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서울의 한 터미널이었다. 바람이 선선한 가을 어느 날, <월간여신> 인터뷰를 위해 대구에서 자신의 몸집만 한 캐리어를 이끌고 홀로 서울에 상경했다. 1999년에 태어나 21살이 될 때까지 대구 토박이로 자라 서울 지리를 전혀 모른다는 그녀. 혹시 길을 잃을까 ‘버스에서 내리면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시라’는 기자의 신신당부에 정말 하차장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OT에 온 대학교 새내기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져 엄마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니, “안녕↓하세요↑.” 돌아오는 것은 남심 저격하는 대구 사투리. 철 지난 유행어지만, ‘지금까지 이런 치어리더는 없었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색다른 월간여신. 고정현 치어리더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고치

나이는 스물한 살. 대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쭉 살고 있는 대구 토박이. 별명은 ‘고정현 치어리더’를 줄여 ‘고치’란다. 올 시즌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개막전에서 단상에 오른 그녀는 치어리딩 경력이 1년이 채 안 되는 풋풋한 새내기 치어리더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자신만의 영역을 빠르게 만들었다. 고정현 치어리더는 확실히 그 동안 <월간여신>을 거쳐 간 여신들과 다른 차별화된 매력을 가졌다. 기존의 여신들을 관통하는 키워드였던 훤칠한 키, 8등신 몸매, 도도한 인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한 번 빠지면 출구가 없다는 그 유명한 ‘덕몰이 상’이다. 인터뷰 전, 고정현 치어리더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하면서 우연히 본 한 댓글이야말로 그녀를 가장 잘 정리한 문장이었다.

‘다른 치어리더는 'ㅗㅜㅑ' 인데 고정현은 볼 때마다 상큼하다.’

 

야구 여신에서 농구 여신으로

지난봄부터 퍼진 그녀의 유명세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월간여신>으로 섭외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본지 ‘루키 더 바스켓’은 어디까지나 농구 전문지인 탓(?)에 <월간여신> 코너 역시 오직 농구팀에 소속된 치어리더만 섭외할 수 있었기 때문. 2019-20시즌 프로농구가 개막하기 전까지만 해도 고정현 치어리더는 오직 야구장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개막전을 앞두고 취재를 위해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홈페이지를 둘러보던 도중 우연히 낯익은 이름을 찾았다. 

‘치어리더 고정현 / 167cm / 현대모비스와 함께 하게 되어 기쁩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승리까지 달려가요 파이팅!!!’ 

새롭게 리뉴얼된 치어리더 프로필에 기자를 비롯한 농구 팬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던 것. 기자는 지체 없이 섭외에 나섰다. 그녀를 만났던 10월 14일은 그녀가 농구장에서 단 두 경기를 마쳤던 때다.

“농구장. 휴. 정신이 정말 하나도 없어요. 야구장에 이제야 적응을 좀 했더니 새 종목을 하게 됐어요.(웃음) 특히 시간의 흐름대로 가는 야구와 다르게 농구는 작전타임이 불리면 후다닥 뛰어나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정말 소리에 집중하고 있어야 해요. 점수가 워낙 빨리 올라가니까 보는 건 재밌는데, 저는 또 일을 해야 하니까. 하하하.”

인터뷰 전 사진 촬영 때도 그랬지만, 이번 여신, 정말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스물한 살이면 바람에 머리카락만 날려도 웃을 나이긴 한데, 그것과 별개로 주위를 행복하게 만드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 직업인 치어리더가 정말 천직처럼 느껴진다.

“SNS에서 우연히 관련 영상으로 뜬 치어리더 영상을 봤어요. 다들 너무 행복해 보이고, 그런 모습이 또 너무 멋진 거예요. ‘아,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곧바로 현직 치어리더에게 SNS로 메시지를 보냈어요. 이소영 치어리더라고, 제 친구의 친구로 한 다리 건너 알고 있었거든요. 지금은 친해졌지만. 그땐 존댓말로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어요.(웃음) 그렇게 치어리더가 됐습니다.”

 

대학로 치어리더

그렇게 입문하게 된 치어리더는 그녀의 생애 첫 직장이 됐다. 지금은 치어리더가 되어 단상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사실 치어리더가 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는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고.

고치 : 작년까지 대학교에 다니다가 1학년을 마치고 지금은 휴학해서 이 일을 하는 중이에요. 과는 방송연예과에서 연기를 전공했어요. 원래 연기자가 꿈이었고, 사실 지금도 그 꿈은 변함이 없어요. 학교에 다닐 땐 혜화 대학로에서 연극도 몇 번 했는데,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커튼콜을 할 때 그 울컥하면서도 묘한 감정들이 아직도 생생하거든요.

루키 : 아~ 어쩐지 촬영 때도 그렇고 지금 인터뷰도 그렇고 너무 잘 웃으시더라고요. 다 연기였구나.

고치 : 네 원래 웃는 모습이... 아니, 기자님. 저기요. 뭐라고요? 

뭐 어쨌든. 그 동안 기획사의 연습생 출신 치어리더는 간혹 봤지만, 대학로 연극 무대를 밟다 온 치어리더는 고정현 치어리더가 처음이다.

“그래서 사실 춤 같은 경우는 다른 치어리더 분들처럼 막 잘 추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축제에 몇 번 나갔던 정도? 지금도 걸크러쉬나 섹시한 춤들은 조금 어색해요.(웃음) 저는 트와이스 노래 같이 밝은 노래들이 좋아요.”

난데 없이 치어리더가 되겠다는 딸의 선언에 부모님 역시 처음에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고.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 지망으로 예체능을 했으니까 부모님이 꽤 개방적인 편이셨어요. 그래서 치어리더를 한다고 했을 때도 처음에는 ‘네가?’, ‘너도 시켜준대?’ 이렇게 놀리다가 막상 하니까 반대까지는 아니고 걱정을 조금 하셨죠. 제가 아무리 좋아해서 시작하는 것이라도 막상 일이 되면 힘들 거라고요.”

이후 야구 시즌을 무사히 끝내고 어느새 벌써 두 번째 팀을 맡게 된 고정현 치어리더. 본인은 어떤 마음일까? 

“처음 시작할 땐 야구를 거의 모르고 했는데도 그냥 경기장이 주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가 이기거나 지거나 관중들과 함께 마주 보고 응원하는 것이 뭐랄까? 애틋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감정이 생겨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나이에 이렇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몇 개나 되겠어요? 너무 자랑스럽죠.” 

고치, 아쉽게도(?) 농구장은 실내라 비를 맞거나 눈을 맞을 일은 없어요. 야구장만큼 애틋하진 않더라도 앞으로 잘 부탁해요.

 

②편에서 계속...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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