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키] 이승기 기자 = "빛의 전사 마스크맨!"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러셀 웨스트브룩이 '마스크맨'으로 변신했다. 최근 광대뼈가 함몰되어 수술을 받은 웨스트브룩은 5일(이하 한국시간) 마스크를 착용하고 필라델피아 76ers와의 경기에 출장했다.
마스크를 쓰면 온전한 경기력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될 법도 하다. 그런데 웨스트브룩은 무려 49점, 16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4경기 연속 트리플-더블을 달성하는 등 각종 역사를 갈아치웠다. 홈 팬들은 이런 웨스트브룩를 보며 "MVP! MVP!"를 연호했다. 웨스트브룩은 마스크가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것일까.
"진짜 이상하긴 한데 괜찮아요. 광대뼈가 말짱해질 때까지의 과정이니까요. 마스크가 저를 막을 수는 없죠. 경기에 나서 팀을 이끄는 게 제 역할입니다." 웨스트브룩의 말이다.
6일 웨스트브룩은 다시 한 번 힘을 냈다. 비록 패했지만 시카고 불스와의 경기에서 43점, 8리바운드, 7어시스트를 기록한 것. 역시 마스크를 착용한 채였다. 마스크를 쓴 후 두 경기에서 평균 46.0점, 12.0리바운드, 8.5어시스트, 2.5스틸을 올린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마스크를 쓰고 출전했던 선수들이 대부분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2000년대 이후의 사례를 시간순으로 돌아보도록 하자.
2001-02시즌 라몬드 머레이
득점력이 쏠쏠했던 스윙맨 라몬드 머레이. 2001-02시즌을 치르는 도중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뛰던 머레이는 코를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경기에 나섰다.
마스크를 착용한 머레이의 첫 번째 상대는 시카고 불스였다. 분풀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머레이는 1쿼터 초반부터 맹렬한 기세를 뿜었다. 팀이 올린 첫 18점 중 16점이 머레이의 손에서 나왔다.
머레이는 이날 37점, 1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불스 수비진을 초토화했다. 37점은 본인의 커리어-하이 득점에 단 1점 모자란 수치. 클리블랜드는 머레이의 폭발적인 활약에 힘입어 114-101로 낙승할 수 있었다.

'마스크맨의 대명사' 리차드 해밀턴은 스스로를 패러디한 영상을 촬영하는 등 마스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 ⓒ 유튜브 캡처
2003-04시즌 리차드 해밀턴
리차드 해밀턴은 아마 짐 캐리 이후 가장 마스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일 것이다. 또, 역사상 마스크를 가장 오랜 기간 착용한 선수가 아닐까 싶다.
해밀턴은 2002년에 한 번 코뼈가 부러진 적이 있다. 이때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2003-04시즌 도중 두 번이나 코가 부러지자, 이때부터 습관처럼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그의 트레이트 마크가 되었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소속의 해밀턴은 마스크를 쓴 채 2003-04시즌 챔피언 반지를 차지했다. 『NBA.com』의 전문가 데이비드 맥메나민은 마스크를 쓴 해밀턴을 보고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2003-04시즌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노송,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 역시 마스크를 착용한 적이 있다. 2003-04시즌 도중 코가 부러졌기 때문. 당시 처음으로 투명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선 필라델피아 76ers와의 경기에서 15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후 세 경기에서는 20.3점, 6.7리바운드, 야투 성공률 67.6%를 기록하며 완벽 적응에 성공했다. 하지만 일가우스카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클리블랜드는 해당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마스크를 쓴 이후 폭발적인 활약을 펼쳤던 코비 브라이언트 = ⓒ NBA.com 캡처
2011-12시즌 코비 브라이언트
코비 브라이언트는 2012년 올스타전 도중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당시 뇌진탕 증세로 인해 기자회견장에 불참하는 등 사태가 꽤나 심각해보였다.
하지만 코비의 열정까지 부러지지는 않았다. 코비는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의 경기에 투명한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 31점, 7리바운드, 8어시스트를 기록, 팀 승리를 이끌었다.
또, 그 다음 경기였던 새크라멘토 킹스전에서는 무려 38점, 8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퍼부었다. 또, 마이애미 히트를 상대로 33점, 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의 3연승을 견인했다.
코비는 첫 세 경기 이후 마스크를 교체했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전에서 검정색 마스크를 쓰고 나온 것. 그러나 검정 마스크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레이커스가 디트로이트에 88-85로 패했기 때문. 코비 역시 22점에 그쳤다.

마스크맨 1기 시절의 르브론. '이주의 선수'를 수상하는 등 변함없는 기량을 뽐냈다 = ⓒ 유튜브 캡처
2004-05시즌 르브론 제임스
르브론 제임스는 두 차례나 마스크맨으로 활동한 바 있다. 첫 번째는 2004-05시즌이었다. 당시 르브론은 만 20세의 풋풋한 2년차에 불과했다. 시즌 도중 왼쪽 안면 골절상을 입었는데 이를 보호하기 위해 한동안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출전했다.
'킹' 르브론은 역시 남달랐다. 마스크를 쓰고 등장한 첫 경기에서 괴물같은 슬램덩크를 터뜨리는 등 26점 6어시스트를 기록, 팀 승리를 이끌었다. 심지어 마스크맨 시절 한 주간 평균 24.7득점, 10.3리바운드, 8.7어시스트, 2.0스틸을 올려 '이주의 선수'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마스크맨 2기 르브론은 그야말로 다크 히어로의 포스를 뿜어댔다 = ⓒ 유튜브 캡처
2013-14시즌 르브론 제임스
마이애미 히트로 재능을 가져온 르브론.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경기 도중 코뼈가 부러진 르브론은 결국 다시 한 번 마스크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이번 마스크는 조금 특이했다. 얼굴의 반 이상을 뒤덮는 검정 마스크였는데,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마치 다크 히어로처럼 보였다. 당시 르브론은 31점을 몰아치며 뉴욕 닉스를 26점차로 박살냈다.
하지만 리그 사무국은 르브론의 검정 마스크를 좋아하지 않았다. "리그 내에서 착용 가능한 마스크는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또, 팬들에게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며 착용을 금지시켰다. 르브론은 다음 경기부터 즉각 투명 마스크로 교체하고 나왔다.
올랜도 매직전에서 20점을 올리며 몸을 푼 르브론은 다음 상대였던 샬럿 밥캐츠(現 호네츠)와의 경기에서 봉인을 해제했다. 무려 61점, 7리바운드, 4어시스트, 3점슛 8방(10개 시도)을 쏟아내며 샬럿의 수비를 박살내버렸다. 르브론의 활약에 힘입은 마이애미는 8연승 행진을 내달렸다.
마무리하며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부상 부위가 아물 때까지 안면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뿐만 아니라 부상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착용하면 안에 땀이 차고,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 따라서 선수들의 경기력에 지장을 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의 선수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도 이전과 변함없는 경기력을 선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웨스트브룩의 인터뷰처럼 불편하긴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쩌면 그만큼 선수들의 집중력이 대단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쯤 되면 오히려 마스크가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승기 기자(holmes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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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캡처 = 유튜브, NBA.com 동영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