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정진경 칼럼니스트] ‘연합군’ 신한은행이 드디어 시즌 첫 승을 거뒀다.

코칭스태프가 전면 교체되면서, 곽주영을 비롯해 지난 시즌 팀에 있던 선수들이 대거 팀을 떠난 신한은행은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재활, 그리고 외국인 선수 엘라나 스미스까지 수술대에 오르며 대체 외국인 선수를 찾아야했다.

다른 팀에서 긴급수혈한 선수들이 주전으로 나서는 상황이라 선수들의 손발을 맞추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런 가운데 팀을 이끌어야 할 김단비는 대표팀에서 부상을 당하며 시즌 첫 경기도 결장했다.

당연히 신한은행에 대한 시즌 전망은 밝지가 않았고, 개막 후 이는 현실이 됐다. 20일 KB와의 시즌 첫 경기에서 결국 김단비는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신한은행은 조직력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무려 7개의 24초 샷 클락 바이얼레이션을 범했고, 단 한 번도 리드를 잡지 못했다. 9-9였던 1쿼터 초반 이후 역전은커녕 단 한 차례의 동점도 만들지 못했고, 이어진 36분 21초를 무기력하게 끌려가다가 경기를 헌납했다. 

KB는 이러한 신한은행을 상대로는 여유가 넘쳤고, 위기조차 없었다.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았던 것은 KB도 마찬가지였지만 경기는 일방적이었다.

김단비의 복귀
신한은행은 ‘에이스’ 김단비가 복귀한 25일 삼성생명 전도 66-73으로 패했다. 하지만 첫 경기와는 달랐다. 정상일 신한은행 감독은 철저한 세트 오펜스 패턴 플레이를 가져가면서 선수들에게 안정감을 찾아줬고 첫 경기에서 흔들렸던 조직력을 어느 정도 다잡을 수 있었다. 

김단비의 역할도 컸다. 아직 몸이 완전치 않은 상태였지만 14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김단비는 확실히 존재만으로도 동료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선수다. 김단비로 인해 공격에서의 옵션이 훨씬 많아지고, 다른 선수들의 경기력도 동반 상승시켜준다. 

그런데 김단비의 효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단비가 이번 시즌, 조금 더 편하게 농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수들이 있었다.

기록 이상의 존재감, 고참 역할의 모범 답안
김수연 34세, 이경은 33세, 비키바흐 31세, 김단비 30세.

모아보니 신한의 주축멤버는 한국나이로 모두 30세 이상이다.

특히 한채진은 36세로 프로경력 18년차이자, 이번 시즌 WKBL 최고령 선수다. 이제는 이름이 사라진 KDB생명을 대표하는 선수로 오랫동안 활약했고, 팀의 온갖 풍파를 동료들과 함께 겪으면서도 코트에서 제 역할을 해줬던 선수다.

KDB생명이 OK저축은행을 거쳐 올 시즌 BNK로 새롭게 창단했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한채진은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팀을 이적했다. 자신의 친정인 신한은행으로 12년만의 복귀였다.

한채진은 현재 3경기에서 평균 39분 47초를 뛰었다. 말 그대로 40분을 모두 다 뛰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출전 시간은 리그 1위. 한창이던 시절, 평균 출전 시간 1위를 놓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간 듯 한 모습 보이며 평균 10.3점 5.0리바운드 5.0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기록도 나쁘지 않지만 경기를 보면 기록 이상의 모습이 계속 눈에 보인다.

우선 한채진은 가드들이 부진할 때 리딩을 맡아준다. 작년까지 신한은행은 가드가 막힐 때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선수가 김단비뿐이였다. 

득점까지 책임져야 하는 김단비가 볼 핸들러 역할까지 맡은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그런데 한채진이 이 역할을 해주면서 김단비가 예년보다는 편하게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있게 됐다.

또한, 한채진은 베테랑답게 자신이 팀에 가장 필요한 순간에 그 역할을 수행해준다. 

화려한 득점력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순간의 득점을 책임지고, 때로는 1대1 드라이브인으로 골밑 수비를 흔들어 상대 수비를 좁혀 놓은 뒤 더 쉬운 찬스를 동료들에게 만들어 준다. 이로 인해 김단비와 이경은이 더 쉽게 센터들과 2대2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코너 투 코너, 윙 투 윙으로 부지런히 다니면서 만들어 내는 3점슛 찬스도 상대 수비를 괴롭히는 요인 중 하나이다. 

한채진에 대해 마지막으로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수비다. 

어느새 나타나 낚아채듯 상대의 볼을 빼앗는 한채진의 스틸은 예전에 삼성생명 이미선 코치가 보여주던 스틸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뺏기 위해 적당한 길목에서 지키고 있다는 것 또한 농구를 아는 베테랑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다. 

든든한 조력자 김수연
신한은행의 외곽에는 한채진이 있다면 골밑에는 김수연이 있다. 

김수연은 한채진과 달리 입단 후 꾸준히 한 팀에만 있었지만, 순탄치 못한 선수생활을 보냈다. 2005년 KB에 입단하며 많은 기대를 모았고, 퓨처스리그를 거쳐 1군 무대에서도 그 잠재력을 보여줬지만, 정작 정상급으로 올라설 수 있던 시점부터 연이은 부상에 발목을 잡혔다.

2017년 은퇴를 선택했던 김수연은 지난 해 다시 복귀 했지만, 박지수가 버티고 있던 KB에서는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결국 김수연도 이번 시즌을 앞두고 FA자격을 획득해,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이적을 했다.

현재 김수연은 3경기에서 평균 31분을 뛰며 8.7점 10.7리바운드 2.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신한은행이 첫 승을 거둔 28일 하나은행 전에서는 34분 45초를 뛰며 10점 16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시즌 첫 경기에 이어 두 번째 더블더블이다. 

김수연은 부상 전력이 많은 노장 선수지만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리그 전체에 좋은 센터가 흔치 않은 상황이라 김수연의 가치는 더 높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감안한다해도 김수연은 현재, 예상했던 것 이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시즌 김수연의 모습을 보면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대해서는 잊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30세가 넘어가면서 신체활동이 하락세에 접어든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인간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생리적 현상이다.

운동선수 역시 마찬가지다. 부상이나 체력 저하에서의 회복이 느려지고, 힘과 스피드도 점차적으로 떨어진다. 젊은 선수들과는 다른 관리가 필요하다. 특혜가 아닌 관리다. 그래서 예전과 다른 운동능력을 보이는 (기량대비)고연봉 노장 선수들의 설 자리는 좁아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노련함과 성숙한 정신력은 어린 선수들이 따라 올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세대교체가 필요한 팀들이 전폭적인 변화를 선택하면서도 팀을 이끌 노장 한, 두 정도를 잔류시키는 이유다. 그리고 이것이 성과로 나타나면 세대교체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한채진과 김수연이 이번 시즌 이적을 할 때, 처음 든 생각은 ‘명예 회복’. ‘마지막 불꽃’, ‘후회없는 은퇴’와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시즌 초반, 무언가 다른 그림이 자꾸 보인다. 신체적 기능의 전성기는 지났지만, 이들이 농구로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의 전성기는 이제부터일 수도 있다.

한채진과 김수연을 조금 더 오래, 코트에서 보고 싶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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