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빛은 퇴장하고/ 밤이 들어오니/ 내 손을 잡아/ 네버랜드로 가자(Exit, light/ Enter, night/ Take my hand/ We're off to never-never land).’

MLB 뉴욕 양키스를 대표하는 전설이자 메이저리그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마무리 투수로 칭송받는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 그가 불펜에서 등판할 때, 양키스의 홈 구장 양키스타디움에는 그의 등장 곡인 메탈리카의 ‘엔터 샌드맨(Enter Sandman)’이 울려 퍼졌다. 독일 설화에 등장하는 모래 요정 ‘샌드맨’은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는 어린이들을 찾아 눈에 모래를 뿌려 잠들게 하는 요정이다.

‘엔터 샌드맨’은 일렉 기타 리프로 시작된다. 장중한 인트로와 함께 불펜의 문이 열리고, 리베라가 잔디를 걸어 마운드에 도착할 때쯤 기타에 이어 드럼 소리가 페이드인 되며 경기장의 분위기는 마침내 최고조에 다다른다. 리베라의 명성만큼이나 유명했던 이 등장 곡은 상대 팀에게는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료 버저 소리와도 같았다.

그리고 8일(이하 한국시간),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LA 클리퍼스와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의 경기가 클리퍼스의 107-101 역전승으로 끝난 순간, ‘디 애슬레틱’의 데이브 듀포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카와이 레너드가 4쿼터에 들어올 때, ‘엔터 샌드맨’을 틀어라!”

3쿼터 21분 동안 9득점에 그치고 있던 레너드는 이날 4쿼터에만 무려 18득점을 몰아치며 팀의 역전승을 견인했다. 경기가 마무리되는 4쿼터에 더욱 강해지는 레너드의 활약을 마무리 투수 리베라에 빗댄 멋들어진 비유였다.

 

그러나 듀포 기자의 이 익살스러운 멘트는 다른 팀의 전력분석팀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과제다. 7-13-10-15-18-18. 올 시즌 레너드의 4쿼터 득점 기록으로, 레너드는 4쿼터 평균 13.5점으로 이 부문 압도적인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2위 제임스 하든 9.9점). 올 시즌 평균 득점인 29.0점 중 절반에 가까운 득점을 4쿼터에 집중하고 있으며, 비율로 보면 그의 클러치 본능은 더욱 빛난다. 올 시즌 레너드의 쿼터별 오펜시브 레이팅(100번의 공격 기회에서 득점 기대치)은 다음과 같다.

1Q : 98.1
2Q : 112.2
3Q : 114.9 
4Q : 126.8

문제는 클리퍼스의 ‘막강 불펜진’이 레너드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날 27점을 넣은 레너드와 더불어 26점을 몰아친 루 윌리엄스는 지난 시즌 69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 중 4쿼터 득점이 리그 3위(7.6점)였다. 곧 부상에서 돌아올 폴 조지 또한 4쿼터 7.1득점으로 윌리엄스의 바로 뒤를 이어 4위였다. 리그 최고의 강심장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

심지어 더 놀라운 것은 레너드의 이날 활약은 비단 공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레너드는 이날 경기 4쿼터, 패트릭 베벌리와 함께 상대 에이스인 데미안 릴라드와 C.J. 맥컬럼을 번갈아 가며 수비했는데, 그의 수비에 겁먹은 포틀랜드는 쿼터 내내 레너드가 마크하는 선수에게 공을 투입하는 것을 최대한 피했다. 그 결과 릴라드와 맥컬럼은 4쿼터 도합 8개의 야투를 던져 모두 실패, 무득점에 그치는 수모를 당했다. 릴라드는 이날 경기 전까지 4쿼터 득점 부문에서 레너드에 이어 11.1점으로 리그 2위를 달리고 있었다.

패장 테리 스토츠 포틀랜드 감독은 경기를 마친 뒤 레너드의 활약에 대해 “푹 쉬고 온 것 같다”고 평가했다. 직전 경기였던 밀워키 벅스와 백투백 경기에서 관리 차 결장하며 휴식을 취한 레너드를 비꼰 것이다. 그러나 전후 사정이 어찌 됐든, 스테이플스에 나타난 모래 요정은 포틀랜드 선수단의 눈에 모래를 뿌려 눈꺼풀을 덮었다. 경기는 레너드의 ‘세이브’로 끝났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