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정진경 칼럼니스트] 새 시즌이 시작됐고, 모든 팀이 한 경기씩을 치렀다. 세 경기 모두 많은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새로운 라이벌 구도가 재미를 더하기도 했고, 또 경기력이 다소 아쉬웠던 팀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졌던 선수는 우리은행의 박지현과 BNK의 이소희다.
지난 시즌 신입선수선발회에서 각각 전체 1-2순위로 프로에 합류한 이들은 최근의 신인 선수들과 달리 입단과 동시에 팀에서 주요 역할을 맡으며 경기에 나서며 팬들은 물론 농구 관계자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신인상은 평균 19분 6초를 뛰며 8.0점 3.7리바운드 1.7어시스트를 기록한 박지현에게 돌아갔고, 시상대 위에서 신인다운, 잊지 못할 수상 소감을 보여 주면서 다시 한 번 많은 농구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박지현에 대한 농구계의 시선과 팬들의 기대치 자체가 워낙 높았던 탓에 신인상 경쟁에서 오히려 부담도 컸지만, 이는 그만큼 박지현이 가진 능력과 잠재력이 어린 시절부터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청소년 대표는 물론 성인 대표팀에 박지현이 합류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신인상은 놓쳤지만, 청소년 대표 출신인 이소희도 특유의 날다람쥐 같은 스피드와 열정적인 농구 스타일로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랑받는 신인선수의 전형’을 보여주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평균 17분 25초를 뛰며 7.3점, 2.0리바운드를 기록 했다.
사실 기록 이상의 선수였다. 코트에 들어서면 확실한 에너지를 보여줬고, 팀 내 별명처럼 ‘비타민’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박지현과 달리 이소희는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 박신자컵에서 다시 한 번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가파른 성장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따라서 박지현과 이소희에게 많은 기대를 했던 것이 비단 필자 뿐은 아니었을 것이다.
부침이 시작된 유망주들의 개막전
하나원큐 2019-20 여자프로농구 공식 개막전이었던 19일. 이소희는 하나은행과의 경기에서 13분 20초를 뛰며 득점 없이 2리바운드 1어시스트를, 이틀 뒤 박지현은 삼성생명과의 경기에서 27분 34초 동안 3점 3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경기 기록은 물론 내용도 만족스럽지 못했고, 두 선수의 소속팀 모두 시즌 첫 패를 안았다.
선수들에게는 ‘2년차 징크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신인 시절 갑자기 등장해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 주면서 기대가 올라간 선수가 2년차 때는 그만큼의 활약을 보이지 못하면서 나오는 말 이다.
사실 당연한 과정이다. 아무리 학창시절 각광을 받았다고 해도 프로에서는 그들에 대해 제대로 파악이 되어있지 않았다. 이들의 특성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2년차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대의 분석도 적극적이고, 이들의 장단점이 낱낱이 벗겨진다. 노련한 선수들이 이들의 숨통을 틀어막는데, 주위의 기대와 응원으로 인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더욱 크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어린 선수들의 정신력이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또는, 갑자기 얻은 인기가 선수의 인성을 흐트러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기대가 높은 만큼 이들의 부진을 선수 본인이 아닌, 지도자나 다른 선수들의 탓으로 돌리는 팬들의 여론이 스스로에게 변명거리가 될 수 있다.
결국 ‘2년차 징크스’라는 말이 선수들에게 아주 좋은 핑계이자 스스로의 위안이 되기도 한다.
박지현과 이소희는 농구를 대하는 태도와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인성 면에서도 크게 걱정할 부분이 없다. 그랬기에 이들의 이번 시즌을 더욱 기대했다. 다만 ‘2년차 징크스’라는 단어에 본인들이 안주하고 기대어 버리면 안 된다.
나는 박지현과 이소희를 어린 시절부터 지켜봤다. 이들이 처음 농구공을 잡은 초등학교 3,4학년 시절은 나도 초등학교에서 코치를 시작 할 때였다.
당시 우리나라 여자 농구는 외국인 선수 제도 때문에, 국내 센터들의 존재와 입지가 상당히 좁아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농구를 처음 시키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가드로 성장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아이가 이제 막 농구의 걸음마를 시작 할 때, 가드로 키워 달라는 부모의 상담을 받은 적도 많다. 현재 이들 세대의 자원 중에 센터나 포워드 보다는 가드 유망주가 더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도 이 두 명의 가드는 정말 좋은 선수로 성장했고 어느덧 프로팀에 입단 해 구단 뿐 아니라 팬들, 더 나아 가서는 한국 농구계의 관심과 기대를 한껏 받고 있다.
코트에서 제대로 놀아야 하는 이소희
이소희의 활용 대해 유영주 BNK 감독은 공식적으로도 “너 하고 싶은 대로 놀아”라고 짧게 전했다.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배려다.
다만 신체 조건이 가져오는 부침은 이소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소희의 강점인 스피드와 패기는 앞으로도 자신보다 더 크고 힘을 잘 쓰는 상대의 노련미 앞에 꺾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을 어떻게 쓸지 모른다면 장점인 스피드를 제대로 살리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소희에게 어느 정도의 맞춰진 플레이가 필요할 수도 있다. 뚜렷한 역할을 부여해 너무 광범위한 역할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이소희의 장점을 잘 알고 있는 상대는 어차피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그냥 놔두지 않는다. 이소희 역시 자신의 강점을 어떻게 이용할 지 고민해서 단점을 장점으로 극복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팀이 원하는 역할에 적응이 필요한 박지현
한편 박지현은 개막전에서 자신의 역할에 혼란을 느끼는 것이 확실히 보였다. 팀이 자신에게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영리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팀보다 우선인 선수는 없다. 좋은 선수는 팀을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팀에 맞춰갈 줄 아는 선수다.
아무리 패스 능력이 좋은 가드라도 동료들이 받을 수 없는 패스를 시도 한다면 좋은 가드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어떤 스타일의 농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고 많은 팬을 거느린다 해도 팀에서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것들을 하지 못한다면 좋은 선수가 아닌 것이다.
박지현은 단순하게 이겨나갈 필요가 있다. 개막전에서 뛴 27분 34초는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코칭스태프가 박지현에 대해 믿음을 갖고, 필요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주어진 시간이다.
보다 나은 수비, 보다 나은 집중력, 보다 나은 스스로의 분위기를 찾아 경기에 임해야 한다. 본인이 원하는 농구는 모두가 원하는 기본적인 부분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나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신인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김정은
WKBL 현역 선수 중에 이소희와 박지현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가 있다. 우리은행의 김정은이다.
2006년 신입선수선발회에서 전체 1순위에 신세계 쿨캣(현 하나은행)에 지목된 김정은은 루키시즌부터 두 자리 수 득점을 꾸준히 올렸다. ‘역대급 신인’들이 몇 차례 나왔지만 모든 농구인들은 ‘역대 최고의 신인’으로 주저 없이 김정은을 꼽는다.
그만큼 김정은은 신인 시절부터 독보적이다. 지금보다 훨씬 경쟁력이 높았던 WKBL에서, 리그를 호령하던 당시의 국가대표 선수들과도 양보 없는 대결을 펼쳤다.
이후로도 꾸준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부상 때문에 고전했던 시기를 빼고는 여전히 신인 시절과 같은 모습으로 경기를 하고 있다. 그의 인성이나 태도도 한결같다.
한 팀의 소녀가장 시절을 거쳐 에이스이자 흔들림 없는 주장이었던 김정은은 누구보다 공격에 특화된 선수였지만 서른이 넘은 나이에 팀을 옮긴 후, 팀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역할과 수비 등 궂은일을 두 말 없이 해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장점과 지배력을 더욱 높였다.
신인다운 신인이었고, 현재는 팀이 진정 필요로 하는 선수인 김정은은 향후 한국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전설의 반열에 당연히 이름을 올릴 것이다.
아직 팀 당 한 경기 밖에 치르지 않았다. 시즌은 길다. 개막전만 보고 선수에 대해 속단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 여자농구의 차세대 중심이 되어야 할 어린 선수들이 너무 큰 기대와 목표로 인해 스스로 번-아웃 되지 않길 바라며, 이들이 당연히 겪어야 할 부침을 잘 이겨내고 성장하는 시즌이 되길 바란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