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변연하 칼럼니스트] 짜릿한 승부였고, 멋진 승리였다. 우리 대표팀이 중국을 꺾었다.

한국은 14일, 오클랜드 트러스트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지역예선 프리-퀄리파잉 토너먼트에서 경기 초반부터 앞서 나갔다. 경기 종료 직전에 큰 점수차의 리드를 잃고 역전을 당했지만, 재역전에 성공했고 81-80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경기 내용 하나하나를 다 뜯어서 살펴보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경기를 펼친 대표팀에게는 조금의 비판도 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 정도로 대표팀은 좋은 경기를 펼쳤다. 

주전으로 뛴 선수들은 물론 백업으로 코트에 나선 선수들, 그리고 벤치 분위기까지 모든 면에서 칭찬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지수(KB), 김한별(삼성생명), 김정은(우리은행) 등 각 팀의 에이스들이 경기 내내 자기 역할을 두드러지게 해냈다. 대표팀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박혜진이 자신의 주무기인 왼쪽 레이업으로 승부를 결정지은 장면도 백미였다.

많은 시간을 뛰지는 않았지만 강아정과 강이슬의 3점슛이 중요할 때 나왔고, 선발로 나섰던 염윤아도 충분히 자기 역할을 했다. 주전 선수들과 벤치 멤버들까지 최상의 열정과 기량을 충분히 보여주었던 경기였다.

중심이 되어 준 리더 김정은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선수는 김정은(21점 3리바운드 4어시스트)이다. 

지난 달 30일, KB와의 경기에서도 김정은의 플레이를 보며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경기에서도 그 때의 칭찬을 똑같이 해줘야 할 것 같다. 현장에 있었으면 경기가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안아줬을 것 같다. 그만큼 이 경기에서의 김정은은 자랑스러웠다. 

공수에서 확실하게 자기 역할을 해줬다. 나무랄 데 없는 경기력이다. 그리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확실하게 팀의 중심을 잡아줬다.

김정은은 현재 대표팀에서 국가대표 경력이 가장 많은 베테랑이다. 그런 선수가 초반부터 경기 내내 그런 눈빛과 자세로 임하면 다른 선수들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여자농구 대표팀과 관련해 과거와 비교해 많은 비판이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선수들 중에서는 김정은이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대표팀 막내부터 시작해, 팀의 에이스면서도 대표팀에서는 선배들의 백업 역할을 하는 경험, 몸이 좋지 않을 때도 대표팀에서 역할을 해야 하는 부담감 등을 오롯이 다 겪어본 선수다.

그런 김정은의 오늘 플레이는 “한국 여자 농구, 그리고 대표팀이 국제 대회에서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김정은의 이런 의지는 코트에 있는 동료뿐 아니라 벤치에 있는 선수들의 응원까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수비과정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선수들의 위치를 잡는 토킹도 그 중 하나였다. 김정은이 수비 때 이렇게 적극적으로 토킹을 했었나 싶을 정도였다. 

대표팀이 소집된 후 훈련 기간이 충분치 않았고, 지역 방어를 많이 쓴 만큼 코트에서의 의사소통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김정은을 필두로 모든 선수들이 경기 내내 적극적으로 토킹을 했다. 대표팀 경기에서 이런 모습이 나온다는 건, 선수들에게 이 경기가 정말 간절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한별의 헌신적인 역할까지... 오늘 대표팀은 각 팀의 에이스들이 자기 몫을 보란 듯이 해주며 각자의 간절함을 경기력으로 증명했다.

물론 김단비의 경우는 4점 4리바운드로 기록 면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경기 막판의 턴오버와 자유투 미스도 이런 아쉬움을 더 크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단비 역시 이 경기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많이 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득점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김단비가 코트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운동능력과 활동량은 상대에게 꾸준히 부담이다.

김단비는 수비에서도 상대 공격자를 그냥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계속 범핑을 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게 하며 리듬을 깨 놓는다. 공격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김단비는 햄스트링 부상이 다 낫지 않은 상황에서도 수비에서 자기 역할을 해줬다.

한국 대표팀에는 박지수가 있다
김정은을 가장 먼저 언급했지만, 역시 박지수(23점 8리바운드 3스틸)를 빼놓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박지수는 100%가 아니라, 그 이상의 역할을 해줬다.

현역시절 중국과의 어려웠던 승부들을 회상해봤다. 우리가 아무리 박스 아웃을 적극적으로 해 봤자, 뒤에서 그냥 걷어가 버리면 답이 없다. 아시아 무대에서 중국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최소화하고 외곽 위주의 공격에서 해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 중국전에서는 한국이 골밑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었다. 박지수는 상대의 2미터가 넘는 선수들보다 한 수 위의 플레이를 보여줬다.

중국의 한쉬(205cm)나 리위에루(200cm)의 높이는 박지수(198cm)보다 위력적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박지수는 골밑에서 공을 흘리지 않는다. 높이만 갖고 수비를 하지도 않는다. 수비에서 기다려야 할 때와 블록슛을 올라가야 할 타이밍을 알고 있다. 유연성도 좋고 민첩성도 있다. 그리고 영리하다. 상대의 도움 수비에 대처하는 능력도 박지수는 중국의 장신 선수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박지수 혼자서 엄청난 장신 둘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다. 줄 것은 줘야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2미터 대의 중국 선수 2명보다 박지수 1명의 영향력이 더 컸다.

물론 박지수의 중거리슛이 잘 들어간 점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박지수의 능력이다. 그렇게 해야 장신들을 끌어낼 수 있고, 또 안으로 파고 들어갈 수도 있다.

멀뚱히 안에서 자리만 잡고 받아먹기만 하는 장신 센터와는 다르다. 많이 움직여주면서 팀플레이에 큰 도움을 준다. 경기 중에 박지수가 포워드 라인 선수들에게 “스크린 걸어 줄 테니까 슛을 쏘라”고 하는 장면이 중계에 잡히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도 자기가 해야할 역할을 스스로 찾아서 할 줄 아는 선수다.

‘내가 대표팀에서 뛰던 시절에 지금의 박지수가 함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22살에 이렇게 농구하는 198cm의 빅맨. 박지수는 한국 여자농구의 축복이다. 대한민국은 '박지수 보유국'이다.

각 팀의 에이스가 모두 모인 조합
오늘 대표팀의 베스트 라인업은 박혜진-김한별-김단비-김정은-박지수였다. 기존의 대표팀과 비교해보자면 확실한 슈터, 확실한 4번이 없는 구성이다.

하지만 박지수를 제외한 4명이 모두 볼 핸들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5명 모두가 팀에서 마지막 공격을 결정지을 수 있는 선수라는 점에서 충분히 강점이 있는 것 같다. 이 경기의 마지막 순간에도 이러한 부분이 나타났다. 

대표팀은 79-80으로 1점차 끌려가던 마지막 순간에 박혜진이 단독 돌파를 통해 재역전을 시켰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 혹은 가장 확률 높은 공격을 가져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박혜진은 직접 돌파를 선택해 위닝샷을 성공했다. 왼쪽 레이업은 박혜진이 가장 잘하는 공격이다. 

승부처에서 부담을 피하려고 볼을 돌리거나, 주득점원을 찾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위력적인 선택이었다. 박혜진의 이런 마무리는 이어진 중국의 마지막 공격과 대비를 이룬다.

중국도 종료 6초를 남기고 가드 리유안이 왼쪽 돌파를 시도했다. 수비를 하던 박혜진이 리위에루의 스크린에 걸렸다. 하지만 돌파를 하던 리유안은 충분히 슛을 시도할 수 있었음에도 더 확실한 확률을 생각했는지 박지수 뒤에서 달려오던 리위에루에게 굳이 패스를 선택했고, 박지수의 손에 걸린 공은 김한별에게 잡혔다. 승부가 결정된 장면이다.

승부처에서 2m의 리위에루를 달고 레이업을 올린 박혜진은 위닝샷의 주인공이 됐고, 198cm의 박지수를 피해 패스를 시도한 리유안은 결정적인 턴오버를 한 선수가 됐다.

박지수가 없는 시간에도 에이스답게!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10점차 이상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따라잡힌 점은 분명 짚어봐야 하는 부분이다. 

대표팀은 중국을 상대로 박지수가 36분 19초를 뛰었고, 김단비(34분 57초), 김정은(33분 37초), 김한별(33분 33초)도 모두 많은 시간을 뛰었다. 30분을 넘게 뛴 선수가 한 명도 없었던 중국보다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몇 차례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분위기가 가라앉게 됐다.

다행히 선수들의 집중력이 끝까지 유지되면서 뒤집힌 경기를 재역전승으로 이끌었지만, 상대의 흐름을 끊어주지 못하면서 10점을 따라잡혀 역전을 당했던 부분은 아쉽다.

대표팀은 중국이 박지수에 대해 대비할 것을 감안한 듯, 박지수를 활용해 오히려 외곽 찬스를 만드는 공격과 지역 방어를 활용하며 초반 리드를 잡았는데, 상대 쪽으로 분위기가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전술적인 변화가 크지 않았던 점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부분이다.

물론 대표팀의 소집 기간이 길지 않아 많은 패턴을 준비할 시간은 부족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박지수가 없는 시간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190cm가 넘는 장신이 6명이나 포진하고 있는 중국을 상대로 박지수는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시간을 뛰었다. 4쿼터에는 지친 모습이 역력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그 정도를 뛰게 되면 지치지 않을 수가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 대부분은 각 팀의 에이스들이다. 박지수가 코트에 없을 때도 해결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77-80으로 끌려가고 있던 종료 40여초 전, 김정은이 상대 수비수를 달고 베이스라인 쪽을 돌파해 레이업을 성공한 공격은 박지수 자리에 다른 선수가 있었어도 만들어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박지수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박지수가 벤치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선수들이 박지수가 없을 때도 자신 있게 자기 플레이를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시즌 1라운드를 마치고 대표팀에 소집이 되면서 선수들의 경기 감각과 컨디션도 절정에 올라있다. 부상을 조심하면서 서로간의 호흡을 더 맞춰간다면 남은 경기에서도 더 기대할 만한 경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대표팀 선수들은 각 팀의 에이스들로 구성되어 있는 최선의 멤버다.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대한민국의 베스트라는 사실을.

사진 =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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