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①편에 이어...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카이리 어빙
최근 병무청 발표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평균 신장은 173.5cm다. 기자의 신장은 173cm로 정확히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신장과 일치한다. 그리고 170cm 언저리의 평균 남성 농구인들의 롤모델은 십중팔구 카이리 어빙이다. (개중 3점슛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스테픈 커리다. 간혹 앨런 아이버슨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는데, 높은 확률로 30대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퍼포먼스 센터를 졸업하고, 진짜 농구 코트가 있는 <스킬팩토리>에 도착해 박대남 트레이너에게 말했다.

“선생님. 한 시간 안에 저를 카이리 어빙으로 만들어 주세요.”

이미 지난 현장 학습 영상들과 몇 분 전 퍼포먼스 센터에서 보여준 몇몇 퍼포먼스 덕분에 기자의 운동신경을 진작에 간파한 박 트레이너는 한숨과 함께 교육을 시작했다. 

먼저 농구의 가장 기본인 레이업. KB 이영현 코치와 우리은행 전주원 코치에게 두 번이나 개인 교습을 받은 덕분에 오른손 레이업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우리은행 훈련 후 몇 주 공백이 있었던 터라 처음에는 다소 헤맸으나, 몇 차례 시도하니 연거푸 성공하며 합격점. 문제는 왼손 레이업이었다. 반복 훈련으로 스텝이 몸에 익은 오른손 레이업과 달리, 드리블하는 손과 출발 지점이 바뀌자 스텝은커녕 내가 공을 왼손으로 들고 있는지, 오른손으로 들고 있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결국, 보다 못한 박 트레이너는 창고에 들어가 유소년을 가르칠 때 쓰는 고깔을 가져와 바닥에 깔았다. 

“여기서 한 발 밟고, 그 다음 한 발 밟고. 하나, 둘 그대로 올리세요.”

그러나 스텝을 맞추면 손이 틀리고, 손이 맞으면 스텝이 틀리는 오동작의 반복. 이대로는 도저히 진도가 나갈 것 같지 않자 박 트레이너는 “이런 선수는 정말 처음이다. 종일 레이업만 하다가 끝날 수는 없으니, 제발 한 번만 성공해달라”고 오히려 내게 부탁하는 경지가 됐다. 박 트레이너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혼신의 힘을 다해 올린 왼손 레이업이 골대를 통과하며 다음 과목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과목인 자유투 역시 산 넘어 산이었다. 지난달 전주원 코치에게 받은 특훈을 떠올리며 신중히 슛을 올렸지만, 1구, 2구, 3구, 4구 모두 공은 림을 외면했다. 답답한 마음에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묻자 박 트레이너는 “문제가 아닌 게 없는 게 문제”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렇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발끝부터 손끝까지 모두 교정을 거친 후에야 나는 연속 자유투를 넣을 수 있었고, 드디어 본격적인 스킬트레이닝을 받게 됐다.

 

첫 3점슛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시켜봤던 레이업과 자유투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 박 트레이너가 진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가장 배우고 싶은 스킬 하나만 말해보세요.”

기초적인 것부터 배울 것이 산더미였지만, 문득 카이리 어빙의 전매특허 동작이 떠올랐다. 바로 멈춤 동작으로 수비를 벗겨 낸 뒤 올리는 스텝백 점프슛. 유치원생이 미분을 배우고 싶다고 조르는 격이지만, 박 트레이너는 ‘그래, 명색이 스킬트레이닝인데 레이업을 가르치는 것보다 차라리 이게 낫다’라는 표정으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레이업과 자유투를 통해 농구 실력을 파악한 박 트레이너는 내게 패스를 받고 나서 발 동작부터 첫 드리블을 어디로 해야 하는지, 스텝은 어디로 내디뎌야 하는지, 그리고 스텝 이후 발이 따라가는 동작까지 천천히 단계를 나눠 설명했다. 처음 배워보는 고난이도(상대적으로) 동작에 “이건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며 지레 포기하려 했으나, 박대남 트레이너는 “할 수 있다”며 다독였다. 그렇게 같은 동작을 한참 반복한 결과, 마침내 박 트레이너를 앞에 두고 왼발 스텝백 점프슛에 성공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믿기지 않는다. 한 번 더 해보겠다”라고 말하자 박 트레이너는 황급히 “아니다. 정말 잘했다. 이제 스텝백은 마스터했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며 나를 만류했다. 어딘가 꺼림칙했지만, ‘마스터’라는 단어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대망의 마지막 과목은 바로 3점슛이었다. 자유투를 제대로 던져본 것도 이번 여름이 처음이었던 기자에게 3점슛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심심풀이로 가끔 던져본 적은 있지만, 성공은커녕 림조차 스쳐본 적이 없었기에, 3점슛은 내게 덩크슛만큼이나 꿈 같은 일이었다. 조심스럽게 박 트레이너에게 “3점슛을 아직 한 번도 못 넣어봤는데, 정말 괜찮나”라고 묻자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무조건 성공하게 할 수 있다”고 답했다. 

 

박 트레이너가 가장 먼저 교정한 것은 팔 동작이었다. “슛이 끝까지 림으로 날아가기 위해서는 팔 동작을 끝까지 유지하는 팔로우스루가 중요하다”며 끝까지 손을 고정하게 했다. 그러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슛이 짧았다. 박 트레이너에게 “아무래도 팔에 근력이 없어서 슛이 날아가지 않는 것 같다. 정말 성공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자 박 트레이너는 고개를 저으며 “할 수 있다. 슛 타점을 머리 위가 아닌 얼굴 쪽으로 내려보라”고 주문했다. 

‘아니, 슛을 최대한 높게 머리 위에서 쏴도 비거리가 안 나오는데, 오히려 더 타점을 내리라니? 이거 놀리는 것 아닌가?’라고 반신반의한 채 타점을 수정해 슛을 올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슛이 정말 쭉쭉 뻗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거리가 늘어났고, 몇 차례 더 시도하자 림을 맞고 나오기 시작했다. 박 트레이너는 “다시 이제 처음 가르쳐 준 팔로우스루와 무릎을 생각하면서 던져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맨 처음 가르쳐준 팔로우스루를 상기하며 천천히 얼굴 쪽에서 슛을 올렸다. 손을 떠난 공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깨끗하게 림을 통과했다. 마침내 생애 첫 3점슛을 기록하는 순간. 

“아니, 선생님. 어떻게 타점을 내렸는데 슛이 더 멀리 가나요?”

박 트레이너가 답했다.

“최근 NBA 트렌드가 딥쓰리(deep-three, 3점슛 라인보다 더 먼 곳에서 쏘는 슛)다. 그런데 딥쓰리를 쏘는 선수들을 보면 대부분 타점이 낮다. 멀리서 쏘기 때문에 힘을 아끼는 것이다. 간단히 생각하면 된다. 팔을 완전히 굽히고 있다가 펴는 것과 반쯤 굽히고 있다가 펴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많은 힘을 쓸 수 있나? 당연히 전자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슛폼은 머리 정점 위에서 쏘는 슛이지만, 정점에서 쏘는 슛은 팔을 반밖에 못 쓴다. 반면 타점이 낮은 곳에서 슛을 쏘면 팔을 더 펴면서 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힘을 실을 수 있다. 그래서 비거리가 더 늘어난 것이다.”

대답까지 명쾌한 박대남 당신은 도대체... 신이 나서 다시 외곽으로 달려가 3점슛을 던져보려 했지만, 박 트레이너는 공을 뺏으며 “아니다. 방금 정말 잘했다. 괜히 더 던져서 손맛을 잃지 말고 오래도록 이 손맛을 기억하길 바란다”며 제지하더니 “레이업부터 스텝백, 3점슛까지. 이제 더 이상 내게 배울 것이 없다. 정말 수고했고, 어쩔 수 없이 오늘의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다”고 말했다. 어딘가 급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그렇게 수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며칠 뒤 편집장으로부터 박대남 트레이너가 전한 한 통의 인터뷰 영상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잠깐 가르치면서 무서움... 나아가 두려움을 느꼈다. 여기서 더 가르쳤다가는 농구에 재미를 느껴 농구에 깊이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는 나 하나로 충분하다. 사실 이영현 코치님이 제 선배님이시다. 선배님께서 보내서 왔다고 하는데, 선배님이 오랜만에 큰 선물을 보내주신 것 같다. 정말 감사하다. 스킬팩토리 사업을 하면서 나름대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위기감을 느꼈다. 사실 살면서 가끔 이런 위기도 필요하긴 하다. 선배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만약 원 기자에게 정말로 농구가 하고 싶다고 연락이 온다면?) 감히 제가 가르칠 레벨이 아니다. 우리 스킬팩토리에는 영·유아부에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있다. 잘 부탁해보겠다.”

사진 =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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