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2010년대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맞수 아산 우리은행 위비와 청주 KB스타즈.

2019년 1월, 우리은행 선수로 WKBL에 데뷔한 박지현은 KB에 유독 약한 선수였다. 3경기에 나와 첫 경기 5분 4초 0득점, 두 번째 경기 16분 43초 2득점, 세 번째 경기 35분 38초 0득점. 통산 3경기 57분 25초를 뛰면서 단 2득점. 평균으로 나누면 0.6점이었다.

그러나 2019년 12월 2일은 달랐다. 1쿼터, 지난 시즌 리그를 집어삼킨 최연소 통합 MVP 박지수가 서 있는 페인트존을 내달려 오른손 레이업으로 첫 득점을 신고한 박지현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그동안 KB전에 약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경기를 마친 박지현이 말했다. “프로 데뷔 후 가장 기분 좋은 승리였던 것 같아요.”

2쿼터, KB가 지역방어에 나서자 이번에는 수비를 앞에 둔 채 스텝백 점퍼로 유유히 두 번째 득점을 신고했다. 이어 곧바로 수비 코트로 돌아온 박지현은 심성영의 슛을 블록하며 수비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1분 뒤에는 정면에서 3점슛을 깔끔히 성공, 경기를 31-16 더블스코어로 만들었다. 박지현의 이날 최종 기록은 9득점 10리바운드 6어시스트. 40분 풀타임. 우리은행은 62-56으로 승리했다.

승장 인터뷰를 위해 기자회견실에 들어온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이 기록지를 보며 말했다.

“9득점보다 10리바운드와 6어시스트가 더 의미 있는 기록이에요. (박)지현이는 재능이 있는 선수라 몸 더 만들고, 슛 더 들어가면 앞으로 득점은 충분히 더 많이 할 수 있는 선숩니다. 지현이가 크는 데 도움이 되는 기록은 오늘 10리바운드와 6어시스트예요. 요새 슛폼을 이 방법 저 방법 바꾸고 있는데, 아마 혼란이 올 거예요. 본인이 얼마만큼 집중하고, 또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지현이도, 팀도 아마…”

 

휴식기 후 최근 3경기에서는 부상으로 이탈한 하나은행전을 제외하고 모두 9득점 이상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박지현은 휴식기 전 1라운드에서 극도로 부진했다. 경기당 29분 29초를 뛰면서 4.0점 4.6리바운드 2.8어시스트. 3점슛은 14개를 던져 단 1개 성공.

사람들은 손가락질했다. ‘우리은행에서 비시즌을 보내고 나니 예전 모습이 사라졌다’, ‘우리은행의 시스템이 박지현의 천재성을 가뒀다’며 돌을 던졌다. 

과연 그럴까? 지난여름, 박지현은 태국에서 열린 U-19 여자월드컵에 차출돼 6월과 7월을 보냈고, 이어 인도에서 열린 아시아컵 성인대표팀에 뽑혀 8월과 9월을 보냈다. 박지현은 비시즌, 우리은행에서 가장 팀 훈련을 적게 한 선수다.

“그래서 이번 휴식기가 저에게 정말 중요한 시기라 생각했어요. 거기에 팀의 주축인 (김)정은 언니와 (박)혜진 언니가 대표팀으로 빠지면서 감독님, 코치님이 제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고 신경을 정말 많이 써주셨거든요.” 박지현이 말했다.

우리은행의 숙소가 있는 서울 장위동 체육관. 그곳은 코트 위보다 더한 전쟁터였다. 스무 살 박지현은 강도 높은 훈련과 좀처럼 들어가지 않는 슈팅에 매일 같이 울었다. 훈련을 마치면 전주원 코치가 다가와 위로했다.

“차라리 지금 울어. 여기서 울고 경기장에서 울지 마.”

 

3주간의 시간, 코치진의 관심, 그리고 박지현 본인의 노력. 휴식기를 마친 박지현은 달라져 돌아왔다. 그는 휴식기 이후 우리은행이 홈에서 치른 2경기에서 모두 수훈 선수가 됐다. 2경기 상대는 지난 시즌 준우승팀 삼성생명과 우승팀 KB였다. 우리가 알던 신인왕 박지현의 귀환.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알았어요. 고등학교 때 했던 건 다 버렸어요. ‘우리은행 선수로서 다시’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감독님이 수비와 리바운드 말고, 공격에서는 ‘10이면 10 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믿음을 주시거든요. 저도 이제 그것에 맞게 해보려고요.”

휴식기 이후 좋은 활약을 이어가며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그의 시즌 평균 기록은 여전히 5.4점 4.5리바운드 3.5어시스트로 지난 시즌보다 낮다. 기록이 선수의 모든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데뷔 초 그에게 붙었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조급할 것 없다. 이날 박지현과 함께 나란히 40분을 뛴 박혜진의 2년 차 성적은 5.4점으로 지금 박지현과 똑같았다. 하프 타임, 박지현의 어깨를 두드려준 여자농구의 전설 임영희 코치는 2년 차에 단 한 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은 훗날 도합 10번의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합작한다. 

박지현도 그 길을 걷고 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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