 위기 속에 OK저축은행이 네이밍 스폰서를 맡으며 어렵게 2018-19시즌을 치르게 됐다. 위태로웠던 이 시즌이 안혜지에게는 기회가 됐다.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경은은 KDB생명 시대의 마감과 함께 신한은행으로 떠났고, 김시온도 임의탈퇴 신분이 되며 팀이 가드난에 시달렸다. 안혜지가 ‘강제 주전’이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안혜지는 성장했다. 

이전까지는 평균 출전 시간이 9분 남짓이었고, 뛰는 날보다 벤치에 앉아만 있었던 날이 많았지만 2018-19시즌에는 정규리그 전 경기에 출전해 평균 34분 1초를 뛰었고, 6.5점 6.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시즌을 마친 후, 기량발전상과 어시스트상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올랐다. 평균 어시스트 6개 이상의 기록은 2011-12시즌 김지윤(신세계) 이후 7년만이었다. 

이번 시즌은 더욱 상승세다.

빠르고 폭발력 있는 스피드로 상대를 괴롭히고 있으며, 패스 능력은 현역 WKBL 가드 중 최고로 평가 받는다. BNK의 핵심이자 외국인 선수인 단타스의 스타일 또한 안혜지와 호흡이 상당히 잘 맞는다. 

현재 안혜지는 8경기에서 평균 7.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WKBL에서 평균 7.5개가 넘는 어시스트로 시즌을 마감한 선수는 역대 최고 가드로 꼽히는 전주원 우리은행 코치가 유일하다.

전주원 코치는 2003여름리그(20경기 7.85개), 2005여름리그(15경기 8.07개), 2006겨울리그(20경기 7.65개), 2009-10시즌(32경기 7.53개)에 평균 7.5개가 넘는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아직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안혜지의 어시스트 기록이 WKBL의 역사를 만들었던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약점을 강점으로
안혜지의 가장 큰 약점은 작은 신장, 두 번째 약점은 3점슛이 약하다는 점이었다.

164cm로 WKBL에 등록된 안혜지의 신장은 가드 치고도 상당히 작은 편이다. 프로에서는 작은 신장의 선수가 공격보다 수비에서 더 큰 부침이 있기 때문에 적응에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그러나 안혜지는 상대의 앞선에 밀리지 않도록 힘을 키워서 조금 더 강하게 버틸 수 있게 되었고, 팀 디펜스의 보완으로 가장 큰 신장의 약점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

두 번째 약점이었던 3점슛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발전 속도만 놓고 보면, 안혜지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어시스트보다도 더 주목할 만하다. 삼성생명 전에서는 6개 중 4개, 우리은행 전에서는 4개 중 3개를 성공했다.

2017-18시즌까지 안혜지의 3점슛 통산 성공률은 17.0%였다. 71경기에서 8개를 성공한 게 전부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9경기 정도를 뛰어야 3점슛 1개를 성공시키는 선수였다.

그런 안혜지가 지난 시즌, 39개의 3점슛을 성공했다. 적중률도 26.2%로 올라갔다.

이번 시즌에는 8경기에서 43개의 3점슛을 시도해 17개를 성공(39.5%)했다. 리그 최고 선수 중 한 명인 박혜진(우리은행)의 기록과 일치한다. 심지어 안혜지는 박혜진보다 1경기를 덜 뛰었다.

3점슛 성공률과 함께 2점슛 성공률도 함께 급상승했다. 안혜지의 2점슛 성공률은 55.8%다. 국내 선수 중 3점슛 성공률은 공동 2위, 2점슛 성공률은 단독 1위다.

시즌 초반이라는 단서가 붙는 게 사실이지만, 3점슛을 포함한 안혜지의 득점 능력 발전은 비약적이라는 말 밖에는 붙일 수식어가 없다. 

현재 안혜지는 평균 13.38점을 득점 중이다. 국내 선수 중 안혜지보다 득점이 많은 선수는 강이슬(하나은행, 17.71점), 배혜윤(삼성생명, 17.00점), 김정은(우리은행, 13.78점), 박지수(KB, 13.44점) 등 단 4명으로, 모두 각 팀의 에이스이자 국가대표다.

더 강해져야 할 것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지표들 속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1일, 신한은행과의 경기에서도 안혜지는 16점 7어시스트 4스틸을 기록했지만, 턴오버도 7개를 범했다.

상대팀에 자신을 너무나 잘 아는 감독과 선배가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까?

시종일관 자신 없는 모습이 보였고, 패스나 공격에서의 주저함도 많이 보였다. 호흡이 잘 맞던 단타스도 경기 중 잦은 미스 커뮤니케이션으로 작전타임 중 유영주 감독에게 “도대체 문제가 무엇이냐”고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자신감과 자만심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지금의 안혜지에게는 더 큰 자신감과 본인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특히 관심이 많이 쏠리는 경기, 부담이 큰 경기, 경험 많은 선수들과 맞붙어야 하는 경기에서 가드로서의 영리함과 함께 대범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조금은 약은 모습으로 ‘못된 농구’를 할 필요도 있다. 

최악의 1라운드를 보낸 BNK는 2라운드에서 2승 1패를 거뒀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 올랐던 삼성생명과 우리은행을 잡았다. 남은 상대는 KB와 하나은행이다.

지난 시즌, 리그 어시스트 1위를 차지했음에도 안혜지는 국가대표는 커녕, 24명의 예비엔트리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그러나 남은 2라운드 2경기에서도 큰 기복 없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이제는 BNK 부동의 주전가드를 넘어 1번 자원이 부족한 국가대표에서도 가드 후보군으로 이름이 오르내릴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정상으로 올라선 일본 여자농구를 볼 때 마다, 많은 관계자들이 그들의 가드진에 탄성을 내뱉었다.

작지만 빠르고, 영리하면서도 때로는 못되게 농구를 하는 일본의 좋은 가드들처럼, 안혜지가 빠른 스피드와 기가 막힌 패스 능력을 앞세워 장신의 외국 선수들을 휘젓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큰 꿈은 때로는 부담이 되고, 노력하는 선수가 번 아웃에 빠지게 되는 위험이 되지만, 안혜지는 이제, 지금보다 더 큰 꿈을 가져야 할 시기가 아닐까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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