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변연하 칼럼니스트] 국가대표 소집으로 인한 휴식기 이전, 최고 명승부가 되리라 기대를 모았던 경기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30일, 청주에서 열린 경기에서 우리은행이 KB를 89-65로 완파했다. 개막전에서 삼성생명에게 졌던 우리은행은 이후 3경기를 모두 대승으로 마쳤고, 3연승 중이던 KB는 시즌 첫 패를 당했다.

우리은행은 개막 후 가장 좋은 경기를 펼쳤다. 은퇴한 임영희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유기적인 경기였다. 박혜진의 리딩과 김정은의 활약, 그리고 르샨다 그레이의 분전 등이 임영희의 공백을 깔끔하게 지웠다.

선수들 모두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국가대표에서 부침이 있었다는 박혜진은 1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자신의 경기 리듬을 완전히 회복한 것 같았고, 그레이는 개막전 이후 경기를 치를수록 조금씩 우리은행 농구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식스맨으로 출전한 박다정과 나윤정도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줬다.

확실한 공수겸장이 된 김정은의 위력
가장 돋보인 선수 한 명을 꼽는다면 역시 김정은이다. 

김정은은 신인 때부터 워낙 공격력이 좋은 선수였다. 그런데 이제는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확실하게 팀의 중심이 된 것 같다.

내가 알던 김정은은 공격이 안 풀릴 때는 상대에게 몸을 붙여서 자신의 장점인 피지컬을 이용해 자유투라도 얻어내며 실마리를 풀어가던 선수였다. 그런데 이제는 공격이 안 될 때, 수비에서부터 컨디션을 끌어올려 공격 리듬을 찾아가는 것 같다. 농구를 잘하는 베테랑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서른을 넘긴 나이에도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이겨냈을지 상상이 된다. 또, 수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공격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것 같다.

공격에서는 26점을 넣으면서 3점슛을 6개나 성공했다. 2점슛 포함 11개의 슛을 시도에 단 1개만을 실패했다. 자신감과 집중력이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내 머리 속에서 김정은의 무서움은 거침없이 드라이브인을 하고, 수비를 붙여놓은 후 페이드어웨이 슛을 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3점슛이 없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앞에 수비수를 붙여놓고 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외곽에서 상대 수비를 붙여놓고 돌파를 하는 모습이 많았는데, 이 경기에서는 수비수의 손이 깊숙하게 들어온다 싶어도 그대로 슛을 시도했다. 최근 본인의 슛 감각에 대해 자신이 있는 것 같다. 전문 슈터가 아니라면, ‘감이 왔다’싶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슛을 던질 수가 없다.

또, 우리은행으로 이적한 후 슛 연습도 상당히 많이 한 것 같다. 

김정은도 나이가 있고, 고질적으로 몸에 달고 있는 부상이 있는 선수다. 예전처럼 힘과 피지컬만 앞세울 수 없다는 걸 알고 더 많은 방법을 찾고, 또 같은 슛 기회에서도 더 높은 집중력을 가져가는 것 같다.

김정은을 비롯해 박혜진이나 다른 선수들이 이렇게 경기를 해준다면 우리은행은 임영희의 공백을 서서히 메워갈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인 완성도가 경기를 거듭할수록 나아지고 있는 만큼, 우리은행은 빠르게 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제 2년차인 박지현에게는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당장 박지현 한 명에게, 이전 임영희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욕심이다. 

이 경기처럼 다른 선수들이 조금씩 더 역할을 해주는 가운데, 박지현이 유기적으로 묻어가면서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초반 집중력에서 패한 KB
반면 KB는 경기 초반에 내준 일방적인 흐름이 아쉬웠다.

KB가 이전까지 3연승을 했지만, KB가 잘 했다기보다는 상대가 KB를 만나 자신들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패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지난 3경기에서 KB는 위기라고 말할 상황조차 겪지 않고, 3승을 거뒀다.

그래서였는지 모르지만 경기 초반, 우리은행이 치고 나갈 때도 KB 선수들의 모습은 지나치게 여유가 있어보였다. 

우리은행은 선수들 모두가 무서울 정도로 경기에 집중한다는 게 눈빛에도 드러났는데, 큰 점수차로 달아난 우리은행에 비해 KB는 경기 흐름을 바꾸는 노력이 너무나도 약해 보였다. 지난 시즌 KB가 우리은행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였다 해도, 우리은행은 그 이전 6년간 리그를 압도했던 팀이다. 한 순간도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되는 상대다.

국내 선수들만 뛴 2쿼터에 점수차를 좁히긴 했지만, 잃은 점수를 만회하기 위해 승부를 걸었던 KB는 후반 들어 눈에 띄게 발이 무뎌졌다. 2쿼터를 독무대로 장식했던 박지수도 3쿼터에는 페이스가 확실히 떨어졌다. 결국, 초반에 잃었던 분위기의 큰 차이가 경기 내내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최고의 옵션이 안될 때의 '플랜B'가 필요
선수 개인만 놓고 보면 카일라 쏜튼의 부진이 가장 뼈아팠다. 우리은행의 수비는 박지수에게 줄 것을 주더라도 쏜튼은 완벽하게 묶자는 각오였던 것 같다. 

박지수는 어린 선수임에도 플레이에 상당히 여유가 있다. 서두르지 않고 확실하게 플레이를 가져간다. 장신 선수임에도 슛 거리가 길고, 또 정확하다. 하지만 쏜튼이 이 경기처럼 플레이를 할 때는 야투가 좋더라도, 정통 5번에 가까운 플레이를 가져가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KB로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박지수와 쏜튼이 어려움을 겪을 때, 활로를 찾을 수 있도록 또 다른 공격 루트를 마련해야 한다.

쏜튼이 안 풀릴 때, KB는 강아정을 활용한 외곽 플레이를 많이 요구했는데, 오히려 박지수를 이용해서 우리은행이 후반에 보여줬던 픽앤롤을 더 활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봤다.

또 이 경기에서는 우리은행의 박혜진, 김정은, 김소니아, 그레이 등이 초반에 많은 파울을 범했는데, 박지수라는 확실한 빅맨 카드를 두고도 미스 매치를 활용해서 상대 파울을 적극적으로 유도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우리은행은 KB의 약점을 잡아 집요하게 파고드는데, KB는 그런 모습이 약했다.

개막 후 꾸준히 저조한 3점슛 야투율은 확실히 선수들이 정상적인 컨디션에서 충분한 훈련을 하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KB 선수들의 외곽 능력이 이 정도로 저조하지는 않다. 이 부분은 휴식기를 거치고 훈련 등을 통해 컨디션이 올라오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경기에서 우리은행은 전체적으로 모든 플레이가 좋았다. 빈틈이 없어 보였다. 

이 정도 경기력을 발휘하는 우리은행을 이기려면 KB도 높은 집중력으로 최고의 경기력을 펼쳤어야 한다. 공격이 안 되면 수비에서라도 대등한 싸움을 해줘야 하는 데,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컸다.

승승장구하던 디팬딩 챔피언이 일격을 당한만큼 다음 맞대결에서는 더 박진감 넘치는 승부가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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