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농구전문지 기자들에게 9월은 농부들만큼 바쁜 계절이다. 개막에 맞춰 특집호를 분주히 작업하다 보면, 어느새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쌀쌀해진 날씨에 여름옷을 정리하기 위해 옷장을 열어보니 형형색색의 티셔츠가 눈에 띈다. 6월 삼천포에서 받은 부천 KEB하나은행의 검정색 티셔츠, 7월 태백 훈련 때 받은 청주 KB스타즈의 노란색 셔츠, 그리고 8월 폭염주의보와 함께 했던 아산 우리은행 위비의 흰색 셔츠까지. ‘그래, 이제 시즌도 개막이니 현장 학습도 끝이구나.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좋은 추억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나를 순순히 본업으로 복귀시킬 계획이 없었다. “이제 체력훈련을 마쳤으니,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해보자”고 한다. ‘원석연의 현장 학습’ 네 번째 편은 농구전문 아카데미 <스킬팩토리> 방문기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스승의 은혜
사실 <스킬팩토리>를 방문하는 것은 애초 필자는 물론 편집장을 비롯한 회사에서도 없던 계획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하나은행과 KB의 연습경기가 있던 어느 날이었다. 경기를 마치고, 현장학습 1호 은사였던 김완수 하나은행 코치와 2호 은사였던 이영현 KB 코치가 자연스레 함께 자리하게 됐는데, 마침 현장에 있었던 편집장이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원 기자가 벌써 현장학습을 세 번이나 했는데도 좀처럼 발전이 없다. 어디서, 어떻게, 얼마만큼 해야 이런 안 좋은 자세를 고칠 수 있을까?”

김완수 코치와 이영현 코치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기본적으로 몸치다. 이런 식으로는 애초 목표였던 기자단 농구 대회 MVP는 어불성설이다. 유소년 농구 대회 MVP라면 모를까... 단체 훈련으로는 안 되고, 전문 기관에서 따로 훈련을 받아야 하는 수준이다.”

편집장은 이 말을 듣자마자 지난해 ‘현장 학습’의 원래 주인공이었던 모 선배 기자를 지도한  <스킬팩토리>의 박대남 트레이너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진짜 농구’를 배우기 위해 <스킬팩토리>가 위치한 하남으로 향했다.  

 

퍼포먼스 센터
사실 네 번째 현장 학습 장소가 <스킬팩토리>라는 소식을 들었을 땐,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첫 번째 이유는 이름만 들어도 현기증이 나는 지긋지긋한 체력훈련이 아니라는 점. 두 번째로 일반인들은 물론 선수들도 비싼 돈을 내고 받는 스킬트레이닝을 무료로 받는다는 점까지. ‘현장 학습’이 아니라면 언제 또 국내 최고의 스킬트레이너의 1대1 지도를 받아보겠는가? 

하남에 있는 <스킬팩토리>에 도착한 뒤, 대표 박대남 트레이너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박 트레이너에게 “가장 최근 <스킬팩토리>에서 스킬트레이닝을 하고 간 선수가 누구냐”고 묻자 “최근 KCC 이정현과 현대모비스 이대성 그리고 전자랜드 박찬희가 훈련을 하고 갔다”고 답했다. 이정현, 이대성, 박찬희 그리고 기자 원석연. 좋아, 이 정도면 훌륭한 포트폴리오야.

그러나 박대남 트레이너가 나를 초대한 곳은 농구 코트가 아니었다. 마중을 나온 박 트레이너는 인사를 끝마치자마자 “농구공을 잡기 전에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다”며 나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박 트레이너가 나를 인도한 곳은 <스킬팩토리>가 자랑하는 전문 퍼포먼스 트레이닝 시설 ‘퍼포먼스 센터’였다. 

<스킬팩토리> 본 건물 바로 앞에 따로 위치한 퍼포먼스 센터는 선수들의 피지컬 및 기능성 훈련을 위한 전문 트레이닝 시설이다. 박 트레이너는 “퍼포먼스 트레이닝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보디빌딩 같은 몸을 만들기 위한 운동은 정적인 자세에서 무게를 든다. 하지만 농구는 계속 움직이는 운동이다. 정적인 자세에서 근육을 키우지 않는다”며 “퍼포먼스 트레이닝은 단순 몸을 키우는 것이 아닌 농구에 필요한 근육을 만드는 데 특화된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오늘도 체력훈련을 한다는 소리다.

첫 번째 훈련은 버티맥스(vertimax) 훈련. 양손과 양발에 스트랩을 끼우고 앞으로 치고 나아가는 저항(resistance) 훈련인데, 박 트레이너의 말에 따르면 “르브론 제임스, 제임스 하든 등 NBA 선수들이 비시즌 필수적으로 하는 훈련이며 국내에 몇 없는 장비”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그렇게 고가처럼 보이지 않는다. 트레이너 몰래 등을 돌려 ‘NBA vertimax’라고 유튜브에 검색해보니 곧바로 폴 조지가 나처럼 양손에 줄을 묶고 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조용히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박 트레이너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매 현장 학습 때마다 언급하지만, 서킷 트레이닝 중에서도 저항 훈련은 언제나 가장 힘든 훈련이다. KB와 우리은행 훈련 모두 잘 버티다가도 허리춤에 줄을 묶고 앞으로 나가는 ‘스프린트 위드 레지스턴스(sprint with resistance)’ 훈련만 하면 매번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내곤 했다. 그런 훈련을 오자마자 하려니 좀처럼 발이 안 떨어진다. 그렇게 두 세트 정도를 버티다 보니 버티맥스 훈련은 어느새 종료. 30분이 채 되지 않아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두 번째 훈련은 코어스틱스(core stix). 자세를 잡고 바닥에 고정된 스키 폴대 같은 막대를 앞뒤로 당기는 훈련인데, 이름 그대로 코어와 팔 근육을 단련하는 훈련이다. 첫 번째 체험한 버티맥스보다 훨씬 만만하게 보여 막대를 잡기 전, 박 트레이너에게 “이거 혹시 세게 잡았다가 부러지는 거 아니냐”고 물으니 박 트레이너는 그저 아무 말 않고 한번 당겨보라고 눈치를 줬다. 결과는 놀라웠다. 자세를 제대로 잡고 당기니 내가 막대를 당기는 것이 아닌 막대가 나를 당기고 있었다. 곁에서 보다 못한 신호용 트레이너는 “성인용으로는 안 되겠다”며 유소년 선수들이 사용하는 막대로 장비를 교체했다. 교체 후 다시 막대를 당겨보니 그때서야 딱 맞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박대남 트레이너와 신호용 트레이너를 보며 두 번째 훈련 역시 무사히 끝.

 

그러나 문제는 세 번째 훈련이었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무동력 트레드밀’. 생긴 것은 러닝머신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뭐가 다른 것일까? 신호용 트레이너는 “말 그대로 ‘무’동력, 동력이 없는 러닝머신이라고 보면 된다. 전기가 아닌 순전히 뛰는 사람의 힘으로만 돌아가는 저항 운동”이라고 설명한 뒤 “벨트를 발로 밀어서 넘기는 것이다. 처음에는 천천히 뛰다가 중간에 무게를 걸어 전력질주를 해서 하체의 힘과 심폐를 최고치로 끌어 올리면 된다”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어렵지 않았다. 동력은 없었지만, 러닝머신을 뛰는 것과 크게 느낌이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무게를 걸고 전력질주를 시작하자, 마치 허리에 타이어를 묶고 비탈길을 오르는 것처럼 힘겨워졌다. 앞서 시범을 보인 신호용 트레이너처럼 멋지게 뛰고 싶었지만,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인터벌 트레이닝처럼 같은 자리에서 두 세트를 반복하니 정말 하늘, 아니 천장이 노랗게 보였다. 이번에도 역시나 화장실로 달려가서 속을 비워야만 했다. 스킬트레이닝을 하러 와서 화장실을 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박대남 트레이너는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퍼포먼스 센터. 다시는 잊지 못할 그 이름.

 

②편에서 계속... 

사진 = 박진호 기자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